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지금 내려요. - CF같은 전철 속 이야기

사랑, 전철
아리카와 히로 지음, 윤성원 옮김 / 이레 / 2009년 10월

예전에 어떤 CF에서 버스인가 전철에서 만난 두 남녀의 안타까움을 '저 지금 내려요' 라는 여자의 한마디로 표현했던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일상 속에서 찾아낸 로맨틱한 순간이어서인지 이 CF는 상당히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뭐 그 CF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도 안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그 예쁜 여자분과 멋진 남자분이 부럽기는 모두 같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사랑, 전철은 그 CF가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우리가 매일 콩나무 시루라고 불평하는 지하철. 가끔은 싫은 술취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모두 무뚝뚝한 표정으로 신문을 읽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공간. 그런 공간에서 만나고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의 이야기다.   

같은 도서관을 사용하면서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두 남녀, 신부보다 더 화려하게 차려입고 몇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결혼식에 가는 여자,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화자되는 지하철에서 자리잡기 신공을 보여주시는 중년 아주머니의 무리,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고 싶지 않으면서도 어울려 지내는 한 아주머니, 남자에게 상습적인 폭력과 무시를 당하는 여자까지 정말 다양하면서도 한번쯤 우리 곁에서도 보았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철 속에서 펼쳐진다.  

아기자기한 연인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똑부러진 할머니와 손녀딸의 이야기도 있었듯이,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책이었다. 또한 상행선, 하행선으로 나뉘어 앞서 등장했던 사람들의 6개월 뒤 모습까지 보여주는 씀씀이는 책읽기를 더 흐뭇하게 만들었다.  

역시나 일본 이름에 익숙치 않고, 항상 책 읽을 때마다 사람 이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등장인물이 많은 이 책에서도 좀 고전을 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역과 따뜻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겨울을 맞이하여 어둡고 추워지는 마음 속에 다소 따뜻한 기운을 전해주지 않았나 싶다.  

얼마전 이사를 하고 나서 나는 지하철을 통근길에 이용하지 않는다. 사실, 붐비는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는 훨씬 여유있는 버스 타고 다니는 지금이 더 '만세~!' 이런 기분이다. 지하철이면 어떻고, 버스면 어떠겠는가- 두눈 크게 뜨고 나에게도 따뜻한 기운을 전해줄 사람이 없는지 혹은 내가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잘 찾아봐야겠다. 이런 따뜻한 공간이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