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녀의 구제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평점 :
돌아온 갈릴레오, 히가시노 게이고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서 뭐라 할말이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근 신작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2008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트릭과 사람이 공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유 없는 살인 혹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는 추리는 없다. 그래서 그의 소설이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성녀의 구제' 역시 예외는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탐정 시리즈인 '성녀의 구제' 역시 그만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소거법 운운했는데, 가능성 없는 가설을 하나하나 제거하다 보면 단 하나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지. 하지만 가설을 세운 방식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다면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공룡의 뼈에만 정신을 팔다 보면 때로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얘기야."
이번 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인과 동기를 초반에 던져준다. 숨기지 않는다. 범인을 던져준 건 그렇다쳐도... 동기까지 설명해버리다니. 트릭도 트릭이지만 항상 사건에 대한 뒷이야기를 읽으면서 흥미를 느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참을 읽고서도 내가 아는 건 오직 범인과 동기, 작가가 던져준 내용 뿐이다.
사건은 간단하다. 이혼을 요구한 IT회사 사장 마시바 요시다카가 자신의 집 거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주말에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그의 애인. 그리고 그의 아내는 주말내 친정에 간다고 집을 비웠다. 과연 어떻게 그는 살해된 것일까?
앞서도 말했듯이 동기도 사건 자체도 용의자도 단순하다. 그런데, 정말 이런 범죄가 가능한지-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감도 안 잡힌다. 그렇게 읽다가 밝혀진 범죄의 트릭은 어려운 물리를 몰라도 깜짝 놀랄만하다. 정말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범죄는 스케일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동기 역시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늘 그렇듯 우리 눈에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다르지만 만족스럽다.
히가시고 게이고의 작품은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은 보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몇몇 작품들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낄 때도 분명히 있지만, 그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의 단편보다는 장편이 좋고 성녀의 구제 역시 무언가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다르구나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면에 있어서 기대가 충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변하지 않는 캐릭터들 역시 여전했다. 구사나기 형사와 유가와, 여형사 가오루. 모두 각각의 논리와 이성이 있지만 한가지씩 부족하고, (예를 들면 유가와는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고, 구사나기는 물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모였을 때 시너지를 발휘하는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누구하나 마음대로 나서지 않고 적절히 절제 할 줄 아는 캐릭터- 특히 여형사에 있어서도 그런 캐릭터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마음에 들었다. (괜히 오버해서 앞서나가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다가 문제에 빠지는 캐릭터는 싫다.)
구사나기가 비아냥거리는데도 유가와의 안색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전용이란 건 오해야. 난 미리 예약하고 사용한다고. 그리고 대학교수는 오래 산다는 고찰에도 문제가 있어. 교수가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즉 오래 살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않고는 교수가 될 수 없다는 얘기지. 자네는 결과와 원인을 뒤바꿔 생각하는 거야."
항상 갈릴레오 시리즈를 읽으면 유가와의 냉철함이 부러움과 동시에 구사나기에게 공감을 해버린다. 그래서 둘다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그 둘을 만날 일이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