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의 대발해 9 - 모반의 수레바퀴 김홍신의 대발해 9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9권, 모반의 수레바퀴 – 외척과 권신의 전횡으로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발해

1.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체제 붕괴 분석) 선왕 대인수 사후 해태후와 해씨 일가의 권력 사유화로 인한 국정 농단과 민생 파탄 과정을 분석함.
ㅇ (권신 정치 고찰) 대현석 즉위 이후 권신 대건진의 반역과 폐불 사태를 집중 조명함.
ㅇ (내적 원인 규명) 이를 통해 발해가 중흥기 이후 외척과 권신의 전횡으로 인해 국가 시스템이 내부로부터 붕괴해 가는 근본 원인을 고찰하고자 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 배경) 대체로 818년(무술년) 선왕 대인수 치세 말기부터 871년(신묘년) 대현석 즉위 후 10년 무렵까지의 시기임. 발해 내부에서는 대이진·대건황·대현석으로 이어지는 황위 계승과 해태후 섭정, 대건진의 비대화가 이어지고, 당은 874년부터 일어난 황소의 난으로 크게 흔들리며, 신라도 후기 왕실의 왕위 다툼과 살육으로 약화되어 가는 시기임. 북방에서는 거란이 위구르의 지배에서 벗어나 점차 세력을 키우고 있었음.
ㅇ (공간적 배경) 주요 무대는 발해 황궁과 도성, 지방 민란 지역, 서쪽 변경, 그리고 덕산대사·의명대사가 머무는 도성 인근의 불교 사찰임.

다. 핵심 요지
ㅇ (중흥 이후 황실 붕괴) 대인수가 중흥의 기틀을 다졌으나, 그가 죽자 곧바로 황실은 해태후와 해씨 일가의 권력 사유화에 휘둘리기 시작함.
ㅇ (해태후 체제의 실상) 해태후는 국정보다 자신의 권력 유지와 확장에 집착하였고, 해지량은 계략으로, 해무량은 폭력과 수탈로 이를 떠받치며 국가 질서를 무너뜨림.
ㅇ (후반부의 추락) 해태후 체제가 약해진 뒤에도 발해는 회복되지 못하고, 대현석 즉위 이후에는 대건진이 황제 권위를 능가하며 왕권 약화가 더 심해짐.

2. 주요 내용 전개

가. 대인수 말기의 수습과 마지막 업적
ㅇ (대창해의 반란) 대창해는 황실 질서를 뒤흔들고 태자 대신덕의 죽음까지 불러온 반란 세력의 중심 인물임. 대인수는 이를 가까스로 수습하였으나 황실 내부에는 깊은 상처가 남음.
ㅇ (발해 문자와 자존의 정비) 대인수는 발해 문자 정음 23자를 정비·보급하며 독자 문명국의 기틀을 세우려 하였고, 당을 상대로도 해동성국 발해의 자존을 굽히지 않음.
ㅇ (중흥 군주의 최후) 그러나 대인수가 눈을 감자, 그가 세운 질서는 예상보다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함.

나. 대이진 즉위와 해태후 체제의 형성
ㅇ (어린 황제와 섭정의 시작) 대인수 사후 어린 대이진이 즉위하나, 실권은 곧 어머니 해태후에게 넘어감.
ㅇ (권력의 사유화) 해태후는 해지량·해무량 등 친정 세력을 앞세워 조정을 장악함.
ㅇ (체제의 지속) 해태후 체제는 대이진 때에 그치지 않고 뒤이은 아우 대건황 시기까지 이어지며, 황실과 조정을 장기간 거머쥠.
ㅇ (황실 내부 암투) 후궁과 측근, 외척이 얽힌 황궁 내부의 암투도 계속되어 황실 질서는 더욱 불안정해짐.

다. 해지량·해무량의 전횡과 민생 파탄
ㅇ (해지량의 책략과 해무량의 폭력) 해지량은 계략과 참소, 인사 조작으로 권력을 설계하는 모사꾼이고, 해무량은 높은 지위에 올라 무식한 힘과 폭력, 위세로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기능함.
ㅇ (해무량의 범죄적 전횡) 해무량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재물을 모으고, 감찰어사 고덕술을 살해하고, 거짓 상소와 조작으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함.
ㅇ (민란과 봉기) 대이진 집권기에는 해태후와 해씨 일가의 폭정으로 지방 민란과 봉기가 잇따르고, 민심은 급속히 이반함.
ㅇ (염군 초모와 재난의 확대) 해무량은 염군을 길러 군사를 모으고 서쪽 군사들까지 끌어들이나, 이 과정은 오히려 역질을 퍼뜨리고 사회 전체의 혼란을 더 키움.
ㅇ (권력 내부 숙청) 해지량과 해무량은 사촌지간으로 함께 해태후 체제를 떠받치나, 끝내 해지량이 계산 끝에 해무량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흘러감.

라. 태사 신작과 충신들의 고투, 그리고 한계
ㅇ (상황 인식) 태사 신작은 해태후 체제와 해지량·해무량의 술수를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조정이 어떤 방향으로 썩어 가는지도 알고 있었음.
ㅇ (민란 국면의 정치적 한계) 그러나 그는 민란 수습 과정에서 발해 백성끼리 서로 죽이는 상황을 피하려는 쪽으로 기울었고, 더 나아가 민란 편에 서서 해태후 체제를 붕괴시킬 가능성마저 끝내 택하지 못함.
ㅇ (결과적 책임) 뜻은 충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해태후 체제와 권신 구조를 더 오래 살려 두었고, 더 많은 백성이 더 오랜 기간 고통을 겪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움.

마. 해태후 체제의 균열과 뒤늦은 변화
ㅇ (해태후 암살 시도) 해태후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두 차례 이어졌다는 점은, 해태후 체제가 이미 조정 안팎에서 심각한 원망과 반발을 사고 있었음을 보여줌.
ㅇ (황실 후궁 암투의 심화) 황궁 안에서는 후궁과 측근, 외척이 얽힌 암투가 노골화되고, 총애와 질투, 의심과 참소가 뒤엉키며 황실 내부 질서를 더 깊이 무너뜨림. 이는 발해 후반의 혼란이 황궁 안쪽에서부터 썩어 들어갔음을 드러냄.
ㅇ (늦은 회한) 덕산대사와 의명대사의 질책 이후 해태후는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기미를 보이나, 이미 나라가 깊이 병든 뒤였기에 국정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지는 못함.

바. 대건황 이후 황실 재편과 대현석·대건진 국면
ㅇ (대건황 집권과 황제 권위의 약화) 대건황이 황위에 오르나 해태후 체제의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황실은 더 이상 선대 대인수 때와 같은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함. 이 시기 발해는 황제가 정국을 이끄는 나라라기보다 황제 권위가 급속히 약화된 나라의 모습을 드러냄.
ㅇ (대현석 즉위 이후의 권력 재편) 대현석 즉위 이후에도 왕권은 안정되지 못하고, 권신과 대신들이 황제 위에서 실권을 다투는 국면으로 기울어 감.
ㅇ (대건진 권력의 비대화) 이후 대건진은 스스로 건지국사 위에 오르고, 황제 위에서 정국을 좌우하는 존재로 군림하며 황제 권위를 무력화시킴.
ㅇ (고재정의 반란) 대내상 고재정은 대현석 즉위 이후 비대해진 대건진을 제거하고 대현석까지 주살하여 자신이 황제 위에 서려는 반란을 꾀함.
ㅇ (대건진 반란부의 전개) 대건진은 자기 세력을 직접 규합하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며 끝내 황제를 압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감. 이 과정에서 발해 조정은 황제 중심 질서를 완전히 잃고 권신이 국정을 농락하는 단계로 추락함.
ㅇ (폐불과 도덕 질서의 붕괴) 대건진은 끝내 덕산대사와 의명대사를 태워 죽이고 불교까지 탄압하며, 발해 후반 정치가 양심과 도덕, 충언까지 견디지 못하는 단계로 추락했음을 보여줌.
ㅇ (국제정세와 발해의 불안한 존속) 당은 황소의 난으로 크게 흔들리고, 신라도 후기 왕실의 왕위 다툼과 살육으로 약화되고 있었음. 발해는 이런 주변의 불안정 덕에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북방에서는 거란이 위구르의 지배에서 벗어나 점차 세력을 키우고 있어 더 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음.

3. 인물 및 통치 평가

가. 대인수
ㅇ (중흥 군주의 위상) 대인수는 반란을 수습하고 문자와 체제를 정비하며 발해의 국력과 자존을 다시 세우려 한 군주임.
ㅇ (유산의 취약성) 그러나 그의 유산은 예상보다 단단하지 못했고, 그가 떠나자 곧바로 외척 정치와 황실 혼란이 다시 고개를 듦.

나. 대이진·대건황
ㅇ (체제의 희생양) 대이진과 대건황은 모두 황위에 올랐으나, 해태후 체제 아래에서 황제 중심의 통치력을 온전히 세우지 못한 인물들임. 두 사람은 발해 후반 외척 정치가 황제를 어떻게 무력화하는가를 보여주는 체제의 희생양으로 볼 수 있음.

다. 해태후
ㅇ (권력 사유화의 책임자) 해태후는 황실과 국가를 안정시키기보다 자신의 권력을 사유화하려 하였고, 이를 위해 친정 세력인 해지량·해무량 등을 중용하여 조정 전체를 자기 사람들 중심으로 재편함.
ㅇ (말년의 처리와 한계) 후반부에 이르면 대현석 등이 해태후를 참하려는 국면에서 의명선사가 해태후를 비구니로 만들어 데리고 가며 생을 마치게 하고, 이는 해태후가 끝내 정치의 중심에서 물러나긴 하였으나 그가 남긴 폐단까지 지워 주지는 못함.

라. 해지량과 해무량
ㅇ (해지량의 성격) 해지량은 해태후 체제의 실질적 모사꾼으로, 계략과 참소, 인사 조작과 권력 설계를 통해 조정을 흔드는 인물임.
ㅇ (해무량의 성격) 해무량은 해지량과 달리 거칠고 무식하며, 수탈과 폭력, 위세로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임.
ㅇ (사촌 권력의 본질) 두 사람은 사촌지간으로 함께 해태후 체제를 떠받치나, 끝내 해지량이 계산 끝에 해무량까지 제거하는 방향으로 흘러감.

마. 태사 신작
ㅇ (충신의 표상) 태사 신작은 끝까지 나라의 근본을 생각하는 충신으로 그려짐.
ㅇ (비판 가능한 충신) 그러나 민란 국면에서 해태후 체제를 무너뜨릴 가능성보다 유혈 확대를 막는 쪽을 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더 긴 혼란을 막지 못한 한계를 드러냄.

바. 대현석·대건진
ㅇ (대현석의 한계) 대현석은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이미 약해진 왕권과 복잡해진 조정 구도를 온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임.
ㅇ (대건진의 의미) 대건진은 황제 권위를 능가하는 권세를 쥔 권신으로 비대해지며, 황제 위에서 정국을 좌우하는 존재로 군림하며 황제 권위를 무력화시킴.
ㅇ (권신 정치의 극점) 그는 스스로 건지국사 위에 오르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며, 끝내 사찰 방화와 폐불로까지 나아가 권신 정치의 극단을 보여줌.

사. 덕산대사·의명대사
ㅇ (양심적 인물) 덕산대사와 의명대사는 해태후와 황실의 탐욕을 힐난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 노력하는 양심적인 인물임.
ㅇ (끝내 제거되는 양심) 대건진이 두 사람을 태워 죽이고 폐불로 나아가는 대목은, 발해 후반 정치가 끝내 양심과 충언을 견디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줌.

4. 거시적 고찰 및 역사적 함의

가. 해태후 체제와 외척 정치의 구조적 폐단
ㅇ (노골적 권력 사유화) 해태후 체제의 본질은 권력을 공적으로 운영한 것이 아니라, 해태후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넓히기 위해 친정 세력을 앞세워 국가를 사유화한 데 있음.
ㅇ (구조적 폐단) 외척 세력이 공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국정을 제 사람들 중심으로 운영하는 순간, 황제 권위는 약화되고 정치 질서는 빠르게 무너짐.

나. 작가 서사의 모순과 민생 묘사의 충돌
ㅇ (서사의 충돌) 작품은 앞에서 해무량의 수탈, 고덕술 살해, 지방 민란, 역질 창궐을 통해 민생 파탄을 선명하게 보여주나, 뒤로 가면 백성의 칭송과 태평성대 분위기를 덧붙이며 같은 권 안에서 서로 맞지 않는 서술을 내놓음.
ㅇ (작가의 모순된 처리) 특히 작가는 해태후를 도량이 넓은 여인처럼 보이게 하려 하지만, 실제 서사에서는 반대 세력에게 없는 죄까지 만들어 물감옥에 집어넣고 모진 고문을 자행하는 악독한 인물로 나타남. 이런 인물을 다시 선정의 주체처럼 덧칠하는 방식은 작품 내부 논리를 스스로 흔드는 모순된 처리로 보임.

다. 충신의 명분과 정치적 실기의 문제
ㅇ (선의의 한계) 태사 신작은 충정과 명분에서는 분명한 강점을 지닌 인물임.
ㅇ (정치적 실기) 그러나 민란 국면에서 더 강한 결단을 내리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해태후 체제와 권신 구조를 더 오래 존속하게 만들었음.
ㅇ (민생 파탄과의 연결) 이 대목은 선비적 명분론이 현실 정치에서는 오히려 더 긴 혼란과 더 큰 민생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줌.

라. 국제정세와 발해 존속의 조건
ㅇ (동시대의 불안정) 당은 황소의 난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신라도 후기 왕실 내부의 왕위 쟁탈과 살육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있었음.
ㅇ (발해 존속의 배경) 발해는 내부가 크게 흔들리면서도 주변국들 역시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음.
ㅇ (거란의 성장) 그러나 북방에서는 거란이 위구르 지배에서 벗어나 점차 세력을 키우고 있었고, 이는 발해가 훗날 더 거센 외부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함.

5. 종합 결론

가. 9권의 중심 흐름
ㅇ (중흥의 끝과 붕괴의 시작) 9권은 대인수가 이룬 중흥의 마지막 빛과, 그 뒤를 이은 황실 혼란·외척 정치·민생 파탄이 어떻게 발해를 다시 어둠으로 끌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권임.

나. 가장 중요한 인물 축
ㅇ (해태후와 대건진) 해태후는 발해를 병들게 한 외척 정치의 중심이고, 대건진은 그 병든 질서 위에서 황제보다 더 큰 힘을 쥐는 권신 정치의 완성형임. 태사 신작과 덕산대사·의명대사는 이를 막으려는 양심의 축으로 서나 끝내 구조를 뒤집지 못함.

다. 최종 판단
ㅇ (발해의 비극)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발해의 약화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외침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황실 내부의 욕망과 외척·권신 정치, 후궁과 측근의 암투, 충신 숙청, 민심 이반과 왕권 약화 속에서 안쪽부터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임.
ㅇ (핵심 소회) 결국 9권은 대인수 이후 발해가 왜 다시 강해지지 못했는지, 왜 황실 내부에서부터 국운이 기울었는지, 그리고 왜 훗날 더 거센 외부 세력 앞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길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권이라 할 수 있음.
```존명(尊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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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상응 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정수윤 옮김 / 읻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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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보고]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 한심함과 천재성 사이를 오간 인간 다자이

1. 작품 개요

가. (도서 정보)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은 다자이 오사무가 남긴 편지를 엮은 책으로, 읻다 출판사에서 2020년 10월 19일 출간됨.

나. (저자 소개)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사양』과 『인간 실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자기혐오와 부끄러움, 인간관계의 불안을 작품 안에 강하게 드러낸 작가임.

다. (편지의 의미) 편지는 소설보다 직접적인 사적 기록으로, 작품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 다자이 오사무를 마주하게 함.

라. (핵심 문제의식) 이 책은 문학과 생활 사이의 간극을 보여 줌. 생활인 다자이는 무책임하고 의존적이었지만, 작가 다자이는 작품을 완성하고 출간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성적이었음.

마. (독서 방향) 따라서 이 책은 다자이를 우울한 천재로만 보지 않고, 한심함과 우스움, 절박함과 재능이 뒤섞인 인간으로 살펴보게 함.

2. 생활 태도와 경제 관념

가. (만성적 궁핍) 다자이는 생활비, 결혼 비용, 요양비, 출판 광고비 등을 이유로 지인들에게 반복적으로 돈을 빌림.

나. (상환 지연)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서도 감정적 호소나 우정, 은혜 같은 말로 상황을 넘기려 함.

다. (생활 무책임) 술을 사주겠다고 하고도 지갑을 가져오지 않거나, 주변 사람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모습이 반복됨.

라. (기행적 태도) 이런 행동은 단순한 가난보다, 생활을 정면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주변 관계에 기대려는 태도에 가까움.

3. 가정생활과 인간관계

가. (가사 부담 회피) 아내가 가사와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해도, 다자이는 자신의 식사와 편의를 먼저 요구하는 모습을 보임.

나. (능청스러운 응수) 아내가 재촉받는 기분을 묻자 “나는 기분이 아주 좋다”는 식으로 받아넘기며, 갈등을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음.

다. (관계 의존) 지인들에게는 돈과 술, 출판 도움을 계속 요청하면서도, 자신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식의 정서적 의존을 반복함.

라. (인간적 모순)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미움받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태도가 서한 곳곳에서 확인됨.

4. 병, 불안, 자기파괴

가. (건강 악화) 다자이는 병과 술, 약물 문제를 겪으며 생활과 창작 모두에서 불안정한 상태를 보임.

나. (진단 부정) 의사의 진단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상태를 축소하거나 회피하려 함.

다. (자살 시도와 죄책감) 자살 시도와 실패 경험은 이후 편지 속에서 부끄러움과 불안, 자기혐오의 형태로 계속 나타남.

라. (광대적 자기방어) 그는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농담과 과장, 익살로 감추는 경우가 많았음.

5. 『만년』 출간과 문학적 집착

가. (작품 자부심) 다자이는 『만년』을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고, 원고와 편집, 장정에 강한 관심을 보임.

나. (출판 실무 개입) 책 가격과 표지, 광고 문구와 홍보 방식까지 직접 의견을 내며 출간 과정 전반에 관여함.

다. (자기 연출) 지인들에게 자신을 “천재”처럼 소개하는 광고 문구를 요구하는 등 과장된 자기 연출도 서슴지 않음.

라. (문학과 생활의 괴리) 생활에서는 무책임하고 의존적이었지만, 문학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열성적이었음.

마. (문학적 진심) 이러한 괴리는 다자이 문학의 긴장감을 만들어 내며, 그의 소설과 실제 삶을 함께 살펴보게 하는 중요한 지점임.

6. 아쿠타가와상 집착과 낙선

가. (수상 기대) 다자이는 아쿠타가와상을 단순한 문학상이 아니라, 경제적 구원과 문단 인정의 기회로 여김.

나. (비굴한 호소) 상을 받기 위해 심사위원에게 간절하고 비굴한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드러냄.

다. (낙선 후 분노) 수상에 실패하자 심사위원과 문단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못하고 공개적 비난에 가까운 반응을 보임.

라. (인정 욕구) 이 과정은 다자이가 문학적 자부심만큼이나 타인의 인정과 성공을 강하게 원했다는 점을 보여 줌.

마. (시대적 맥락) 아쿠타가와상 집착과 경제적 곤궁은 개인적 결함만이 아니라, 당시 문단 구조와 작가의 생계 불안과도 연결됨.

7. ‘일·일·일’ 정신과 직업관

가. (현실 자각) 반복되는 구걸과 생활 파탄 속에서, 다자이는 결국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

나. (노동의 강조) “일·일·일”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돈을 빌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절박한 결심에 가까움.

다. (불완전한 실천) 다자이는 자주 흔들렸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일만큼은 끝까지 붙들려 했음.

8. 서한집을 통해 본 다자이 오사무

가. (우울의 이면) 『인간 실격』의 절망적인 이미지와 달리, 서한집 속 다자이는 웃기고 능청스럽고 때로는 뻔뻔한 사람으로 다가옴.

나. (비극과 희극) 그의 삶은 자살과 병, 궁핍 같은 비극으로 가득하지만, 편지 속 말투와 행동은 종종 희극처럼 보임.

다. (불편한 매력) 그는 돈을 빌리고 술값을 떠넘기며 주변을 지치게 했지만, 농담과 능청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도 함께 지니고 있었음.

라. (모순적 존재) 그는 주변을 힘들게 하면서도 웃음을 주고, 도움을 구하면서도 애정을 요구하는 모순적인 사람이었음.

마. (인간적 입체성) 이 서한집은 다자이를 위대한 작가로만 보게 하지 않고, 결함 많고 우스꽝스럽고 절박한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함.

9. 결론, 소회

가. (문학과 생활의 간극)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은 단순히 한 작가의 편지를 모은 책이 아니라, 문학과 생활 사이의 간극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기록임.

나. (인간 오사무) 편지 속 다자이는 무책임하고 뻔뻔한 생활인이면서도, 문학 앞에서는 누구보다 열성적이고 진지한 태도를 견지함.

다. (문학적 진심) 생활에서는 자주 무너지고 주변에 기대었지만, 작품을 완성하고 출간하는 일에는 끝까지 진지한 태도를 보였음.

라. (입체적 인간)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자이를 더 이상 『인간 실격』의 우울한 천재로만 규정하기 어려움. 결함과 재능, 희극성과 비극성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뒤섞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됨.

마. (종합 소회)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은 문학사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의 모순과 입체성을 드러내는 자료임. 다자이라는 사람의 한심함과 우스꽝스러움, 절박함과 재능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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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성으로 뇌물 심부름 갔던 해무량의 심복 왕가희가 태사 신작에게 곤장 30대를 맞고 겨우 돌아오자 해무량은 진노하고 말았다.
"내가 보낸 진귀한 물선을 거절한 것도괘씸한데 심복에게 태질까지 했으니 이는곧 나를 때린 것이다."

"금불상을 만들 형편이면 가난하고 병든자를 구휼해야 한다며, 한 번 더 뇌물을 보내면 그때는 탐관오리로 알고 삭탈하고 가산을 적몰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왕가희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눈초리가 야릇하게 번뜩였다.
"너는 어째서 금불상을 태사에게 주었느냐?"
"자사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이런 소식이 어찌 조정에 닿지 않았을까마는 그때마다 조정 대신들은 해무량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이에 황제는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시어사 고덕술을 염주로 파견했다.
강직한 충신으로 알려진 그는 태태후 고운목의 조카이자 백관을 감찰하는 중정대출신으로, 공명정대함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 소식은 지체 없이 염주자사에게알려졌다.

고덕술의 행차는 조촐했다. 소문대로 깐깐하고 강직했다. 영접사로 도성 밖 30리지경에 마중 나간 연타골을 야단쳐 들여보내고 스스로 관아를 찾아왔다. 고덕술은 관작이 높음에도 자사 해무량의 병상을 찾아먼저 예를 갖추었다.

고덕술은 조정에서 파악한 비위 사실은모함이거나 은폐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백관과 변방을 감찰해보면 어디든 크고 작은 비위가 적발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시일이 갈수록 흠잡을 데가없다는 게 점점 더 이상했다. 
"해무량이 사가와 관고의 재물을 은밀히빼돌려 바다 건너 섬으로 옮겼다는 제보가있습니다. 허락해주시면 배를 내어 다녀올까 합니다."

"조정에서 어사가 내려오는 바람에 모든장마당을 폐철했으니 죽을 지경이오. 그것도 모르고 가시오?"
사공은 안됐다는 듯 혀를 찼다.
"어사 출두와 장마당이 무슨 상관이오?"
"답답도 하시오. 용두섬에 가면 세상에없는 게 없는데……. 이놈 입이 방정이오만조정에서 내려온 벼슬아치들은 죄다 자사가 진상한 계집들과 뒹굴다 갈 테니 어찌원망하지 않겠소?"

고덕술은 두려운 생각에 적발한 물목을품속 깊이 넣었다.
"어서 떠나자."
이렇게 많은 재물을 숨겨두는 것은 권신의 비호를 받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아직도 감찰할 게 많습니다. 어사께서먼저 배에 오르시면 저희들이 뒤따라가겠습니다."
수행 관리는 더 많은 비위를 찾아낼 수있을 거라 말했다.
"더 이상 머물다가는 변을 당할 것 같다.해무량이 알기 전에 떠나자."

배는 온통 화염에 싸였다. 어사 고덕술부터 죄 없는 사공까지 불에 타 죽거나 물에빠져 죽었다. 배는 고스란히 바닷물 속으로가라앉고 말았다. 흔적이라고는 타다 남은송판과 배에 실려 있던 물건들뿐이었다.

"어사의 시신 속에 이미 새로 꾸며 만든장계를 넣어두었습니다. 내일 바다에 떠오른 시체를 소금에 채워 도성으로 보내겠습니다. 어사 일행을 돈 많은 상인으로 알고공격한 해적들을 자사께서 몸소 추격하여침몰시켰다고 주달하면 됩니다."

"폐하, 어사 고덕술이 해적에게 살해된사건은 의혹이 있나이다. 선제께서 어세하시는 동안 뭍에는 비적이 없고, 바다에는해적이 없었나이다. 어사 일행 중에 섬으로감찰 나간 자는 단 한 사람도 살아 오지 못했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고덕술의 시신만 떠올랐고, 그 품속에서 나온 장계가 해무량의 치적만 나열했겠나이까. 다시 어사를 보내되 암행하게 하옵소서."
해무량은 내시감 해지량의 사촌아우여서 내밀하게 어사를 보내 암암리에 감찰해야 했다.

"천하의 주인은 폐하뿐이나이다. 어사는폐하의 칙서를 받들고 출사했나이다. 어사를 죽임은 곧 폐하를 능멸한 것이니, 반드시 밝혀 국기를 바로 세우소서."

"해씨 가문에서 강직하고 흉금이 넓은자를 골라 보내옵소서."
"해씨 가문에서 고르라면……."
"나중에 태후마마께서 아시더라도 공정했다고 할 수 있나이다."
"과연 양책이오."
대이진은 해동정에게 밀명을 내려 어사를 제수하고 염주로 암행하라고 명하였다.해동정은 성정이 곧고 바른말하는 데 앞장섰으며, 당나라 유학생을 선발할 때 아들해초경이 으뜸으로 뽑힐 만큼 박학다식한선비였다. 장안의 태학에 들어가 당나라의걸출한 인재들과 겨루는 유학생은 소년급제를 했거나 학식과 지혜가 뛰어난 자를 선발했다. 이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거정, 주승명, 고수해는 동량지재라 하여 젊은나이에도 관작을 높이 받았다.

"병사한 게 아니라, 염주자사의 비리를고발했다가 독살당했습니다."
순간 해동정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 말이 사실이오?"
"어찌 생명의 은인 앞에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건강하셨던 아버님은 염포 거상박무덕의 집 잔치에서 교묘히 독살당했습니다. 독살이 아니고서야, 아버님이 쓰러지자마자 해무량의 수하들이 들이닥쳐 시신을 거둬갔겠습니까? 수하 중에 다행히 아버님과 절친한 사람이 있어 귀띔해 주었습니다. 언젠가 내막을 소상히 밝혀 조정에상주하려고 은밀한 곳에 감춰두었습니다."

해동정은 좌우를 물리친 해무량에게 두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자사께서는 내가 누구이며, 왜 이곳에왔는지 알고 있소. 내가 덫에 걸렸으니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일러주시오. 이렇게 참담한 누명을 쓰고 살기 싫소. 조정에서 도대체 어느 누가 자사와 밀통하는지 알고싶소."

"폐하, 폐하의 성덕을 널리 받들어야 할권신은 천하만민이 우러를 만한 만부지망의 인재를 중용해야 하나이다. 그럼에도 해씨 가문을 사사로이 중용했고, 입신양명에만 혈안이 된 자와 절조 없는 자, 뇌물을 바쳐 벼슬을 구걸했거나 백성을 괴롭힌 자,인륜을 그르치거나 줏대 없는 자에게 너무무거운 감투를 씌웠나이다. 장차 나라의 손실이 침중할 것이니, 폐하의 재결을 거두어주소서."

이듬해 이른 봄 해무량은 드디어 용원부도독을 제수받았다. 해동정은 대중정 자리에 올랐다. 대이진이 계위한 이래 처음으로큰 폭의 관작 개편이 이루어졌다. 눈에 띄는 것은 태후 해수련 측근들이 대거 발탁되었다는 사실이다. 태후의 등등한 위세 앞에감히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황제의스승인 태사 신작은 편전대령한 문무백관앞에서 간쟁을 서슴지 않았다.

"아무리 짐에게 경전을 강의하는 스승이지만 지나치시오. 나라가 이만큼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이 태후마마의 은사임을 어찌모르시오?"
"폐하의 위엄은 천둥처럼 무서워야 하고권위는 태산처럼 무거워야 하나이다. 현명한 황제는 반드시 천하의 주인임을 잊지 않나이다."
옳은 소리였으나, 서궁에서 편전 소리를모두 듣고 있는 태후가 걱정이었다. 대이진은 스스로 꼭두각시라는 걸 알고 있었다.조정 대신과 변방의 장수들까지 모두 태후에게 조아리고 있어, 태후의 말 한마디면아우인 대건황에게 천하를 넘겨야 할지도모른다.
"물러가시오. 짐이 찾을 때까지는 입궐을 금하겠소!"

신작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표정이 결연해 보였다.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해지량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소리를했다.
"조금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많이 훔치면 군주가 된다고 했소. 태사는 너무 많은걸 훔치려 하고 있소. 충역을 뛰어넘기에는너무 정직하오."

"황상께 아뢰시오. 불경에 이르기를 불이 나서 뭇 생명이 죽을 지경에 작은 앵무새 한 마리가 제 깃털에 물을 적셔 불을 끄려고 했소. 그랬더니 원이 이루어져 불을끄고 뭇 생명도 구했다 했소. 신이 아무리앵무새 노릇을 하고 싶어도 물이 멀리 있으면 깃털을 적실 수 없다고 아뢰시오."

"황상께 한시라도 쉴 틈을 주지 말라. 천하 미인들을 물색해 끝없이 향락에 빠지게해서 책과 충신의 말을 멀리하고 조정대사를 귀찮아하게 하라."
대이진은 어려서부터 싫증을 잘 내는 성미였다. 후궁들도 수시로 바꾸어 침궁에 들게 할 만큼 변덕이 심했다.
"골라 바친 후궁은 탐염이 진동하여 황상의 총첩이 되어야 한다."

황제 대이진은 총애하는 후궁들과 대신들을 거느리고 파천하듯 홀한해에 행궁을차렸다. 병란은 아니라도 가뭄으로 지친 백성들이 아우성치고 굶어죽어 난리와 다름없었다. 이런 판국에 황제가 도성을 떠나자민심은 더 흉흉해졌다. 황제가 황음무도하고 태후의 섭정으로 하늘이 진노한 것이라는 풍문도 나돌았다.

병란을 알리는 봉화였다.그리고 뒤따라 동경용원부에서 병란이 일어났다는 파발이 도성으로 날아들었다.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봉기하여 염포현승 기국청과 염주자사 은사공을 죽였고, 동경용원부 도독 해무량은 중경 쪽으로 도망쳤다는 급보였다.
반란의 수괴는 거상 장사경과 율창직이었다. 그들이 봉기하자 놀랍게도 군사들이기다렸다는 듯 반란에 합류하여 동경용원부를 함락했다. 농어민은 물론이고 염전의역부들과 상인, 삯일꾼들까지 반란 대열에뛰어들었다. 급보를 받은 해태후는 분기를누르지 못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동경용원부 도독해무량이 변방 수장 가운데 가장 많은 공물을 보냈사옵니다.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리다 못해 봉기한 것이옵니다."
"어찌 수습할 수 있겠는고?"
"조금 더 지켜보면 반드시 수습할 길이있을 것이옵니다."
태후궁에서 물러나오는 장덕진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앞날을 예견할 수 없는 정황이었다.

태후궁의 젊고 다부진 내관들은 밤마다 태후 침소에 들어 온몸으로 해수련을섬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태후가 아끼는 총신들을 은밀히 육총신이라 불렀다.
해수련은 태후에 오른 뒤에야 비로소 황제들이 여색을 탐하는 까닭을 이해하였다.
여인으로 태어나 가장 높이 오르는 자리가 태후로되 가장 외로운 자리도 그 자리였다. 남색의 황홀경이 이리 좋고, 권세 또한 이리 좋은 걸 왜 진작 몰랐던가. 천하를호령하고 있으니 이리 황홀한 것을…….

"황상께서 환궁하여 친정하게 하옵소서.목마르고 배고픈 건 군사들도 마찬가지옵니다. 진병한 군사들도 불만이 터뜨려지면회군할지 모르옵니다. 그때는 마마의 안위가 근심이옵니다. 그러나 황상께서 몸소 군사를 이끌면 사방에서 충성스런 군사와 현사들이 모여들고 반란군은 명분을 잃고 내홍에 휩싸이게 되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이참에 신작과 황친을 비롯하여 간쟁을일삼는 자들을 숙청하옵소서. 반란군이 그들을 섬기고 있으니 절호이옵니다."
"옳은 말이로다."

"참으로 답답하시오. 반적들은 폐하를폐하고 신작을 옹립하려고 하오. 지난날의을사유신을 받들어 사족과 양민을 구별하지 않고 노비와 부곡을 양민이 되게 하려는것이오."
뜻밖의 소리에 당황한 대이진의 낯빛이굳어졌다.
"설마하니 신작이……."
해수련이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반란군이 신작 만세를 외치는 걸 모르시오?"

해지량과 신작의 모습이 겹쳐졌다. 신작의 직간이 떠올랐다.
"엄인을 내시감으로 삼으면 밤낮없이 황궁에 기거하면서 폐하의 뜻을 잘 탐지하여비위에 맞는 소리만 하게 되옵니다. 죄를숨겨 간교를 품고, 미혹한 재간으로 폐하를속이며, 황궁 밖의 진실을 어지럽게 하여폐하께서 보고 듣는 것을 혼미하게 되옵니다. 환관이 궁성에 자리잡으면 계속 환관을 길러 궁성으로 끌어들인 뒤 그들끼리 아첨으로 폐하의 환심을 사는 재주를 익힐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끝내 폐하께서 책을 멀리하고 충신을 내쫓고 여색으로 미혹케 되어 반드시 경술을 배척하므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은 누란지세에 빠지게 되옵니다."
대이진은 때때로 해지량의 중용을 후회했다. 생김새부터 싫었다. 나이 마흔인데쭈글쭈글 늙었고 졸린 듯한 눈과 기이한음성, 비쩍 마른 몸과 구부정한 어깨, 걸을때마다 앞으로 고꾸라질 듯 겅둥거리는 게싫었다. 그러나 한편, 그런 그가 옆에 없으면 불안했다. 해지량이 건네주는 여인이 없으면 심심했고 아첨하는 말이 없으면 짜증났다.

계책을 마련한 것은 해무량과 그의 심복왕가희였다. 순시 나섰다가 치소인 동경성을 빼앗긴 해무량은 중경으로 도망쳤다가다시 상경으로 달려왔다. 살길을 찾지 못하면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그래서 살궁리 끝에 반간계를 쓰되, 태후와 해지량이가장 싫어하는 신작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계책이 기이하다고 생각한 해지량은 태후에게 먼저 아뢰었다. 해수련은 고심 끝에청을 받아들였다. 해수련의 고심은 두 가지였다. 황제가 친정군을 이끌고 대승을 거두면 황제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고, 만약 친정군이 패하거나 내분이 일어 도성이 함락되면 치욕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태후를 폐하여 사가로 내쫓김을 당한 척하여 병란이 수습된다면, 신작과 같은 구신들을 한꺼번에 처단하고 계속 섭정할 수 있을것이다.

"암계가 분명합니다. 태후를 폐했다면돌멩이도 웃습니다. 도망갔던 해무량이 제발로 기어들어온 것도 기이합니다. 천하에간특한 해무량이 스스로 참수당할 줄 알면서 뇌옥에 갇혔겠습니까?"

신작은 다 꿰고 있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바치겠다. 누가 이기든 수많은 백성이죽는다. 기근에 허덕이는 나라에서 내전이일면 어찌 외적들이 두고 보겠느냐?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내 목숨이 무에 그리 소중하겠는가."

"대부시여, 운명을 하늘에 맡기시라. 그대들은 수만 백성을 살려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신작과 반란의 주역들이 막 남문을 통과하는 순간, 창검궁시로 무장한 금군들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찌르고 베었다. 삽시였다.신작 일행이 들어서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대부시여, 운명을 하늘에 맡기시라. 그대들은 수만 백성을 살려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신작과 반란의 주역들이 막 남문을 통과하는 순간, 창검궁시로 무장한 금군들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찌르고 베었다. 삽시였다.신작 일행이 들어서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대씨의 사직이 분명한데, 해씨가 치세하고 있나이다. 선제와 선조들께서 무어라하시겠나이까?"
대이진은 가슴만 파고들 뿐 입을 열지않았다.
"이대로 계시면 오래지 않아 선위하고태상황이 되시나이다."
태상황이란 살아 있는 동안에 황위를 물려주고 물러앉는 것이었다.
"짐은 태상황이 되고 싶소."

"폐하 곁에는 해지량 같은 간신들이 있어 무엇이든 숨길 수 없나이다. 신첩을 믿고 맡기면 어의를 편케 하겠나이다."
"현책이 궁금하오."
"황궁 출입을 하는 자는 누구나 기찰을받나이다. 그러나 서궁 출입하는 여인들은자유롭나이다."
"여인이라…… 과연 절묘하오."

남쪽 바닷가에 있는 남경남해부 도독 신대남은 많은 봉물을 마련했지만, 해태후를즐겁게 하기 위해 기이한 재주를 가진 자들을 뽑아 잔치마당에서 마음껏 작희를 뽐내기로 했다.

시해 음모의 전말은 잔치 후 사흘 만에밝혀졌다. 남경 예인들을 깊은 산속에 묶어두고 예인인 척 어화원 잔치에서 군무를 추며 태후에게 비도를 던진 무리는 황후 주신강의 사주를 받은 오사마의 무리였다. 오사마는 황후의 시위로 잠시 서궁에 머물다가궁성을 떠나 용마사에 머물렀다.

오사마는 남녀 20명을 선발하여 황후의뜻을 받들기로 맹약하고 해태후를 주살할궁리를 하고, 생신잔치에서 태후의 심장에칼을 꽂을 참이었다. 태후를 주살하는 순간황제가 칙지를 내려 태후를 처단했음을 선포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마마, 누구라도 황후마마를 혹독히 다루어 효수경중하리라 생각하옵니다. 사가에서도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면 살아날 길이 없사옵니다. 이럴 때 마마께서 두터운 은혜를 보이시면 모두 마마의섭정을 흠숭하게 되옵니다."
"그 요망한 것이 두터운 은혜를 잊고 암계를 부리지 않겠느냐?"
"마마, 머지않아 반드시 요망한 꼬리가잡혀 스스로 자결할 것이옵니다."

내시감은 황제의 근신이지 태후의 근신이 아닌데도 태후는 수시로 해지량을 서궁으로 불러들였다. 마마의 변이 수습되면서태후의 섭정은 더욱 강화되었다. 황제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대이진은 대전에 나가지 않았다. 국사는 모두 권지국사가 된 해태후에게 일임한 채 후궁이나 궁녀들 치마폭에 싸여 세월과 여인을 희롱하였다. 모두들 오태후가 권지국사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던 때를 연상했다.

"남근이 없는 사람만이 엄인이겠느냐.구중궁궐에서 긴긴밤을 홀로 지새며 달빛이 지아비 얼굴인 줄 아는 여인도 분명 엄인이다."
그 한마디에 해지량은 고개를 더 깊숙이숙였다. 해태후는 밤마다 남색을 즐겼다.그녀가 아끼는 남총만도 족히 대여섯 명은되었다. 말로는 외로운 척하지만, 밤 깊도록 환락경에 빠지기 위해 혼몽약을 찾았다.

권세를 빼앗겨 허수아비가 된 황제는 외로움과 분노를 달래기 위해 밤마다 여색에취하고 천하지존으로 군림하는 태후는 권세가 지나쳐 위망을 견디지 못해 남색을 취했다. 세월은 황제 대이진을 더 몽롱하게만들었고, 태후 해수련을 무치하게 만들었다.

"덕산대사가 바쳐 올린 금불상은 바라만봐도 악심이 사라지고 선심이 생기옵니다.당나라 황제는 내부 혼란을 밖으로 돌리기위해 우리를 공격할 궁리를 할 것이옵니다.그러니 금불상을 보내옵소서."
"안대문을 사신으로 삼아라."
해태후는 금불상을 물선으로 내놓았다.당나라와 화친하기 위해 무엇이든 아끼지않고 귀한 물선을 보냈다. 전쟁을 치르려면막대한 인력과 물력을 소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금불상을 가지고 당나라에 갔던 안대문은 환대받지 못한 채 돌아왔다. 깜짝 놀라연유를 묻자 안대문이 대답했다.
"당나라 황제는 도교를 숭상하여 불교와경교, 마니교와 배화교를 싫어한다고 하였사옵니다."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마마, 그런 청을 하는 순간 금불상을 파할지 모르옵니다. 당제에게 변고가 생기지않은 것을 보면 불상은 아직 온전한 듯하옵니다."
송경신은 당나라 궁성에서 금불상을 보관하는 것이 좋다고 우겼다. 한쪽 눈을 뜨고 있는 불상이 당나라 궁성을 지켜보기 때문에 감히 발해를 공략할 궁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송경신은 천문에 해박하고 학문이 깊은 명신이어서 해태후가 중용했다.

내시감 해지량이 궁성으로 아편을 반입한 후 발해 궁성에서는 앵속화를 황상화라고 불렀다. 아편은 당나라에서 구해오는 것도 있었지만 어화원 양지바른 곳에 심은 여춘화의 덜 익은 열매 껍질을 칼로 에어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진으로 직접 만들기도했다. 그래서 여춘화가 피어 있는 곳에는항시 금군이 창검을 들고 지켰다

해태후는 아편을 금하기로 작정하고 과감하게 손을 떼었다. 황제와 둘째아들 대건황이 하루가 멀다 하게 즐기고 해지량까지아편에 취하자 단호하게 마음먹었다. 해태후는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대건황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태후궁 창고를 개조하여 가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이진이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다. 자손도 없었다. 해태후는 혼수상태에 빠진 대이진을 쳐다보고 어금니를 악물고 돌아섰다. 병석에 누운 지 불과닷새 만에 대이진은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정축(857)년 정월 열이틀이었다. 재위 26년 동안 어머니 해태후에게 정사를넘긴 채 혼몽한 상태로 살다가 힘없이 무너졌다.
황태제 대건황이 계위하여 연호를 대정으로 바꾸고 선제 대이진의 시호를 장황제로, 묘호를 장종으로 했다. 26년 동안 섭정하며 천하를 주무른 해태후는 작은아들 버릇을 고치기 위해 태후궁 창고를 개조하여 가두었다.

태후를 질책하고 논힐하며 해씨 일족들의 전횡을 야단치던 황친 중에는 비명횡사하거나 밤사이 자객의 손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황친들은 그것이 태후의 은밀한 징계라는 걸 알았다.

황친들의 사치는 끝이 없었다. 더러는 그들 때문에 관고를 걱정해야했다. 이에 해태후는 황친들을 대거 숙청할 궁리를 했다.
"마마, 황친의 수효를 줄이고, 그들에게나누어준 식읍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사직을 보전하기 어렵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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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홀한성을 점령한 대창해는 태자 대신덕을 동궁에 가두고 서궁을 봉쇄했다. 그러면서도 대신덕과 황태후 고운목의 저항이 큰 걱정이었다. 대가 약한 대신덕은 순순히 국새를 내놓고 동궁에 갇혔지만, 고태후는 끝까지 굴종하지 않았다

고태후는 교지를 한눈에 읽고 찢어버렸다. 창검을 든 군사들의 서슬 퍼런 눈초리에도 전혀 굴할 기세가 아니었다.
참다 못한 대창해는 호위 군사를 대동하고 서궁으로 갔다. 고태후가 갇혀 있는 태후궁은 한 팔 간격으로 무장한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할 만큼 삼엄했다.

고태후는 가볍게 웃었다.
"잘 새겨들으시오. 여인이지만 칼날이두려워 초목이 모두 적군으로 보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소이다. 비록 힘이 모자라 역신의 손에 죽는다면 기꺼이 죽으리다. 구천에올라 모든 선제들께 고하고 악귀가 되어 역신의 무리를 참하겠소."

"초륜하지 못한 자가 제위에 오르면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이 곤궁해지는 법이니부디 역신의 너울을 벗겨내고 과욕을 삼가시오."
칼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고태후의 표정은 너무나 대범했다. 대창해는 칼을 치켜들었다.

"불자라면 지켜야 할 금계가 있소이다.중생을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그대는 황제의 신하와 군사들을 죽이고 범궐하여 태후마저 죽이려 하니 첫 번째 금계를 어겼소.훔치지 말라 했거늘 언감생심 황위를 훔치려 하고 사직을 찬탈하려 하니 두 번째 금계를 어겼소. 또한 거짓말을 하지 말라 했는데 황상께서 붕어했다고 거짓을 말하고천하가 역적에게 굴종했다는 헛소리를 했으니 세 번째 금계를 어겼소."

"내게 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황상뿐이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태자를 풀어주고 대전에 엎드려 석고대죄하시오. 그러면 죽음은 면할 것이오. 황상께서 진격하면 도성이 삽시에 조아릴 것을 왜 모르시오."

황친과 신료들이 황제를싫어할망정 태후는 받들었다. 후덕해서 황친들을 꼼꼼히 챙긴 탓도 있지만 성정이 다사로워 두루 화친했기 때문이다. 지금 태후를 참하면 황친들이 등을 돌릴 수도 있었다

동경용원부도독 고좌민과 장령부도독 임기록, 솔빈부도독 최가림과 휘하 변방 장수들이 뜻밖에 황명을 받들어 토평군에 가담했다는 소식이 대창해에게 전해졌다. 뿐만아니라 변방의 도독, 자사, 현승과 장수들이 대창해에게 군사를 증원해 주지 않기로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태자의 교지만 있어도 대인수를 폐하고계위할 수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황제의 친정군이 달려오고 궁성에는 태자가 버티고있습니다. 이참에 태자를 주살하고 등극해야 합니다."

물론 토평군에는 천하명장이라는 장수와충성스런 군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면 포악한 짐승도 놀란다는 주홍기사단과 황제를 호위하는 시위와 금군들이 즐비하지만 모두 합쳐야 수천 명에 불과했다. 도성에 남겨두었던 금군은 반란군에게 제압당했으니 군사력으로 본다면 반란군의 군세가 훨씬 우세했다.

"폐황 대인수를 사로잡거나 참하지 않고는 계위할 수 없습니다. 만약 대인수가 신기한 전술로 도성을 함락하면 현책이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역적이 되고 멸문지화당할 것을 왜 염두에 두지 않습니까? 대군께서 황위에 오르시려면 군사를 휘몰고 남정하여 대인수를 주멸해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대군께서는 결코 천심을 얻지 못합니다. 대인수가 살아 있는 한 등극할 수 없습니다."
원로대신이자 황친인 대신명이 호통치듯말했다.

"자고로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긴다고했소. 우리가 남정하는 사이에 대인수의 군사가 도성을 침입할 수 있으니 백성과 노비를 조련시켜 도성을 사수하면 보다 많은 군사를 이끌고 대인수를 공격할 수 있소."
대창해는 하루빨리 대인수를 물리치고황위에 오르기 위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곤명을 홀한성 수성 대총관으로 명했으니 귀신이라도 준동하지 못하오."
대곤명은 황친이지만 서자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고도 낮은 관작으로 비탄에 젖어 살던 자였다. 대인수는 그의 뛰어난 무예와 용맹함을 높이 사 전투마다 선봉을 삼았고, 혁혁한 공을 세울 때마다 여러 차례초천하여 대장군으로 삼았다. 그에게 초천장군이란 별호가 붙은 것도 그런 사연이었다.

대곤명은 황제의 총신이었지만 대창해가 반란을 일으키자 선뜻 가담했다. 대창해가 황위에 오르면 무관으로서 더 이상 오를데가 없는 진단대장군 겸 태복경에 봉하기로 약조했기 때문이다.

반란의 주역들은 대곤명을 선봉에 세우지 않았다. 그가 큰 공을 세우는 것도 싫었고, 혹시나 군사를 이끌고 변심할 가능성도 있었다.

태자 대신덕이 그의 아들 대이진과 함께볼모가 되었으니 자칫하면 사직이 어지러워질 수 있는 중대 고비였다.
"사직과 백성의 안위를 위해 어느 정도의 참화를 각오해야 하오."
대인수는 이미 태자와 황실의 참화를 각오하고라도 사직의 안녕을 도모할 작정이었다. 무서운 결심이었다.

"폐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나이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반란군을 평정하면 폐하께서 을사유신을 제대로 펼칠 수 있나이다. 어쩌면 하늘이 폐하의 성덕을 크게일굴 수 있게 시련을 준 듯하옵니다."
신작의 위로가 대인수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는 없었다. 대인수는 단숨에 짓쳐들어 역적의 무리를 단칼에 베고 싶은 분노를참을 수 없었다.

"파저라는 게 있사옵니다. 신은 물결 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일 뿐이옵니다. 좋은세상이 가까워졌으니 옥체를 보전하옵소서."
대곤명은 큰절을 올리고 일어섰다. 당당한 체구에 훤칠한 장부의 기개가 느껴지는장수였다.
대곤명이 돌아가자 고운목은 혼잣소리로 파저라는 말을 되새김질했다. 물결의 밑을 파저라고 했다. 그렇다면 물결 밑에서헤엄치는 물고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뭔가 예사롭지 않은 여운에 끌려 곰곰이 새겨보았지만 뚜렷이 잡히는 게 없었다.

"장수 대곤명이 거느린 군사는 거개가노비와 부곡이 아니면 양민이옵니다. 그들은 폐하를 흠숭하고 있나이다. 영리한 대곤명이 어찌 그것을 모르겠나이까? 때를 기다리는 것 같으니 마마께서 모른 체하시고옥체를 보전하옵소서."
대사연은 귀띔하듯 말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황상의 성덕을 따르는 게 하늘의 뜻이요, 역적을 따르는 게 백성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분하여 대장군을참하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인의를 버린 대장군은 장수가 아니라 혼신일 뿐입니다."
순간 대곤명은 사방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대장군의 수급을 하늘 높이 매달고 역적의 무리를 모조리 베고 성문을 열겠습니다. 그리고 대창해를 주살하겠습니다. 여봐라! 대문을 열고 횃불을 올려라!"
대도만덕이 소리쳤다. 그러자 대문이 활짝 열렸다. 횃불이 앞뒤 좌우로 번지는데궁성이 온통 군사로 에워싸인 듯했다. 대곤명은 이미 대도만덕이 도성을 장악했다는걸 알았다.

대곤명의 목을 벤 대도만덕은 밀지를 주워 읽었다. 황제의 밀지가 분명했다. 대곤명은 한순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첩을 올려충성을 맹약한 것 같았다.
대도만덕은 눈앞이 캄캄했다. 경솔했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역적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말라. 남김없이 도륙하라!"
대도만덕의 외침은 분노로 가득했다. 끝까지 지켰어야 할 태자가 주살되었으니 원통함에 가슴이 찢기는 듯했다. 분노한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도망치는 역적들을 찾아목을 베었다.
새벽녘에 대도만덕은 군사를 이끌고 태후 앞에 부복하고 죄를 청했다.

"태자의 죽음이 나라를 잃은 것보다 더슬프단 말이냐?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라 역적을 토평하고 백성들을 진무할 때다.출진 채비를 서두르라!"

반란군의 모주인 왕축경은 갑자기 불어난 도성 수비군의 허실을 대번에 눈치챘다.
"공성무기 없이 공격하기에는 우리 군사의 손실이 너무 크지 않겠느냐?"
"노비와 부곡은 보잘것없어서 처음에는짐승처럼 용맹하지만 기가 꺾이면 놀란 짐승처럼 도망칩니다. 천 명만 희생시키면 성문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대창해의 수급을 자루에 담아든 대도만덕은 황제 앞에 꿇어 엎드렸다. 대도만덕은무모하게 황궁을 장악하려다가 태자를 시해하게 만든 죄를 청했다. 황제가 그 죄를물으면 천하 없는 공을 세웠더라도 살 길이없었다.
"장하고도 장하도다!"
황제의 옥음은 뜻밖이었다. 대도만덕은더 깊이 조아렸다.

대인수는 대사령과 함께 을사년(825)에선포했던 유신을 더욱 강화했다. 그토록 유신을 반대했던 대소신료들도 모두 침묵했다. 대인수는 신작을 태사로 봉하고 을지후문을 태복경 겸 진단대장군으로 삼았다

"이것은 가림토 정음 38자로 오래 전에새긴 듯하옵니다."
누가 새겼고 왜 새겼는지 밝힐 수 있는단서는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가림토 정음38자만 세로로 새겨 있을 뿐이었다. 대인수가 석판을 매만지며 새벽녘에 꾼 꿈을 털어놓자 신작이 해몽을 했다.

대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들이 책을 읽고 과거를 보려 해도 당문이 아니면가림토인데, 당문은 배우고 쓰기 어렵고,뜻마저 다양해서 익히기 쉽지 않았다. 가림토는 그보다 쉽지만 정음의 수가 많고, 뜻이 오묘해서 시를 짓고 문장을 다듬는 데는적격이지만 양민이 배워 익히기에는 결코쉽지 않았다.

가림토가 제대로 쓰이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족들이 당문을 선호해서 신분을 가르고, 존귀함과 비천함을 구별하려는욕심 때문이었다. 즉, 당문으로 시문을 지으면 지체 높게 생각하고 가림토로 시문을읊으면 서인 취급했다.

"신은 폐하의 성덕을 받아 당나라에 다녀왔사옵니다. 당나라는 조정 안팎이 어지러워 밖으로 눈 돌릴 틈이 없고, 신라 역시김헌창과 김범문의 반란 이후 정세가 어지럽사옵니다. 일본은 여러 해 동안 기궁하여교빙조차 꺼릴 지경이옵니다. 그러나 폐하의 성덕은 사해로 번져 백성들은 근면하고신료들은 충성스럽사옵니다. 어찌 강역이넓고 사람이 많음에 견주겠사옵니까?"

"백제를 침략한 소정방은 국서고를 불태워 조선과 백제 역사를 모두 없앴고, 설인귀는 고구려의 국서고를 불태워 옛 역사와고구려 역사를 없애버렸도다. 선비들이 이를 통탄하지 않으면 모화 선비가 아니고 무엇인고? 선비나 신료들이 우리 역사인 단기고사가 가림토로 쓰였다고 탐독하지 않으니 또한 통분할 일이로다. 오죽하면 황조복이 단기고사를 당문으로 옮겼겠느냐?"

"이미 고구려 때 가림토 문자를 일본에전했도다. 조선 제3대 가륵단군께서 을보륵을 시켜 만들었으니 우리 선조의 숨결이어려 있는 문자가 아니더냐? 지금으로부터3천여 년 전에 창제된 문자이니 흐른 세월만큼이나 잘 갈고 닦아 써야 하도다."

"태평성대를 구가하기 위해서 반드시 문자가 간결하고 쓰기 쉬워야 하도다. 그렇게익힌 문자로 옛 역사를 배워 익히고 앞날을예견하는 지혜를 터득하면 어찌 천하 대국이 되지 않겠는고?"

"본디 가림토는 가림다라고도 불렀사옵니다. 가는 더하고 다는 많아진다는 뜻이옵니다. 즉 수는 더해지면 많아지고 빼면 줄어드는 것인데, 그런 수의 원리를 따르므로삼라만상의 모든 사물을 다 표현할 수 있는문자라는 뜻이옵니다. 이는 곧 천, 지, 인의의미를 글자에 담아 하늘의 소리이든 땅의소리이든 사람의 소리이든 흉내 내지 못하는 게 없사옵니다."

을사유신과 북벌, 당나라를 비롯한 신라와 일본과의 다양한 교역, 해를 이은 풍년,병들고 기궁한 백성들을 나라에서 구휼한덕에 발해 강역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그런데 황제 대인수가 병상에 누웠다. 온백성이 황제의 쾌유를 빌고 있다는 소식은멀리 당나라 장안까지 날아들었다.
이담의 뒤를 이어 정미(827)년에 계위한당제 이앙은 대인수를 위로하기 위하여 이숭선을 발해 도성으로 보냈다. 이숭선은 병상에 있는 대인수를 알현하고 당나라 황제의 신한을 올렸다.
‘해동성국 대발해.’
병상에서 대인수는 이앙에게 휘호를 돌려주고, 사신 이숭선을 옥에 가두라고 명했다. 영문 모르는 내시감 임산록이 부복했다.

"발해를 동쪽 바다의 나라라 칭함은 결국 우리를 멸시함이다. 당나라가 세상의 중심이고 우리가 동쪽 바닷가에서 융성한 나라를 가꾸었다는 뜻이 아니더냐? 짐이 당제 이앙에게 해서성국 대당이란 휘호를 보내면 곱게 두 손으로 받겠느냐?"
임산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황공하옵니다."
"사신 이숭선을 보름 동안 가두고 풀어주어라. 그리고 품속에 짐의 휘호를 넣어보내라. 그리하면 발해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리니……."
대인수가 내린 휘호에는 해서성국 대당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명심하여 받들겠사옵니다."

"폐하의 성지를 받들어 선조들이 남겨준소리글자 가림토 정음 38자를 23자로 줄여무지한 백성들이라도 익히기 쉽고 쓰기 편케 했사옵니다. 오로지 폐하의 훈유를 받든것이옵니다."
대인수는 누운 채 손을 들었다 놓았다.
"경들의 수고로움에 경탄하도다. 정음스물석 자를 발해 문자로 삼을 테니 부디백성들을 고루 편케 하라."

"입술은 반쯤 열면서 내는 소리 ㅁ, 혀끝을 꼬부리면서 내는 소리 ㄴ, 숨을 아랫니쪽으로 내뿜으며 내는 소리 ∧, 입천장과코로 숨을 내쉬면서 내는 소리 ㆆ, 숨을 입천장으로 몰아내는 소리 ㄱ, 입천장에 혀끝을 대었다 떼면서 내는 소리ㅿ, 입천장에아랫니를 대고 숨을 내보내며 내는 소리ㅈ."
양지강의 목소리가 끊겼다. 황제 대인수는 그토록 열망하던 발해 문자 소리를 다듣지 못하고 승하했다. 때는 경술년 섣달스무닷새, 건흥 12년이었다. 새해를 며칠앞두고 백성들에게 성인으로 추앙받던 대인수는 숨을 거두었다.

대인수의 을사유신에 맞섰던 황친은 물론이요, 대소신료와 만백성은 섣달 그믐께승하한 황제를 숭례하느라 모두 소복하여설을 맞았으며, 대인수를 위해 제례상에 따로 술 한 잔을 올렸다. 황제의 붕어를 천하가 그토록 슬퍼하고 치세를 흠숭할지 대인수는 알지 못했다.
대인수의 뒤를 이어 맏손자 대이진이 계위했다. 선제 묘호를 성종으로, 시호를 선황제로 하고, 신해(831)년 정초에 발해 제11대 황제로 등극한 대이진은 연호를 함화로 바꾸었다. 반란군에게 아버지 대신덕을잃은 그는 나이가 어린데다 성품도 유약했다.

발해 문자 정음 23자는 선제의 성덕과큰 베풂으로 탄생했다 하여 백성들 사이에선문으로 불리었다. 대인수의 시호가 선황제인 탓도 있지만 백성들은 대인수의 성덕을 큰 베풂으로 여겼다. 선문을 발해 강역의 학당마다 가르치고, 도성에 있는 주자감에서 가르쳤다.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해서글공부하는 백성들이 도처에서 모여들었다.

대이진은 할아버지의 위망에 눌려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머니 말이 옳다고 여겼다.
"근신인 내시감과 대신인 대내상을 새로명하고 변방을 진무하시오."
대이진은 어머니 뜻에 따라 만인지상인대내상에 대공정을, 내시감에 해지량을 임명하고 변방의 도독과 자사를 비롯하여 장수들을 교체했다. 대공정은 황친으로 덕망이 높았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이래 대신의 반열에 오를 때까지두루 화친한 성품으로 평판이 좋았다. 내시감 해지량은 태후 해수련의 친조카로, 오라버니 해수청의 장자였다. 해지량은 품계를뛰어넘어 황제의 근신인 내시감이 되었다.

해수련이 조카 해지량을 지극히 아끼는까닭은, 젊은 시절 사냥터에서 사고를 당해사내의 상징인 옥근이 절단되었기 때문이다. 해지량은 문과에 장원급제할 만큼 머리가 좋았고, 무과에도 급제할 정도로 출중한 인재였다. 문무를 겸비한 동량지재라 하여 선제 대인수가 무척 아꼈지만 신료들과어울리지 못해 중용하지 못했다. 사고당하기 전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지만 사내구실을 못하자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 재혼하게 할 만큼 통이 큰 사내였다

"폐하, 자고로 백성이 고루 현명하면 정사를 제대로 펼칠 수 없었사옵니다. 백성이우둔해야 다스리기 쉽사옵니다. 글을 깨우쳐 유식해지면 불평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되옵니다."
"꼭 그러하더냐?"
"고금을 막론하고 충역을 뛰어넘는 자나역심을 품었거나 무리를 이끌고 준동한 자는 모두 유식한 자들이었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그러하옵니다. 그러나 태사의 한마디가폐하의 옥음보다 귀하고, 태사를 따르는 무리가 폐하를 따르는 백성보다 많사옵니다.태사는 지난 날에 선제의 그림자였고 지금은 선제의 현신과 같사옵니다."
신작은 발해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기에 대이진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어쩌란 말이냐?"
"서서히 물리쳐야만 하옵니다. 머지않아반드시 폐하께 간언할 테니 그때 징치하옵소서."
"태사가 그른 말을 하지는 않을텐데……."

"폐하, 선제의 을사유신으로 양민 중에는 크게 농경을 일구고 교역을 하여 재물을모은 호족이 많사옵니다. 노비나 부곡 중에부호가 많고, 변방에서 올린 장계를 보면그들은 관리의 말을 잘 듣지 않을 뿐더러위세가 관리보다 높다 하옵니다. 백성들도글을 깨우쳐 사리를 따지는 자가 많사옵니다."

사촌형 해지량이 내시감이 되자 해무량은 스스로 변방의 자사 자리를 달라고 애걸했다. 자사로서 너른 땅을 다스리고 싶었던 것이다. 염주는 바닷가에 치소를 둔 곳으로, 염전이 많고 교역선이 수시로 드나드는데다 농사가 잘되고 사냥거리가 많아 풍족했다. 특히 염주 소금은 품질이 좋고 염도가 높아비싼 값에 팔리며 염세가 많이 걷혀 치소의재정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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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8 - 오태후의 야망 김홍신의 대발해 8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8권, 오태후의 야망 – 오태후의 야망을 꺾고 발해 중흥의 기치를 든 대인수

1. 대발해 8권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계승혼란분석) 대원의 제거 이후 대화여에서 대명충으로 이어지는 단명과 불안한 황위 계승 과정을 분석함
ㅇ (외척전횡고찰) 무기력한 황권 속에서 오태후와 미사천이 권력을 장악하며 빚어진 황실 사유화와 궁중 정치의 폐단을 조명함
ㅇ (중흥과정규명) 대인수의 반격과 즉위, 그리고 북방 정벌과 을사유신을 통해 발해가 다시 중흥을 모색하는 과정을 고찰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 배경) 대체로 793년(계유년) 대흠무 붕어 직후부터 824년(갑진년) 전후 대인수의 개혁과 반란 진압 국면까지의 시기로, 발해는 짧고 불안한 황위 계승, 외척 정치, 궁중 암투, 민란과 반역, 북방 정벌, 제도 개혁을 차례로 겪으며 혼란 속에서 다시 중흥의 길을 모색하는 국면에 놓임.
ㅇ (공간적 배경) 상경성과 동경성, 오태후와 미사천이 권력을 틀어쥔 황궁과 도성, 제나라 및 당과 외교·전쟁이 이어지는 산동과 등주 일대, 그리고 철리·흑수·월희·말갈 제부가 분포한 북방 변방이 주요 무대로 제시됨.

다. 핵심 요지
ㅇ (계승 혼란과 황권 약화) 대원의 제거 이후에도 발해는 곧바로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대화여·대숭린·대원유·대언의·대명충으로 이어지는 불안한 계승 속에서 황권이 빠르게 약화됨.
ㅇ (외척 정치와 궁중 전횡) 대원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오태후와 미사천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면서 황실과 조정은 외척과 권신 중심의 궁중 정치에 깊이 흔들림.
ㅇ (대인수의 반격과 중흥 모색) 대인수는 궁중 전횡과 황실 혼란을 정리하고 황위에 올라 정통과 군심을 회복하며, 철리·흑수, 당의 등주, 장성 정벌과 을사유신을 통해 다시 강한 발해를 세우려 함.

2. 주요 내용 전개

가. 대원의 제거와 대화여의 재즉위
ㅇ (상경성 회복) 대숭린은 대원의를 치기 위해 상경성과 동경성을 포위하나, 무명선사와 신사정 등은 상경성 백성 또한 발해 백성이므로 무리한 공격은 피해야 한다고 간언함. 이에 대숭린이 상경성도독 대상의에게 항복을 권하는 칙서를 내리자, 대상의는 뜻밖에도 이를 받아들여 항복함.
ㅇ (동경성 함락과 대원의 최후) 흑수가 쳐내려오고 내부 신하들마저 차츰 대원의의 명을 거역하면서 그의 세력은 빠르게 흔들림. 내부 혼선까지 겹친 끝에 동경성은 무너지고, 대원의는 대사루의 칼에 죽고 대사루도 자결함. 이로써 7권 이래 이어지던 대원의의 권신 정치도 피로써 막을 내림.
ㅇ (대화여의 회복과 단명) 나송옥은 의녀 오수지의 도움을 받아 제니풀을 달여 먹여 대화여의 광증을 가라앉히고, 대화여는 살아남기 위해 한동안 미친 척을 이어 감. 이후 세 황자에 의해 다시 황제로 옹립되지만, 상경 천도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독 중독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숙부 대숭린을 후사로 정함.

나. 대숭린 치세의 한계와 계승 불안
ㅇ (수습형 군주의 한계) 대숭린은 대원의의 난을 정리하고 질서를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 기여하였으나, 즉위 뒤에는 신사정·무명선사·고건 같은 충신들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면서 사람을 넓게 쓰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냄. 그는 운문선사에게 조세와 군정에 관한 여러 계책을 듣고 상당 부분 시행하지만, 충신들을 다시 기용하라는 가장 중요한 조언만큼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음.
ㅇ (외교와 사치의 그림자) 대숭린은 밀아고를 당나라에 보내 제나라와 연합해 당을 압박하려 하나, 당이 보낸 물선과 미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셋을 자신이 차지하고 나머지를 근신에게 나누어 주는 등 군주의 절제와 품격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냄.
ㅇ (반역과 민란의 확산) 장마와 가뭄이 이어지고 나라의 피로가 누적되는 틈을 타 이복동생 대청윤이 반역을 일으키고, 대숭린이 용천을 폐쇄하자 백성들의 불만은 커져 곳곳에서 봉기와 약탈이 일어나 많은 백성과 군사가 희생됨.
ㅇ (제물의 비극) 무녀 백난별은 용신의 노여움을 풀려면 동남동녀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때 신사문이 두 남매 신달진과 신달지를 바치겠다고 나섬.

다. 대원유 즉위와 오태후·미사천의 전횡
ㅇ (무기력한 황제와 외척 정치의 재연) 대숭린이 죽은 뒤 장자 대원유가 즉위하나, 그는 무예를 게을리하고 식탐이 심하며 정치 감각도 떨어지는 군주로 묘사됨. 그 결과 모후 오태후가 섭정에 나서고, 오씨 가문이 궁중과 조정을 사실상 장악하면서 발해는 다시 외척 정치의 악순환에 빠짐.
ㅇ (미사천의 부상과 황실 사유화) 오태후가 기용한 미사천은 선제 때 밀려난 고씨 왕족의 마음을 붙잡고, 신씨·난씨 일가를 중용하자는 방책을 내세워 빠르게 실권자가 됨. 그는 배제된 세력을 다시 끌어들여 권력 기반을 넓히는 정치 기술자형 인물로 기능하며, 오태후와 결합해 황실과 조정을 더욱 사유화함.
ㅇ (오태후의 황위 욕망) 오태후는 대원유의 아들 대태성을 독살하고 자기 아들까지 제거한 뒤 스스로 황위에 오르려 하나, 대인수의 거병으로 그 계획은 좌절됨. 이후 대언의와 대명충이 차례로 황위에 오르지만 모두 허약한 통치 속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음.

라. 대인수의 반격과 즉위
ㅇ (정통 세력의 결집) 대인수는 위협 속에서 밀려나 있으나, 여전히 고구려 왕족의 정통과 군심을 모으는 상징적 존재로 남아 있었고, 마침내 오태후의 전횡을 참지 못한 측근들의 배신과 반발 속에서 반격에 나섬.
ㅇ (정권 교체와 새 시대의 개막) 대인수는 오태후와 미사천 시기의 궁중 정치를 정리하고 황위에 올라, 무너진 정통과 군심을 다시 모으는 중심으로 떠오름. 이는 단순한 왕위 교체가 아니라 발해가 다시 국가 운영의 방향을 바로잡기 시작했음을 뜻함.
ㅇ (대외 정세의 변화) 한편 제나라 이사도는 제거되고, 고구려 후손이 세운 치청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짐. 당은 제나라를 정벌한 뒤 발해를 향해 압박을 강화하며, 발해는 더 이상 외부 동맹에 기대기보다 스스로 변경 질서를 정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임.

마. 대인수의 친정과 발해 중흥의 완성
ㅇ (북방 정벌의 결단) 대인수는 철리와 흑수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고 보고 친정을 단행하며, 보다 기동성 있는 군제와 전투 장비 정비를 추진함.
ㅇ (당나라 정벌) 대인수는 북방 정벌에 그치지 않고 당의 등주와 장성까지 공략하며, 발해가 더 이상 수세에 머무르지 않고 당을 상대로도 공세적 위상을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줌.
ㅇ (대외 공세와 최대 판도) 철리·흑수 정벌과 등주·장성 공략을 통해 발해는 최대 판도에 이르고, 대인수 치세는 대외 팽창과 국경 안정이 함께 이루어진 시기로 자리함.
ㅇ (중흥 군주의 면모) 이러한 정벌은 대인수가 오태후 시기의 궁중 정치에서 벗어나 다시 대외 질서와 변방 통제력을 회복하고, 발해를 강한 나라로 다시 일으켜 세운 군주였음을 보여줌.

바. 을사유신과 개혁 저항
ㅇ (개혁의 선포) 대인수는 등주와 장성을 정벌한 뒤 을사유신을 선포하고, 제도와 국정을 바로 세우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냄. 그는 신작에게 가림토 문자를 바탕으로 발해 문자 개발에 힘쓰게 하며 제도와 문화의 독자성까지 모색함.
ㅇ (기득권의 반발) 그러나 귀족과 황친, 기득권 세력은 유신을 주도한 신작을 공격하고, 심지어 태자 폐위 상소까지 올리며 격렬히 반발함. 대인수는 개혁의 방향은 옳게 보았으나 반대파를 끝까지 제압하지 못하고 신작을 태백산으로 귀양 보내는 한계를 드러냄.
ㅇ (새 반란의 조짐) 대인수가 태백산에 행차한 사이 대청해의 반란 소식이 전해지고, 신작과 을지후문이 다시 비상 수습에 나서게 됨. 이는 발해 중흥이 시작되었어도 개혁과 안정을 둘러싼 싸움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줌.

3. 인물 및 통치 평가

가. 군주들의 명암
ㅇ (대숭린의 한계) 대숭린은 혼란 수습에는 기여했으나, 충신을 넓게 품지 못하고 절제에서도 한계를 보여 중흥 군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함.
ㅇ (오태후의 전횡) 오태후는 섭정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황위까지 넘보며, 발해 황실을 가장 심한 궁중 정치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음.
ㅇ (대인수의 중흥 군주상) 대인수는 정통과 군심을 회복하고 철리·흑수 정벌과 을사유신을 추진하며 발해를 다시 일으키려 한 군주로 제시됨. 다만 개혁 반대 세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한계도 함께 드러남.

나. 권신과 충신의 대비
ㅇ (미사천의 성격) 미사천은 권력 재편과 세력 흡수에 능했으나, 그 재능을 공적 개혁이 아니라 오태후와 결합한 사적 권력 강화에 써 조정을 더 깊은 혼란으로 밀어 넣음.
ㅇ (신작의 의미) 신작은 대인수 개혁의 핵심을 떠받치는 충신으로, 정치와 제도, 문자와 문화까지 함께 고민한 인물로 묘사됨. 그러나 그는 끝내 귀양을 가게 되고, 이는 대인수조차 개혁의 정당성을 믿으면서도 저항 세력의 벽을 끝내 넘어가지 못했음을 보여줌.

4. 거시적 고찰 및 역사적 함의

가. 황위 계승의 불안과 궁중 정치의 심화
ㅇ (짧아진 치세와 골육상잔) 대흠무 이후 발해 황제들의 치세는 급격히 짧아지고, 황위 다툼과 골육상잔이 반복되며 황권의 안정성이 크게 약화됨.
ㅇ (외척 정치의 악순환) 대원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오태후와 미사천이 다시 권력을 틀어쥐는 모습은, 발해가 외척 정치의 악순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줌.

나. 대인수 즉위의 의미와 개혁의 딜레마
ㅇ (혼란 봉합을 넘어선 전환) 대인수의 즉위는 단순한 반정의 성공이 아니라, 무너진 정통과 군심을 다시 모으고 나라의 바깥 질서까지 바로잡으려는 본격적 전환의 시작임.
ㅇ (중흥의 완성) 철리와 흑수 정벌, 당의 등주·장성 정벌, 을사유신 추진은 대인수 치세가 단순한 혼란 수습에 그치지 않고, 발해를 다시 강한 나라로 일으켜 세우는 중흥의 과정이었음을 보여줌.
ㅇ (개혁 저항의 현실) 그러나 귀족과 황친들의 반발, 태자 폐위 상소, 대청해의 반란은 개혁이 옳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정치적 결단과 지지세력이 없으면, 끝내 기득권의 반격에 짓눌려 꺾일 수 있음을 보여줌.

5. 종합 결론

가. 오태후의 야망과 황실 혼란
ㅇ (궁중 전횡의 극점) 대발해 8권은 오태후와 미사천의 전횡이 황실 내부의 계승 질서를 어지럽히고, 조정을 외척과 권신의 사적 권력 공간으로 바꾸어 가는 국면을 드러냄.

나. 대인수의 반격과 발해 중흥의 시작
ㅇ (정통 회복과 국운 반전) 그러나 대인수는 이 혼란을 정리하고 황위에 올라 민심과 군심을 회복하고, 철리와 흑수를, 당의 등주와 장성을 정복하여 발해 최대 판도를 이룸.

다. 개혁의 가능성과 미완의 과제
ㅇ (을사유신의 의미) 결국 8권은 발해가 가장 깊은 궁중 혼란과 권력 투쟁을 통해 다시 강한 나라로 나아갈 가능성을 되찾는 과정인 동시에, 나라를 바로세우는 일보다 기득권을 걷어내는 일이 더 어렵고, 가진 자의 욕심은 끝내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보여줌.

존명(尊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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