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둘은 중학교 동급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웃에 살며 같이 뛰어놀았고, 낚시라는 공통의 취미를 가지고 있다. 둘 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P-1

죽은 자에게는 독특한 표정이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그것을 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단순히 눈을 감고 있는 얼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뭔가가 있다. 그것은 안색이라든지 피부의 윤택과 같은 물리적인 무엇이 아니다. 얼굴 전체적으로 표현되는 분위기 같은 게 다르다. - P-1

이 데스마스크에는…….

그것이 있다, 라고 구사나기는 확신했다. 그러나 동시에 설마, 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학생이 실제로 죽은 사람의 얼굴로 이런 음침한 석고 마스크를 만들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 P-1

"그렇게 작은 산에 그런 걸 사용할 만한 사냥감이 있을 리 없잖아. 동물원에서 사자가 도망쳤다는 소식도 없었고. 어쨌든 그곳은 수렵 금지야." - P-1

"인도에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을 불법 투기하는 강이 있어. 구소련은 그런 것들을 동해에 내다 버렸고.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을 사용사용하는 인간의 인식이 진화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고 말아." - P-1

남자는 여운을 즐기려는 듯 언제까지고 사토미의 허벅지를 애무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슬쩍 뿌리치고 의자에 걸쳐 둔 목욕 타월을 몸에 두르고는 거울 앞에 앉았다. 핸드백에서 꺼낸 브러시로 머리를 빗자 엉킨 머리카락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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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는 남편의 얼굴에는 가면이 씌어 있었다. 은색 금속의 차가운 가면이었다. 감정을 숨겨 주는 그 가면은 남편의 마른 볼과 턱과 미간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번득 빛나는 가면의 남편은 흉포한 무기를 손에 들고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무기는…….’ - P-1

음침한 기분을 곱씹으며 구사나기는 방금 들은 내용을 메모했다. 사람이 죽으면 늘 이런 기분에 사로잡힌다. - P-1

그놈들에게 천벌이 내린 모양이군, 그렇게 말하려다가 구사나기는 얼른 말을 삼켰다. 사망자가 나왔는데, 너무 심한 말같아서였다. - P-1

"주의를 주는 사람이 없었나 보지?"
"주의를 주어요? 설마."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지금 일본에 그럴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 P-1

"옛날에. 읽으려 했던 적이 있었지. 그렇지만 좌절하고 말았어. 독서 체질이 아닌 모양이야."

"불철주야 우리를 위해 치안 유지에 힘을 쏟는 구사나기 형사를 환영하는 것치고는 빛이 너무 약한 거 아닌지 몰라."

"재미있는 거 하나 가르쳐 줄게. 미국에서 UFO를 목격한 사람들을 철저하게 분석해 본 결과 90퍼센트 이상이 뭔가를 잘못 본 것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고 해. 개중에 가장 많은 것이 천체를 UFO로 착각한 것이었어. 특히 가장 많았던 것이 금성이고, 심지어는 달을 UFO로 착각한 사람도 있을 정도야."

"유령의 정체는 의외로 사소한 데서 드러나. 가솔린이 든 석유통이 있었고 그 주위에 분별력 없는 소년 몇 명이 있었어. 그런데 그 석유통에 불이 붙었으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가 아닐까."

구사나기의 눈동자가 커졌다.

"놈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고, 불을 붙인 것은 바로 그놈들이란 말이군. 그것도 화상을 각오하고."

"원칙적으로 이곳에 있는 콘덴서는 완전 방전 상태여야 해. 그렇지만 오랜 시간 방치해 두면 정전 작용으로 서서히 전기를 축적하기도 해. 저 정도 크기의 콘덴서가 완전히 충전되면 자네 몸 정도는 한 끼 거리도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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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까지 같이 먹어 주마.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꿈은 나의 세계다. 여기에서는 내가 신(神)이다!" - P-1

"헛소리 마라! 꿈의 주인은 그 꿈을 꾸는 사람이다! 너 같은 몽마 따위가……." - P-1

"인간들은 자신의 꿈을 알지 못하고 있다. 모두 꿈을 무가치한 것이라 여기며 꿈을 잊으려 하고 있지. 스스로가 주인임을 포기한 꿈의 세계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꿈을 꾸는 시간 동안에는 내가 전지전능한 존재다." - P-1

"아니지. 밤은 휴식의 시간이지. 그것을 공포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은 사악한 어떤 존재들보다도 오히려 사람들 각자의 죄와 걱정과 의심하는 마음일 거야." - P-1

요사스러운 변설은 듣기 싫다! 입만 놀리고 행할 줄은 모르는 것들…… 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나라는 백성을 위해 주는 것이어야 마땅한데, 어찌 나라라는 핑계를 대어 백성을 괴롭히려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나라라는 것은 한없이 높고 귀한 것이지만, 그렇게 귀한 것일지라도 사악한 자들의 사리사욕을 핑계로 이용되면 또 그리도 벗어나기 힘든 일이 되는 것이니…… 살아 있는 사람들은 조심할지어다. 겉으로 능수능란한 언변일수록 다시 한번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이고 장래의 그럴듯한 계획이나 감언에 현재를 희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야……. 나와 같은 후회는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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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비귀(非人非鬼)요, 비유비명(非幽非明)이라더니 정말 힘들이 좋구나! 귀신에게도, 사람에게도 힘을 미칠 수 있다니, 내 왜 진작 저놈들을 쓰지 않았지? 앞으로는 자주 이용해 먹어야겠다!’

"여기 강화도 마니산은 온 세상의 영기가 모이는 산…… 여기 이 부근에 숨겨져 있는 단군의 비기가 있어요……. 그건 상고에서부터 내려오는 것…… 몽골의 침략 때에 이리로 옮겨진……."

나라님 권세를 잡으사 하늘 힘을 모아 모아 납시시니, 훠어이, 물렀거라 잡것들아! 물렀거라 잡것들아!

"우리가 잠시는 버틸 수 있겠지만, 모두가 사느냐 죽느냐는 너에게 달려 있어. 너의 힘을 모아서 지연 보살님에게 실어 드려라. 일단 모든 사람들을 낫게 해야 해! 최선을 다해서! 알았지?"

새카맣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보고 거의 체념했던 박 신부와 준후, 오의파와 철기 옹의 앞을 무언가 희뿌연 것이 가로막았다. 날아오던 화살들은 그 희뿌연 것에 맞아 반 이상은 양옆으로 흩어지고 반 정도는 그 희뿌연 것에 후두둑 박혔다.

불쌍한 망제들아, 천고에 맺혔느냐 만고에 맺혔느냐. 천고에 맺혔으면 천고에 풀 것이고 만고에 맺혔으면 만고에 풀 것인데…….

"우리의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게 없는 법! 우리 땅을 범하는 너희 왜놈들, 산천초목에까지 깃든 이 땅의 정기가 어떤 것인지 한번 보아라!"

"원래 단군님이 설치하신 봉인! 그리고 신라의 화랑도가 설치한 봉인! 그리고 왜구들이 침노하면서 설치한 봉인! 적어도 세 가지가 있어. 앞의 두 개는 여는 법도 전해졌었는데, 그 이후 고려 때 왜구들이 침노하면서 막은 봉인이 있었던 거여. 여기에 펼쳐진 만다라의 진형을 누가 쳤는지 알지?"

"케케묵은 역사의 망령들! 남조가 뭐고 과거의 영광은 무엇이란 말이야! 다 사라져! 다 사라져 버려! 더 이상 산 사람들을 해치지 마라!"

"아냐! 일본인의 시조는 바로 이 땅에 있었던 한민족이었고, 그들의 시조 모두가 한민족의 후예였어! 그 시절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들의 정통이 한반도에 있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수긍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 신물을 내세우면 스스로가 방계가 아닌, 정통성의 대를 잇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약하니까 간사한 수단을 부리는 것이지! 우리를 두려워하니까 어떻게든 분열시키고 약점을 들추어내려는 것이지! 그게 옳은 짓인가?"

"약하니까 간사한 수단을 부리는 것이지! 우리를 두려워하니까 어떻게든 분열시키고 약점을 들추어내려는 것이지! 그게 옳은 짓인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일본 전역을 평정했다는 일본 고대의 영웅 다케루가 신라 마립간 휘하의 일개 장수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토벌군의 선봉장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스스로 자리를 옮겨 버리고 큰 벌을 내리거든! 천부인은 영이 깃들어 있는 신물 중의 신물이여! 그래서 누구도 봉인을 감히 깨려 한 적이 없었지. 잘 지켜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못 건드리면 그야말로 큰 해를 입고 말아. 신물은 군신(軍神) 치우(蚩尤)39의 힘으로 보호되고 있다고 배웠어!"

"아, 제길. 이것까지 쓰게 해? 더러운 놈들! 이거 하나 만들려면 얼마나 드는지 알어? 이 망할……."

그러면서 주기 선생이 크게 깃발을 휘둘렀다.

"십이지신 중 최고에, 제일 비싼 술수다! 아, 아까워!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긴다! 십이신장의 맏이인 자(子) 신이여!"

"저는 단군님의 유물을 꼭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까 여러 선배들께서 오로지 이곳에만 길이 있다 했기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아깝습니다. 모든 목숨은 아깝습니다. 너무도 아까운 것입니다. 이미 두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 죽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는 수많은 목숨이 죽기만 기다리고 있어. 발길에 차이는 것이 사람이고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것도 사람이여. 그런데도 그들의 목숨이 아까운 거여?"

"단군님도 사람이었습니다."

"내 명은 다했어. 나는 자손도 없으니 이젠 지킴이도 이을 수 없고…… 자네 뜻대로 혀. 원래 나는 저기의 관문을 건드려서 천부인을 풀고 스스로가 옮겨 가게 하려 했지만…… 자네의 말도 옳고 도지 늙은이의 말도 일리가 있구먼."

"저 손잡이, 당기는 것처럼 생겼지? 허나 당기면 죽어. 그러니 밀어야 혀. 손잡이를 힘주어 뽑아내면 석실은 무너지고…… 무너지고…… 천부인은…… 다른 곳으로…… 스스로……."

"예를 갖추지 못한 자, 공을 세우지 못한 자, 마음을 갖추지 못한 자, 어여삐 여김이 없는 자는 들어가지 못하리라. 들어가지 못하리라……"

"잘 들어! 민족 전체를 위해 한 사람이 목숨을 바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민족 전체가 그걸 핑계로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건 추악한 일이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민족이 조금 손해를 보면 안 되나? 유물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나 정신적인 위안을 줄지는 몰라도, 한 사람에게는 생명이 걸린 문제라고! 너를 한번 바쳐 볼까? 웃으며 승복할 수 있어?"

치우의 바람이 사방을 잠재우리라.

준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치우의 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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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세 가지 신기라는 것은 뭐지?"

일행은 다시 책들을 뒤져 나갔다. 맨 앞부분에 그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에서 알려진 세 가지 신기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6의 몸을 상징하는 거울, 영혼의 정수를 담았다는 구슬 목걸이(曲玉), 그리고 십이 대 게이코 천황 때의 최고 무장인 야마토 다케루(日本武尊)의 목숨을 구했다7는 초치검. - P-1

"나, 경주에 사는 철기라고 하네. 박수여." - P-1

안 기자와 자영의 눈이 다시 한번 휘둥그레졌다.

‘이젠 박수무당까지…….’ - P-1

"아! 지연 보살님. 여기에는 어쩐 일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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