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부탁합니다. 감자탕집 언니들, 11월엔 제발 한 달에 이틀이라도 꼭 쉬세요. 언니들은 원래 '곰과'라서 미련하다고, 그래서 자기 것도 못 챙겨 먹는다고 하셨죠. 그래도 이렇게 살면 나중에 복받지 않겠냐고 하셨죠. 그러면서도 몸이 아파서, 집안 살림이 엉망이라서, 한 달이 너무 길어서 괴롭다고 하셨죠. 3개월 째 못 쉬었다며 서로 위로하는 언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쉬세요. 언니들은 휴일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봤자 한 달에 두번이잖아요." P.80 

매일 매일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 같았다. 어떻게든 이 놈의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고,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 신경을 긁는 부장도 딱 질색이었고, 일도 나만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출장도 교육도 휴가도 잘만 챙겨먹는데, 나만 미련스럽게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하루하루가 계속 되고 있었다.  

모처럼의 주말,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을 보았다. 구질구질한 현실이 싫어서 소설도 해피엔딩, 영화는 단연 로맨틱 코메디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어쩌면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이라는 말에 내가 속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장, 두장 넘긴 이 책 속에는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의 삶이 들어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카페에서 차를 마실 때도 나는 나에게 커피를 건네주는 언니를, 고기를 잘라주는 아줌마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이 가게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을 뿐이다. 이렇게나 손님이 많고 장사가 잘되네- 곳곳에 붙어있는 아르바이트 전단지를 보고도 저 시간 일하고 저 정도 받으면 괜찮은거 아냐? 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말했다. 괜찮지 않다고... 

이 책은 주간으로 출판되는 한겨레 21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노동자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취재를 하고 쓴 기사들을 묶은 책이다. 갈비집과 감자탕집의 언니로, 공장 컨베이어 밸트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로, 우리가 주말을 즐기는 마트의 고기 판매원으로, 마지막으로 우리가 포용해야하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이 책에서 읽은 마트의 노동자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쾌적한 삶에서 편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서서 보이지 않는 사람인듯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손님들은 마치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마트 노동은 '투명 노동' 이었다. P.145 

이 중 그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 아팠다고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내용이 충실했고, 절절했다. 한 때 기자를 꿈꾸던 나였는데, 내가 기자라면 쓰고 싶었던 바로 그런 기사였다.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누구나 잘 모르거나 외면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 그런 기사고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아마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럼, 대안은 무엇이냐고? 이 책을 쓴 기자들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그에 대한 답은 그저 열어놓았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이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오갔다. 개인적으로 힘들기에 이 책을 펼쳤는데, 이 책은 나의 개인적인 고민 따위는... 조용히 한구석으로 미뤄놓을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이 책에서 벗어나 내 삶에 허덕이고 있다.  

그래도, 잠깐이라도 지금 내가 있는 이 곳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준 이 책이, 잠시나마 내가 아닌 남을 생각할 기회를 준 이 책이 진심으로 고맙다.  

그대들에게는 삶인 고단한 노동을 잠시만 경험하고 떠나서 미안합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을 필요할 땐 놔두고 그렇지 않으면 기를 쓰고 붙잡아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그런 편협한 민족국가의 국민이어서 미안합니다. 그대들의 아픔은 여전한데, 타카핀 박힌 내 엄지손가락의 상처는 다 나아서 미안합니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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