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샨보이
아사다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네 고생을 알고 있는 기쿠지는

마음 깊은 곳에서 너를 칭찬한다.

정말 잘했다.

너는 훌륭하다.

훌륭한 아이는 훌륭해지지만,

훌륭하지 않은 아이가 훌륭해졌다.

(중략)

고맙다, 고마워

- 슈산보이中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다는 일본 작가 중 한명이 아사다 지로.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해보게 되었다. 슈샨보이... 왠지 부모님께 들었던 과거 미군들을 쫓아다니며 외쳤다는 '쪼꼬렛' 하고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단어이다. 광우병 파동이다,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다 등으로 시끄럽기만한 현실을 이젠 비꼬는 눈길로 보고, 왠지 외면하고 싶기만한 요즘, 왠지 따뜻하고 우스운 느낌을 주는 이 책이 궁금해져서 펼쳐들게 되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사람과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사다 지로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가슴 찡한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산다는 것은 세상에, 아니 적어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자신을 조금 아니 많이 희생해서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고, 정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각박하기만한 현실을 더욱 질리게 만들었다. 남이 조금 잘못해도 덮어주고, 아무 편견 없이 앞에 있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어주고, 어떻게 하면 남을 적절하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앞에서, 어느덧, 현실 못지않게 차갑고, 꼬인 내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남의 사생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도쿄의 규칙인 것이다. 인간의 수만큼 인정이 넘치는게 아니고 희석되어있다는 사실을 사토루는 비로소 깨달았다.

최근 접하는 많은 책, 뉴스, 드라마, 영화는 자극을 추구하는 것들이 많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빠르게 무서움을 느끼고, 재미를 찾고, 기쁨을 느낀다. 정이 느껴지고, 조금 느리고...이러한 면들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우리를 둘러싼 현실처럼 우리의 삶도 빠르고 자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옳다고 생각이 되어졌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게 아니구나- 전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라고 느꼈다. 내가 조금 뒤쳐지더라도, 늦더라도, 이 세상에 아니 세상 단 한명에게라도 도움을, 변화를 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게 제대로 된 삶이다.

 

어린 시절 유곽으로 팔려와 힘든 생활을 하다 행복을 찾으려 하는 창녀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살아온 어머니도, 전쟁 속에서 명령에 따라 사람을 간단히 죽이던 군인도, 모두들 진정 중요한 것을 깨닫고,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는다. 이런 삶도 있구나- 오랜만에 생각하게 되었다. 거창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근데 울컥한다. 어쩌면 이런 조용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손길이 나에게도 필요했는지 모른다.

 

"잘 지내고 있는거지요?" 하츠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행복한지를 묻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제가 걱정할 일 같은 거,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얼어붙은 목소리 대신 하츠에는 연거푸 고개를 두번 끄덕였다. "예, 그러면 됐습니다. 저도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지만, 어머니가 걱정할 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럼 이만......."

서로 싸우고, 질투하고, 상처입히는 시간과 행동이 이 세상에 너무 많다. 우리 모두가 원래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삶을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말처럼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앞에서도 말했듯, 우리에게는 조금 조용하고, 따사로운 손길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 꽁꽁 얼어있던 생각을 톡톡 깨뜨릴 수 있었다. 또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얼음이 꽁꽁 얼겠지만, 슈샨보이처럼 따뜻한 이야기로 자꾸 자꾸 깨뜨려나갈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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