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나기는 지금까지 형사로 일하면서 인간성은 훌륭한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람을 죽인 용의자를 몇 명이나 봐 왔다. 그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어떤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달관하고 삶에 집착하지 않는 기운. 그것은 광기와 종이 한 장 차, 금단의 경지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 P-1

"대학교수 중에 어째 오래 사는 인간이 많다 했는데, 그 이유를 알겠군. 대학 시설을 거저 전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

대학교수는 오래 산다는 고찰에도 문제가 있어. 교수가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즉 오래 살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않고는 교수가 될 수 없다는 얘기지. 자네는 결과와 원인을 뒤바꿔 생각하는 거야.

"팔씨름에 주로 사용되는 백색근은 나이를 먹으면 줄어들긴 해도 조금만 단련하면 바로 돌아와. 하지만 지구력에 필요한 적색근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지. 심폐 기능도 마찬가지야. 꾸준히 운동에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체력도 그렇지만 기술도 계속하지 않으면 쇠퇴하는 법이지. 나는 계속하고 있는데, 자네는 그렇지 않아. 그뿐이야."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전 지금 런던에 있어요. 일본인 여자와 친구가 되었어요. 홋카이도 출신인데, 이곳에서 유학 중이라고 해요. 내일은 그녀가 런던 구경을 시켜 주기로 했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의 범인은 그 반대였어. 죽이지 않기 위해 전력을 쏟은 거야. 이런 범인은 세상에 없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도 없을 거야.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허수해라고 했던 거지.

결혼 후에도 그는 친절했다. 남편으로서 더 바랄 것이 없게 대해 주었다. 그의 애정이 변하지 않는 한 아야네는 정수기에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준코에게 한 짓은 용서할 수 없지만, 자신에게 똑같은 짓만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대로 지내도 좋았다. 아야네에게 결혼 생활이란 교수대에 오른 남편을 지속적으로 구제하는 나날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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