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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역사 - 숫자로 묻고 세계를 증명하다 ㅣ 소소의책 역사교양서
스네자나 로렌스 지음, 고유경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부터 수학을 멀리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 어느 정도 수학 성적이 나왔고, 수학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나와 수학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이후 어떤 계기로 수학과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 벌어진 간격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남은 의무교육 기간 동안 수학은 점점 내게 가까이 다가올 수 없는 과목이 되어갔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는 이제 수학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생은 생각보다 묘하다. 30대 초반, 직업훈련학교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되면서 수학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프로그래밍과 수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탓인지 여전히 수학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학과 나는 아주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평행선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스네자나 로렌스의 『수학의 역사』가 그 평행선의 간격을 조금 더 좁혀줄 것 같아 책을 읽게 됐다.
수학과 다시 만나는 방법
내가 이 책에 끌린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끌리는 편이다.수학 자체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수학의 역사라면 조금 다르게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을 공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로 따라가는 것이라면 말이다. 책을 펼쳐 처음 만난 ‘연대표로 보는 수학의 역사’를 보면서 조금 의외의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과거의 몇 줄은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낯설어지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수학을 배워온 방식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수학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바라볼 수 있었지만, 현대의 수학은 점점 전문화되고 복잡해지면서 내게서 멀어진다.
그 순간 예전에 사촌 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학에서 세계가 보인다.”
당시에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 형은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건축을 전공했고, 결국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수학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나와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말이 아주 조금은 이해될 것 같았다.
40개의 챕터로 만나는 수학의 역사
『수학의 역사』는 4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초반부에 특히 마음이 끌렸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 부담스러운 수식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수학책이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복잡한 공식이 등장하고 그것을 이해해야 할 것 같은 부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수학을 이야기로 풀어간다.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며 조금씩 주워 들었던 내용들도 중간중간 겹쳐졌다. 그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지식들이 하나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수학을 공부한다는 생각보다는 수학의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차이가 내게는 꽤 컸다.
숫자 하나에도 역사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숫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한다.
0, 1, 2, 3…
종이에 숫자를 적고 계산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서 그 숫자 체계가 없었던 시대를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렇다면 아라비아 숫자가 널리 사용되기 전 사람들에게 수학은 지금보다 훨씬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물론 그것 역시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기준에서 하는 생각일 뿐이다. 어쩌면 다른 방식의 숫자와 계산법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익숙하게 사용하는 체계가 반드시 절대적으로 쉬운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놀랍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숫자 하나, 계산법 하나에도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인간의 고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학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에 따라 숫자를 만들고, 측정하고, 계산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발전해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수학은 교과서에 적힌 공식보다 훨씬 인간적인 학문처럼 느껴진다.
수학은 계산보다 먼저 '질문'이었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울 때는 공식이 먼저였다. 공식을 외우고 문제에 적용한다. 답을 맞히면 잘한 것이고, 틀리면 다시 공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왜'가 아니라 '어떻게 풀 것인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수학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질문이 있었다.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었고, 땅의 넓이를 측정하고 싶었으며, 하늘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싶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들이 쌓여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수학이 되었다. 이렇게 바라보면 공식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공식은 외워야 할 기호의 조합이 아니라, 누군가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답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학창 시절 수학을 조금 더 좋아할 수 있었던 방법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제를 풀기 위한 공식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공식이 왜 필요했는지를 먼저 알았다면 말이다. 이 생각도 당시에는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수포자도 처음부터 숫자를 싫어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수포자들도 어린 시절에는 수와 가까웠을 것이다.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시작했고 장난감의 개수를 세고, 나이를 말하고, 돈을 계산하면서 숫자를 자연스럽게 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학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단순히 숫자가 복잡해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기 위해 공식을 외우고,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야 한다. 수학의 재미보다 성적이 중요해지는 순간, 수학은 호기심의 대상에서 평가의 대상으로 바뀐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지나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수학이라는 학문과 거리를 두게 된 사람들에게 수학의 역사를 먼저 보여준다면 어떨까.'
문제를 풀기 전에 수학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공식보다 그 공식이 탄생한 이야기를 먼저 만난다면 수학에 대한 부담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내가 과거 중학생 시절에 이 책을 접했다고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사이 참 많은 책을 읽어왔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수학에서 세상이 보인다'는 말을 조금 이해하게 되다
사촌 형은 수학에서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수학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기보다 풀어야 하는 문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의 역사』를 읽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수학은 단순히 숫자를 계산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언어라는 생각이다.시간을 표현하고, 거리를 측정하고, 공간을 이해하고, 움직임과 변화를 설명한다. 건축을 전공으로 선택한 사촌 형에게 수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가 됐을 것이다. 그는 수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했을 테니까.
반면 나는 수학을 시험지 위에서만 만났다. 같은 수학을 두고도 서로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던 셈이다. 그 차이를 생각하니 조금 아쉽기도 하다. 나에게 수학이 이런 인문학적인 이야기로 먼저 다가왔다면 어땠을까.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수학이라는 학문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먼저 알았다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수학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늦게라도 다시 가까워지는 중
내가 수학을 더 잘했다면 이 책이 훨씬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컸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라면 따로 찾아보지 않았을 수학의 역사와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수학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나는 여전히 수학과 가까운 사람은 아니다. 30대 초반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다시 수학을 만났고, 이후에도 가끔 수학과 마주칠 일이 있었지만 여전히 그 거리는 꽤 멀다. 다만 이제는 그 거리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 평행선을 걷더라도 조금씩 간격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학의 역사』는 그 간격을 좁히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수학과 멀어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혹은 수학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배우고 있는 개념들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수학과 멀어진 채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수학을 다시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책이 아니라, 수학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먼저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되찾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공식은 왜 생겼을까?'
'사람들은 왜 이런 숫자를 만들었을까?'
'수학자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까?'
그런 질문이 생긴다면 수학과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수학과 나 사이의 평행선
책을 덮고 나니 예전의 수학이 생각난다. 중학교 2학년 이후 멀어졌던 수학. 대학에 들어가며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수학. 그리고 30대 초반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던 수학. 지금도 우리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평행선을 걷고 있지만, 그 선 사이의 거리가 아주 조금씩 좁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촌 형은 수학에서 세상을 보았다. 나는 오랫동안 수학에서 시험과 정답만 보았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수학은 숫자와 공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려 했던 인간의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기록이라는 것을. 그래서 『수학의 역사』는 내게 단순한 수학책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멀리했던 수학과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었다.
수학을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 당장 모든 공식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어쩌면 다시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호기심일 테니까.
나처럼 늦게나마 수학과 가까워지려 하지만 좀처럼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사람에게, 이 책이 그 간격을 조금 줄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사촌 형처럼 “수학에서 세상이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했다. 수학은 세상을 계산하는 방법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스네자나 로렌스의 『수학의 역사』는 그 언어를 잊고 지냈던 사람에게 다시 한번 수학의 문을 열어주는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