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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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구독하시던 한겨레 잡지를 한참 뒤적이다가 만화를 찾아 읽곤 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원주민이었다. 이어지는듯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던 이 만화는 낯설면서도 어렴풋이 가물가물한 기억 속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직접 경험을 해서 기억한다기보다는 들어서 안다고 해야할법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아무 부족함없이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학원에서 배우고, 한 번도 배고파본 적이 없는 우리들의 현실. 기분전환 삼아 온 가족이 나가 즐겁게 외식을 즐기고, 여자아이라도 제대로 키우고자 하는 핵가족의 시대.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 비교하면 대한민국 원주민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은 정말 그야말로 '원주민'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작가와 그의 가족의 자전적 모습을 그려낸 대한민국 원주민은 행복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지금 생각하면 코끝을 찡그리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공부를 희생한 장녀, 가족의 희망을 짊어지고 도시에서 공부하는 장남, 누구보다 장남이 고생할까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 힘든 하루를 마치고 술을 잔뜩 드신 후 주사를 부리는 아버지와 그럼에도 가족을 한군데로 묶어온 어머니. 때로는 그저 그런 이야기에 쓰윽 무심히 지나치기도 하고, 혹은 들었던 이야기와 비슷하다며 손뼉을 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불과 몇십년 전 우리나라의 모습인데, 왜 이렇게 생소하고 낯설은 걸까. 우리의 현재 모습 어디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 마냥 느껴지지만, 우리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이들의 모습을 지니고 있고, 또 그들에게서 태어난 우리의 모습에도 대한민국 원주민의 흔적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찡해오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 원주민을 읽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외면하고 있던 과거 그리고 현실 속 뒷면의 그 쌉쌀하고 찝찔한 뒷맛을 잊지 않기 위해, 꼭 한 번 읽어야할 책이 아닐까 싶다.

'나라 지키는 기 젤로 중한 일인데 우째 썩는기고? 이기 대통령이 할 소리가?'아부지! 국방의 상징 철책선을 잘라다 술 바꿔 드신 분의 발언치곤 너무 비장합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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