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수는 출병했던 군사 가운데 둔전병을 뽑아 서쪽으로 진병하게 했다. 이는 다분히 당나라를 의식한 것이다. 번진을 토평하고제나라까지 멸망시켰으니 당나라는당연히 발해를 넘볼 것이다.

뱃머리가 노들섬에 닿자 멀리 암자에서사람들이 달려왔다."정진중이라 저녁 공양 때가 아니면 나오지 않을 것이옵니다."나이든승려가 암자 뒤편 토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작과 난타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토굴에서 정진하여 불러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황제가 행차하면 마땅히 나와서 알현해야 하는데 그들은 당당했다."정진을 훼방했으니 스님께서 널리 헤아려주시오."

저녁때가 되어서야 토굴에서 참선하던 신작과 난타가 급한 걸음으로 황제를알현했다. 대인수는 좌우를 물리고 마주 앉았다."천하를살펴보니 짐의 능력이 참으로보잘것 없었소. 짐에게 바른말로 논힐하고짐의 모자람을 채워줄 현사가 절실하오."황제가 몸소 먼 길을찾아와 태사 자리를 권하니, 신작은 차마 거절하기 어려웠다

"짐이 작정한 것이요, 이미 옥음을 내렸는데 어찌 번복하겠소? 짐이 부덕하여 마땅히 스승을 모셔야 하고 황자와 공주들에게도스승이 필요하오.""신은 한 번도 정사에 참여한 적 없는 백면서생일 뿐이옵니다. 오랫동안 조정대사를 논한 대소신료들에게 염치가없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신은 3공의 아랫자리인 사공이면 족하옵니다.""그러면 난타는 어찌 귀하게 쓸 수 있소이까?" "난타는 의술과 마의술에 뛰어나니태의로 삼고 장차 태복경을 맡기옵소서."

"사공은 짐과 황실의 스승이 될 수 없소.그러니 태보로 봉하겠소."이렇게 해서 대인수는 신작을 태보로, 난타를 태의로 명했다.

대인수가 여세를 몰아 곧장 흑수를 토평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흑수를 공격하는 사이 당나라가 변경을 침노할 것을걱정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흉맹한 흑수와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군사를 잃을까 하는 근심에서였다.

"흑수와 월희 군사보다 한 발 빠른 기동력과 작고 가벼우면서도 멀리 나가는 과간편한 양식이 필요하옵니다. 또한 가볍지만 튼실한투구도 만들어야 하옵니다." "과연 짐을 가르칠 만한 스승이오."대인수는 뒤엉킨 실타래가 풀어진 듯 기뻐했다.

"지금까지는 고구려의 전술과 편제로 군사를 다스렸사옵니다. 그러나 기마병 중심으로 기습하고 도주하는 흑수 군사와 응전하기위해서는 5병제를 버리고 10진제로군대를 편제해야 하옵니다. 즉 십, 백, 천,만으로 구별하면 통솔하기 쉽사옵니다."

"통솔하는 무리가 많으면 명령을 내리는자도 많기 마련이옵니다. 명령하는 자가 많으면 규율에 얽매여 공수가 느려지고 손발이 묶여적의 침공을 받게 되옵니다. 지금까지는 장수가 뒤에서 군사를 몰았지만 앞으로는 장수가 앞장서서 군사를 이끌어야하옵니다."

"기마병의 반이나 정진대가 되어야하오?"어느 병법에도 나와 있지 않는 전술로기마병의 반수가 특공대 역할을 하는 것이기이했다.

"전투식량 만드는 묘책이 무엇이오?" "짐승을 잡아 털을 벗기고 잘게 저며 햇빛에 말렸다가 빻으면 양이 얼마 되지 않사옵니다.
그것을 짐승의 오줌보 말린 것에넣으면 좋은 전투식량이 되옵니다. 또한 곡물을 가루 내어 가지고 다니면 그 역시 좋은전투식량이옵니다."

대인수는 난타의 등을 두드렸다."그대의 손에 발해의 운명이 걸렸음을 명심하라. 짐이 죽어 천 마리의 말로 환생할 수만 있다면 발해군마로 태어나 저 광활한 북방을 한없이 달리고 싶다."

대인수는 가볍고 탄력이 좋은 각궁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살의 허릿간 길이와 촉의 무게, 궁깃의 넓이와 오늬의 크기를 매일 바꾸어최대 사거리를 모색하기 때문에수많은 활과 화살이 쌓여 있었다. 대인수가표적을 향해 날린 화살은 자로 잰 듯 표적을 뚫었다. 각궁은무려 백척이나 날았다.사거리를 확인한 대인수는 크게 기뻐하며궁공들에게 사급을 내렸다.

신축(821)년 초가을, 드디어 발해 황제친정군이 사열을 마치고 북방을 향해 진병했다. 이하앙과 장두불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앞서나가고, 전경채의 주홍기사단이 황제를 옹위하고 드넓은 벌을 내달렸다.

지난 전투 때만 해도 황제는 후군을 맡아 전황을 살펴 군사를 투입하고, 이번 전투는 북방 강자 흑수를 상대하기에 황제가몸소 적과응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발해 친정군이 흑수전에 나섰다는 급보를 받은 당나라 조정은 달구와 철리가 힘없이 무너지자 요서를 방비하는 한편 흑수를지원했다. 그래서 많은 운전금과 군마와 병장기를 보냈고, 병법에 능하고 신통술까지부린다는 장수왕시성을 흑수의 장사로 삼아 흑수 군사를돕게 했다.

"예부터 소각(작은 나팔) 소리는 용의 울음소리 같다고 했사옵니다. 적을 교란하기위해 소각과 전고를 삽시에 아우성치게 하면 적의군마는 놀라 날뛸 것이옵니다. 말은 꾀가 많지만 겁이 많은 짐승이어서 폐하의 뜻대로 부릴 수 있사옵니다."

"공격하라!"대인수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무수한 발해 기치가 오르며 펄럭였다. 나팔과 전고소리가 자지러지고 북소리도 콩 볶듯했다.고함소리도 되알졌다. 여기서 두들기면 저기에서 불고, 저기에서 고함치면 여기서두들기는데 마치 지옥의 암굴에서억조창생이 한꺼번에 분탕질하는 듯했다.흑수군 기마병들이 놀란 말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흑수군에 정신없이 도망치던 발해 군사들이 갑자기 뒤돌아섰다. 둔덕 아래 숨어있던 주홍기사단이 먼저 소리화살을 날리자 숨어 있던궁노수들도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마치 하늘에서 검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듯했다. 흑수 군사들은 쓰러지고 뒹굴고비명을 질렀다.
죽어가는 군사들의 비명은애처로웠다.

좌웅과 우웅이 협공을 하자 흑수 군사들의 예기가 꺾였다. 병에는 기가 있는 법, 적군의 전의를 꺾으면 아무리 용맹해도패하게 마련이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내달려 성 가까이 당도한 옥작소는 성곽을 쳐다보며 아연실색했다. 흰 바탕에 승천하는 황룡이 새겨진기치가 바람에펄럭이고 있었다. 바로 발해황제를 상징하는 깃발이었다. 뿐만 아니라황색 바탕에 효포하는 백호가 수놓아진 기치가 성곽 좌우에서힘차게 펄럭였다. 점령당한 게 분명했다.

발해군은 흑수군을 맞아 치열하게 싸웠다. 난전이었다. 그러나 우측에서 장척안의 군사들이 흑수군에게 한바탕 칼부림을하면,
어느새 좌측에서 윤호세의 군사들이한바탕 칼부림을 했다. 분병필패라 했던가.분한 마음으로 악에 받쳐 덤벼들 때는 꽤아귀차게보이지만 오래 못가 전의를 상실하기 마련이었다.

"복건성 성루 위에 백기가 펄럭입니다."뜬금없는 소식이었다. 항복을 뜻하는 백기를 내걸었으면 마땅히 적장이 걸어나와무릎을꿇어야 했다." 지키는 군사는 얼마나 되더냐?" "군사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의를 잃고 도망친 듯합니다."

장두불이 명을 내리자 뒤따르던 군사들이 성안으로 달려들었다. 장두불도 곧 그뒤를 쫓았다. 바로 그때 화살이 먹구름처럼날아와발해 군사들을 덮쳤다. 사방에 몸을숨기고 있던 흑수 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땅속에서 기어나오고, 지붕을 뚫고나오고,풀더미를 헤집고 달려들고, 성루에서 뛰어내리는 군사들의 기세는 물 만난 악머구리 같았다.

"남김 없이 도륙하라! 한 놈도 살려두지말라!"흑수군의 함성이 하늘을 흔들었다.발해군은 도망갈 길 없이 독 안에 든 꼴이었다.
저항하면 칼을 맞았고 무릎 꿇으면포박을 당했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성안으로 들어갔던 2천 군사는 가을바람에흩날리는가랑잎처럼 나뒹굴었다. 장두불은 적의 칼날 앞에 주검이 되었고, 군사들은 창검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했다. 이런걸 두고 궤멸이라하는 걸까. 도망갈 길이없는 발해 군사들은 손쉽게 항복했고 끝까지 싸우던 군사들은 창졸간에 목숨을 놓았다.

"흑수군이 쫓기는 마당에 호기를 부린것은 말미를 벌기 위함인데 그것을 모르고덤벼들다니 참으로 안타깝소." "드릴 말씀이없습니다."장수들은 장두불의 죽음이 마치 자신들의 책임인 양 어쩔 줄 몰라 했다.

날이 부옇게 밝아오자 신작은 공성을 명했다. 발해의 공성무기가 사정없이 성문을때리고 성루를 부쉈다. 마침내 남문이 불길에•휩싸이더니 무너졌다. 성곽도 일부가 무너져내렸다.옥작소는 수하 기병들을 거느린 채 동문쪽으로 내달렸다. 동문 밖은 창검을 든발해 군사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군사를 물린 대인수는 날이 밝자 정탐병을 보내 적정을 탐지하고 군사를 풀어 시신을 한곳으로 모았다. 먼저 적의 시신을 위해 제사지낸 뒤 아군을 위해 제사 지냈다. 또 산신과 지신을 위무하는 제사도 잊지 않았다.

예부터 흑수를 정벌하기 어려웠던 것은패하면 군사를 이끌고 한없이 북방으로 도망쳤다가 날이 풀리면 군사를 휘몰아 공격해오기때문이었다. 만약 대인수가 환궁하면 어김없이 또 변경을 침노하여 백성을 죽이고 부녀자를 빼앗고 마소와 양곡을 남김없이 쓸어갈것이다.

"폐하, 적은 우리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사옵니다. 군사를 풀어 사냥으로 식량을 확보하고, 조련을 통해 군사들마음을 다잡으며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하옵니다. 지금 적을 제압하지 않으면 반드시또 준동할 것이옵니다."신작은 오히려 봄을맞을 때까지 전선을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작의 예견은 적중했다. 흑수군 대수령옥작소는 발해군이 철수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백기를 든 장수를 보내 발해 황제대인수와단둘이 창검을 겨루어 승패를 가르자는 군첩을 보냈다. 성을 빼앗긴 채 먼곳까지 도망간 옥작소는 마지막 승부수를던진 것이다. 대국의 황제가 결코 응하지않을 것을 셈속에 넣은 제안이었다.

"전쟁이란 어느 한쪽이 일방으로 이길수 없도다. 우리가 적을 열 명 죽이면 우리군사 한 명쯤은 잃게 마련이다. 짐이 칼을들고 나아가옥작소를 잡는다면 천하가 조용해지지 않겠느냐. 한 나라의 주인이면 마땅히 한 명의 백성이라도 살리는 게 주인된 도리이다."

"태보는 어찌 말이 없으신고?"대인수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신작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신작은눈을 뜨며 빙긋이웃었다. 황제도 따라 웃었다."진병하실 때 반드시 명광개를 갖추옵소서. 적을 능히 눈부시게 할 것이옵니다."신작과 대인수의 눈빛이마주쳤다. 장수들이 반대해도 대인수는 흑수 사신을 되돌려 보냈다.

칼을 치켜들자 사내가 두 손으로 칼을 막는 시늉을 했다."살려주시오! 나는 단지 명을 받고 대수령의 갑옷과 투구를 썼소."황금빛투구를 쓴 장수는 재빨리 사내를말에 태우고 밧줄로 몸을 묶어 안장에 걸었다. 그리고는 고삐를 채어 잡고 진영으로돌아왔다.

투구를 벗은 대인수의 형형한 눈빛은 천하를 호령할 기세였다. 그때 신작이 썩 앞으로 나섰다."겨루실 때는 반드시 투구를 쓰고햇빛을 받으며 공격하옵소서."막아섰던 장수들이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대인수도 단기필마였다. 저만치에서옥작소가 철편을꼬나들어 허공을 갈랐다.
222/307(72%)예견하고 대처했지만 옥작소의간계에 속지 않은 것에 모두 안도했다.

옥작소는 살기 등등 했다. 대인수의 장검에 몇 차례 갑주가 찢겨 속살이 벌겋게 드러났어도 기세는 여전했다. 칼과 철편이 부딪쳐불꽃이 튕겼다. 철편이 직하하면 칼날이 직상하며 불꽃을 터뜨리곤 했다.

옥작소는 대인수의 뜻을 알아차린 듯 한손으로 칼을 집었다. 그의 눈에는 증오도분노도 없었으며, 애통이나 비애도 서려 있지 않았다. 옥작소가 살아 돌아간다고 해도수령들이 그냥 둘 리 만무했다. 어쩌면 옥작소가 참패하기를 기다리는 자가 많을지도 모른다. 옥작소는 평소 대수령 자리를노리던 수령들의 얼굴에 비웃음과 잔인함이 배어드는 걸 떠올렸다.

항복의 절차는 복잡하지 않았다. 머리를풀어 헤치고 무릎을 꿇은 채 목을 내밀었다. 목을 치거나 항복을 받아들이거나 발해황제 뜻에따르겠다는 굴종의 예였다.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고 복속을 맹약한 신하였기에 응당 반역죄로 다스려야 했다.

발해 장수들이 도열한가운데 흑수 수령들도 함께 제사 지냈다.제사가 끝나자 대인수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고루 호궤하고 전공에 따라 후사했다. 흑수 장졸들은 발해 황제의 성은에모두 흠복했다. 대인수는 수령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골타를대수령으로 삼아 돌려보내고, 흑수를감찰할 장사에 진부달을 명했다.

"폐하, 월희는 흑수의 사주를 받아 출병했사옵니다. 흑수를 보내면 우리 군사의 손실 없이 항복을 받을 수 있사옵니다."장수이하앙이 주품했다."만약 월희가 흑수 손에 정벌되면 언제까지나 흑수를 상국으로 섬길 테니 우리 군사의 손실을 각오하고 토평해야한다."

"대장군에게도 훈공의 기회를 주어야 하옵니다."신작이 거들고 나서자 대인수는 기꺼이을지후문에게 부월을 주었다.
을지후문은대종과 화달에게 선봉을 맡기고 동쪽으로군사를 휘몰았다.월희를 공격한 지 보름 만에 월희부 대수령 야사리가 휘하 수령나야발, 오기리를대동하고 항복했다. 밧줄에 묶여 수레에 실려 온 야사리는 맨땅에 꿇어 엎드려 목숨을구걸했다.

"아! 말갈 제부를 평정했도다."대인수의 입에서 절로 환호가 터졌다. 발해를 창업한 지 120여 년 만에 고구려 옛땅은 물론 당나라 땅일부와 말갈제부, 흉맹하고 반복무상한 흑수 말갈과 월희까지평정하여 번속을 삼았다.드디어 성무고황제의 유지를 받들어 사방 5천리를 경략하게 되었다.

말갈제부 가운데 가장 흉맹한 부족은 제일 북쪽에 있는 흑수부였고, 버금으로는 철리부와 월희부였다. 흑수와 철리,
월희는 세력다툼을 해왔지만 발해가 강성해지면서불열과 우루부를 구슬려 동맹을 맺고 발해와 맞서려 했다.

대인수는 고순작에게 물었다."흑수부는 남으로 흑수에서 시작해 북으로 머나먼 동토에 이르며, 철리, 불열, 월희와 이웃하여 광활한영토를 가졌사옵니다.강성했던 서쪽의 거란과 돌궐도 가로막힌망망한 수림과 험한 길 때문에 흑수를 넘보지 못했으며, 당나라도침공하지 못했사옵니다. 오직 흑수를 위협하고 정복한 나라는고구려와 발해뿐이었사옵니다. 이제 흑수를 남북으로 나누어 남쪽을발리부로 하고, 북쪽을 흑수부라 하옵소서."

대인수는 고순작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조서를 내려 발리부도독에 골타를, 흑수부도독에 오소진몽을 제수했다. 또한 골타와오소진몽에게 아속을 내려 각기 발리군왕과 흑수군왕으로 봉작했다. 드넓은 땅을두고 남쪽 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맞서던 흑수는대인수의 탕평책을 받아들여 남북으로 강역을 나누고 이때부터 흑수와 발리로구분했다.

발해 강도가 완성된 것은 장장 2년 뒤였다. 동원된 인원만 무려 2천 명이었다. 2년 동안 병사하거나 변고로 목숨 잃은 자만도 50여 명이나 되었고, 부상당한 자만도백여 명이었다. 깊은 산골에서 짐승에게 먹히기도 하고, 독사에 물려 죽거나 강물에빠져 죽은 자도있었다. 바다에서 풍랑으로고기밥이 된 자도 있고, 장맛비를 미처 피하지 못해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리거나 겨울에 눈사태에 파묻혀죽은 자도 있었다.

발해는 광활한 국토를 5경 15부 62주로나누어 다스렸고, 북방에 흑수부와 발리부를 두어 말갈족을 복속했다.대인수는 태보 신작과을지후문, 시종장과 시위만을 대동하고 전서구를 기르는 구사를 찾았다. 아군끼리 연통하는 데 이용하는 비둘기를 조련시키는 장수양위음이 조련장으로 안내했다. 양위음은 독수리와 매사냥에 조예가 남다른 장수였다.

대인수는 황궁으로 돌아와 선대 개국공신 신재용이 남긴 서책을 펼쳐들고 찬찬히살폈다. 여러 가지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진책으로, 어선과 군선, 전선의 그림들이 가득했다. 대인수는 수군으로 명성을 떨쳤던장문휴와 양소화 장군이 그려놓은 서책도펼쳐보았다. 맹선을 비롯해서 옥선, 유격선등 갖가지 전선이 그려져 있었다.큰 전선 1척에는 무려 3백 수십 명이 탈정도였으며, 어떤 배는 누선의형태였다.이런 배들은 한결같이 선각이 든든해서 모두 접근전에 유리하게 만들었는데, 수밀격벽이 잘 이루어지고 배 밑바닥이이중저로된 것이 특징이었다. 격벽은 물이 새지 않게 막아주고, 이중저는 배 밑에 내저판을두어 선체가 손상되더라도 쉽게침수하거나 좌초하지 않게 만들었다.

대인수는 태보 신작의 청을 받아들여 품질 좋기로 소문난 위성 철을 다량 확보했다. 철로 돌격선이나 전투선을 비롯하여 지휘선의용골과 늑골을 꾸몄다. 선제 대무예가영주벌을 토평할 때 검거를 투입하여 당나라 군사들의 혼을 빼앗고 섬멸했던 것처럼,돌격선뱃머리에 철곡을 빼곡하게 박아 적의 배를 당파시키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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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와 등주 일원에 나가 있던 세작과정탐병으로부터 급보를 받은 발해 조정은전전긍긍했다. 제나라가 패망하면 군사 요충지등주와 영주에서 당나라 군사가 동시에 발해를 공격할 수 있었다. 말갈의 할거도 심상찮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나라를 위해군사를 일으키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 주장을 했다가 고역을 치른 신료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급보가 궁궐로 들이닥친 것은 자시가 막지날 무렵이었다. 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던 대인수가 탈옥했다는 것이었다. 연달아금군대장군 오작청이 괴한의 손에 목이 달아나고, 경기군 대총관 왕경례도 독살에 맞아 사경을 헤맨다는 흉보가 날아들었다.

그때 오태후앞에 칼을 들고 썩 나선 것은 놀랍게도 황후 고운목이었다. "무엇들 하느냐? 어서 참하라!"오태후는 호위하는 시종과시위에게 호통쳤다."이미 황궁은 의분한 신료와 군사들에게포위되었사옵니다. 황상을 시해한 죄상을숨길 수 없는데 어찌 용상을탐내시옵니까?"고운목은 칼날을 태후에게 겨냥한 채 목청을 세웠다

"네 이놈!"오태후가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질하며소리를 지른 것은 대인수를 호위하는 대장군 묘정수 때문이었다. 아끼고 따르던심복이요, 밤에 침궁으로 불러들였던 남총이 아니던가. 대인수를 잡아들인 공을 세워 개국백으로 봉작까지 하지 않았던가. 묘정수가대인수를 호위함은 진작부터 밀통했다는뜻이었다.

낭자 시절, 고운목은 발해 사가의 낭자들처럼 시문을 닦고 무예에도 출중한 솜씨를 뽐냈다. 늙은 태후쯤은 가볍게 목을 칠 수 있는솜씨였다.고운목은 기어이 칼을 휘둘렀다. 오태후의 틀어 올린 머리채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무술(818)년 7월 스무아흐레, 황위에 오른 대인수는 연호를 건흥으로 고치고, 선제대명충의 시호를 간황제, 묘호를 철종으로했다. 이로써 황위는 개국 황제 대조영의 직계손에서 대야발의 후손으로 이어졌다. 대인수가 황친국척의 환대와 백관의 환호를 받으며등극하자 나라를 그르친 오태후를 효수 경중하자는 상소가 끊이질 않았다.

대인수의 옥음은 부복해 있는 신하들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되었다."죄인 오귀남이 섭정을 하매 경들 또한부화뇌동하여 바른 정사를펴지 못했도다.짐은 지난 죄를 모두 묻고 오직 창민을 편케 하겠노라."어느 누구도 황제의 옥음에 반대할 수없었다. 고개가 더 숙여질뿐이었다.

대인수가 황위에 오르자 사직은 안정되고 민심은 빠르게 안돈되었다. 그러나 바다건너 제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시시각각위태로웠다. 당나라의 다음 행보가 어디인지를 뻔히 알기에 대인수는 바다 건너 소식에 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쌀쌀한 겨울날씨가 대륙을 추위에 떨게 하던 날, 이사도는 부하 장수 유오의 반란으로 사로잡히고 말았다. 사력을다해 적과 싸워도힘이 부칠 텐데 동족의배반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유오는 이사도의 목을 베어 위박절도사전홍정에게 바쳤다. 이사도가 재위한 지 13년이요, 이정기가 치청 왕국을 세운 지 55년만이었다. 고구려 후손이 세운 제나라가당나라의 요충지를 50여 년 동안 지배한채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고구려 후손 제나라가 멸망하고 제왕이사도가 승하했도다. 이에 우리가 동맹의굳은 약조를 지키지 못한 죄과를 엎드려 빌어야하리라. 발해의 사직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기꺼이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를 공격했어야 옳았도다. 우리를 믿고 기다렸을 이사도의절박한 심정을 생각하면 어찌 가슴이 시리지 않겠느냐?"

대인수는 병법에도 밝아서 친히 징과 북, 크고 작은 깃발을 들어 나아가고 물러서며앉고 일어서는 절도를 밝혀, 군사들의 마음과행동을 모으는 데 능했다. 또한 친히 창검궁시로 찌르고 베고 쏘고 말 달리는 시범을 보임으로써 군사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쳐 조련에임했다.

대신덕을 태자로 봉하면서 대인수는 문무 제신과 각처에 있는 장수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집결한 장수들에게 사급을 내려 그들의노고를 진무하니 감격하지 않는 자가없었다.

"북동쪽의 흉맹한 흑수를 먼저 토벌해야하지만 북서쪽으로 진병하는 것은 말갈을제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나라를 놀라게 하기위함이다. 짐이 군사를 이끌고 친정하면 당나라가 함부로 준동하지 못할 것이다. 적의 세작들이 사방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말라."

"흑수의 사주를 받은 철리군이 부여부쪽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양적중은 한차례 몸을 떨고는 칼끝으로동쪽을 가리켰다. 대장군이하앙의 눈빛도금세 불꽃이 튈 듯했다.

이튿날 새벽, 철리 군사 2만 군이 양산산자락을 거침없이 공격했다. 발해군 기치가 바람을 가르자 함성이 협곡에 메아리쳤다. 기세오른 철리군은 올망개의 진두지휘로 맞함성을 질렀다. 하늘이 뚫리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함성이 천지를 뒤흔드는데 대도를 든이하앙이말고삐를 쥐고 적진으로 달렸다. 울분이그의 손끝을 타고 칼날로 뻗치는 게 느껴졌다. 올망개도 말 잔등 위에서 장창을세운 채 솟구친 자세로 진격해왔다.

"우리가 황상의 성덕을 받드는 게 당연합니다."화달이 웃는 낯으로 말을 받았다. 그랬다. 지난 날 대인수가 순람 길에 벼랑에서떨어져 크게 다쳤을 때 홍투산에서 백기족의도움을 받았다. 대인수는 황위에 오르자 바로 사급을 내려 고마움을 표시했다. 백기족은말갈 제부의 습성과 전투력, 병법과 영역에 대해서 소상히 알았다. 그들이 선봉에서면 말갈을 토벌하는 데 한결 수월할 것이다.

"옆으로 길게 버들 방천이 있습니다. 밤바람에 버들가지가 흔들리고 먹구름은 달빛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울창한 수림이막아섰습니다. 적은 병법에 능하고 용맹합니다. 복병을 숨기고 기습전을 감행하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가소계가 말하는 버들 방천은 산자락을타고 휘돌았다. 개울을 따라 버드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어서 그 사이로 적이 접근할수도 있는형세였다. 그러나 무사히 아군이진을 친 곳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에 계수랑의 눈에는 그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저는 계수랑 장군 수하인 가소계라 합니다."방성통곡하는 연유라도 있는가?""제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어리석음으로 우리 군사들이 무리죽음을 당한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사로잡혔으니 소장이 할 수 있는 게 먼저간 군사들을위해 통곡으로 제사를 지내는것뿐입니다."

양적중은 칼을 빼들었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람을 가르며 보검이 가소계를 쓰러뜨렸다. 축 늘어진 가소계를내려다보는 양적중의 눈가에 웃음이 질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뜬 가소계가 무릎을 꿇고 소리 높여 말했다. "소장을수치스럽게 한 것입니다. 장수가 칼등에 맞고 혼절했다 깼으니 이런 수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적진을 은밀히 살피고 돌아온 정첩들은달구의 상황을 상세히 고했다. 적의 정세를정밀하게 살핀 대인수는 군사들을 전광석화같은기개로 짓쳐나가게 했다. 이미 적진에서도 발해 황제가 친정한 것을 알았다.

달구 장수들은 군졸을 독려하여 성문을열고 나왔다. 최후 결사를 각오한 출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적의 항전을 예견한 발해 군사들이창검으로 사정없이 도륙하니견디지 못한 달구군은 가까스로 혈로를 뚫고 우측 산으로 도망쳤다.

장검 한번 휘두르지 않은 황제 대인수가 군사를 거느리고입성했다. 달구 대수령 올아고와 수령들은오라에 묶인 채 대인수 앞에무릎을 꿇었다

"신의 죄는 죽어 마땅하옵니다. 당나라꾐에 빠져 폐하께 대역죄를 지었사옵니다.살려주시면 사력을 다해 충성하겠사옵니다."
올아고는 땅바닥에 코를 박고 목숨을 구걸했다.

정서대장군 양적중은 황제의 명을 받아성문 밖에 형장을 차리고 대수령 올아고와휘하 수령 가운데 발해 백성을 잔혹하게 죽인 자를골라 오라를 지었다. 올아고의 두아들도 아버지보다 더 악랄한 짓을 했기에함께 형장으로 끌려나왔다.

"참하라!"대장군의 부월이 허공을 갈랐다. 그들의목숨이 칼날 아래 저승으로 떨어졌다. 성안에 있던 달구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올아고와 그 휘하 수령들은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이제 철리를 평정하겠다. 철리는 흑수와 이웃하여 그 흉맹이 흑수에 버금가니 신중해야 한다. 신속하게 토벌하되 장졸과 백성은죽이지 말고 수령은 반드시 죽여라.수령이 도망치면 끝까지 추격해 목을베라!"

대인수의 명에 따라 성을 빼앗고 고을을 점령해도 백성과 장졸들은 죽이지 않았다. 대신 수령 중에 흉맹한 자는 반드시참수했다. 장졸들은 도망가도 쫓지 않았다. 병장기와 갑옷, 군마와 군복은 빼앗아도 양곡은 빼앗지 않았다. 말갈 부녀자를 겁간하지 못하게 했고오히려 양곡과 옷감을 나누어주었다.

대인수는 항복한 말갈 수령을 불러 칙서를 쥐어 철리의 대수령 실다몽과 금하구에게 보냈다. 항복하면 살려주겠지만 거역하면처절하게 도륙하고 모든 고을과 성을 불태우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실다몽과 금하구는 스스로 오라에 묶인 채 머리를 풀고 맨발로 수령과 장수들을 거느린 채 대인수 앞으로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항복을 선언하며살려줄 것을 간청했다. 이들은 철리 벌을가득 메운 발해 대군의 장엄한 기치에 기가질렸다. 달구 대수령과 수령들을•철저히 도륙하고 흑수를 도와 전장에 나섰던 철리 수령들 또한 가차 없이 참수 당한 것을 이미알았다. 처음부터 발해군과•전면전으로는승산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무혈입성한 대인수는 대장군 두황련을장사로 삼아 철리부를 감독케 하고 사타진에게 군사를 주어 흑수 지경에 나아가 적정을 탐지케했다. 그리고 군사를 거두어 환궁을 공표했다

대인수는 출병했던 군사 가운데 둔전병을 뽑아 서쪽으로 진병하게 했다. 이는 다분히 당나라를 의식한 것이다. 번진을 토평하고제나라까지 멸망시켰으니 당나라는당연히 발해를 넘볼 것이다.

뱃머리가 노들섬에 닿자 멀리 암자에서사람들이 달려왔다."정진중이라 저녁 공양 때가 아니면 나오지 않을 것이옵니다."나이든승려가 암자 뒤편 토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작과 난타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토굴에서 정진하여 불러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황제가 행차하면 마땅히 나와서 알현해야 하는데 그들은 당당했다."정진을 훼방했으니 스님께서 널리 헤아려주시오."

저녁때가 되어서야 토굴에서 참선하던 신작과 난타가 급한 걸음으로 황제를알현했다. 대인수는 좌우를 물리고 마주 앉았다."천하를살펴보니 짐의 능력이 참으로보잘것 없었소. 짐에게 바른말로 논힐하고짐의 모자람을 채워줄 현사가 절실하오."황제가 몸소 먼 길을찾아와 태사 자리를 권하니, 신작은 차마 거절하기 어려웠다

"짐이 작정한 것이요, 이미 옥음을 내렸는데 어찌 번복하겠소? 짐이 부덕하여 마땅히 스승을 모셔야 하고 황자와 공주들에게도스승이 필요하오." "신은 한 번도 정사에 참여한 적 없는 백면서생일 뿐이옵니다. 오랫동안 조정대사를 논한 대소신료들에게 염치가없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신은 3공의 아랫자리인 사공이면 족하옵니다.""그러면 난타는 어찌 귀하게 쓸 수 있소이까?" "난타는 의술과 마의술에 뛰어나니태의로 삼고 장차 태복경을 맡기옵소서."

"사공은 짐과 황실의 스승이 될 수 없소.그러니 태보로 봉하겠소."이렇게 해서 대인수는 신작을 태보로, 난타를 태의로 명했다.

대인수가 여세를 몰아 곧장 흑수를 토평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흑수를 공격하는 사이 당나라가 변경을 침노할 것을걱정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흉맹한 흑수와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군사를 잃을까 하는 근심에서였다.

"흑수와 월희 군사보다 한 발 빠른 기동력과 작고 가벼우면서도 멀리 나가는 활과간편한 양식이 필요하옵니다. 또한 가볍지만 튼실한투구도 만들어야 하옵니다." "과연 짐을 가르칠 만한 스승이오."대인수는 뒤엉킨 실타래가 풀어진 듯 기뻐했다.

"지금까지는 고구려의 전술과 편제로 군사를 다스렸사옵니다. 그러나 기마병 중심으로 기습하고 도주하는 흑수 군사와 응전하기•위해서는 5병제를 버리고 10진제로군대를 편제해야 하옵니다. 즉 십, 백, 천,만으로 구별하면 통솔하기 쉽사옵니다."

"통솔하는 무리가 많으면 명령을 내리는자도 많기 마련이옵니다. 명령하는 자가 많으면 규율에 얽매여 공수가 느려지고 손발이 묶여적의 침공을 받게 되옵니다. 지금까지는 장수가 뒤에서 군사를 몰았지만 앞으로는 장수가 앞장서서 군사를 이끌어야하옵니다."

"기마병의 반이나 정진대가 되어야하오?"어느 병법에도 나와 있지 않는 전술로기마병의 반수가 특공대 역할을 하는 것이기이했다.

"전투식량 만드는 묘책이 무엇이오?""짐승을 잡아 털을 벗기고 잘게 저며 햇빛에 말렸다가 빻으면 양이 얼마 되지 않사옵니다. 그것을 짐승의 오줌보 말린 것에넣으면 좋은 전투식량이 되옵니다. 또한 곡물을 가루 내어 가지고 다니면 그 역시 좋은전투식량이옵니다."

대인수는 난타의 등을 두드렸다."그대의 손에 발해의 운명이 걸렸음을명심하라. 짐이 죽어 천 마리의 말로 환생할 수만 있다면 발해군마로 태어나 저 광활한 북방을 한없이 달리고 싶도다."

대인수는 가볍고 탄력이 좋은 각궁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살의 허릿간 길이와 촉의 무게, 궁깃의 넓이와 오늬의 크기를 매일 바꾸어최대 사거리를 모색하기 때문에수많은 활과 화살이 쌓여 있었다. 대인수가표적을 향해 날린 화살은 자로 잰 듯 표적을 뚫었다. 각궁은무려 백척이나 날았다.사거리를 확인한 대인수는 크게 기뻐하며궁공들에게 사급을 내렸다.

신축(821)년 초가을, 드디어 발해 황제친정군이 사열을 마치고 북방을 향해 진병했다. 이하앙과 장두불이 정예부대를 이끌고 앞서나가고, 전경채의 주홍기사단이 황제를 옹위하고 드넓은 벌을 내달렸다.

지난 전투 때만 해도 황제는 후군을 맡아 전황을 살펴 군사를 투입하고, 이번 전투는 북방 강자 흑수를 상대하기에 황제가몸소 적과응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발해 친정군이 흑수전에 나섰다는 급보를 받은 당나라 조정은 달구와 철리가 힘없이 무너지자 요서를 방비하는 한편 흑수를지원했다.
그래서 많은 운전금과 군마와 병장기를 보냈고, 병법에 능하고 신통술까지부린다는 장수왕시성을 흑수의 장사로 삼아 흑수 군사를돕게 했다.

"예부터 소각(작은 나팔) 소리는 용의 울음소리 같다고 했사옵니다. 적을 교란하기위해 소각과 전고를 삽시에 아우성치게 하면 적의군마는 놀라 날뛸 것이옵니다. 말은 꾀가 많지만 겁이 많은 짐승이어서 폐하의 뜻대로 부릴 수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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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 때 고씨 일가를 내쳤고 신씨와 난씨 일가를 멀리했사옵니다. 고씨는 고구려왕손으로 같은 왕손이지만 별종인 대씨에게 조아리는걸 은근히 가슴 아파했사옵니다. 고씨는 대성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면대씨와 겨룰 수 있사옵니다. 신씨와 난씨일가들은 개국공신중에도 으뜸인데 혜민부를 만들어 아프고 배고픈 자들을 구휼했사옵니다. 그뿐 아니라 군마를 양성하여 국력을 키우고 널리 학문을펼치어 사족들의존경을 한몸에 받았사옵니다. 그들을 중용하면 반드시 민심을 얻게 되옵니다."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태후의 옷을벗기고 그녀의 알몸을 어루만지는 미사천은 금세 온몸이 뜨거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천하를 농단할 자리에 오르면 왜 다들 탐염에 취하게 될까? 오태후는 터질 듯이 영근 몸뚱이를 사내에게 맡겼다. 온몸에서 불꽃이튀는 듯했다. 사내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입술과 혀끝이 스치는 곳마다 정염의 불꽃이 솟구쳤다.

오태후는 방농에 다다르자 황홀경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질렀다. 사내가 여인의 입을 입술로 덮어 비명을 막았다. 땀범벅이된 미사천의몸을 힘주어 끌어안은 오태후가 입을 열었다. "너를 모주로 삼아 천하를 논하고 대업을 이루겠노라."

"내성 서남쪽 모서리가 비었으니 그곳에 물감옥을 만드옵소서. 돌로 벽을 쌓되 그바닥은 사람 배꼽쯤 되는 깊이로 물을 채우고 죄인을가두옵소서. 천하 없이 흉맹한무리라도 사흘을 못 넘기고 토죄할 것이니어찌 마마께 충절을 바치지 않겠사옵니까?따르는 신하가많으면 민심이 모이고, 민심이 모이면 천심이 되며, 천심은 곧 대업을이루옵니다."

대소신료들은 물감옥을 만들라는 명이 떨어지는 순간, 오태후를 극진히 섬겨야 목숨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젊고 건장하며 용모가출중한 자들을 가려 뽑아 시종으로 삼았는데 서너 달 사이에무려 18명이나 되었다. 문시종 9명에, 무시종 9명으로 모두 18명이었다. 이들은 주홍빛 관복을 입기 때문에 주홍신이라 불리었다. 명색이 시종이지 실제는 나이 든 오태후를 밤마다 섬기는남총들이었다.

동궁을 점령한 태후의 위세는 말만 섭정이지 실제로는 황제나 마찬가지였다. 태후시종장 미사천의 위세 또한 천하를 호령했다. 나이든 여인이 젊은 사내를 품에 안아 그 정기를 받아 젊어지는 것이 대식인데, 오태후는 밤마다 시종을 바꾸어 대식을즐겼다.

사람들은 벼슬아치 중에서 중신 최인걸, 관작이 없는 선비 가운데는 선제 때대신을 역임한 이광록과 고지명을 꼽았다.그들은하나같이 청렴결백했고 의분이분명했으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바른 말을 거침없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앞서거니뒤서거니 물감옥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죄를 뉘우치지 않자 어린 손자손녀들까지 모조리 옷을 입힌 채 물감옥에집어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어린아이들이울 때마다채찍으로 후려치게 했다. 수인들은 반나절 만에 차례로 죄를 청하고 용서를빌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최인걸은 끝내 자신의굴복이 더 큰 죄악이라며 자결했다

"하늘이 일러준 대로 말함은 하늘의 명이니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사옵니까?" "어디서 그런 담대한 배포가 생겼더냐?"오태후는사도봉을 가까이 불러앉혔다.참으로 곱고 요염하구나. 부귀를 누리며 오래 살고 싶지 않느냐?""마마,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찌부귀를싫어하겠사옵니까?" "그러면 때가 될 때까지 입을 봉해야 하느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때는 기다리는 것이라 하나 만들수도있음을 왜 모르시옵니까?"

오태후는 고심 끝에 사도봉을 도교 도사로 명하여 가까이 두었다. 이로부터 오태후는 불도를 버리고 도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는 동안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세를 감면하고, 군역에 나서는 백성에게 둔전을 하게했으며, 옥을 열어 죄인들을 방면했다. 그리고 관고를 열어곡식과 옷감을 나누어주고, 농지를 개간한 백성들에게 3년 동안조세를 감하고 이후에는 반을 공물로 바치게 했다. 뿐만 아니었다. 관가의 감찰을 강화하여 벼슬아치들이 백성을 못살게 굴거나 온당치 않은 형벌을 내리면 삭탈하거나치죄했다.

격문은 황음무도한 오태후와 오씨 일가를 주살하여 사직을 바로 세우고 사술을 부리는 사도봉과 주홍신의 무리를 척살하자고 했다. 또한 오태후의 심복인 태복경 왕경례와 금군대장 여석철을 참살하여, 국기를 바로 세우자고했다.소문에는 고원, 신사랑, 난강 일족이저지른 짓이라고 했다. 이에 진노한 오태후는각기 만 금씩을 걸고 그들을 주살하라고 명했다. 공을 세우겠다는 자들이 무리지어 태백산과 천문령, 오호령과 미타호로 떠났지만 아직까지 기이한 공을 세웠다는 소식은없었다.

"세월은 정녕 폐하의 편이옵니다. 강건히 오래 사시기만 하면 되나이다. 태후마마께 복종하는 신하들은 살아남기 위해 굴종할뿐이옵니다. 입에는 꿀이 있고, 뱃속에는 칼이 있으며, 마음으로는 폐하를 흠모하고 있나이다."

대원유의 밀지는 크지 않은 종이에 작은붓글씨로 쓰였다. 황후 임사향의 아버지인임창조에게 보내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신하들에게 충역을 뛰어넘는 거사를 당부하는 것이었다. 밀지를 품속에 감춘 임사향은이번에는 큰 종이를 펼쳐 놓았다."폐하를지켜보는 자들에게 묵향을 어찌들키지 않겠나이까? 그러하니 태평성대를노래하는 시 한 수를 지으시옵소서. 다른건 다 감출 수있어도 먹을 갈아 붓을 적신것은 감출 수가 없나이다."

주위를 물린 임사향은 아버지의 버선을벗겨 실밥을 뜯어내고 황제의 밀지를 넣은후 표 나지 않게 꿰매어 다시 신게 했다. "사직의운명과 가문의 운명이 모두 이밀지에 달려 있습니다. 결코 서두르지 마시고 늦더라도 거사를 성사시킬 동량들을 얻으셔야 합니다.
기밀을 유지하고 믿을 만한자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사에는 반드시 마가 끼고, 거사에는 반드시배반자가 생긴다고했으니, 유념하십시오."굳은 표정의 국구 임창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도 쥐 수염만 모아 만든 서수필은더욱 진기하게 여겼다. 오태후는 발해의 명장 풍응이 직접 만들어 바친 서수필을 아깝다 하지않고 대태성에게 하사했으니, 그홍은에 감읍할 일이었다.그러나 그날 밤 대태성은 자지러지게 울고 몸부림을 치다가 정말 허망하게목숨줄을 놓았다. 궁중 태의가 달려들고 내로라하는 의관들이 손을 썼지만 검은 거품을 쏟으며 쓰러지더니 금방 숨이 멎었다. 손 쓸틈없이 절명한 것이다.

"유모도 어미와 마찬가지입니다. 어찌제 젖을 먹는 갓난아이에게 독물을 먹이겠습니까? 이는 전하를 시해하여 득을 보는자들의음모와 간계입니다. 내 한 목숨은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살 생각도없습니다. 다만 간계를 밝혀 사직을 보존하옵소서.
황상의 보위가 걱정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형리는 몽둥이를 내리쳐 유모의 머리통을 깨뜨렸고, 유모는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유모의 시가와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창에 찍혀 쓰러진 장수는 놀랍게도 부마도위 고경진이었다. 그에게 오태후는 사사로이 장모요, 공주 대진례의 생모가 아니던가.
•천하를 섭정하는 오태후를 참살하려했으니 분명 대역을 꿈꾸는 자들이었다.

"태후는 황음무도하여 황실의 법도를 그르쳤고 감히 용상을 찬탈하려고 작당했으니 그 죄업은 만 번을 참수해도 모자랄 것이다.
황자를 독살한 할머니요, 충신을 죽이고 간신과 무당에게 휘둘렸으니 이는 역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남첩에게정신 빼앗긴창부가 어찌 군림하랴? 내가독부요, 창부를 죽여 법도를 바로잡지 못한게 한이로다!"

공주가 울고불고 통사정을 해도 고경진의 궁형은 면할 수 없었다. 딸을 서인으로 만드는 어미가 어디 있으며 사위의 남근을 자르라명하는 장모가 세상천지에 또 있을까마는, 오태후의 진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예부터 역심을 품고 남몰래 통천동과태백산을 찾아 하늘에 제를 올려 천심을 얻으려 한 자들은 벼락을 맞거나 급살을 맞았사옵니다. 또한 몸에 상처 입은 지 3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부정 탔거나 피를 흘렸거나 일진이 맞지 않을 때 제를 올린 자들은 모두 화를 당해 멸문했거나 급사했사옵니다. 환궁하시어 때를 기다리시옵소서."

호령하는 대원유를 왕경례는 황제로 예우하지 않았다. 궁궐로 압송된 대원유는 석고대죄를 거부했다."사해와 만백성의 주인이 어찌석고대죄를 하겠느냐? 황제는 오직 하늘과 종묘에만 머리를 숙일 뿐이니라.

해가 바뀌어 임진(812)년 3월 스무이튿날 밤, 모진 감환으로 고생하던 대원유가별궁에서 급서했다. 강황제 대숭린의 장손으로계위하여 3년간 재위한 대원유는 시호를 정황제로 하고 묘호는 의종으로 했다.그의 성수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요, 황위에올랐으나천하를 경략하지 못한 채 짧은 생애를 마쳤다.대원유의 붕어 소식은 이튿날 저녁때쯤에서야 알려졌다. 대원유에게는 손이 없었다.
종신 자식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인오태후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지켜보았다고 했다.

마른 땅에 물 스며들듯 기이한 소문이 퍼진 것은 대원유가 붕어한 지 나흘 만이었다. 황제가 병사한 게 아니라 독살당했으며 오태후가계위한다는 소문이 도성을 휘돌았다.

오태후가 등극하기로 한 4월 초하루 이른 새벽,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반란군이 홀한성의 내성을 에워싸고 황궁을포위했다. 반란의 선봉에는 놀랍게도 오태후의 근신인 금군대장 여석철이 서 있었다. 더욱이 선제 정황제의 종부인 대인수가 반란의주모자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인수는 개국 황제인 성무고황제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의 4세손으로, 일체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지만 시문에 밝고 무예가출중했다. 심성도 후덕하여 황친들의 신망이 컸으며, 말수가 적고 앞으로 나서는 법이 없는 군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처럼 신뢰할 만한 자였기에여석철과 금군이 반란의 대열에 합류한 것 같았다. 일부 시위 군사와 내관들도 가담했다.

"황위를 선제의 아우인 경왕 대언의에게 물려준다면 태후마마를 서궁으로 모시어태후로서 예를 갖추겠다. 이것은 민심이자천심이다. 천심을 거역하면 봉기할 테니 그때는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대인수는 오태후가 보낸 시종 미사천에게 분명하게 뜻을밝혔다.

대언의는 등극하자마자 서둘러 연호를 주작으로 선포하고 종부인 대인수를 권지국사에 명했다. 권지국사란 나이 어린 황제를•대신하여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관작이었다. 그러나 대인수는 끝내 명을 받지않았다.

"충역을 뛰어넘은 자가 권신이 되거나 근신으로 득세하면 반드시 교활해지옵니다. 예부터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면 뒷문으로 승냥이가들어온다고 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능히 치세하실 것이옵니다. 아무근심 마시고 오직 부처님의 가피를 빌며 다스리옵소서. 신은도성을 떠나 머지않은 곳에서 폐하를 올려다보고 있겠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용상에 오른 대언의는 용단을 내려 오태후를 둘러싸고 정사를 그르치게 한 자들을모두 징치했다. 도사 사도봉과 시종장 미사천,
오태후의 남총노릇을 한 주홍신, 오태후의 형제와 가솔 중에 학정을 일삼았던자들을 모두 삭탈하여 유배형에 처했다

"귀양간 미사천을 풀어 마마를 시종케하고 오귀옥을 국부인으로 복작하여 마마의 적적함을 달래 드리게 하라."깜짝 놀란 장달익이엎드려 간했다."자고로 잡초의 씨앗은 모을 필요가 없다고 했사옵니다. 잡초의 씨앗은 바람에 날리고 빗물 따라 흐르고 짐승의 몸에붙어서 천리를 간다고 했사옵니다. 미사천과 오귀옥이 부싯돌이 될까 두렵사옵니다."

왕효렴의 말에 신야가 소리 내어 웃었다."그대가 매일 부처님께 예배하며 무엇을기원했는지 알겠도다." "어찌 소신의 기도를아시옵니까?" "일본과 발해가 군사동맹을 확약하고 교역을 확충하자는 뜻을 왜 모르겠느냐?"

"소신이 배알하자마자 동맹과 교역을 청했으면 바로 거절당했을 것이옵니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외적이 침공하지 않기에 대륙의 위급한 상황에 둔감하옵니다. 그래서 황명을 받들고 온 사신으로서 본분을 하늘에 맡기고 예불하고 시를 지었사옵니다.""그대는천하를 농락했다. 내가 기특하게 여겨 동맹과 교역을 윤허하노라."

드디어 을미(815)년 정월, 당제 이순은 대군을 동원하여 창의절도사 오원제를 공격했다. 오원제를 격파하면 다음 공격 목표는당연히 제나라의 이사도였다.

이사도는 당군의 보급선을 차단하는 게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군수물자가 집결하는 하음창을 공격했다. 특수 훈련을 받은수백 명의정진대는 당나라 보급창고인 하음창을 불태워 30만여 민(꿰미)의 돈과비단, 2만여 곡의 양곡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 무렵 발해도성에서 기이한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황궁을 경비하고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금군대장군 여석철이 자객에게암살당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도성 외곽을 수비하는 경기군 대총관 홍기선과 경사윤 동경채가 같은 날 새벽에 자객의 손에 의해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들은모두 임진(812)년에 대인수를 따라 충역을 뛰어넘은 자들이었다.

"황친은 이미 날개를 잃었사옵니다. 천하 재주를 다 부려도 날개가 없으면 날 수가 없사옵니다." "날개라......."오태후는 의미 있게웃었다. 금군대장군여석철, 경기군 대총관 홍기선, 경사윤 동경채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홍기선과 동경채의 사인은 아직도 밝혀지지않았다.

도성을 벗어난 경기 지역 삼림에 거처를둔 대인수는 눈보라가 치던 날 황제의 칙서를 받았다. 황제가 병상에 누워 거동하기 어려우니 입궐하여 조정대사를 논하고 신하들에게 훈회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황제의 스승으로 칭하는 태사로 봉했다.칙사 문사막은 대인수가 손수 권하는 술잔을 받았다.

정유(817)년 봄, 대언의는 끝내 병상에서일어나지 못하고 붕어했다. 유언 한마디,유조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침궁에서 힘없이세상을등졌다. 성수는 스물여덟이요, 재위 5년째였다. 대소신료와 백성들은 드디어 대씨 사직은 무너지고 오씨 사직의 여황제가 탄생한다고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단이 벌어졌다. 붕어한 황제의 유조가 공개된 것이다. 대언의가 직접 쓴 어필이 분명했고국새까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선제의 유조를 공개한 것은 놀랍게도 황후 이채복이었다.

"고정하옵소서. 전하께서 계위해도 한해를 넘기지 못하옵니다. 마마의 올해 운은 몹시 사나우나 무술(818)년은 대길하니 반드시 상서로운 일이 생길 것이옵니다. 오히려 이번에 하늘이 도왔사옵니다. 만약 마마께서 올해 등극했으면 중병을 앓아 천추만세를 못할운세였사옵니다."누가 보아도 중풍으로 쓰러진 대명충이 오래 살 것 같지 않았다.

미사천은 약삭빠른 자였다. 머잖아 황위에 오를 태후의 비위를 건들지 않는 것이 총애를 받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았다. 비록 늙은 태후에게 간택되어 남총 노릇을 하고있을망정 권세를 누리는 기묘한 맛에 취한지 오래였다. 부름을 받은 사도봉은 펄쩍뛰면서 입을열었다.

"발해 사직이 안정되어 개국할 때처럼웅혼한 기개가 넘친다면 제나라와 함께 중원을 쳐서 천하를 도모할 수 있고 단군의자손들이드디어 천지만물의 주인이 될 수있으련만,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면 천추의한이 될 것이오."장풍진은 운명의 굴레를 이미 알고있는듯했다.

말갈은 발해에 거개가 복속했지만 북흑수를 비롯하여 백돌, 우루, 불열, 철리, 월희의 일부 부족은 북방으로 달아나 곳곳에웅거하며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막힐부 경계인 속말수(송화강)의 북방과 회원부의 경계인 흑수(아무르 강) 북방에 웅거했다.

급보를 받은 조정은 각처의 도독과 자사에게 말갈을 물리칠 것을 명하면서도 군사를 증원해주지 않았다. 도독, 자사, 현승들이 알아서군사를 초모하고 군마와 병장기를 조달하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곧 백성들을 수탈하라는 것과 같았다.북쪽 변방이 어지러웠지만도성은 황제의 병이 깊어 언제 승하할지 알 수 없었기에 긴장감이 팽팽했다. 황제 알현을 금한지 열흘이 넘었다.

6월 초순, 궁중의 긴장감이 기어이 참화의 모습을 드러냈다. 선제 대언의의 황후이채복이 밤사이에 검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영영깨어나지 못했다. 내시감이 공표하기로는 서궁 의관 예석정이 약을 잘못 지어 변고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예석정을문죄했더니마른 약초 속에 있는 독초를 구분하지 못한 잘못을 시인하며 스스로 죄를청해 참수했다고 했다.

대인수는 지난날 임진병란을 일으켜 오태후를 유폐하고 대언의를 옹립했지만 황제가 곁에 있어 달라는 청을 거절한 채 야인으로돌아갈 만큼 기개 있는 황친이었다.그는 나라의 안위와 사직을 위해 언제든지목숨을 버릴 만큼 웅혼했고, 그의 학식과무예를흠모하는 자가 많아 군자로 통칭될만큼 민심을 업었다. 오태후는 그것이 두려웠다.

이채복의 급서는 황후 고운목에게 큰 충격이었다. 자신도 언제 독살당할지 모르기때문이었다. 황위에 오르기 위해 자식과 손자뿐아니라 며느리까지 거침없이 죽일 수있는 오태후를 떠올리면 밥 한 술 뜨기도무서웠다.

고운목의 오라버니 고진목은 아버지 고숙신을 찾아가 밀서를 내놓았다. 국구 고숙신은 고원의 후손으로 고구려 왕손의 체통을 지키며좌우로부터 신망을 받는 선비였다.왕손으로 태어나 호가호위하며 어지러운 세상 바로잡지 못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외면한다면어찌 군자의 도리이겠느냐. 너는 오래 살기를 바라지 말고 사람답게 살거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도리를 다하고 바른 길을 가면 남보다 조금 일찍 죽을 뿐이다. 후세에 그 뜻이 갸륵하다 할 것이니 어찌광영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신중하지 않으면 더 큰 화가 미칠 테니 매사 부처님께 기도하듯 하라."

석다정은 제자 석정진이 만든 옥새를 요모조모 뜯어보고 종이에 찍어보며 진품 국새 모양과 견주어 보았다. 칙서의 국새를본떠 만든것이니 어디가 달라도 다를 듯한데 진품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했다." 이렇게 감쪽같으니 천하를 농락하겠구나."석다정은옥새를 본떠 만든 제자의 솜씨를 칭찬했다.

이사도는 대국과 홀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동맹을 맺었던 번진은 멸망했거나항복했고, 믿었던 발해조차 원군을 보내주지 않았다.
발해의 배신은 이사도를 더욱아프게 했다. 같은 고구려 후손으로 철석같이 믿었기에 배신감은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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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전쟁 - [초특가판]
네오센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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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 영화 「하얀 전쟁」: 끝나지 않은 전쟁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처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 (제목/원제) 「하얀 전쟁」
ㅇ (감독/주연) 정지영 / 안성기, 이경영, 심혜진
ㅇ (제작국가/개봉연도) 한국 / 1992년
ㅇ (원작)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을 바탕으로 한 영화임.
ㅇ (작품 성격)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전쟁 이후에도 벗어나지 못한 상처와 죄책감을 다룬 전쟁 드라마임.

나. 작품의 기본 성격
ㅇ (시대적 배경) 현재 시점은 베트남전 이후의 한국 사회이고, 과거 회상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함.
ㅇ (공간적 배경) 현재의 한국 도시와 과거의 베트남 전장이 교차하며, 인물들이 전쟁을 끝내 과거로 밀어내지 못한 상태를 보여 줌.
ㅇ (작품의 성격) 겉으로는 전우였던 두 남자의 재회와 몰락을 다루지만, 실제로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 안에서 계속되는 후유증을 다룬 영화임.
ㅇ (핵심 문제의식)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정말 살아남은 것인지,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기억하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개인이 어떻게 감당하는지를 묻는 작품임.

2. 줄거리 및 서사 구조

가. 기본 줄거리
ㅇ (사건의 시작) 한기주는 베트남전 참전 이후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소설가로, 아내와도 멀어지고 일상 속에서도 전쟁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함.
ㅇ (글쓰기의 계기) 그는 월간지에 베트남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을 연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묻어두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됨.
ㅇ (전우의 등장) 과거 전우였던 변진수가 한기주 앞에 나타나면서, 기주는 전쟁 당시의 기억과 죄책감을 더 깊이 마주함.
ㅇ (과거의 회상) 영화는 현재의 한기주와 변진수, 그리고 베트남전 당시의 소대 생활과 전투 경험을 오가며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보여 줌.
ㅇ (전쟁의 파국) 평온해 보이던 부대 생활은 점차 민간인 학살, 폭력, 공포, 광기 속으로 빠져들고, 병사들은 정상적인 판단을 잃어 감.
ㅇ (결말의 의미) 변진수는 전쟁의 기억과 죄책감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한기주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며, 한기주 역시 그 요구 앞에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절감함.

나. 서사 전개의 특징
ㅇ (현재와 과거의 교차) 영화는 현재의 무기력한 삶과 과거의 전장을 번갈아 보여 주며, 전쟁이 시간의 흐름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냄.
ㅇ (전쟁영웅 서사의 거부) 영화는 참전 군인을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고, 공포와 죄책감 속에서 무너져 가는 인간으로 바라봄.
ㅇ (후유증 중심의 서사) 총격과 전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인물들을 따라다니는 기억과 악몽임.

3. 주요 인물 분석

가. 한기주
ㅇ (상처 입은 생존자) 한기주는 베트남전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마음속으로는 전쟁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인물임.
ㅇ (무기력한 현재) 그는 소설가로 살아가지만 삶의 활력을 잃었고, 가족관계와 일상에서도 안정감을 찾지 못함.
ㅇ (기억의 기록자) 베트남전 경험을 글로 쓰는 과정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자신이 외면해 온 상처를 다시 마주하는 과정임.
ㅇ (인물의 의미) 한기주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다.

나. 변진수
ㅇ (무너진 전우) 변진수는 전쟁의 폭력과 죄책감에 짓눌린 채 현재의 삶을 버티지 못하는 인물임.
ㅇ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 그는 전쟁 속에서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민간인을 향한 폭력의 현장에 놓였다는 점에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함.
ㅇ (죽음을 요구하는 인물) 변진수가 한기주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장면은 전쟁 후유증이 한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가는지 보여 줌.
ㅇ (인물의 의미) 변진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 속에 갇힌 채 자기 삶을 감당하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다. 사라
ㅇ (현재의 여성 인물) 사라는 현재 시점에서 한기주와 관계를 맺는 인물로, 전쟁 이후의 삶과 현실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함.
ㅇ (거리의 존재) 사라는 한기주의 상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가 현재의 삶에서 붙잡고 있는 몇 안 되는 관계 중 하나임.
ㅇ (인물의 의미) 사라는 전쟁의 기억에 붙들린 한기주가 현재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를 더 또렷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다.

라. 김문기 하사와 소대원들
ㅇ (전쟁 속 권력) 김문기 하사는 전장 안에서 폭력과 명령의 힘을 행사하는 인물로, 병사들이 전쟁의 광기에 휘말리는 과정을 보여 줌.
ㅇ (민간인 살해의 강요) 그는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몰아 폭력을 행사하고, 다른 병사들에게도 살인을 강요하며 전쟁의 잔혹함을 드러냄.
ㅇ (소대원들의 붕괴) 병사들은 처음에는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점차 공포와 폭력에 익숙해지거나 그 압력 속에서 무너져 감.
ㅇ (인물들의 의미) 이들은 전쟁이 개인의 도덕과 판단을 어떻게 마비시키는지를 보여 주는 집단이다.

4. 핵심 주제 및 메시지

가. 끝나지 않은 전쟁
ㅇ (전장의 지속) 베트남전은 과거에 끝났지만, 한기주와 변진수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
ㅇ (기억의 고통) 전쟁의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술, 글쓰기, 악몽, 관계의 실패 속에서 계속 되살아남.
ㅇ (진짜 전쟁의 의미) 영화는 전쟁의 끝을 휴전이나 귀국으로 보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라봄.

나. 참전의 명예와 실제 전쟁의 간극
ㅇ (겉으로 주어진 명분) 베트남전 참전은 국가적 명분과 군인의 의무라는 말로 포장되었음.
ㅇ (현장의 실상) 그러나 영화가 보여 주는 전장은 명예와 영웅담보다 공포, 오인, 민간인 살해, 죄책감에 더 가까움.
ㅇ (영화의 태도) 영화는 참전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다치고 망가졌는지를 따라감.

다. 죄책감과 생존의 무게
ㅇ (살아남은 자의 고통) 한기주와 변진수는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편안한 안식이 되지 못함.
ㅇ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일) 전쟁 중 벌어진 폭력과 죽음은 이들에게 계속 죄책감으로 남고, 현재의 삶을 흔들어 놓음.
ㅇ (비극의 핵심) 이 영화의 슬픔은 사람이 죽어서만 생기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자기 삶을 제대로 살 수 없을 때 더 크게 드러남.

라. 국가가 보지 않은 개인의 상처
ㅇ (사회적 침묵) 전쟁이 끝난 뒤 사회는 참전의 공과 명분을 말하지만, 개인의 상처와 죄책감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음.
ㅇ (개인의 고립) 한기주와 변진수는 자기 고통을 가족이나 사회와 온전히 나누지 못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져 감.
ㅇ (작품의 문제의식) 영화는 전쟁을 국가의 기억이 아니라 개인의 상처로 다시 바라보게 함.

5. 인상 깊은 장면과 기억에 남는 요소

가. 한기주의 현재 생활
ㅇ (무기력한 일상) 한기주의 현재 모습은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이 평범한 삶으로 쉽게 복귀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줌.
ㅇ (글쓰기의 고통) 그는 베트남전을 글로 쓰지만, 글쓰기는 상처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처를 다시 여는 일이 됨.

나. 변진수의 등장
ㅇ (과거의 귀환) 변진수는 한기주가 묻어두었던 전쟁의 기억을 현재로 끌고 오는 인물임.
ㅇ (불안한 전우 관계) 두 사람은 같은 전쟁을 겪었지만, 서로를 위로하기보다 서로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관계에 가까움.
ㅇ (죽여 달라는 요구) 변진수의 요구는 단순한 자살 충동이 아니라, 전쟁이 한 인간에게 남긴 마지막 절망처럼 다가옴.

다. 민간인 살해 장면
ㅇ (전쟁의 잔혹함) 민간인을 적으로 몰아 죽이는 장면은 전쟁이 사람의 판단과 양심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리는지 보여 줌.
ㅇ (강요된 폭력) 병사들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에 끌려 들어가는 과정은 전쟁의 가장 끔찍한 면을 드러냄.
ㅇ (죄책감의 출발점) 이 장면들은 변진수와 한기주가 현재까지 벗어나지 못한 죄책감의 뿌리로 작용함.

라.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는 장면들
ㅇ (기억의 침입) 영화는 현재 장면 사이에 과거 전장을 반복해서 끼워 넣으며, 인물들이 지금도 전쟁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 줌.
ㅇ (시간의 붕괴) 이들에게 전쟁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삶 안으로 계속 밀려오는 기억임.

6. 인상 깊은 부분과 생각

가. 전쟁영화의 방향
ㅇ (다른 전쟁영화와의 차이) 이 영화는 전투의 승패나 작전의 성공보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에게 남는 상처에 더 집중함.
ㅇ (영웅보다 생존자) 인물들은 영웅처럼 보이지 않고, 살아 돌아온 뒤에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생존자처럼 보임.
ㅇ (감상의 핵심) 그래서 이 영화는 전쟁을 멋진 사건으로 보지 않고, 오래 남아 사람을 망가뜨리는 경험으로 바라보게 함.

나. 한기주와 변진수의 비극
ㅇ (서로 다른 붕괴) 한기주는 무기력과 회피 속에서 무너지고, 변진수는 죄책감과 광기 속에서 무너짐.
ㅇ (전우라는 관계) 두 사람은 같은 전쟁을 겪은 전우지만, 그 관계가 서로를 살리는 힘이 되지는 못함.
ㅇ (가장 무거운 지점)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마주했을 때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무겁게 다가옴.

다. 영화의 아쉬움
ㅇ (무거운 주제)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크고 무겁지만, 일부 인물과 관계는 충분히 깊게 풀리지 못한 듯함.
ㅇ (시대적 한계)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표현 방식과 연출 방식 때문에 지금 보면 다소 거칠게 느낄 수 있음.
ㅇ (그래도 남는 점) 그럼에도 영화는 베트남전 참전의 기억을 미화하지 않고, 참전군인의 상처와 죄책감을 정면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큼.

7. 종합 평가 및 결론

가. 종합 평가
ㅇ (작품의 성격) 「하얀 전쟁」은 베트남전 자체보다, 전쟁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무너진 삶을 다룬 영화임.
ㅇ (작품의 강점) 영화는 한국군 참전의 영웅담보다 참전자의 고통과 죄책감에 집중하며, 전쟁을 개인의 상처로 다시 바라보게 함.
ㅇ (작품의 한계) 일부 전개와 인물 묘사는 거칠지만, 전쟁 후유증을 다룬 문제의식은 분명하고 무겁게 다가옴.

나. 결론, 소회
ㅇ (핵심 인상) 이 영화는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이 반드시 전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줌.
ㅇ (남겨진 생각) 한기주와 변진수는 살아남았지만, 그들이 겪은 전쟁은 기억과 죄책감의 형태로 계속 삶을 파고듦.
ㅇ (제목의 의미) ‘하얀 전쟁’이라는 제목은 전쟁의 피비린내를 지운 말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 하얀 표면 아래에 남은 상처와 죄책감을 드러냄.
ㅇ (한줄 정리) 「하얀 전쟁」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 안에서 계속되는 고통과, 살아남은 자가 짊어져야 하는 죄책감을 담은 무거운 전쟁영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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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신이 감히 아뢰겠사옵니다. 당나라는 중화사관과 춘추필법으로 남의 나라역사를 왜곡하는 못된 습성이 있사옵니다.고구려후손이 세운 발해를 말갈인이 세웠다 기록하고, 당나라와 발해가 주고받은 물선도 받은 것은 조공이고 준 것은 물선이라고우기옵니다. 또한 발해에 보내는 국서에는 ‘황제께 올립니다‘라고 쓰지만, 당나라국서고에 보관하는 문서에는 ‘발해왕에게보내노라’라고 기록하옵니다."

"신이 돌아간 뒤 당나라 사관들은, 밀아고가 입조하여 조공을 받쳤다고 기록할 것이며 발해의 왕 숭린을 책봉했다고 쓸 것이옵니다.
사신 은지첨의 팔뚝에 묵형이 내리고 천자를 논힐한 것은 일언반구도 기록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더구나 폐하의 근신고장무를속죄사신으로 보낸 것을 책봉사라고 기록할 테니 어찌 간계라 하지 않겠사옵니까?"

황제 대숭린은 당제 이괄의 진사를 받아들이고 고장무에게 영원장군을 제수했다.그리고 진사품으로 보낸 한족 미녀 30명중 유난히눈에 띄는 세 명을 궁중에 두고, 나머지는 근신들에게 하사했다.

초여름부터 하루이틀거리로 내리던 비는 한여름이 되자 대엿새씩 그치지 않더니, 급기야 밤낮없이 내렸다. 비는 상경, 동경, 중경,
동모산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재민들은 관가로 몰려들어 먹고 입을것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도성을 수비하는금군들이 창검을 들고 백성들을 쫓으려 했지만,
차라리 죽이라고 악을 썼다. 젖은 봇짐을 인 노파, 등짐 진 초췌한 늙은이, 빈지게를 달랑 걸멘 장정,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핏기 없는어미의 치맛자락을 잡고 비바람 속에서 떨고 있는 모습은 전장보다 나을게 없었다.

북두칠성 북쪽에 있는 별인 자미는 황제의운명을 관장했다. 자미를 객성이나 요성이침범하면 황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가 있거나역적의 무리가 준동한다 했다.

"폐하, 어리석은 백성들의 원망은 물길과 같아서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끝내 넘쳐둑을 무너뜨리옵니다."최벽의 말에 대숭린은고개를 끄덕였다."어찌 물꼬를 터주어야 하는고?" "중정대에서 백관을 감찰하면, 관고를열어 백성을 구휼할 때 사욕을 채운 자,
공정하지 않은 자, 눈속임한 자가 드러날 것이옵니다. 폐하를 속인 기군망상일 뿐 아니라 국기를 흔든 것이요, 백성을 수탈한죄인이옵니다. 이런 간신들을 징치한 뒤에 관고를 열어 성덕을 베푸시면 백성들이 흠복하옵니다."

그럭저럭 해를 넘기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복은 쌍으로 아니 오고, 화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난 여름에는 물이넘쳐곤궁했고 이젠 봄 가뭄이 들어 차라리지난 장맛비가 그리운 형편이었다. 남쪽의신라에서도 기근이 들고 역질이 퍼져 민심이흉흉하다고 했다.

지난해 홍수에 가뭄까지 겹치니 굶주린백성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세세년년 마를일 없이 넘쳐 흐르던 궁성 밖 용천도 급격히 줄었다.
도성 안팎의 크고 작은 우물이모두 말라 너나없이 용천을 기웃거린 탓이었다. 모두가 그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데야 아무리하늘이 낸 용천이라고 한들버틸재간이 없었다.황궁에도 맛좋은 우물이 여러 개 있었지만, 황제의 수라상에 오르거나 황제가음용하는 물은 언제나 용천수였다. 용천을 발견한 이래 그 샘을 지극정성으로 아꼈다.상경을 용천부라 부른 것도 맑은 샘물이하염없이 솟아올라 마르지 않아 이름 지은 것이다.

좌윤 신대방은 고개를 저었으나, 좌상 장두각을 찾아가 전후사정을 늘어놓았다. 장두각은 고심 끝에 남대문 밖 용천 주변에군사를풀어 백성들의 접근을 막았다

목마른 백성들의 분노는 하루가 다르게커졌다. 처음에는 물동이를 들고 떼 지어소리지르다가 차츰 지게 작대기나 몽둥이를 들더니,
끝내는 낫, 삽, 쇠스랑을 들고무리지어 덤볐다.많은 백성들이 잡혀가고 매질을 당했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점점 수효가•불어났다. 백성들의 분노가 치솟을 무렵 아우성치는 무리와 군사들이 뒤엉켜 큰 싸움판이 벌어졌다.

삽시에 벌어진 참변이어서 미처 막을 길이 없었다. 황급히 금군과 시위 군사들이달려들어 분노한 백성들을 마구 베고 찔러겨우사태를 수습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황궁까지 포위한 무리의 주모자는 놀랍게도 지난해 죄 없이 효수당한 오감조의 동생오낙조였다. 조정공론이 분분한 것은 농구를 든 백성들에게 도성이 뚫리고 황궁까지 포위당했기 때문이었다.

"기우하고 기도했는데도 하늘이 감응치않고 귀신이 대답하지 않은 것은 폐하께서무죄한 자를 참하였거나, 억울한 자의 통곡이하늘에 닿았거나 군자를 멀리하고 소인을 가까이 했거나, 신하의 직언을 멀리했거나, 폐하께서 하늘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하늘은 스스로 재변을 일으키지 않사옵니다."
대청윤은 황제의 심기를 아랑곳하지 않고입을 열었다. "폐하, 용천을 철벽으로 수비하는 군사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에게 물을 나누어•주옵소서. 물과 햇빛과 바람은 천지조화로 이루어졌기에 하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폐하께서 진실로 백성들의 괴로움을 알고 하늘의 뜻을 좇는다면 천지의 기운이 화평해져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오곡이 풍성해질것이옵니다. 백성들의 살림이 넉넉해져 안정되면 널리 교화가 행해져 풍속이 후해지고, 옥에는 죄인이 없고 도둑이 사라지며, 간신과•역신이 발 디딜 곳 없어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옵니다."대숭린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어탁을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감히짐을 능멸하다니 용서할 수 없도다. 역심을 품었으니 치죄하겠다."

민심은 점점 더 흉흉해졌다. 배고픈 백성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도적이 되거나 강도질을 했다. 관가에 불을 지르고 관리들의집을습격하는 일도 생겼다. 기찰을 강화하고 도성 안팎의 경계를 엄중히 했지만, 한번 흐트러진 민심을 되돌릴 묘안이 없었다.할 수 없이야간에 통행을 금지하는 인정을앞당겼다. 도성 밖에서는 무장하고 떼 지어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비적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황제의 눈 밖에 난 대청윤이 당분간 천문령에 들어가 근신하겠다는 상소를 아무의심 없이 윤허했는데, 어느 틈에 막힐부의군사를장악하여 충역을 뛰어넘었다는 보고였다. 대숭린은 반역의 싹을 진작 자르지못한 것이 한스러웠지만, 군사를 동원하기도 쉽지않은 정황이었다.

속말수가 마르지 않았고 거란과 말갈이 대청윤에게 복속했으며 막힐부도독 고천경을 따르는 무리가 제법 많았다. 뜬소문에는부여부도독 장국등과 장령부도독 양만신도 역심을 품었다 했다.

무자 백난별은 소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튼 채 고승명을 맞았다. 여든아홉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흰 머리칼과 흰 수염만아니라면 늙은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눈빛과 살결이 촉촉이 빛났다.

"입을 열면 귀한 집 자손이 목숨을 잃나니......."차마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투였다."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그렇기는 하오만 귀한 집 자손에 남매여야 하고, 인물과 자색이며 학문과 무술이남에게 뒤지면 안 되니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동남동녀도 기껍게 몸을 바쳐야 하지만, 부모 역시 흔쾌히 자식을 내놓지 않고 슬퍼하면 용신이 제물을 거부하오."백난별이힐책하는 투로 말하자, 이내 고승명은 한숨을 길게 토했다. 백만금을 준다고 한들 어느 누가 기꺼이 자식을 내놓으며, 극락왕생한다한들 어느 누가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는가.

지난해 장마도 용신의소행이고 금년 가뭄도 용신의 소행이 분명하니 어찌 두렵지 않으리오. 몇 번이나 황상께 주품해달라 해도 조정중신들이 믿지않았소이다. 그 죄를 어찌 받으려고

그로부터 닷새 만에 고승명을 찾아온 것은 놀랍게도 신사문이었다. 신사문 뒤에는가히 선남선녀라 할 수 있는 남매가 고운모습으로서 있었다. 고승명은 대숭린이 등극하고 신씨 일가를 매몰차게 내쫓았기 때문에 그가 애지중지하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오자 무척놀랐다.고승명은 자리에 엎드려 예를 갖추었다.황제의 스승이었던 태사 신사랑의 아우요,한때 의부경으로 문무백관의 존경을받던인물이었다. 고승명도 신사문에게 사사 받아 학문을 키웠기에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잃으면 낳을 수 있지만, 만백성을 잃으면 나라가 무슨 소용이겠소. 백 년만의 대가뭄에 온 백성이 굶주림과 역병으로신음하거늘 어찌 내 자식만 귀하다 하리오. 또한 부모가 자식을 바치고 호의호식하면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고승명은 급히 황제에게 고하고, 신사문의 아들 신달진과 딸 신달지를 데리고 홀한해로 달려갔다. 제단을 마련하는 동안 두아이는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 기도를 했다

백난별이 곁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두렵지 않은가?" 신달진이 곱게 웃었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생각하기로는 남보다먼저 죽는 것 같지만, 세상에는 배내옷도 못 입어보고 죽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래 살아 뜻을 거스르고도를 얻지 못하는 것보다•보람되게 저를바칠 수 있으면 천복이 아니겠습니까." 백난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매의 손을 맞잡았다.

"나라에서 동남동녀를 구한다는 방을 본아버님께서 아무 말씀하지 않으신 채 저희들에게 방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길로 어머니와함께 절에 들어가 무명스님의 설법을 듣고 바로 참선에 들었습니다. 어젯밤깨달은 게 있어 저희 남매가 먼저 부모님과스님께 몸을바치기로 맹약했습니다.

소복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달싹하지 않았다. 신사문의 자녀들이 먼저쓰러져 그늘로 실려갔고, 끝내 신사문과 백난별도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쓰러진 사람들은 모두 온몸이 불덩어리 같았다. 입을벌려 물을 먹이고 몸에 끼얹어도 보았지만여전히혼수상태였다.

그날 밤, 휘영청 둥근달이 창공에 높이걸렸다. 정성껏 제사를 드렸건만 하늘은 요지부동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홀연 비를머금은 매지구름이 남쪽으로부터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람결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매지구름은 강한 바람을 타고밝은 달을 가렸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금세 굵어졌다.

황제 대숭린은 급히 대신 양광태를 보내 신사문을 개국공에 봉하고 식읍 3백호를내리며 그의 형 신사랑을 다시 태사로 명했다.
그러나 신씨 일가는 벼슬과 식읍을거절한 채 종적을 감추었다.

대청윤에게도 대업의 꿈이 있다는 걸 진작 눈치채지 못한게 한이었다."짐이 군사를 거느리고 친정하여 역적대청윤을 사로잡겠다.
그리하여 발해 강역에서 천추만세토록 모반의 씨를 말리겠노라."

"토평한 뒤에 쌓인 원한을 어찌 하려는고?" "지금은 속전속결해야 하옵니다. 전쟁이길어지면 양초와 군비를 조달하기 벅차옵니다. 말갈 군사가 초전에 무자비하게 도륙하면 반란군이 분열하고 군사들이 도망치게 되옵니다.!"

"개마성과 골태몽을 장수로 삼으면 역신들을 놀라게 할 것이옵니다."대숭린은 대장군 장객명에게 부월을 주어 군사를 거느리게하고, 말갈 출신 개마성과 골태몽을 장수로 삼아 토벌군을 편제했다. 이때 중신 감청학이 진언하고 나섰다.

그들은 따로 정진대를 운용하여 정면공격과 측후방공격을 감행했고, 적을 혼란케 한 뒤 사납게 도륙하여 겁에 질리게했다. 정진대를이끄는 장수 수율림은 본디 말갈 수령이었는데 적진에 뛰어들면, 항복한자뿐만 아니라 어린애부터 늙은이까지 닥치는 대로 죽이는장수였다.

상경 일대에는 대청윤을 따르는 자들이의외로 많았다. 대숭린과 함께 상경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인심을 닦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문은 정이요, 무는 동이어서 나라가 바르게 서 있으려면 문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나는 발해 주변에 저 너른 당나라땅과 북방의 땅과 신라가 있는 한 무관으로서 칼을 버릴 수 없습니다."

네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천기를 받들 것이다."대도진경은 아버지 뜻을 끝내 거부했다.진노한 대도무인은 그 길로 몸져누웠다.
군사들이 대도무인의 거처를 급습한 것은 이튿날 새벽이었다. 끌려가 모진 국문을 당했으나 대도무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대청윤이 이끄는 반란군은 기세를 올리지 못하고 연신 패퇴하여 부여부를버리고 막힐부로 도주했다. 가뭄이 용천부와 현덕부,
용원부 북쪽과 솔빈부, 동평부,철리부까지 번져 민심이 흉흉할 때는 기세좋게 승전고를 울렸으나, 가뭄이 해소되자민심이 점차 등을돌렸기 때문이다. 게다가개마성과 골태몽이 거느린 말갈 군사들이무자비하게 공격하자 더욱 기가 꺾였다.

"천심이 이렇게 변덕스러울 줄 몰랐소이다. 더구나 효왕이 저리도 무능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효왕 대청윤을 부추겨 반란을일으켰던막힐부도독 고천경이 넋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포위당한 아밀지는 저항하지 않았다. 싸우면 몰살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밀지는재빨리 대청윤의 목을 베어 고천경에게 바쳤다.
간교한 아밀지가 대청윤의 입을 막기위해 먼저 참살해 버린 것이다. 고천경은그 자리에서 아밀지의 목을 쳤다.

장객명은 고천경과 장국등을포박하여 도성으로 압송하고, 대청윤의 수급을 거두어 염장했다. 반역자의 말로를 보여주기 위해 수급을수습하여 소금에 절이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성으로 압송된 고천경과 장국등은 황제를 알현조차 하지 못하고 형장의이슬로 사라졌다.

이태 동안 홍수와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한 것을 틈타 반역을 꾀했던 대청윤과 그일당은 참살당했고 반역의 깃대는 무참하게 꺾였다. 이듬해 을유(805)년 정월 열사흘에 이괄이 붕어했다. 며칠 뒤 정월 스무엿새, 중풍으로 거동조차 못하는 이송이 등극했다. 말도제대로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사람도못 알아볼 때가 많은 이송이 태극전에서 즉위식을 치렀다.

병술(806)년 윤 6월에는 산동반도 맹주이사고가 14년 동안 통치하던 제나라를 남기고 붕어했다. 아버지 이납과 할아버지 이정기와같은 병력이었다. 이사고에게는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대권은 이복동생 이사도에게 넘어갔다.

사신을 발해로 보내 당나라를 대적하는 군사동맹을 청했다. 발해의 조정공론이 분분했지만 대숭린은 결전을 각오하는 이사도와군사동맹을맺기로 했다. 그리고는 고화용과 고다불을연달아 일본에 보내 해본동맹을 요구했다

발해 황제 대숭린이 대사를 앞두고 급환으로 세상을 뜨니 기축(809)년 초여름이었다. 이에 대숭린의 장자 대원유가 황위를잇고선제의 시호를 강황제로, 묘호를 목종으로 하니 제위 기간은 15년이었다. 대원유는 연호를 영덕으로 선포하고 계위했다.

원유는 즉위할 때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단 위에 오를 만큼 비대했다. 게걸스런 식탐으로 몸무게가 무려 2백 근이나되었다.
일설에는 그의 생모 황태후 오귀담이 궁중 의관에게 처방을 잘못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대원유의 식탐은 끝이 없었다. 태자시절식탐을 저지하기 위해 황명으로 음식을 줄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엄한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어머니의 편애에 매달려식탐에 빠지거나 궁녀들 치마 벗기는 일에이골이 났다.

대원유 등극하자마자 정사를 멀리한채 오태후의 섭정을 좇았다. 대원유의 아우대언의와 대명충도 대원유 못지않은 식탐으로 150근이 넘게 비대했다. 황제 대원유는 칙서를 내려 오태후의 섭정을 선포하고오태후의 오라버니 오작분을 만인지상인대내상에 명하고손아래 오라비 오작근에게 백관을 감찰하는 대중정을 제수했다. 또다른 오라비 오작촌은 군권을 장악하는 지부경으로 봉했다.
오태후의 심복들을 대신과 근신으로 삼으니 사직은 대씨로 이어졌으나 조정 대소사는 오씨의 수중에 들었다.

그녀 앞에 꿇어 엎드리기 싫어 사직상소를 낸 신하들 가운데 귀양 가지 않은 자가없었고, 섭정의 부당함을 상소한 사족들은모두참살당했다. 도성은 기찰이 삼엄하고인정이 당겨졌으며, 도성을 지키는 금군과황궁을 지키는 시위는 두 배로 늘어났다.사라졌던 10호연좌제도 되살아났으며 문황제 이래로 대우받던 문관보다 무관이 득세하게 되었다.

미사천은 오태후의 속셈을 꿰뚫어보는 심복이었다. 설사 그렇더라도 어찌 통천하겠느냐?"조정을 한손에 틀어쥐고 있지만 하늘과내통하지 않고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황위였다."마마, 태양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오륜이옵니다.""오륜이라.......""고씨도한없이 높다하여 하늘을 뜻하고, 대씨도 한없이 크다 하여 하늘을 뜻하옵니다. 오씨도 곧 하늘을 뜻하옵니다."오태후는 준수한용모와 반듯한 몸매의 미사천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서궁을 버리고 동궁으로 옮긴 것만 가지고도 공론이 분분한데,
천심은 남자에게만 내리는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본디 세상의 주인은 여인이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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