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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는 스토리의 비밀 - 인물의 변화와 감정의 흐름이 만드는 이야기의 힘
앤서니 멀린스 지음, 이민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제부턴가 나 역시 스토리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런지 드라마나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주로 운문 창작을 해왔고, 그 안에도 자연스레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예전엔 이미지에 더 마음이 갔다면, 몇 년 전부터는 스토리텔링 관련 책들을 읽으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리는 결국 본능이니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 말이다.
그래서 이 책, 『잘 팔리는 스토리의 비밀』(2025, 세종서적)이라는 제목이 처음엔 상업적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막상 펼쳐보니 단순히 ‘팔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법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해하는 법’에 관한 책이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여러 시나리오 관련 도서들의 제목을 보며, 나도 그 책들을 스쳐 지나온 기억이 났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도 아니고 영상 쪽과는 거리가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 세계의 이론서를 자주 읽어왔다.
아마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삶이 이론처럼 정돈되진 않지만, 각자의 스토리를 살아간다는 자각은 우리를 조금 더 깊은 이해로 이끌지 않을까.
책은 머리말에서 언급된 ‘아크’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아크 분석이란 무엇인가?’, ‘변화형 인물’, ‘불변형 인물’, ‘대안적 아크들’, ‘창작자를 위한 실전 글쓰기’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작법서들이 주로 ‘영웅의 여정’이나 ‘3막 구조’처럼 사건 중심의 구조를 다루었다면, 저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감정의 곡선’을 읽는 법을 제시한다. 그는 이야기의 본질이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그 일이 인물에게 어떤 감정의 변화를 일으켰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사건의 나열이 아닌, 감정의 여정으로서의 이야기. 그가 말하는 ‘아크 분석’은 바로 그 감정의 흐름을 따라 인물의 변화를 추적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세 가지 아크로 구분한다. 낙관적 아크, 비관적 아크, 그리고 양면적 아크.
낙관적 아크는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인물의 여정이다. 예를 들어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
비관적 아크는 반대로, 타락과 몰락의 곡선을 그린다. 한때 선했던 인물이 욕망이나 권력에 휩쓸려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구조다. 〈대부〉의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그 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것이 양면적 아크다. 성공 속의 상실, 실패 속의 깨달음. 삶의 복합적인 결을 담은 구조다. 〈라라랜드〉처럼 사랑과 꿈 사이에서 모두를 얻지 못하는 인물의 이야기.
결국 아크란, 우리가 살아가는 감정의 궤적을 문학적으로 해석한 개념이다.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물이 ‘무엇을 깨달았는가’를 바라보는 순간, 독자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창작 습관을 떠올렸다. 플롯을 짜는 일도 어려웠지만 인물의 감정선을 이해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감정의 흐름을 ‘아크’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정리해 준다. 앞으로는 글을 쓸 때마다 “이 인물의 아크는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향하는가?”를 먼저 생각을 해야겠다.
그 변화는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전환이었다. ‘아크 분석’은 창작자에게 이론이 아니라 감정의 지도를 제공한다. 5부에서는 실질적으로 아크 분석을 통해 글을 쓸 때의 지침을 다루고 있어 초보 창작자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또, 오래 글을 써온 사람에겐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바라보는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것 같았다.
책을 덮고 나면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 어쩌면 “이 이야기의 아크는 어떤 곡선을 그리고 있을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 하지만 그 정도로 이 책을 명확하게 이해를 한 게 아니기에 그런 분위기만 잡을 듯하다.
앤서니 멀린스의 『잘 팔리는 스토리의 비밀』은 단순한 시나리오 작법서가 아니다.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이야기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에게 감정의 언어를 보는 시야를 뜨이게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 역시 하나의 이야기이고, 각자의 감정 곡선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삶은 어떤 아크를 그리고 있을까. 낙관적일까, 비관적일까,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을까. 지금은 분명 흔들리는 중이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끌리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