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하우스
정다겸 지음, 송재정 극본 / 양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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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본 것도 아니었고, 책이 정말 한글자도 안 읽힌지 3개월째였다.

읽고 있는 거라곤 수십번은 되풀이해서 읽은 만화 '서플리' 정도.

그러다가 짧고, 작은 책을 억지로 펼쳐들어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커피도 좋아하고, 작가도 좋아하고, 딱 부러지고 차가운 남자 주인공도 좋고.

나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오밀조밀 잘 조합해 놓은 소설이었다.

 

완벽주의자이자 인기작가인 진수는 출판사 대표 은영과 십년지기 친구이다.

이 둘은 친구로, 동료로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는데,

그 와중에 뭔가 어설퍼도 한참 어설픈 승연이 진수의 비서로 들어오게 된다.

은영과도 잘 될 것 같고, 승연과도 잘 될 것 같은 진수.

사실, 결말을 보고 뭔가 좀 쌩뚱 맞은 걸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로맨스 소설처럼 두근두근한 감정놀음도,

뭔가 이렇다할 사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눈이 맞아버렸단 말야?! 이런 느낌이었다.

 

유치하기도 하고, 뭔가 엉성한 전개라고 생각하면서도

딱딱 떨어지게 차갑고 확실한 주인공인 대박 작가 이진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런 선배나 상사가 있으면 옆에서 좀 보고 배울 법한데.

 

선생님은 어차피 저한테 돈을 주는데 안 부려먹으세요? 어차피 생긴 비선데...

아깝지 않으세요? 누가 커피 타주고 연필 깎아주면 편하잖아요.

안 편한데요. 나한테 못 맞추니까. 내가 보기보다 좀 까다로워요.

맞추라고 하시면 어떻게든 맞출텐데.

맞출 수 없어요.

왜요?

왜라... 음 아마추어한테 뭘 기대해요? 애초에 기대를 하면 안되지.

저한테 뭘 제대로 시켜보신 것도 없잖아요.

저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잘 할 수 있어요!

처음에 다 보여줬잖아요. 그날 보니까, 좀 많이 심하게 아마추어던데...?

전달이 되나? 지금 마인드를 말하는 거예요. 마인드가 아마추어라고.

 

회사생활 6년차에 나름 업무에도 어느정도 익숙해졌고,

야근도 제법한다고 자부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 할 수록 잘 모르겠고.

나의 마인드 역시 승연과 다름 없는 아.마.추.어.인 것 같기만 하다.

아아아... 진수 작가도 나름대로 힘든 일도 있고,

지치는 일도 있고, 삶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을테지만,

그렇게 크게 벗어나는 일 없이 뭔가 안정적으로 나름의 완벽을 추구하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왜 연필을 거의 비슷하게 깎았는데 내가 안 쓰는 건 줄 알아?

왜 커피를 거의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계속 퇴짜 맞는걸까?

거의 비슷해서야. 거의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아야 된다고.

 

대충 비슷한 온도가 아니라 정확한 물의 온도.

대충 비슷한 커피가 아니라 반드시 슈마트라 만델린.

로스팅은 5일을 넘지 않은 것.

그라인더로 원두를 가는 정도. 드립퍼에 넣는 원두의 양.

여과지의 브랜드. 그리고 물을 붓는 유속과 절차

모두 대충 비슷한게 아니라 매일 정확히 일치할 것. 뭐 느껴지는 것 없어?

 

나는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이 과정을 확인하는 거야.

그렇게 확인한 결과물이 매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맛을 내는 커피고.

맞출 수 없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길 바라.

커피를 만드는 마음이 자기와 내가 달라서 그런 거니까.

 

진수처럼 그렇게 매일매일 확실하고 똑같은 게 내 삶에 있는 걸까.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지켜서 그렇게 만들어 내는 것.

매일매일은 커녕 일주일마다 하는 일도 없는데.

그래서 내 사는 모습이 이렇게 답이 없는 건가.

 

분명 로맨스 소설로 생각하고 읽었건만 로맨스보다는 삶에 대한 자세

그리고 일과 연애의 경계 등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던 것 같다.

은영, 승연 둘다 일로 진수를 만났고, 또 끝까지 일로 그와 부딪히는데,

과연 그러한 관계는 맞는 것인지.

어느 쪽이 더 맞는 선택을 했고, 더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물론 이건 사람마다 다르겠지)

 

이 책의 결말을 보면 결국 커피도, 사랑도, 일도 모든 건 균형인가 싶다.

결국 은영도, 진수도 그 균형을 찾아가게 되니깐.

도대체 언제쯤이 되어야 내 인생의 균형점을 찾게 되려나.

모처럼 달달한 로맨스 소설을 읽고, 커피를 마신듯 쓰디쓴 입맛만 다시게 된다.

 

이제와서 진수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낀다는 건,

자신이 피땀 흘려 겨우 올려놓은,

이 탄탄하고 아름다운 집의 대들보를 손수 빠개는 일이었다.

그럴수는 없었다. 그냥 이대로 가자. 이대로가 좋다.

그제야 아무것도 서운하지 않고, 아무것도 억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은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철저한 비즈니스적 관계가 되어야 하며,

다른 감정이 섞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우리가 오랜 친구이며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는

인간적 동지인 것도 맞긴 하지만

성관계가 가능한 남녀 사이에 우정은 있을 수 없다고.

그렇다.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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