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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컨셉 사전 - 죽은 콘텐츠도 살리는 크리에이터의 말
테오 잉글리스 지음, 이희수 옮김 / 윌북 / 2025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디자인에 관심은 있으나 손재주나 미술적인 재능은 없어 직접 뭘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사진이 있어 마음에 드는 순간들을 담는 것을 낙으로 삼고는 한다. 그럼에도 디자인 관련 책들을 읽는 것은 만드는 눈은 없더라도 보는 눈을 키우거나,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내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죽은 콘텐츠도 살리는 크리에이터의 말’이라는 부제와 『디자인 컨셉 사전』이라는 제목은 눈길을 끈다. 표지의 타이포그래피 또한 내 호기심을 움직였다. 현업에서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저자의 이력까지,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책은 1장 역사, 2장 이론, 3장 실행, 4장 타이포그래피, 5장 매체로 구성된다. 구조만 보면 단순한 분류 같지만, 실제로 읽어 내려가면 각 개념들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그래픽 디자인의 뿌리’라는 항목에서 출발해 ‘국제주의 양식’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래픽 디자인 정전’으로 확장되는 흐름은 단일한 키워드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나의 디자인 사조는 또 다른 개념을 낳고, 그것은 시대의 요구와 맞물려 새로운 방향을 형성한다. 이 책은 그런 유기적 연결망을 독자에게 보여주며, 흩어져 있던 지식의 파편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 주는 경험을 선사한다.
내게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사전’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지식 나열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통 사전은 독립적 정의를 제시하는 데 머물지만, 이 책의 항목들은 서로의 의미를 끊임없이 참조하며 ‘맥락’을 형성한다. 이는 마치 디자인 작업에서 레이어와 레이어가 겹쳐지며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해 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덕분에 읽는 동안, 내가 알고 있던 몇몇 단어들은 새로운 결을 얻었고, 전혀 몰랐던 개념들은 기존 지식의 틈새에 스며들며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냈다.
이 책의 가치는 학생과 실무자에게 다르게 다가갈 것이다. 학생에게는 디자인을 이해하는 기초 언어, 즉 가장 처음 익혀야 할 알파벳과 같다. 반면 실무자에게는 작업 과정에서 잠시 돌아보아야 할 사유의 지점, 이론적 뿌리를 확인하는 참고서가 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단순히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를 묻지 않고, ‘왜’ 그렇게 디자인해야 하는가를 성찰하게 만드는 도구다.
디자인을 배우지 않은 나에게도 낯설고 어려운 개념들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 기술과 철학이 어떻게 얽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디자인은 단순히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사고의 구조이자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실감했다.
각 키워드별 마지막에는 '더 읽을거리'로 추천하는 책들이 있어 독자에 따라 해당 키워드의 디자인 이론 공부를 더 깊게 공부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디자인을 도구적 기술이 아니라 언어와 사유의 장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나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금 떠올렸고, 그 답은 여전히 탐구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디자인 컨셉 사전』은 디자인을 처음 배우는 학생에게는 기본기를 다지는 교본이 될 것이며, 이미 실무에 종사하는 디자이너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이론적·역사적 맥락에서 재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나처럼 디자인의 전문적 배경은 없지만 ‘보는 눈’을 키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유익하다. 디자인을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사고의 언어로 배우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며 리뷰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