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비스데이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흐음, 네가 또 언젠가 인간으로 태어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오거든 그때는 좀 더 노력해봐. 너는 너대로 할 말이 많겠지만.....,  

내가 볼 때 인간의 고민이니 어쩌니 하는 건 대부분 사사로운 것들이야." 

남자가 푸른 강으로 배를 밀면서 말했다.  

"그 왜, 운동회 때 장애물 경기라는 게 있지?" 

설마 이쪽 세상에도 운동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다리 밑으로 기어나가다 어깨가 조금만 걸려도 정신없이 허둥대지.  

일단 빠져나오면 왜 그렇게 허둥댔는지 스스로도 이상할 정돈데.......  

너도 분명히 인생에 대한 판단을 너무 서두르지만 않았어도  

언젠가는 그런 생각이 들었을 테니."  

P.274-5 푸르른 강가에서 中에서 

슈카와 미나토를 처음 접한 작품은 바로 '새빨간 사랑' 이었다. 다소 괴기스럽고 혐오감을 주는 소재들 때문에, 그 책을 다 읽고선 원하는 분께 보냈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관심을 많이 두지 않았다가 '오늘은 서비스 데이'라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책의 뒷편에 씌여진 글귀에 눈이 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건 누군가 자신의 서비스데이에 소원을 빌어서라고?' 

그야말로 대단한 상상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소원이든 다 이뤄지는 서비스 데이라니... 그럼 깜찍한 상상력이 담겨진 이야기 외에도 이 책에는 총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오늘은 서비스 데이', '도쿄행복클럽', '창공괴담', '기합입문' 그리고 '푸르른 강가에서'.  

오늘은 서비스 데이는 앞서도 말했듯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서비스 데이가 주어져서, 그 날에는 그 사람이 원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이다. 제법 논리적으로 각각의 소원이 상쇄되는 경우도 있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서비스 데이가 서비스 데이인줄 모르고 지나간다. 그런데 정리해고를 코앞에 둔 평범한 가장 쓰루가사키씨는 우연찮게 자신의 서비스 데이인 줄 알게된다.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였다. 나 역시 나의 서비스 데이를 맞닥뜨렸으면 한참 바라고 있던 찰나여서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선한' 엔딩을 가진 착한 이야기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그런 엔딩이 더욱 반가운 것 같다.  

도쿄행복클럽은 흥미롭지만, 조금은 거북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였다. 역시나 상상력은 대단하다고 무릎을 치게 되지만, 이러한 클럽이 있다고 생각하면 새삼 오싹해진다. 행복클럽의 성격은 책에서 만나보는 게 더 좋을 듯 싶다. 이 책은 두번째 이야기를 빼곤, 모두가 '착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마치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옛날 이야기처럼 그렇게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어, 슈카와 미나토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줄어들었던 것 같다. 특히 마지막 푸르른 강가에서 라는 작품은 자살한 주인공과 사자의 대화를 통해, 뭐든 하고 싶은 일은 다시 한번 해볼만 하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말을 사자의 입을 통해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의 전작품을 통해 접한 슈카와 미나토의 상상력은 놀라웠지만, 불편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그의 상상력이 보다 깜찍하고 착해져서, 훨씬 편하게 만나 볼 수 있어 좋았다. 그의 상상력이 앞으로도 쭉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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