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이슬람 문명의 모태

도시로 보는 이슬람 문화 | 이희수 저

참 많이 돌아다녔다.

튀르키예(옛 터키)만 169번을 다녀왔으니 이슬람권 전역은 족히 200회 이상 다녀왔을 것이다.

세계적인 통계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발표에 의하면 이슬람을 믿는 인구는 20억 명을 넘어섰다(2021년도 기준).

이슬람 국가는 유엔 회원국 기준으로 57개국에 이른다. 지구촌 4분의 1에 해당하는 최대 단일 문화권이다.

공동체의 가치가 살아 있는 곳
어느 사회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

이처럼 같은 이슬람 국가라고 해도 그 모습이 다양하고,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편견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제는 이슬람 문화를 찬찬히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때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선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서 감동받는 일이 훨씬 더 많다. "다정함은 인류 진화의 열쇠"라는 진화인류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선한 마음은 인류공동체의 참모습이다.

만나보지 않고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편견과 오류가 생겨난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나쁜 습성이 고정관념이다.

그들에게는 가족 중심 생활과 공동체 정신이 아직도 살아 있다. 그들은 "내일 당장 굶는 한이 있어도 오늘 도움을 청하거나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부자의 곳간에 곡물이 한 톨이라도 남아 있는데 그 마을에 굶주리는 사람이 생긴다면 구성원 전체가 천국에 들지 못한다"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물질적 탐욕에 함몰되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 놓쳐버린 삶의 가치를 그들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이슬람 도시의 매력
이슬람은 상업 중시 종교로 출발해서 역동적인 교류가 빈번한 도시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렸다.

단단한 도시 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교역과 정복이라는 두 축으로 천년 세계제국을 건설했다. 카이로, 이스탄불, 다마스커스, 바그다드. 이스파한, 라호르, 아그라, 사마르칸트, 팀북투.

"라호르를 보지 않으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고, 이스파한을 놓치면 지구의 절반을 놓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슬람에 큰 신세를 지고 있다. 이슬람은 중세에는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과 문화를 향유한 문화권이었다. AI 시대의 핵심 요소는 알고리즘(Algorithm)이다.

알고리즘을 창안한 이는 9세기 페르시아 수학자 알콰리즈미(Al-Khwarizmi)로,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시장, 뒷골목, 카페에서 만나는 무슬림의 진짜 모습

이슬람 도시 어디에서나 빛바랜 고서의 향이 그득하다. 나는 오래된 헌책방을 좋아한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긴다.

역사는 기록의 결실이다. 빛바랜 종이 위에 선명한 대나무 펜으로 써 내려간 지식의 총량이 그 도시의 품격이고 존재 가치다.

책방 주인이 건네주는 차 한잔 마시면서 두 시대, 두 주인공은 책을 통해 영적으로 접선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슬람 도시를 방문하면 반드시 바자르(시장)로 달려간다. 내게 바자르는 시간이 쌓아놓은 역사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삶의 고단함과 한숨 소리, 왁자지껄한 담소와 노랫소리가 그득한 공동체 공간이다.

이슬람 도시에서는 커피 원두를 가루째 넣고 끓이는 튀르크 커피를 마신다. 인류가 처음 이스탄불의 ‘차이하네(Cayhane)’ 카페에서 마시던 바로 그 커피다.

카페는 여론 형성의 장이자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민초와 혁명가들의 저항의 산실이었다.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군주와 지방 영주의 정책이나 행동을 비판했다. 이런 연유로 한때 이슬람 세계에서 카페가 폐쇄되기도 했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다잡게 된다.

이슬람력 12월이 시작되면 수백만 무슬림은고향을 떠나 메카로 모여든다.
순례객들은 신을 간절히 부르며 회개하고 찬양한다.
"오! 주여, 제가 왔나이다.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만물의 주인이신 당신을 찾아 수만 리 길을 헤쳐 왔나이다.
저의 죄를 사해주시고 천국에서영원히 당신 곁에 머물게 해주시옵소서."
Labbaik Allahumma labbaik.
Labbaik la sharika laka labbaik.

이슬람의 최고 성지 메카는 신성한 도시이자 금지된 도시다. 이슬람교도인 무슬림만 출입이 허용된다.

메카(Mecca)는 아랍어 도시 명칭 마카(Makkah)의 라틴어 표기이다. 꾸란에서는 이 도시를 바카(Bakkah)라고 부른다. "진실로 인류를 위한 신앙의 첫 번째 집은 바카에 지어졌으니…."(꾸란 3:96).

공식 표기는 마카 무카라마(Makkah Mukarramah)다. ‘신성한 도시’라는 의미다.

성경이나 역사 기록에서 성 파란(Faran, Paran), 티하마(Tihamah)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지만, 신앙심 깊은 무슬림에게 메카는 ‘우물꾸라(Umm al-Qurā)’란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거주자들의 어머니’란 뜻이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의 정통 승계를 본처 사라에게서 태어난 적자인 이삭으로 보지만, 꾸란에서는 그 적통성을 장자인 이스마엘로 보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보면서도 두 종교가 계보를 달리하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그만큼 메카는 아랍인이나 무슬림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

험난한 교역 과정에서 경험했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만연한 부조리와 세기말의 윤리적 타락’을 깊이 고뇌하던 그는 20년에 걸친 오랜 명상과 기도 끝에 메카에서 610년 알라로부터 첫 계시를 받아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완성하게 된다. 메카가 인류 공동체에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빛을 던져준 성스러운 도시가 된 배경이다.

이슬람은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성서의 인물들을 모두 훌륭한 예언자, 선지자로 받아들이고, 중재자나 대속자 없는 유일신(알라)과 인간의 직접 소통과 구원을 주장했다.

카바신전,
비무슬림에게는 금지된 하느님의 집

메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모스크가 있다. 638년에 세워진 마스지드 알하람(Masjid al-Haram) 사원이다. ‘금지된 사원’이란 의미다.

꾸란에 의하면 이스마엘이 어머니 하갈과 광야로 내쫓긴 이후 메카에 정착하고, 다시 돌아온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하느님의 집이자 신앙의 중심으로 카바신전을 지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은 카바신전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곱 번 돌았다. 이 일곱 번 도는 의식을 ‘타와프’라 하는데, 오늘날 성지순례의 핵심 의례가 되었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회개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신을 끌어안고 살아가면서 신의 뜻과 어긋나는 길을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한번은 가게 주인에게 왜 그렇게 허술하게 그물을 얹어놓느냐고 물었다. 상인은 "가져가지 말라는 뜻보다는 지금 주인이 없으니 거래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나는 숙연해졌다.

순례가 시작되면 흰 물결이 파도를 이룬다. 한 생애를 정리하며 천국을 준비하는 순례자들의 기도 소리가 거룩한 합창을 이룬다. 순례기간은 둘히자(이슬람력 12월) 8일에서 12일까지 5일간이다.

메디나, 예언자를 만나러 가는두 번째 순례 여정

신앙이 충만한 상태에서 많은 순례자는 메카를 떠나 350킬로미터 북쪽 메디나(Medina)로 이동한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모스크가 있는 곳이고 이슬람이 뿌리내린 도시다.

무함마드만큼 평가절하되어 있고, 심지어 악의적인 이미지로 묘사되는 종교 창시자도 드물 것이다. 그는 살아생전 기적을 행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사후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나는 죽어서 썩어 한 줌 흙으로 사라질 뿐이다. 나를 기억할 어떤 형상과 이미지도 만들지 말라. 오직 하느님, 유일신이고 절대자이신 그분만 믿고 그분만 따르라."

빌딩숲으로 변해가는 영성의 도시

오늘날 메카에는 대도시의 세속이 많이 스며들었다. 첨단기술과 과학을 앞세운 편의라는 무기 앞에 영적인 신앙의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가장 다처율이 높은 아랍 산유국에서도 다처 비율은 6퍼센트 정도다. 노후를 보장할 정도의 결혼 지참금을 아내에게 지급해야 하고, 모든 아내의 동의를 받고 나서 새로운 아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경제적 문제나 상속 문제 등이 얽혀 있어 일부다처가 그리 쉽지 않겠다 싶다.

이제 메카는 무슬림에게 영성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재미와 편의를 찾아 떠나는 새로운 순례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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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해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우리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렇게 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하며 닿기를 갈망할 것이다.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앞으로 소설을 계속 써나가며 그 이해의 단편들을, 맞부딪히는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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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김초엽의 소설은 인간의 오랜 타자였던 외계 생명체를 불러들여 와 그 가능성에 대한 사고실험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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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폐기해야 할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는 정상성 개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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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유토피아란 신체적인 결함이 말끔하게 소거된 세상도, 그렇다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을 격리해놓은 세상도 아닐지 모른다고. 오히려 장애와 더불어 차별을, 사랑과 더불어 배제를, 완벽함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 붙잡고 고민하는 세상일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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