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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어 -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저 두 사람은 정말 조용한 커플이지.”
“네가 너무 말이 많은 거야! 신인 개그맨처럼 시시껄렁한 얘기를 재잘재잘.”
“그렇지만, 침묵이 이어지면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난 네가 얘기하기 시작하면 그런 느낌이 드는데.”
- 그린피스 中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은 대부분 좋았고, 나 역시 읽었던 '악인' 같은 작품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대표작을 많이 읽지 못해서인지, 일부 몇몇 만족스럽지 않은 작품들도 분명히 있었다. 안타깝게도 '열대어' 역시 그러한 작품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만약 이 소설이 책 띠지에 굳이 연애소설이라고 말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러한 실망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갖고 있는 요시다 슈이치의 이미지는 '젊음, 청춘, 감수성' 이러한 것들인데, 내가 너무 '서늘한' 이라는 앞의 단어를 무시했던 걸까... '열대어'는 내가 상상하던 책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이 책에는 '열대어', '그린피스' 그리고 '돌풍'이라는 세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열대어는 목수일을 하며 애인과 그녀의 딸 그리고 동생 미쓰오와 같이 사는 다이스케의 이야기이다. 해외 여행을 가자고 하고, 아무 일도 안하는 동생을 거둬주면서도 다이스케와 그들은 계속 어긋난다. 그리고 그린피스의 연인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 돌풍에서도 닛타와 주인집 아내와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쭉 어긋나는 관계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미숙하다. 아니, 못 되었다. 그 나이까지... 한 역할을 하는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그모양이라면 그들은 못 된것이다.
내가 예상했던 이야기들은 좀 더 애절하고, 안타까운 연애 이야기였던 것 같다. 서늘하면서도, 좀 더 따뜻한 무언가가 밑바닥에 깔려 있길 바랬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대어의 이야기들은 그저 제멋대로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 모두 한번쯤 겪었을 법한... 경중의 차이가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행했거나, 당했을 법한 일들. 그런 관계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것을 모두 캐치하지 못한 듯 싶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야 좀 더 이야기들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지 않았나 싶었다. 특히 '돌풍'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내용을 잘 못잡아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분명 각각의 이야기가 충분히 훌륭했다고 막연하게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에 100% 공감하지 못하는 건 불행한 일인듯 싶다. 어긋나는 사람들의 관계와 소통. 열대어 역시 나에게 그런 소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말이죠, 누가 기다려주는 게 질색이에요. 애인과 만나기로 했는데 일 때문에 늦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삼십 분쯤 지나버려서 이제는 없겠지 생각하고 가보면 거기에 그냥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뭐랄까, 소름이 끼친다니까요. 원래 같으면 감격해야 할 텐데 아무리 좋아하는 여자라도 소름이 끼쳐버리거든요.”
- 돌풍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