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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그림 여행 ㅣ 나만의 완소 여행 2
최수진 글 그림 사진 / 북노마드 / 2007년 12월
평점 :
베.트.남. 어렸을 적에 베트남에서 5년간 살았다. 제일 중요하다 싶은 시기인 중고등학교 생활을 하노이에서 보냈던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시절은 전라도 광주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은 하노이에서. 베트남은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내게 무척 그리운 곳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베트남은 아마 현재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혹시 그래서인지 무엇이든 베트남에 관한 소식은 관심을 끌었고, 달라진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50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받아들고, 지금의 베트남이 어떤 모습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책을 펼쳤다.
베트남에 와서도 카페에 앉아 있는 나. 그것도 현지인을 위한 카페도 아니고, 서양 여행자의 구미에 딱 맞춘 비싼 카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베트남 식 카페는 그림 그릴 자유가 없거든. 자리가 너무 바짝 붙어 있다. 내 스케치북이 마치 자신들의 스케치북이라는 듯, 대놓고 구경하는 그녀들의 시선을 감당할 포스가 아직은 못 된단 말이야.
호치민에서 하롱베이까지- 익숙한 지명도, 낯설은 지명도 있었다. 바가지를 씌우면서도 너무 쉽게 인정하고 깎아주는 그들의 모습에, 은근히 악착같이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모습, 더운 날씨, 왠지 비위생적으로 보이던 거리의 식당...하나씩 떠올랐다. 예쁜 그림들을 보며 이게 베트남 맞아? 할 때도 있었고, 창문도 안 달려있는 건물 사진을 보면 하나도 안 변했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각각의 도시에서 묵어야할 곳, 먹어야할 곳 등을 안내한 가이드 북이 아니라, 작가가 느낀 베트남을 나 역시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물감, 크레파스, 펜으로 그린 그녀의 그림은 베트남을 색다르게 보게 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이렇게도 이곳을 느낄 수 있구나- 다시 가면 무언가 좀 다를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베트남이 새삼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베트남은 그리 낭만적이거나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베트남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시각이 나와 달랐던 것인지- 이 책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베트남은 자꾸 내게 다시 가고픈, 궁금해진 나라가 되어갔다.
경치 정말 멋지다.
산의 색깔이 순간순간 변해.
진짜, 안개도 정말 진하다.
안개가 아니야. 구름이야.
그랬다. 믿을 수 없지만 구름이었다.
아침에는 구름이 방으로 막 들어와.
500쪽이나 되는 페이지가 한장 한장 넘어갔다. 오히려 그림이 있는 페이지들에 눈이 더 오래 머물렀다. 최근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자 여행책을 많이 읽었는데- 이 책은 내가 읽은 여행책들의 정점을 찍은 듯 싶다. 한 곳에서 오래오래 그 나라를 느끼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해낸 책. 그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커졌지만, 그림과 글을 통해 여행하고픈 갈증 역시 많이 풀어진 것 같다.
작가가 오랜 시간을 걸쳐 베트남을 종단해서 만들어낸 책. 그녀의 노력과 정성이 듬뿍 느껴졌다. 그리고 나 역시 오랫동안 떠나와있던 고향을 찬찬히 돌아본 기분이 들었다. 내 기억 속의 베트남이 다시 한 번 새로운 색을 입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