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관문,
알프스를 넘어 만나는 첫 문예의 중심
- P165

밀라노에 들어서면 지금껏 봐왔던 여느 이탈리아 도시와다른 느낌을 받는다. 고대 로마나 중세시대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든 반면, 도시 가득 들어선 고층빌딩으로 인해 현대적인 대도시의 느낌만 들기 때문이다. 밀라노는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밀라노 패션위크, 프라다로 대표되는 명품, 알파로메오 같은 고성능 차량, 프로축구 AC밀란의 연고지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아울러 증권가와 수많은 금융회사가대거 포진한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이다. - P165

로마시대 기독교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칙령이 선포된 장소였으며, 중세에는 이탈리아 북부 르네상스를선도하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와 밀라노에서 펼쳐진 외세에 대항한 독립운동은 오늘날의 통일 이탈리아가 형성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산파 역할을 했다.
- P166

밀라노는 유럽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켈트족이 살던 땅이었다. - P166

흐르는 물은 썩기 어렵고, 문화는 섞일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밀라노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일찍이 상공업 발달로 번성했다. 3세기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제국을 동서로 나눠 다스릴 때 밀라노는서로마의 수도로 지정되어 그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 P167

4세기 초, 서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비잔티움 황제 리키니우스Licinius, 재위 308 ~324는 밀라노에서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여 탄압받던 기독교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이는 밀라노 칙령‘이란 사건으로 역사에기록된다. - P167

교황청이 있는 로마로 진군하려면 밀라노를 거쳐야 했으니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슬픈 운명을 가진 곳이기도 했다.
- P167

13세기부터 비스콘티 가문이 이곳을 통치한다. 인간은 자신은 소멸하더라도 명성은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P167

밀라노 대성당,
세상에서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 - P169

우리는 세계 최고 혹은 최대 같은 기록에 열광한다. 혹은그렇게 하도록 보이지 않게 강요된다. 4등, 5등은 몰라도 1등은 무조건알아야 하며 운 좋으면 2, 3등까지는 기억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700년 전 밀라노의 군주도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를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행했으니 말이다. - P169

로스 킹은 『브루넬레스키의 돔』에서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전통적으로 (고딕 양식의) 공중 부벽을 흉물스럽고 부자연스러운 미봉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진통직으로 피렌체와 경쟁 관계에 있는 독일, 프랑스, 밀라노의 건축양식을 절대수용하지 않겠다는 자존심도 작용했을 것이다"라며 이탈리아에서 고덕건축이 드물게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 - P170

밀라노 대성당 건설에 고딕 양식을 적용한 이유도 밀라노가 과거부터교역을 위해 알프스 북쪽의 도시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립된 사회보다는 다양한 사회와 교류하는 곳이 개방적이고 진취적일 확률이 높다. - P172

레오나르도 다빈치,
거장이 도시에 깊게 새긴 흔적들
- P174

레오나르도 사후 500주년이었던 2019년의 밀라노 거리에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 레오나르도의 초상화와 이름이 유독 많이 보였다. 밀라노는 레오나르도의 인생 중 가장 길었던 17년이나 머물렀던곳이기에 그만큼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앞서 살펴본 밀트노 대성당에도 레오나르도의 흔적은 희미하게 남아 있다. - P172

v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 이곳에서는 레오나르도가 17년 동안 밀라노에 머물 때 스케치했던다양한 기계들을 실제 모델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 P176

대부분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긴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 완성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일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고 열광하는 것은 완성이라는 목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완싱보다는 그곳까지 도달하려는 과정에서 땀 흘리며 얻는 성취감을 통해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 P178

오스트리아의 침략,
통일의 기운이 일어나다 - P179

가진 것이 많은데도 불행해지는 아이러니를 석유를 생산하면서도 가난에 허덕이는 남미와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에서 살펴볼 수있다. 풍족한 나라일수록 효율적인 자원관리, 높은 정치 청렴도, 국민 통합이 더없이 중요하다. 달콤함이 있는 곳에는 늘 전쟁, 배신, 음모가 암약하며 빈틈을 사정없이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 P179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 지배를 경험하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며, 자신들에게도 그러한 힘이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P182

고기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듯, 정치체제를 돌려놓는다고 해서 자유와 평등의 달콤함을 맛봤던 사람들의 생각까지 되돌릴 수 없었다. - P182

한편, 유럽 전쟁이 극에 달했던 1813년 무렵 밀라노에서 남쪽으로100km 떨어진 파르마 공국의 작은 마을에서 음악에 두각을 보이는 아이가 태어났다. 베르디라는 이름을 가진 소심하고 허약한 아이가 향후50년 뒤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P182

베르다.
가거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 P183

고된 삶의 현장에서는 늘 음악이 흐른다. 카리브해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들에게 삶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살사Blu라는 음악과춤이 있었기에 그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루 16 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견뎌낼 수 있었다. - P183

음악은 인류에게 힘든 시간을 이겨낼 힘을 준다 - P184

1842년, 베르디의 세 번째 오페라 「나부코(Nabucco」가 라 스칼라 극장의 무대에 처음 올려졌다. 나부코는 기원전 6세기, 메소포타지역 고대왕국이었던 바빌론의 왕 ‘나부카드네자르 2세‘의 이탈리아어 표현이다.
오페라는 약속의 땅 유다왕국이 침략당해 많은 히브리인이 바빌론으로끌려갔던 역사를 모티프로 한다. 3막이 오르고 바빌론에서 비참한 삶을살아가는 히브리 노예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고향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른 합창곡 「가거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가 극장에울려 퍼졌다. - P184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하는 운명이라는 손님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다. - P186

라 스칼라 극장,
이탈리아 통일의 발화점 - P188

이로써 로마와 베네치아를 제외한 이탈리아의 대부분 지역이 사르데냐왕국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리고 10년 뒤 그토록 염원했던 이탈리아의통일이 로마 멸망 후 1,400년 만에 마침내 달성되었다. - P189

꼬모,
알프스가 빚은 숨겨진 보석
- P192

밀라노를 방문한 관광객이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들리는곳이 호반의 도시 꼬모 Como 이다. 꼬모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에 면한 작은 도시로 밀라노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빚어놓은 호수 한편에 자리한 꼬모는 고대 로마 때부터 수려한 자연경관과 서늘한 기온 때문에 귀족의 여름철 휴양지로 유명했다. - P192

현재도 여전히 알프스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제 귀족이머물렀던 저택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별장으로 대체되었다. - P192

그러나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쥐어 터지기 전까지는"이라고 했듯, 변덕스러운 운명이 그의 그럴듯한 탈출 계획을 섬길지는 미지수였다. - P194

미완성으로 남은
통일 이탈리아 - P195

몇 년 전, 20세기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의 흔적을 따라볼리비아의 바예그란데까지 힘겹게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과 다르게 그곳에서 체 게바라와 관련된 장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그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지역 관광 가이드를 만나 대화할 수 있었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받았다. - P195

혁명이 성공한 쿠바에서 체 게바라는 국가 영웅이다. 그러나 남미에서 미국 제국주의로부터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그에 대한 평가는 단순 테러리스트에 불과했다. 심지어 바예그란데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 P195

쿠바의 혁명은 성공했지만, 볼리비아에서의 혁명은 실패했기 때문이다. - P195

^ 세뇨르 데 말타 병원 내 세탁실,
1967년, 혁명가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어 이곳 세탁실에서 언론에 공개된다.
- P196

어떤 대상의 평가는 늘 상대적일 수 있고, 세상에 절대적 관점은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던 에피소드였다. 이탈리아 통일의 관점도 북부와 남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 매울 수 없는간극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힘겹게 이룩한 이탈리아 통일의 옥에 티로남았다. - P196

초기 이탈리아 왕국에서 실행했던 경제정책은 주로 북부 공업 도시에 혜택이 집중되었다. 반면, 농업 중심이며 여전히 봉건제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던 남부 지역은 발전에서 소외되었다. 남부의 대표 도시였던 나폴리, 시칠리아는 서서히 몰락했다. 농민들의 세금 부담은 커졌고, 불합리한 토지 분배는 또 다른 신흥 부자를 만들어낼 뿐 민중의 삶은 전보다비참해졌다. 통일이 과연 남부에는 어떤 혜택을 주었으며 왜 삶은 전보다 더 비참해지는지 비관하며, 농민들은 더는 참지 않고 정부를 향한 투쟁을 선택했다. - P197

무솔리니,
꼬모에서 맞은 파시스트의 최후 - P199

1914년, 사라예보의 ‘라틴 다리‘에서 울려 퍼진 두 발의총성이 전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통일 후 꾸준히 북부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던 이탈리아는 1915년 연합군으로 참전해 승전국이 되었지만, 허울뿐인 영광이었다. 많은젊은이가 전쟁에 끌려나가 희생되었고 스페인 독감으로 국토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인구의 감소로 국내 산업 전반의 생산량은 급감해 경제는나락으로 떨어졌다. - P199

승전국 이탈리아에 돌아온 몫은 예상과는 다르게 남티롤 정도의 조그만 땅덩어리에 불과했다. 이는 같은 승전국인 프랑스,
영국이 차지한 영광과 비교해 한참 부족했다. 사회는 생기를 잃고 국민은 패배 의식에 휩싸였다. - P199

다섯 번째 길
루체른, 창조의 길 - P205

"사과가 얹어졌던 이 머리로부터
자네들을 위한 새롭고 더 나은 자유가 싹틀 거야.
옛것은 무너지고 시대는 변하고,
폐허로부터 새로운 삶이 꽃피는 거지"
『빌헬름 텔』, 프리드리히 실러 - P207

고타르트 고개,
고립을 넘어 세상과 ㅅᆢ통하다 - P209

루체른 호수,
빌헬름 텔이 쏘아 올린 스위스 건국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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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분위기의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베네치아와 주로왕래가 있었던 곳이 교황이 지배하는 서유럽보다는 동방의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 문화권 나라들이었기 때문이다. - P145

문화적으로 뒤졌던 서유럽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말 많은 교황은 자유를 사랑하는 바닷사람들에게 피곤한 존재였기때문이다. 이런 호방한 베네치아의 기질을 담은 건축물은 관광객이 가장많이 찾는 산마르코 지구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 P145

v 두칼레 궁전, 총독의 관저로 베네치아 정치의 중심지였다. 개방된 아케이드 공간과층별 서로 다른 양식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조화가 바다 도시의 진취적 기상을 보여준다. - P147

산마르코 대성당.
문화의 융합이 만들어낸 걸작 - P148

베네치아는 섞이면서 위대해졌다. - P148

산마르코 대성당은 이러한 이종교배로 탄생한 뛰어난 작품이다.
- P149

스 산마르코 대성당. 총독의 개인 성당으로 시작된 이곳은 9세기 마가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면서베네치아 최고 권위를 갖는 성당이 된다.
- P150

산마르코 대성당은 당대를 대표하던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시기의양식으로 오랜 기간 유지보수 되었다. 마침내 특정 양식으로 규정지을수 없는 베네치아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이 탄생했다. 산마르코 대성당 자체가 서양의 건축사를 보여주는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섞이지 않았다면 평범한 수작으로 끝났을 대성당은 다양한 문화의 융합으로 걸작이 되었다. - P150

산마르코 광장&마르자나 도서관,
고전의 개성 있는 재해석 - P151

베네치아에서 만나는 건물 하나하나에 그들의 역사와 철학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비단 문자뿐 아니라 건물 자체만으로도 문자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음을 깨닫는다.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화 한 송이조차도 관심을 기울인다면 무엇인가 말을 걸어올 것 같은 곳이 베네치아다. - P154

비발디, 바다의 도시에
공기처럼 흐르는 바로크 선율 - P155

어떤 특정 장소가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 깊이 각인될 때가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맛봤던 모든 감각을 모자이크처럼 하니로조화시켜 마음속 한쪽에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것을 잊고 지내다가 특정 순간을 만나면 각인된 기억이 자신도 모르게 소환된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로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한여름 달콤한 젤리토의맛으로 시원하게 분수가 뿜어져 나왔던 스페인 광장을 상상한다. - P155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젊은 시절 자신과 함께 최고의 연주를 선보여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피에타 음악학교 아이들을 그리워했을 비발디가 상상된다. 그러한 서정적 감정의 상태에서 계절의 변화를 더욱 잘체감했을 것이다. 그는 오직 청중의 관점에서만 만들어졌던 기존 음악의관행을 깨고 자신이 자연에서 느낀 지극히도 개인적인 감정을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넣었다. 이렇게 불후의 명작인 「사계」가 탄생했다. - P158

비로소 인간은 음악이라는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바로크‘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한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 P158

비발디의 자연을 음악으로 묘사한 혁신적인 시도는 매끈한 진주 같은 음악만을 최고로 치던 기성 사회를 흔들었다. 비형식적이고 비틀어진 음악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즉 세상에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이었다. - P158

베네치아는 인공섬이기 때문에 없는 것이 많다. 내연기관의 차량은물론이고 육지에서는 흔한 풀이나 나무도 당연히 보기가 쉽지 않다. 돌과 콘크리트로만 되어있는 삭막한 도시지만, 비발디의 클래식 선율이 흐르면서 음악의 숲이 우거지고 새들이 노래하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도시로 새롭게 태어난다. 베네치아 여행 후 사람들의 뇌리에 클래식은깊게 각인되고 음악이 흐르는 곳이면 언제나 베네치아를 떠올릴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 - P159

네 번째 길
밀라노, 통일의 길 - P161

"가거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고 향기에 찬우리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날아가 쉬어라.
요르단의 큰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참배를 하라"

「가거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中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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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이 만들어낸
메디치가 교황 - P100

귀족도 아닌 은행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메디치가는 어떻게 피렌체를 넘어 유럽의 유력 가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시작은메디치가에서 교황을 배출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프랑스 왕실과 사돈을 맺으며 외연을 확장했고, 마침내 대관식을 통해 토스카나지방의 군주로까지 지위가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문에서의 교황 배출은 위대한 자 로렌초의 집념과 장기적인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P100

그가 생각할 때 그것은 종교의 권력이었다. 추기경을 넘어교황을 배출한다면, 메디치가의 영속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기초작업에 들어갔다. - P101

추방당해 외로운 방랑길에 올랐다. 메디치가는 역사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메디치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피렌체를 떠난 지 무려 18년 만에 다시 금의환향했다. 이듬해에는 로렌초의 소원대로 차남 조반니가 마침내 레오 10세 교황에 등극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 P101

유럽에 유력 가문은 많다. 그러나 메디치가처럼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 가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들로 인해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메디치가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업적은 불후의 명성을 얻어 현재까지도 피렌체에 살아 숨을 쉰다. - P103

코시모 1세
유럽의 왕들과 어깨를 겨루다 - P104

시뇨리아 광장에 놓인 기마상의 주인공은 피렌체 최초의군주였던 코시모 1세 데 메디치 Cosimo I de Medici, 재위 1569~1574 이다. 그토록 자유를 외쳤던 피렌체 시민들이 왜 광장의 한쪽에 공화국과 대척점에 있는 군주국의 상징인 기마상을 설치하게 되었을까. - P104

코시모 통치 시기 피렌체는 위대한 자 로렌초 시기의 두 배나 되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쇠락했던 상공업이 다시 활력을 얻으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오늘날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답고 전원적인 풍경을 만든 올리브 나무의 향연도 당시 농업 육성 사업의 결과이며,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우피치 미술관도 이때 건설되었다. 이밖에 해군을 육성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대외무역을 안정시켰던 점 또한눈여겨볼 만하다. - P106

1570년 로마에서 교황에게 왕관을 받기에 이른다. 마침내 피렌체는 코시모가 그토록 염원했던 프랑스나 나폴리 왕국과 동급인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격상되었고, 메디치가는 유럽의 왕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향후 170 년간의 역사를 더 이어간다.
- P107

코시모 1세는 엄혹한 전제정치로 과오도 많이 남겼지만, 피렌체 시민들은 피렌체를 다시 부흥시킨 그를 환호했다. 오늘날 시뇨리아 광장에서 있는 그의 기마상은 비록 시민들의 자유를 제약했지만, 피렌체의 위상을 다시 한번 유럽에 드높인 공로는 인정한다는 의미처럼 보이기도한다. - P107

브루넬레스키 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꽃봉오리
- P108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두오모Duoma‘라는 말을 자주듣는다. 얼핏 건물의 천장을 덮는 구 형태의 돔을 생각하기 쉽지만, 주교좌가 있는 ‘대성당‘이라는 뜻으로 라틴어 도무스Domus에서 유래되었다.
기독교 박해 시기 기독교인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로마의 전통가옥인도무스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시간이 흘러 기독교 시대가 되면서 도무스는 신의 거처, 즉 대성당의 뜻을 가진 두오모로 발전한다. - P108

산타마리아 대성당에 있는 필리포의 묘비명에서 건축가라는 단어는찾을 수 없다.
- P112

"피렌체의 위대한 천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여기 잠들다." - P112

돔 아래에는 건축가를 넘어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이뤄냈던 천재만이잠들어 있는 것이다. - P112

모험가들,
세상의 대륙을 잇다
- P113

항상 경계를 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이 이들에게 유일한목적은 아니다. 이들은 호기심이라는 횃불을 들고 인간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6세기이후 유럽 곳곳에서 등장한 모험가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짙은 안개를 걷어버리자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 P113

^ 콜럼버스 무덤(세비야),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그는 신대륙에 묻혔으나 스페인 식민지가 독립하자후손들은 유해를 스페인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대항해시대 주요 역할을 했던 도시인 세비야의 대성당에 안장했다. - P114

당시 사람들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직접 증명해볼 엄두를 못 냈다. 정교한 천문관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항해술 없이 연안을 벗어나 대양으로 항해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중 경계를 넘어 신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곳을 엿보기 시작한 야심 넘치는 모험가들이 등장했다. - P115

피렌체 출신의 지도학자 겸 항해사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1454~1512는  4번의 대서양 항해 끝에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주장한곳은 유럽인에게 전인미답의 신대륙이었음을 밝혀냈다. - P115

스페인 출신의 탐험가 발보아는 1513년 9월,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파나마 지협 횡단에 성공해 태평양을 본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이로써 인류는 대서양 이외에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알게 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이 이끈 선단은 대서양을건너 남미를 돌아 태평양을 횡단해 유럽으로 복귀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대륙들이모험가들에 의해 서로 연결되자 진정한 세계사가 시작되었다.
- P116

일반 사람들은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만하고 끝낸다.
한편, 어떤 이들은 호기심과 열정을 참지 못하고 저 너머에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선을 넘어선다. 새로운 지식의 유입으로 촉발된 르네상스시대를 맞아, 이때 등장한 다양한 분야에서 경계를 밥 먹듯 드나드는 이들로 인해 세상은 진보했다. 르네상스 시대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비워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시대이기도했다. - P116

세 번째길
베네치아, 자유의 길 - P119

"인간은 자유롭다.
그러나 스스로를 믿지 않을 때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이 주어진 운명의 길을 잠자코 좇아가기만 한다면,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허락하면서 부여한 힘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멸의 유혹 카사노바 자서전』, 자코모 카사노바 - P121

야만족의 침입,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 P123

전 세계 곳곳에서 베네치아와 비슷한 물의 도시나 마을혹은 섬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걸어온 장구한 역사와 도시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석호 한가운데에 흩뿌려진150개의 섬이 410개의 다리로 연결되고, 그 안팎을 180개의 크고 작은운하가 혈관처럼 사통팔달로 뻗어 나가자 비로소 살아 숨 쉬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탄생했다. - P123

자유를 찾아 바다로간 사람들에 의해 베네치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 P125

인생을 운명에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여 기회를 만들었다. 또한,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은 지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믿었다.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아이네아스도 그들의 선조라는것을 그들은 잊지 않았다.
- P126

포효하는 사자,
개펄에서 피어난 희망이란 꽃
- P127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자주 마주치는 동물이 있다.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있는 날개 달린 사자다. 선박의 깃발, 성당의 벽면, 광장의 높은 기둥 위에서 사자는 당연한 듯 당당한 포즈를 취한다. 세계 3대예술 영화제로 유명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의 최고상도 황금사자상이다. 날개 달린 사자가 베네치아의 상징이 된 연유를 알게 된다면 길에서만나는 사자가 더욱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 P127

V 리알토 다리, 대운하를 연결하는 네 개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
산마르코 지구와 산폴로 지구를 연결한다. - P128

"나를 죽일 수 없는고통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 라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고난을 이거내는 과정에서 그들 내면에 잠들어 있던 상인의 기질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상인은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익이 된다면 지옥까지 가서라도 거래를 할 자신이 있었다.
- P129

첨예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치 국면에서도 베네치아는 유럽보다 발전된 문명을 가진 이슬람 세계와 거래를 이어갔다. 그들에게 삶이란 교황의 협박과 파문으로도 막을 수 없는 소중한 가지였기 때문이다.
- P130

날개 달린 사자는 마가 성인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마가 성인의 유해는 산마르코 대성당에 안치되었고, 대신 상징물인 날개 달린 사자가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도시를 수호한다. 포효하는 용맹스러운 사자처럼,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를 넘어 지중해 전역으로 세력을 뻗쳐나갔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었던 개펄에서 희망이라는 꽃을 피워 냈다. - P130

네 마리 청동 말,
아드리아해를 넘어 지중해로 나아가다 - P131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에는 당시 비잔티움 제국을처음 봤던 십자군의 놀라움이 잘 나타난다. "도시의 엄청난 길이와 너비,
병사들은 이 세상에 그렇듯 부유하고 웅장한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전율하지 않을 만큼 대담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며, 또한 천지가 창조한 이래 그처럼 대단한 광경은 없었다". - P133

베네치아의 사자가 그들의 정체성이라면 네 마리 청동 말은 그들이바다를 통해 꿈꾸었던 이상이었다. 산마르코 광장을 굽어보는 청동 말은여전히 사람들에게 베네치아 과거의 영광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언제든 바다로 달려나갈 준비를 한다. - P135

자유와 축제는 한 단어처럼 느껴진다.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누구나즐길 수 있는 축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 자유가 숨 쉬는 한축제는 늘 진행될 것이다. - P143

카니발,
가면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P139

두칼레 궁전,
진취적 기상과 자유를 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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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정치 중심지인 베키오궁 앞에는 널찍한 시뇨리아 광장 Plaza della Signoria 이 있다. 중세 피렌체는 ‘시뇨리아‘ 라는 귀족과 유력 상인으로 구성된 8인의 최고 행정기구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광장의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이 광장은 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데 지척에세계 최고 수준의 우피치 미술관이 있고 광장 주변을 웬만한 박물관에가야 볼 수 있는 최고의 조각품으로 꾸며놨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20대 시절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균형미와 조형미가 완벽한다비드> 상도 이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 P94

중세시대 피렌체는 유럽의 변방 도시에 불과했다. 1239년 이탈리아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내려온 우밀리아티 Uniliati 수도사들이 피렌체에서 모직 사업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 P95

메디치가를 선장으로 한 거대한 피렌체 호는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혁신적인 선원들의 활약과 함께 험난한 중세의 바다를 건너 근대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 P99

메디치가가 유럽 여타의 가문들과 다르게 현재까지 존경받는 이유 중하나가 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거의 무제한의 후원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 P98

시민들은 세련되고 자부심 넘치는 피렌체를 건설한 로렌초에게 ‘위대한 자 Lorenzo il Magnifico‘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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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견고한 신 중심 세계에
새어든 한 줄기 새로운 빛
- P90

오늘날 우리는 편하게 이천 년 전에 살았던 역사가와 시인이 저술한 로마의 역사와 서사시를 읽는다. 2,500년 전 그리스의 비극, 신화, 서사시는 오늘날까지 살아님아 영화와 연극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오래전부터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던 다양한 고전이 순풍에 돛 단 듯 자연스럽게 오늘까지전해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어둠 속에 갇혀 영원히 사라져버렸을수도 있었던 이러한 고전들을 세상으로 건져 올린 사람들이 있었다. 피렌체 여행은 이들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 P90

이렇게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문헌을 읽고 연구하는사람들을 가리켜 인문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P91

인문학자 로렌초 발라 Lorenzo Valla는 그동안 교황이 황제와 대립할 때마다 매번 서방 세계의 우위권을 주장하며 제시했던 콘스탄티누스 기증 문서‘가 거짓 문서임을 밝혀냈다. - P91

잊혔던 과거를 찾아내어 현재라는거울에 비추자 고대 로마의 문명과 단절되어 한참 뒤떨어져 있던 자신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 P92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 - P92

어떤 언어를 말하고 쓰는가에 따라 우리의 생각도 크게 달라진다. 잊혔던 고대 텍스트와의 만남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품게 하여 전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강력한동기를 부여했다. 문학, 건축, 조각, 특히 회화 분야는 전과 다른 새로운방향으로 발전한다. - P93

v 파치 예배당 중정, 로마 양식의 특징인 반원형 아치와균형, 비율, 대칭이 절묘하게 조화된 열주가 만든 공간이 무척 세련되어 보인다. - P92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바다도 인접하지 않은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도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최선을 다한 결과가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생각하면 우리 삶의 무게가 전혀 가볍지 않게 느껴진다. - P93

메디치,
천재 양성 인큐베이터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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