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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잊은 그대에게 - Passion-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열정
파울 M. 쭐레너 지음, 김기철 옮김 / 생활성서사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잊었을까?”
책을 펼치기 전, 문득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분명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신앙의 온도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기도의 시간은 줄었고, 마음은 쉽게 분산되었으며, 하느님을 향한 감각은 어딘가 무뎌진 듯했다. 믿음이 사라졌다기보다, 관계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그 변화의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원치 않던 이직을 경험했고, 그 와중에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했다. 삶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뇌졸중과 코로나 시기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던 몇 달간의 간병 생활, 결국 맞아야 했던 아버지와의 이별은 내 삶의 결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예정된 죽음이라 해도, 그것을 실제로 마주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그 이후로 마음 어딘가에 설명하기 어려운 균열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 시기에 만난 파울 M. 쭐레너 신부의 『하느님을 잊은 그대에게』는, 마치 때를 알고 찾아온 책처럼 느껴졌다. 머리말을 읽는 순간부터 개인의 삶과 시대의 흐름, 그리고 교회가 겪고 있는 고민들이 묘하게 겹쳐지며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위로’를 건네는 책이라기보다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신앙의 위치를 조용히 짚어주는 책에 가까웠다.
책은 ‘열정의 하느님’, ‘무언가주의 세상’, ‘앗숨 교회’라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 ‘열정의 하느님’은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과연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었는가. 삶의 무게에 눌려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저자는 하느님의 ‘열정’을 다시 꺼내 보인다. 그 열정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사랑의 방식이다. 책을 읽는 동안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잊고 있던 신앙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를 향한 열정이었구나.
두 번째 장 ‘무언가주의 세상’은 현대인의 내면을 정확히 관통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코로나를 지나며, 경제적 불안 속에서, 그리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겪으며 느꼈던 그 막막함.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공허함의 정체를 저자는 ‘무언가주의’라는 말로 풀어낸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공기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 ‘앗숨 교회’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숨이 막힐 듯 답답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희망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는 메시지다. 저자의 시선은 비판보다 이해에 가깝고, 단죄보다 위로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묘한 안도감이 남는다. 신앙이 흔들렸던 시간들마저도, 결국은 하나의 여정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은, 내가 하느님을 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다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있었을 뿐이다. 고난과 시련은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고 진실한 관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통찰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책은 흔한 신앙서적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실의 아픔과 신앙의 질문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나침반과도 같다.
혹시 지금, 나처럼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이가 더 있지 않을까?
“나는 하느님을 잊었을까?”
그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면, 이 책을 한 번쯤 펼쳐보기를 권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을 잊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