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 때 고씨 일가를 내쳤고 신씨와 난씨 일가를 멀리했사옵니다. 고씨는 고구려왕손으로 같은 왕손이지만 별종인 대씨에게 조아리는걸 은근히 가슴 아파했사옵니다. 고씨는 대성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면대씨와 겨룰 수 있사옵니다. 신씨와 난씨일가들은 개국공신중에도 으뜸인데 혜민부를 만들어 아프고 배고픈 자들을 구휼했사옵니다. 그뿐 아니라 군마를 양성하여 국력을 키우고 널리 학문을펼치어 사족들의존경을 한몸에 받았사옵니다. 그들을 중용하면 반드시 민심을 얻게 되옵니다."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태후의 옷을벗기고 그녀의 알몸을 어루만지는 미사천은 금세 온몸이 뜨거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천하를 농단할 자리에 오르면 왜 다들 탐염에 취하게 될까? 오태후는 터질 듯이 영근 몸뚱이를 사내에게 맡겼다. 온몸에서 불꽃이튀는 듯했다. 사내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입술과 혀끝이 스치는 곳마다 정염의 불꽃이 솟구쳤다.
오태후는 방농에 다다르자 황홀경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질렀다. 사내가 여인의 입을 입술로 덮어 비명을 막았다. 땀범벅이된 미사천의몸을 힘주어 끌어안은 오태후가 입을 열었다. "너를 모주로 삼아 천하를 논하고 대업을 이루겠노라."
"내성 서남쪽 모서리가 비었으니 그곳에 물감옥을 만드옵소서. 돌로 벽을 쌓되 그바닥은 사람 배꼽쯤 되는 깊이로 물을 채우고 죄인을가두옵소서. 천하 없이 흉맹한무리라도 사흘을 못 넘기고 토죄할 것이니어찌 마마께 충절을 바치지 않겠사옵니까?따르는 신하가많으면 민심이 모이고, 민심이 모이면 천심이 되며, 천심은 곧 대업을이루옵니다."
대소신료들은 물감옥을 만들라는 명이 떨어지는 순간, 오태후를 극진히 섬겨야 목숨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젊고 건장하며 용모가출중한 자들을 가려 뽑아 시종으로 삼았는데 서너 달 사이에무려 18명이나 되었다. 문시종 9명에, 무시종 9명으로 모두 18명이었다. 이들은 주홍빛 관복을 입기 때문에 주홍신이라 불리었다. 명색이 시종이지 실제는 나이 든 오태후를 밤마다 섬기는남총들이었다.
동궁을 점령한 태후의 위세는 말만 섭정이지 실제로는 황제나 마찬가지였다. 태후시종장 미사천의 위세 또한 천하를 호령했다. 나이든 여인이 젊은 사내를 품에 안아 그 정기를 받아 젊어지는 것이 대식인데, 오태후는 밤마다 시종을 바꾸어 대식을즐겼다.
사람들은 벼슬아치 중에서 중신 최인걸, 관작이 없는 선비 가운데는 선제 때대신을 역임한 이광록과 고지명을 꼽았다.그들은하나같이 청렴결백했고 의분이분명했으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바른 말을 거침없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앞서거니뒤서거니 물감옥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죄를 뉘우치지 않자 어린 손자손녀들까지 모조리 옷을 입힌 채 물감옥에집어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어린아이들이울 때마다채찍으로 후려치게 했다. 수인들은 반나절 만에 차례로 죄를 청하고 용서를빌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최인걸은 끝내 자신의굴복이 더 큰 죄악이라며 자결했다
"하늘이 일러준 대로 말함은 하늘의 명이니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사옵니까?" "어디서 그런 담대한 배포가 생겼더냐?"오태후는사도봉을 가까이 불러앉혔다.참으로 곱고 요염하구나. 부귀를 누리며 오래 살고 싶지 않느냐?""마마,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찌부귀를싫어하겠사옵니까?" "그러면 때가 될 때까지 입을 봉해야 하느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때는 기다리는 것이라 하나 만들수도있음을 왜 모르시옵니까?"
오태후는 고심 끝에 사도봉을 도교 도사로 명하여 가까이 두었다. 이로부터 오태후는 불도를 버리고 도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는 동안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세를 감면하고, 군역에 나서는 백성에게 둔전을 하게했으며, 옥을 열어 죄인들을 방면했다. 그리고 관고를 열어곡식과 옷감을 나누어주고, 농지를 개간한 백성들에게 3년 동안조세를 감하고 이후에는 반을 공물로 바치게 했다. 뿐만 아니었다. 관가의 감찰을 강화하여 벼슬아치들이 백성을 못살게 굴거나 온당치 않은 형벌을 내리면 삭탈하거나치죄했다.
격문은 황음무도한 오태후와 오씨 일가를 주살하여 사직을 바로 세우고 사술을 부리는 사도봉과 주홍신의 무리를 척살하자고 했다. 또한 오태후의 심복인 태복경 왕경례와 금군대장 여석철을 참살하여, 국기를 바로 세우자고했다.소문에는 고원, 신사랑, 난강 일족이저지른 짓이라고 했다. 이에 진노한 오태후는각기 만 금씩을 걸고 그들을 주살하라고 명했다. 공을 세우겠다는 자들이 무리지어 태백산과 천문령, 오호령과 미타호로 떠났지만 아직까지 기이한 공을 세웠다는 소식은없었다.
"세월은 정녕 폐하의 편이옵니다. 강건히 오래 사시기만 하면 되나이다. 태후마마께 복종하는 신하들은 살아남기 위해 굴종할뿐이옵니다. 입에는 꿀이 있고, 뱃속에는 칼이 있으며, 마음으로는 폐하를 흠모하고 있나이다."
대원유의 밀지는 크지 않은 종이에 작은붓글씨로 쓰였다. 황후 임사향의 아버지인임창조에게 보내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신하들에게 충역을 뛰어넘는 거사를 당부하는 것이었다. 밀지를 품속에 감춘 임사향은이번에는 큰 종이를 펼쳐 놓았다."폐하를지켜보는 자들에게 묵향을 어찌들키지 않겠나이까? 그러하니 태평성대를노래하는 시 한 수를 지으시옵소서. 다른건 다 감출 수있어도 먹을 갈아 붓을 적신것은 감출 수가 없나이다."
주위를 물린 임사향은 아버지의 버선을벗겨 실밥을 뜯어내고 황제의 밀지를 넣은후 표 나지 않게 꿰매어 다시 신게 했다. "사직의운명과 가문의 운명이 모두 이밀지에 달려 있습니다. 결코 서두르지 마시고 늦더라도 거사를 성사시킬 동량들을 얻으셔야 합니다. 기밀을 유지하고 믿을 만한자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사에는 반드시 마가 끼고, 거사에는 반드시배반자가 생긴다고했으니, 유념하십시오."굳은 표정의 국구 임창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도 쥐 수염만 모아 만든 서수필은더욱 진기하게 여겼다. 오태후는 발해의 명장 풍응이 직접 만들어 바친 서수필을 아깝다 하지않고 대태성에게 하사했으니, 그홍은에 감읍할 일이었다.그러나 그날 밤 대태성은 자지러지게 울고 몸부림을 치다가 정말 허망하게목숨줄을 놓았다. 궁중 태의가 달려들고 내로라하는 의관들이 손을 썼지만 검은 거품을 쏟으며 쓰러지더니 금방 숨이 멎었다. 손 쓸틈없이 절명한 것이다.
"유모도 어미와 마찬가지입니다. 어찌제 젖을 먹는 갓난아이에게 독물을 먹이겠습니까? 이는 전하를 시해하여 득을 보는자들의음모와 간계입니다. 내 한 목숨은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살 생각도없습니다. 다만 간계를 밝혀 사직을 보존하옵소서. 황상의 보위가 걱정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형리는 몽둥이를 내리쳐 유모의 머리통을 깨뜨렸고, 유모는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유모의 시가와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창에 찍혀 쓰러진 장수는 놀랍게도 부마도위 고경진이었다. 그에게 오태후는 사사로이 장모요, 공주 대진례의 생모가 아니던가. •천하를 섭정하는 오태후를 참살하려했으니 분명 대역을 꿈꾸는 자들이었다.
"태후는 황음무도하여 황실의 법도를 그르쳤고 감히 용상을 찬탈하려고 작당했으니 그 죄업은 만 번을 참수해도 모자랄 것이다. 황자를 독살한 할머니요, 충신을 죽이고 간신과 무당에게 휘둘렸으니 이는 역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남첩에게정신 빼앗긴창부가 어찌 군림하랴? 내가독부요, 창부를 죽여 법도를 바로잡지 못한게 한이로다!"
공주가 울고불고 통사정을 해도 고경진의 궁형은 면할 수 없었다. 딸을 서인으로 만드는 어미가 어디 있으며 사위의 남근을 자르라명하는 장모가 세상천지에 또 있을까마는, 오태후의 진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예부터 역심을 품고 남몰래 통천동과태백산을 찾아 하늘에 제를 올려 천심을 얻으려 한 자들은 벼락을 맞거나 급살을 맞았사옵니다. 또한 몸에 상처 입은 지 3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부정 탔거나 피를 흘렸거나 일진이 맞지 않을 때 제를 올린 자들은 모두 화를 당해 멸문했거나 급사했사옵니다. 환궁하시어 때를 기다리시옵소서."
호령하는 대원유를 왕경례는 황제로 예우하지 않았다. 궁궐로 압송된 대원유는 석고대죄를 거부했다."사해와 만백성의 주인이 어찌석고대죄를 하겠느냐? 황제는 오직 하늘과 종묘에만 머리를 숙일 뿐이니라.
해가 바뀌어 임진(812)년 3월 스무이튿날 밤, 모진 감환으로 고생하던 대원유가별궁에서 급서했다. 강황제 대숭린의 장손으로계위하여 3년간 재위한 대원유는 시호를 정황제로 하고 묘호는 의종으로 했다.그의 성수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요, 황위에올랐으나천하를 경략하지 못한 채 짧은 생애를 마쳤다.대원유의 붕어 소식은 이튿날 저녁때쯤에서야 알려졌다. 대원유에게는 손이 없었다. 종신 자식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인오태후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지켜보았다고 했다.
마른 땅에 물 스며들듯 기이한 소문이 퍼진 것은 대원유가 붕어한 지 나흘 만이었다. 황제가 병사한 게 아니라 독살당했으며 오태후가계위한다는 소문이 도성을 휘돌았다.
오태후가 등극하기로 한 4월 초하루 이른 새벽,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반란군이 홀한성의 내성을 에워싸고 황궁을포위했다. 반란의 선봉에는 놀랍게도 오태후의 근신인 금군대장 여석철이 서 있었다. 더욱이 선제 정황제의 종부인 대인수가 반란의주모자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인수는 개국 황제인 성무고황제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의 4세손으로, 일체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지만 시문에 밝고 무예가출중했다. 심성도 후덕하여 황친들의 신망이 컸으며, 말수가 적고 앞으로 나서는 법이 없는 군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처럼 신뢰할 만한 자였기에여석철과 금군이 반란의 대열에 합류한 것 같았다. 일부 시위 군사와 내관들도 가담했다.
"황위를 선제의 아우인 경왕 대언의에게 물려준다면 태후마마를 서궁으로 모시어태후로서 예를 갖추겠다. 이것은 민심이자천심이다. 천심을 거역하면 봉기할 테니 그때는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대인수는 오태후가 보낸 시종 미사천에게 분명하게 뜻을밝혔다.
대언의는 등극하자마자 서둘러 연호를 주작으로 선포하고 종부인 대인수를 권지국사에 명했다. 권지국사란 나이 어린 황제를•대신하여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관작이었다. 그러나 대인수는 끝내 명을 받지않았다.
"충역을 뛰어넘은 자가 권신이 되거나 근신으로 득세하면 반드시 교활해지옵니다. 예부터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면 뒷문으로 승냥이가들어온다고 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능히 치세하실 것이옵니다. 아무근심 마시고 오직 부처님의 가피를 빌며 다스리옵소서. 신은도성을 떠나 머지않은 곳에서 폐하를 올려다보고 있겠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용상에 오른 대언의는 용단을 내려 오태후를 둘러싸고 정사를 그르치게 한 자들을모두 징치했다. 도사 사도봉과 시종장 미사천, 오태후의 남총노릇을 한 주홍신, 오태후의 형제와 가솔 중에 학정을 일삼았던자들을 모두 삭탈하여 유배형에 처했다
"귀양간 미사천을 풀어 마마를 시종케하고 오귀옥을 국부인으로 복작하여 마마의 적적함을 달래 드리게 하라."깜짝 놀란 장달익이엎드려 간했다."자고로 잡초의 씨앗은 모을 필요가 없다고 했사옵니다. 잡초의 씨앗은 바람에 날리고 빗물 따라 흐르고 짐승의 몸에붙어서 천리를 간다고 했사옵니다. 미사천과 오귀옥이 부싯돌이 될까 두렵사옵니다."
왕효렴의 말에 신야가 소리 내어 웃었다."그대가 매일 부처님께 예배하며 무엇을기원했는지 알겠도다." "어찌 소신의 기도를아시옵니까?" "일본과 발해가 군사동맹을 확약하고 교역을 확충하자는 뜻을 왜 모르겠느냐?"
"소신이 배알하자마자 동맹과 교역을 청했으면 바로 거절당했을 것이옵니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외적이 침공하지 않기에 대륙의 위급한 상황에 둔감하옵니다. 그래서 황명을 받들고 온 사신으로서 본분을 하늘에 맡기고 예불하고 시를 지었사옵니다.""그대는천하를 농락했다. 내가 기특하게 여겨 동맹과 교역을 윤허하노라."
드디어 을미(815)년 정월, 당제 이순은 대군을 동원하여 창의절도사 오원제를 공격했다. 오원제를 격파하면 다음 공격 목표는당연히 제나라의 이사도였다.
이사도는 당군의 보급선을 차단하는 게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군수물자가 집결하는 하음창을 공격했다. 특수 훈련을 받은수백 명의정진대는 당나라 보급창고인 하음창을 불태워 30만여 민(꿰미)의 돈과비단, 2만여 곡의 양곡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 무렵 발해도성에서 기이한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황궁을 경비하고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금군대장군 여석철이 자객에게암살당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도성 외곽을 수비하는 경기군 대총관 홍기선과 경사윤 동경채가 같은 날 새벽에 자객의 손에 의해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들은모두 임진(812)년에 대인수를 따라 충역을 뛰어넘은 자들이었다.
"황친은 이미 날개를 잃었사옵니다. 천하 재주를 다 부려도 날개가 없으면 날 수가 없사옵니다." "날개라......."오태후는 의미 있게웃었다. 금군대장군여석철, 경기군 대총관 홍기선, 경사윤 동경채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홍기선과 동경채의 사인은 아직도 밝혀지지않았다.
도성을 벗어난 경기 지역 삼림에 거처를둔 대인수는 눈보라가 치던 날 황제의 칙서를 받았다. 황제가 병상에 누워 거동하기 어려우니 입궐하여 조정대사를 논하고 신하들에게 훈회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황제의 스승으로 칭하는 태사로 봉했다.칙사 문사막은 대인수가 손수 권하는 술잔을 받았다.
정유(817)년 봄, 대언의는 끝내 병상에서일어나지 못하고 붕어했다. 유언 한마디,유조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침궁에서 힘없이세상을등졌다. 성수는 스물여덟이요, 재위 5년째였다. 대소신료와 백성들은 드디어 대씨 사직은 무너지고 오씨 사직의 여황제가 탄생한다고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단이 벌어졌다. 붕어한 황제의 유조가 공개된 것이다. 대언의가 직접 쓴 어필이 분명했고국새까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선제의 유조를 공개한 것은 놀랍게도 황후 이채복이었다.
"고정하옵소서. 전하께서 계위해도 한해를 넘기지 못하옵니다. 마마의 올해 운은 몹시 사나우나 무술(818)년은 대길하니 반드시 상서로운 일이 생길 것이옵니다. 오히려 이번에 하늘이 도왔사옵니다. 만약 마마께서 올해 등극했으면 중병을 앓아 천추만세를 못할운세였사옵니다."누가 보아도 중풍으로 쓰러진 대명충이 오래 살 것 같지 않았다.
미사천은 약삭빠른 자였다. 머잖아 황위에 오를 태후의 비위를 건들지 않는 것이 총애를 받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았다. 비록 늙은 태후에게 간택되어 남총 노릇을 하고있을망정 권세를 누리는 기묘한 맛에 취한지 오래였다. 부름을 받은 사도봉은 펄쩍뛰면서 입을열었다.
"발해 사직이 안정되어 개국할 때처럼웅혼한 기개가 넘친다면 제나라와 함께 중원을 쳐서 천하를 도모할 수 있고 단군의자손들이드디어 천지만물의 주인이 될 수있으련만,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면 천추의한이 될 것이오."장풍진은 운명의 굴레를 이미 알고있는듯했다.
말갈은 발해에 거개가 복속했지만 북흑수를 비롯하여 백돌, 우루, 불열, 철리, 월희의 일부 부족은 북방으로 달아나 곳곳에웅거하며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막힐부 경계인 속말수(송화강)의 북방과 회원부의 경계인 흑수(아무르 강) 북방에 웅거했다.
급보를 받은 조정은 각처의 도독과 자사에게 말갈을 물리칠 것을 명하면서도 군사를 증원해주지 않았다. 도독, 자사, 현승들이 알아서군사를 초모하고 군마와 병장기를 조달하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곧 백성들을 수탈하라는 것과 같았다.북쪽 변방이 어지러웠지만도성은 황제의 병이 깊어 언제 승하할지 알 수 없었기에 긴장감이 팽팽했다. 황제 알현을 금한지 열흘이 넘었다.
6월 초순, 궁중의 긴장감이 기어이 참화의 모습을 드러냈다. 선제 대언의의 황후이채복이 밤사이에 검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영영깨어나지 못했다. 내시감이 공표하기로는 서궁 의관 예석정이 약을 잘못 지어 변고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예석정을문죄했더니마른 약초 속에 있는 독초를 구분하지 못한 잘못을 시인하며 스스로 죄를청해 참수했다고 했다.
대인수는 지난날 임진병란을 일으켜 오태후를 유폐하고 대언의를 옹립했지만 황제가 곁에 있어 달라는 청을 거절한 채 야인으로돌아갈 만큼 기개 있는 황친이었다.그는 나라의 안위와 사직을 위해 언제든지목숨을 버릴 만큼 웅혼했고, 그의 학식과무예를흠모하는 자가 많아 군자로 통칭될만큼 민심을 업었다. 오태후는 그것이 두려웠다.
이채복의 급서는 황후 고운목에게 큰 충격이었다. 자신도 언제 독살당할지 모르기때문이었다. 황위에 오르기 위해 자식과 손자뿐아니라 며느리까지 거침없이 죽일 수있는 오태후를 떠올리면 밥 한 술 뜨기도무서웠다.
고운목의 오라버니 고진목은 아버지 고숙신을 찾아가 밀서를 내놓았다. 국구 고숙신은 고원의 후손으로 고구려 왕손의 체통을 지키며좌우로부터 신망을 받는 선비였다.왕손으로 태어나 호가호위하며 어지러운 세상 바로잡지 못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외면한다면어찌 군자의 도리이겠느냐. 너는 오래 살기를 바라지 말고 사람답게 살거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도리를 다하고 바른 길을 가면 남보다 조금 일찍 죽을 뿐이다. 후세에 그 뜻이 갸륵하다 할 것이니 어찌광영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신중하지 않으면 더 큰 화가 미칠 테니 매사 부처님께 기도하듯 하라."
석다정은 제자 석정진이 만든 옥새를 요모조모 뜯어보고 종이에 찍어보며 진품 국새 모양과 견주어 보았다. 칙서의 국새를본떠 만든것이니 어디가 달라도 다를 듯한데 진품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했다." 이렇게 감쪽같으니 천하를 농락하겠구나."석다정은옥새를 본떠 만든 제자의 솜씨를 칭찬했다.
이사도는 대국과 홀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동맹을 맺었던 번진은 멸망했거나항복했고, 믿었던 발해조차 원군을 보내주지 않았다. 발해의 배신은 이사도를 더욱아프게 했다. 같은 고구려 후손으로 철석같이 믿었기에 배신감은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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