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솔
나는 언제부터인가 솔을 좋아한다. 아마 썩 어려서부터인가 짐작된다. 봄만 되면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것은 내가 여섯 살인가 되어 어머니와 같이 뒷산 솔밭에 올라 누렇게 황금빛 나는 솔가래기를 긁던 것이다. 때인즉 봄이었던가 싶으다. 온 산에 송림이 울창하였고 흐뭇한 냄새를 피우는 솔가래기가 발이 빠질 지경쯤 푹 쌓여 있었다. 솔은 전년 겨울 난 잎을 이 봄에 죄다 떨구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 모녀는 부스럭부스럭 솔가래기를 긁어모았다.

배만 고프면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서 못 견디게 졸라대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딱하여서 나를 어르고 달래다 못해서 나의 뺨을 찰싹 때리면, 나는 죽는 듯이 울었고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나를 업으시고 소나무에 기대어서 한참씩이나 우두커니 섰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솔은 본래부터 그 근성이 결백하여서 시커먼 진흙땅을 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간도에서는 한 그루의 솔을 대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한다. 언제 보아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준령에 까맣게 무리를 지었고 하늘의 영기를 혼자 맛보고 있으며 또한 눈빛같이 흰 사장을 끼고 이쁘게 몸매를 가지지 않았나.

솔은 장미처럼 요염한 꽃을 피울 줄도 모르며 화려한 향취를 뿌려 오고가는 뭇 나비들을 부를 줄도 모른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며 그만큼 그는 적적한 편이라 할 것이다.

봄을 맞는 우리집 창문
여기는 아직도 백설(白雪)이 분분(粉粉)하여 봄의 기분이란 용이히 맛볼 수가 없다. 그러나 모질게 몰아치는 그 바람에는 어지럽게 떨어지는 그 눈송이에도 여인의 바쁜 숨결 같은 것을 내 볼 위에 흐뭇이 느끼게 됨은 봄이 오는 자취가 아닐까.

‘이리 온, 내 쌀 한 줌 줄게.’
내 입에서는 부지중에 이런 말이 나오려고 옴씰옴씰한다. 새들은 내 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지에서 가지에로 오르내리며 재재거리고 있다.

그 갸웃거리는 조그만 목에는 누가 저리도 희고 부드러운 목도리는 해주었을까. 어느 산기슭에서 포근히 잠들었을 때 그 위로 살살 감돌던 안개란 놈이 그들의 따뜻한 목에 감긴 게지.

나는 문득 창문을 보았다.
"한 푼 줍쇼."
어린 거지가 창문 밖에 서서 나를 보고 머리를 수굿거린다. 그 보기 싫게 조은 머리며 때가 끼인 얼굴, 남루한 옷 주제, 나는 무의식 간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어서 속히 쫓기 위하여 지갑에서 돈 한 푼을 꺼내 내쳐 주었다.

 "고맙습니다."

진달래
꽃을 여자에게 비한다면, 진달래는 이미 춘정을 잊은 스무고개는 훨씬 넘어선 여인 같으면서도 또 정숙하여 보입니다. 그리고 확호한 인생관이 유행이라는 데는 눈도 뜰 줄 모르는, 그리하여 속세의 풍정과는 높이 담을 쌓은 점잖음이 속속들이 깃들여 있어 보입니다.

봄이면 그리운 진달래입니다. 해마다 한식절(寒食節)이면 선조의 선영(先瑩)으로 성묘를 가서 그 산속에 핀 진달래꽃을 따 먹어 보며 노닐던 어린 날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진실로 한 잔 술에다가 진달래 꽃잎을 마음껏 따 넣어 실컷 마셔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을 새빨갛게 물들여 진달래 마음이 되어 보고 싶습니다.

봄이면 생각나는 이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에 걸쳐 많은 눈이 내렸다. 벌써 입춘까지 지났으니 지금을 겨울이랄 수는 없고 봄을 위하여 글쓰기고 이번이 두 번 차이니 지금은 영락없는 봄이요 나의 마음도 벌써 봄을 안은 지 오래다. 그러므로 밖에는 흰 눈이 퍼붓고 있건만 책상에 마주 앉아 ‘봄이면 생각나는 곳 혹은 사람’을 기록하고 있는데 아무런 감정의 저어(齟齬)4)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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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했다.
읽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3.31.~5.10. ㅠㅠㅠ 한달하고도 11일
제인 오스틴. 노생거 사원

˝오만과 편견˝은 재밌죠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 더욱더 재밌다. 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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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5-10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인 오스틴의 막강한 팬덤을 넘어 ˝지루하도다˝에 공감하신 분이 생각보다 많군요. ^^

대장정 2025-05-10 16:58   좋아요 1 | URL
1부 읽다가 딱 12번 독서중단 선언하려했구요. 그나마, 장군의 오해로 노생거사원에 초대된 캐서린이 고딕소설에 심취한 망상으로 벌어진 일들, 장군으로 부터 노생거 사원에서 쫒겨나고 다시 그 아들과 빰빠라..좀 나았습니다. ㅎ

바람돌이 2025-05-10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생거사원의 지루함을 거쳐 오만과 편견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거장도 처음부터 거장인건 아니었다 뭐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

대장정 2025-05-10 19:25   좋아요 1 | URL
ㅎㅎ 그말이 정답이네요
 

"네 기분 이해해. 강요하지 않을게.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너의 다정한 마음씨를 믿어." 이렇게 말하는 슬픈 표정을 보자 캐서린의 자존심이 한순간 무너졌고 바로 대답이 나왔다. "오, 엘레노어, 꼭 편지할게."

틸니 양은 말을 꺼내기가 좀 거북했지만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캐서린이 집을 떠난 지 한참 지났기 때문에 돌아갈 비용을 감당할 돈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자상하게 비용을 보태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예상이 그대로 적중했다.

캐서린은 그때까지 돈 문제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갑을 뒤져 보고서야 친구의 친절한 배려가 아니었다면 집에 도착할 돈 한 푼 없이 여기서 쫓겨나는 꼴이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만약 그랬을 때 그녀가 겪었을 곤란함에 황망해하며, 말없이 남은 시간을 기다렸다.

"여기 없는 그 친구와 나눈 다정한 기억"을 남겨 두고 떠난다고 알아듣게 말해 주었다. 그렇게 그의 이름을 돌려서 말하고 나니 오히려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안간힘을 다해 손수건에 얼굴을 묻으며 쏜살같이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 나가 마차에 올라탔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집에서 멀어져 갔다.

거기서 보낸 날은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 중 하루였다. 바로 거기서, 바로 그날, 장군은 헨리와 그녀를 엮어서 말했고 말로도 표정으로도 분명히 그들의 결혼을 소망한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렇다. 바로 열흘 전에 자신을 향한 특정한 배려에 우쭐했었다. 너무 대놓고 언급하는 바람에 민망하게 만들더니! 그러나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을 했다고 또는 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달라진 대접을 당하는 걸까?

재주 많은 작가라면 여주인공이 모험을 마치고 고향 마을로 돌아올 때 성공적으로 명성을 회복하고 백작 부인의 품위를 지키며 몇 대의 쌍두 사륜마차에 귀족 친척들을 줄줄이 태우고 세 명의 하녀를 따로 사륜마차에 태워 뒤따르게 하는 내용을 신나게 써 내려갈지도 모른다. 모든 결론이 다 그렇고, 작가는 그렇게 관대하게 영광을 베풀고 즐긴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퍽 다르다. 여주인공을 고독과 불명예에 빠져 집에 돌아오게 만들었으니까. 달콤하고 우쭐한 기분을 시시콜콜 묘사하긴 글렀다. 전세 마차를 탄 여주인공만으로도 산통 다 깨진 셈이니, 거기에 위엄이나 감정을 불어넣으려 해 봤자 소용없으리라. 그렇다면, 이제부터 마부가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뚫고 신속하게 마을을 통과해 그녀를 후딱 마차에서 내려 주는 것으로 하자.

몰란드 부인이 말했다. "슬퍼하고 있을 거다. 다른 건 상관없다. 캐서린이 집에 무사히 왔으니 됐고, 우리야 틸니 장군 없이도 잘만 사니까."

"네가 그렇게 돌아올 줄 몰랐다만 차라리 잘됐다. 이제 다 지난 일이고, 손해 본 것도 없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니. 내 딸 캐서린, 원래 딱한 말썽꾸러기 아이였지. 이제는 마차도 그렇게 많이 타 보고 했으니까 철들었을 거다. 그런 일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렴."

"그렇다면 틸니 장군 때문에 속 끓이는 모양인데 너도 참 단순하구나. 십중팔구 다시 만날 거다. 그런 사소한 일로 속 끓이지 마라." 잠시 멈춘 다음 이렇게 말했다. "캐서린, 우리 집이 노생거만큼 으리으리하지 않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마라. 그렇다면 네 여행은 정말로 나빴던 것이란다. 사람은 어디에 머물든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특히나 집에 있을 때가 그렇다. 늘 사는 곳이잖니. 아침 식탁에서 노생거에서 먹었던 프랑스 빵 얘기를 들어 주긴 힘들구나."

그녀의 죄는 오로지 그녀가 그가 기대했던 것만큼 부자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그녀의 재산을 오해하고 바쓰에서부터 그녀와 친분을 쌓으려 했고 노생거에서 친해지려고 했으며 그녀를 며느리로 맞을 계획이었다. 오해였음을 깨닫자 그녀에 대한 분노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혐오가 적절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오해를 부추긴 건 존 쏘오프였다. 장군은 어느 날 저녁 아들이 극장에서 몰란드 양에게 상당히 관심을 가지는 걸 보고 우연히 쏘오프에게 그녀의 이름 이상으로 아는 게 있는지 물었다. 쏘오프는 틸니 장군 정도 되는 사람이 말을 걸어 주자 우쭐해져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는 몰란드와 이자벨라가 오늘내일이면 약혼할 거라고 기대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도 캐서린과 결혼하려고 꽤나 마음을 먹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캐서린의 집안을 자신의 허영과 탐욕이 부추긴 기대치보다도 더 부유하게 묘사해 버렸다.

말할 때 우쭐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배나 부풀려 얘기하고 몰란드 씨의 성직에 딸린 재산을 멋대로 배로 올려 생각하고 그의 개인 재산을 세 배나 부풀리고 부유한 숙모도 있다고 하고 자녀의 수는 절반으로 깎아 말하면서 그 집안 전체가 장군의 눈에 대단해 보이도록 떠벌렸다.

각별히 장군의 호기심의 대상이자 자신의 관심 대상인 캐서린에 대해서는 내세울 걸 더 만들었는데, 앨런 씨의 장원에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물려줄 만 파운드 내지는 만오천 파운드가 더해질 거라고 했다. 앨런 씨와 친밀하니까 한몫 물려받을 거라고 그는 진지하게 믿었다. 그녀를 거의 공인된 풀러튼의 상속녀라고 말해 버린 건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캐서린은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고 장군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헨리와 엘레노어는 그녀가 아버지의 각별한 관심을 받을 만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관심에 놀랐다. 최근에 그녀를 잡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거의 명령을 내리는 등, 몇 가지 힌트가 있어서 헨리는 아버지가 이 결합을 유리한 혼사로 여긴다고 확신했지만, 마지막으로 노생거에서 모든 설명을 들을 때까지는 아버지가 잘못된 계산에 빠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보가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장군은 처음에 정보를 알려 준 바로 그 사람, 쏘오프로부터 들었다. 런던에서 우연히 만난 쏘오프는 처음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감정에 싸여 있었는데, 캐서린의 청혼 거절에 기분이 나쁜 데다 최근 몰란드와 이자벨라를 화해시키려고 애썼다가 실패하자 더 기분이 나빠져서 그 둘이 영원히 갈라섰다고 믿고서 쓸모없어진 우정쯤이야 치워 버린 채 예전에 몰란드 집안에 대해 좋게 말했던 모든 것을 반대로 뒤집어 토해 놨다.

사실상 가난한 집안이다, 그렇게 바글바글한 집도 드물다, 최근에 특별히 더 알아보니 결코 동네에서 존경받는 집안이 아니다, 그들의 재산으로 누릴 수 없는 생활 수준에 욕심을 낸다, 부자와 결혼해서 한몫 보려 한다, 건방지고 허풍스럽고 꿍꿍이가 많은 족속이다, 등등.

그의 분노가 헨리를 경악하게 했지만 위협할 수 없었던 것은 헨리가 자신의 목적에 흔들림이 없었고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헨리는 이것이 몰란드 양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명예가 걸린 문제임을 직감했고, 그가 얻으려고 하는 그녀의 마음이 정말 자기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지금껏 보여 줬던 암묵적인 동의를 비겁하게 철회하고 말도 안 되는 분노에 휩싸여 과거를 뒤집으려는 걸 보면서도 신의가 흔들리지 않았고 신의에서 나온 결단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그는 캐서린을 쫓아낼 명분으로 만들어 낸 약속인 히어포드 방문에 동행하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버텼고, 그녀에게 청혼하려는 의도를 똑같이 끈질기게 선언했다. 장군은 불같이 화를 냈고 그들은 험악하게 다투면서 헤어졌다. 헨리는 길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진정될 것 같은 어지러운 마음을 안고 즉시 우드스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에 풀러튼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들의 이른 결혼을 성사시킨 수단이 무엇인지 그것만 궁금할 따름이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 발생하여 장군의 마음을 움직였단 말인가? 여름에 장군의 딸이 재산이 많고 명망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인데, 장군은 가문의 영광에 엄청 기분이 좋아져서 엘레노어가 헨리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만 "하고 싶은 대로 하라지!"라고 허락해 버린 것이다.

『노생거 사원』이 ‘시대를 타는’ 소설이라면, 거기에 책의 존재가 빠질 수 없다. 이 시대는 책의 시대였다. 18세기에 인쇄 문화가 폭발함에 따라 문학과 비문학을 가로질러 다양한 종류의 읽을거리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책을 읽었고 그것에 대해 많이 말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스마트폰을 하나의 기계가 아니라 우리 손끝에 붙은 신체의 일부로까지 여길 수 있는 것처럼, 오스틴의 시대에는 책이 그런 위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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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아가씨들이 속아 넘어가지. 그렇게 관심을 받아 본 적 없을 테니. 여자 마음은 갈대라잖아.

이런 얄팍한 수는 캐서린에게도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첫 문장부터 변덕과 모순과 거짓으로 점철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자벨라가 부끄러웠고, 또 그런 친구를 사랑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애정 고백이 역겨운 만큼이나 변명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고, 뻔뻔하게 부탁까지 하다니.

"그렇다면 난 정말이지 그가 마음에 안 들어요. 결국 우리에겐 다행으로 끝났지만 그가 정말 마음에 안 든다고요. 이자벨라가 산산조각 날 가슴이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셈이 되긴 했어요. 하지만 그와 사랑에 빠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냐고요?"

나를 바보로 여긴 게 아니면 이런 편지를 쓸 수 없어요. 그래도 이 편지 덕분에,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더 잘 알게 됐어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요. 허영심 많은 바람둥이 아가씨의 사기가 이번엔 안 먹힌 거예요. 제임스나 나에게 요만큼의 애정도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애초에 만나지도 말았어야 했어요.

"프레드릭에게 처음부터 동기랄 게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어요. 쏘오프 양처럼 그도 허영이 가득한데,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그가 더 영악한 부류라 그 허영에 자기가 넘어가진 않는다는 거예요. 그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데 그 원인은 찾아내서 뭘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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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의 꿈은 끝났다. 캐서린은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최근 품었던 황당한 공상은 이미 일련의 실망을 겪어 왔지만 헨리의 간결한 이 한마디에 철저하게 깨졌다.

정말 지독하게 부끄러웠다. 정말 쓰라리게 울었다. 그녀 자신도 추락했고 헨리까지도 추락시켰다. 이제 와서 보니 거의 범죄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던 상상력인데, 모든 것을 알게 된 그는 그녀를 영원히 경멸할 것이다.

터무니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벌인 일을 계속 곱씹어 보니, 여차하면 놀라 자빠지겠다고 작정하고 덤벼든 상상력으로 하나하나의 소소한 정황마다 중요한 의미를 붙여 가며 결국 이 모든 망상을 혼자 만들어 냈고 아예 사원에 오기 전부터 그럴 작정으로 안달하면서 모든 것을 한 가지 목적을 향해 끌고 왔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분명해졌다.

노생거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바쓰를 떠나기 훨씬 이전부터 여기에 홀려서 엉뚱한 짓을 꾸며 왔는데, 이 모든 것이 거기서 미친 듯 빠져들었던 독서의 영향이지 싶었다.

그녀로서는 어떻게 생겼든 옻칠한 건 뭐든 꼴도 보기 싫은 지경이었다. 그래도 지난 잘못을 때때로 환기하는 것이 고통스러울망정 쓸모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이, 당신 감정은 인간 본성에 참 충실해요. 그런 감정을 잘 연구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명색이 시골 마을 유지인데, 지나치게 무심하단 소리를 들을 거다. 몰란드 양, 조금만 시간과 관심을 바쳐서 될 일이라면 이웃을 기분 나쁘게 하지 말라는 게 내 원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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