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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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은 사랑에 수반되는 불편함을 한동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별로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홍콩에서 마침내 사랑이 그를 찾아낸 것 같다. P.55

처음에는 이 책이 서양 여자와 동양 남자의 애절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인종과 차별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뤄내는 그런 로맨스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쌀쌀한 날씨에 읽기 좋은 따뜻한 러브스토리일 거라 생각하고 책을 펼쳤다. 마침 휴가를 얻어 여행을 가는 길이었기에, 주인공 피아노 교사 클레어가 영국에서 홍콩으로 가는 길은 내가 더 두근 거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이 세 사람은 엉키게 되었을까. 1950년대 클레어는 남편을 따라 홍콩으로 이주하게 된다. 거기서 그녀는 한 부잣집 중국인 가족의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게 된다. 런던에서의 삶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클레어에게 홍콩은 오히려 활기를 주고 활짝 피어오르게 만든다. 그녀는- 런던에서의 가족이 무시하는 - 홍콩에서 더 활기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윌을 만난다. 그녀의 삼촌뻘 되는 나이의 윌- 그의 이상한 분위기에 클레어는 끌리게 되고, 윌 역시 그녀를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윌에게 뭔가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는 클레어- 그녀는 그의 과거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윌의 과거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를 사로잡았단 트루디.
이상적이었던 그들의 관계는 전쟁이 터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서로를 붙잡으려던 그들의 노력은 결국 서로를 밀어내게 된다.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클레어는 그의 말을 따라 했다. 얼마나 안개 같은 남자였던가. 얼마나 손에 잡히지 않는 남자였던가. 가장 친밀한 순간에조차, 그 남자는 온전히 그곳에 있지 않았다. 이제 클레어는 그 이유를 알았다. 그는 언제나 다른 여자와 함께였던 것이다. P.444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어떻게 완벽해보이던 그들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걸까. 이 모든 것은 현실에 져버린 세사람의 잘못이었을까? 격정적으로 진행되는 그들의 사랑에, 또 그보다 더하게 흘러가는 현실과 전쟁 속에 읽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람은 때론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답시고 가장 멍청한 짓을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그들을 정신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 때문이 아닐까. 

오랜만에 무겁게 다가오는 사랑이야기를 읽었다. 시간과 상황에 휘말려드는 나약한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감정도 맘껏 느꼈다. 가벼운 시작과 깊이 있는 전개를 느끼고 싶다면,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고, 내가 약한게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은 선택을 할거라는 위로를 얻고 싶다면 추천하고픈 그런 멋진 책이었다. 그들 모두의 선택과 삶이 나와 조금은 닮아있다.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타협에 대한 거부감과, 그 거부감이 무엇 때문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이 좀스러운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자신의 거부감이 정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단순히 비겁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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