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도성으로 뇌물 심부름 갔던 해무량의 심복 왕가희가 태사 신작에게 곤장 30대를 맞고 겨우 돌아오자 해무량은 진노하고 말았다.
"내가 보낸 진귀한 물선을 거절한 것도괘씸한데 심복에게 태질까지 했으니 이는곧 나를 때린 것이다."

"금불상을 만들 형편이면 가난하고 병든자를 구휼해야 한다며, 한 번 더 뇌물을 보내면 그때는 탐관오리로 알고 삭탈하고 가산을 적몰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왕가희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눈초리가 야릇하게 번뜩였다.
"너는 어째서 금불상을 태사에게 주었느냐?"
"자사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이런 소식이 어찌 조정에 닿지 않았을까마는 그때마다 조정 대신들은 해무량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이에 황제는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시어사 고덕술을 염주로 파견했다.
강직한 충신으로 알려진 그는 태태후 고운목의 조카이자 백관을 감찰하는 중정대출신으로, 공명정대함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 소식은 지체 없이 염주자사에게알려졌다.

고덕술의 행차는 조촐했다. 소문대로 깐깐하고 강직했다. 영접사로 도성 밖 30리지경에 마중 나간 연타골을 야단쳐 들여보내고 스스로 관아를 찾아왔다. 고덕술은 관작이 높음에도 자사 해무량의 병상을 찾아먼저 예를 갖추었다.

고덕술은 조정에서 파악한 비위 사실은모함이거나 은폐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백관과 변방을 감찰해보면 어디든 크고 작은 비위가 적발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시일이 갈수록 흠잡을 데가없다는 게 점점 더 이상했다. 
"해무량이 사가와 관고의 재물을 은밀히빼돌려 바다 건너 섬으로 옮겼다는 제보가있습니다. 허락해주시면 배를 내어 다녀올까 합니다."

"조정에서 어사가 내려오는 바람에 모든장마당을 폐철했으니 죽을 지경이오. 그것도 모르고 가시오?"
사공은 안됐다는 듯 혀를 찼다.
"어사 출두와 장마당이 무슨 상관이오?"
"답답도 하시오. 용두섬에 가면 세상에없는 게 없는데……. 이놈 입이 방정이오만조정에서 내려온 벼슬아치들은 죄다 자사가 진상한 계집들과 뒹굴다 갈 테니 어찌원망하지 않겠소?"

고덕술은 두려운 생각에 적발한 물목을품속 깊이 넣었다.
"어서 떠나자."
이렇게 많은 재물을 숨겨두는 것은 권신의 비호를 받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아직도 감찰할 게 많습니다. 어사께서먼저 배에 오르시면 저희들이 뒤따라가겠습니다."
수행 관리는 더 많은 비위를 찾아낼 수있을 거라 말했다.
"더 이상 머물다가는 변을 당할 것 같다.해무량이 알기 전에 떠나자."

배는 온통 화염에 싸였다. 어사 고덕술부터 죄 없는 사공까지 불에 타 죽거나 물에빠져 죽었다. 배는 고스란히 바닷물 속으로가라앉고 말았다. 흔적이라고는 타다 남은송판과 배에 실려 있던 물건들뿐이었다.

"어사의 시신 속에 이미 새로 꾸며 만든장계를 넣어두었습니다. 내일 바다에 떠오른 시체를 소금에 채워 도성으로 보내겠습니다. 어사 일행을 돈 많은 상인으로 알고공격한 해적들을 자사께서 몸소 추격하여침몰시켰다고 주달하면 됩니다."

"폐하, 어사 고덕술이 해적에게 살해된사건은 의혹이 있나이다. 선제께서 어세하시는 동안 뭍에는 비적이 없고, 바다에는해적이 없었나이다. 어사 일행 중에 섬으로감찰 나간 자는 단 한 사람도 살아 오지 못했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고덕술의 시신만 떠올랐고, 그 품속에서 나온 장계가 해무량의 치적만 나열했겠나이까. 다시 어사를 보내되 암행하게 하옵소서."
해무량은 내시감 해지량의 사촌아우여서 내밀하게 어사를 보내 암암리에 감찰해야 했다.

"천하의 주인은 폐하뿐이나이다. 어사는폐하의 칙서를 받들고 출사했나이다. 어사를 죽임은 곧 폐하를 능멸한 것이니, 반드시 밝혀 국기를 바로 세우소서."

"해씨 가문에서 강직하고 흉금이 넓은자를 골라 보내옵소서."
"해씨 가문에서 고르라면……."
"나중에 태후마마께서 아시더라도 공정했다고 할 수 있나이다."
"과연 양책이오."
대이진은 해동정에게 밀명을 내려 어사를 제수하고 염주로 암행하라고 명하였다.해동정은 성정이 곧고 바른말하는 데 앞장섰으며, 당나라 유학생을 선발할 때 아들해초경이 으뜸으로 뽑힐 만큼 박학다식한선비였다. 장안의 태학에 들어가 당나라의걸출한 인재들과 겨루는 유학생은 소년급제를 했거나 학식과 지혜가 뛰어난 자를 선발했다. 이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거정, 주승명, 고수해는 동량지재라 하여 젊은나이에도 관작을 높이 받았다.

"병사한 게 아니라, 염주자사의 비리를고발했다가 독살당했습니다."
순간 해동정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 말이 사실이오?"
"어찌 생명의 은인 앞에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건강하셨던 아버님은 염포 거상박무덕의 집 잔치에서 교묘히 독살당했습니다. 독살이 아니고서야, 아버님이 쓰러지자마자 해무량의 수하들이 들이닥쳐 시신을 거둬갔겠습니까? 수하 중에 다행히 아버님과 절친한 사람이 있어 귀띔해 주었습니다. 언젠가 내막을 소상히 밝혀 조정에상주하려고 은밀한 곳에 감춰두었습니다."

해동정은 좌우를 물리친 해무량에게 두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자사께서는 내가 누구이며, 왜 이곳에왔는지 알고 있소. 내가 덫에 걸렸으니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일러주시오. 이렇게 참담한 누명을 쓰고 살기 싫소. 조정에서 도대체 어느 누가 자사와 밀통하는지 알고싶소."

"폐하, 폐하의 성덕을 널리 받들어야 할권신은 천하만민이 우러를 만한 만부지망의 인재를 중용해야 하나이다. 그럼에도 해씨 가문을 사사로이 중용했고, 입신양명에만 혈안이 된 자와 절조 없는 자, 뇌물을 바쳐 벼슬을 구걸했거나 백성을 괴롭힌 자,인륜을 그르치거나 줏대 없는 자에게 너무무거운 감투를 씌웠나이다. 장차 나라의 손실이 침중할 것이니, 폐하의 재결을 거두어주소서."

이듬해 이른 봄 해무량은 드디어 용원부도독을 제수받았다. 해동정은 대중정 자리에 올랐다. 대이진이 계위한 이래 처음으로큰 폭의 관작 개편이 이루어졌다. 눈에 띄는 것은 태후 해수련 측근들이 대거 발탁되었다는 사실이다. 태후의 등등한 위세 앞에감히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황제의스승인 태사 신작은 편전대령한 문무백관앞에서 간쟁을 서슴지 않았다.

"아무리 짐에게 경전을 강의하는 스승이지만 지나치시오. 나라가 이만큼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이 태후마마의 은사임을 어찌모르시오?"
"폐하의 위엄은 천둥처럼 무서워야 하고권위는 태산처럼 무거워야 하나이다. 현명한 황제는 반드시 천하의 주인임을 잊지 않나이다."
옳은 소리였으나, 서궁에서 편전 소리를모두 듣고 있는 태후가 걱정이었다. 대이진은 스스로 꼭두각시라는 걸 알고 있었다.조정 대신과 변방의 장수들까지 모두 태후에게 조아리고 있어, 태후의 말 한마디면아우인 대건황에게 천하를 넘겨야 할지도모른다.
"물러가시오. 짐이 찾을 때까지는 입궐을 금하겠소!"

신작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표정이 결연해 보였다.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해지량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소리를했다.
"조금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많이 훔치면 군주가 된다고 했소. 태사는 너무 많은걸 훔치려 하고 있소. 충역을 뛰어넘기에는너무 정직하오."

"황상께 아뢰시오. 불경에 이르기를 불이 나서 뭇 생명이 죽을 지경에 작은 앵무새 한 마리가 제 깃털에 물을 적셔 불을 끄려고 했소. 그랬더니 원이 이루어져 불을끄고 뭇 생명도 구했다 했소. 신이 아무리앵무새 노릇을 하고 싶어도 물이 멀리 있으면 깃털을 적실 수 없다고 아뢰시오."

"황상께 한시라도 쉴 틈을 주지 말라. 천하 미인들을 물색해 끝없이 향락에 빠지게해서 책과 충신의 말을 멀리하고 조정대사를 귀찮아하게 하라."
대이진은 어려서부터 싫증을 잘 내는 성미였다. 후궁들도 수시로 바꾸어 침궁에 들게 할 만큼 변덕이 심했다.
"골라 바친 후궁은 탐염이 진동하여 황상의 총첩이 되어야 한다."

황제 대이진은 총애하는 후궁들과 대신들을 거느리고 파천하듯 홀한해에 행궁을차렸다. 병란은 아니라도 가뭄으로 지친 백성들이 아우성치고 굶어죽어 난리와 다름없었다. 이런 판국에 황제가 도성을 떠나자민심은 더 흉흉해졌다. 황제가 황음무도하고 태후의 섭정으로 하늘이 진노한 것이라는 풍문도 나돌았다.

병란을 알리는 봉화였다.그리고 뒤따라 동경용원부에서 병란이 일어났다는 파발이 도성으로 날아들었다.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봉기하여 염포현승 기국청과 염주자사 은사공을 죽였고, 동경용원부 도독 해무량은 중경 쪽으로 도망쳤다는 급보였다.
반란의 수괴는 거상 장사경과 율창직이었다. 그들이 봉기하자 놀랍게도 군사들이기다렸다는 듯 반란에 합류하여 동경용원부를 함락했다. 농어민은 물론이고 염전의역부들과 상인, 삯일꾼들까지 반란 대열에뛰어들었다. 급보를 받은 해태후는 분기를누르지 못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동경용원부 도독해무량이 변방 수장 가운데 가장 많은 공물을 보냈사옵니다.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리다 못해 봉기한 것이옵니다."
"어찌 수습할 수 있겠는고?"
"조금 더 지켜보면 반드시 수습할 길이있을 것이옵니다."
태후궁에서 물러나오는 장덕진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앞날을 예견할 수 없는 정황이었다.

태후궁의 젊고 다부진 내관들은 밤마다 태후 침소에 들어 온몸으로 해수련을섬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태후가 아끼는 총신들을 은밀히 육총신이라 불렀다.
해수련은 태후에 오른 뒤에야 비로소 황제들이 여색을 탐하는 까닭을 이해하였다.
여인으로 태어나 가장 높이 오르는 자리가 태후로되 가장 외로운 자리도 그 자리였다. 남색의 황홀경이 이리 좋고, 권세 또한 이리 좋은 걸 왜 진작 몰랐던가. 천하를호령하고 있으니 이리 황홀한 것을…….

"황상께서 환궁하여 친정하게 하옵소서.목마르고 배고픈 건 군사들도 마찬가지옵니다. 진병한 군사들도 불만이 터뜨려지면회군할지 모르옵니다. 그때는 마마의 안위가 근심이옵니다. 그러나 황상께서 몸소 군사를 이끌면 사방에서 충성스런 군사와 현사들이 모여들고 반란군은 명분을 잃고 내홍에 휩싸이게 되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이참에 신작과 황친을 비롯하여 간쟁을일삼는 자들을 숙청하옵소서. 반란군이 그들을 섬기고 있으니 절호이옵니다."
"옳은 말이로다."

"참으로 답답하시오. 반적들은 폐하를폐하고 신작을 옹립하려고 하오. 지난날의을사유신을 받들어 사족과 양민을 구별하지 않고 노비와 부곡을 양민이 되게 하려는것이오."
뜻밖의 소리에 당황한 대이진의 낯빛이굳어졌다.
"설마하니 신작이……."
해수련이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반란군이 신작 만세를 외치는 걸 모르시오?"

해지량과 신작의 모습이 겹쳐졌다. 신작의 직간이 떠올랐다.
"엄인을 내시감으로 삼으면 밤낮없이 황궁에 기거하면서 폐하의 뜻을 잘 탐지하여비위에 맞는 소리만 하게 되옵니다. 죄를숨겨 간교를 품고, 미혹한 재간으로 폐하를속이며, 황궁 밖의 진실을 어지럽게 하여폐하께서 보고 듣는 것을 혼미하게 되옵니다. 환관이 궁성에 자리잡으면 계속 환관을 길러 궁성으로 끌어들인 뒤 그들끼리 아첨으로 폐하의 환심을 사는 재주를 익힐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끝내 폐하께서 책을 멀리하고 충신을 내쫓고 여색으로 미혹케 되어 반드시 경술을 배척하므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은 누란지세에 빠지게 되옵니다."
대이진은 때때로 해지량의 중용을 후회했다. 생김새부터 싫었다. 나이 마흔인데쭈글쭈글 늙었고 졸린 듯한 눈과 기이한음성, 비쩍 마른 몸과 구부정한 어깨, 걸을때마다 앞으로 고꾸라질 듯 겅둥거리는 게싫었다. 그러나 한편, 그런 그가 옆에 없으면 불안했다. 해지량이 건네주는 여인이 없으면 심심했고 아첨하는 말이 없으면 짜증났다.

계책을 마련한 것은 해무량과 그의 심복왕가희였다. 순시 나섰다가 치소인 동경성을 빼앗긴 해무량은 중경으로 도망쳤다가다시 상경으로 달려왔다. 살길을 찾지 못하면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그래서 살궁리 끝에 반간계를 쓰되, 태후와 해지량이가장 싫어하는 신작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계책이 기이하다고 생각한 해지량은 태후에게 먼저 아뢰었다. 해수련은 고심 끝에청을 받아들였다. 해수련의 고심은 두 가지였다. 황제가 친정군을 이끌고 대승을 거두면 황제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고, 만약 친정군이 패하거나 내분이 일어 도성이 함락되면 치욕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태후를 폐하여 사가로 내쫓김을 당한 척하여 병란이 수습된다면, 신작과 같은 구신들을 한꺼번에 처단하고 계속 섭정할 수 있을것이다.

"암계가 분명합니다. 태후를 폐했다면돌멩이도 웃습니다. 도망갔던 해무량이 제발로 기어들어온 것도 기이합니다. 천하에간특한 해무량이 스스로 참수당할 줄 알면서 뇌옥에 갇혔겠습니까?"

신작은 다 꿰고 있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목숨이 열 개라도 바치겠다. 누가 이기든 수많은 백성이죽는다. 기근에 허덕이는 나라에서 내전이일면 어찌 외적들이 두고 보겠느냐?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내 목숨이 무에 그리 소중하겠는가."

"대부시여, 운명을 하늘에 맡기시라. 그대들은 수만 백성을 살려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신작과 반란의 주역들이 막 남문을 통과하는 순간, 창검궁시로 무장한 금군들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찌르고 베었다. 삽시였다.신작 일행이 들어서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대부시여, 운명을 하늘에 맡기시라. 그대들은 수만 백성을 살려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신작과 반란의 주역들이 막 남문을 통과하는 순간, 창검궁시로 무장한 금군들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찌르고 베었다. 삽시였다.신작 일행이 들어서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대씨의 사직이 분명한데, 해씨가 치세하고 있나이다. 선제와 선조들께서 무어라하시겠나이까?"
대이진은 가슴만 파고들 뿐 입을 열지않았다.
"이대로 계시면 오래지 않아 선위하고태상황이 되시나이다."
태상황이란 살아 있는 동안에 황위를 물려주고 물러앉는 것이었다.
"짐은 태상황이 되고 싶소."

"폐하 곁에는 해지량 같은 간신들이 있어 무엇이든 숨길 수 없나이다. 신첩을 믿고 맡기면 어의를 편케 하겠나이다."
"현책이 궁금하오."
"황궁 출입을 하는 자는 누구나 기찰을받나이다. 그러나 서궁 출입하는 여인들은자유롭나이다."
"여인이라…… 과연 절묘하오."

남쪽 바닷가에 있는 남경남해부 도독 신대남은 많은 봉물을 마련했지만, 해태후를즐겁게 하기 위해 기이한 재주를 가진 자들을 뽑아 잔치마당에서 마음껏 작희를 뽐내기로 했다.

시해 음모의 전말은 잔치 후 사흘 만에밝혀졌다. 남경 예인들을 깊은 산속에 묶어두고 예인인 척 어화원 잔치에서 군무를 추며 태후에게 비도를 던진 무리는 황후 주신강의 사주를 받은 오사마의 무리였다. 오사마는 황후의 시위로 잠시 서궁에 머물다가궁성을 떠나 용마사에 머물렀다.

오사마는 남녀 20명을 선발하여 황후의뜻을 받들기로 맹약하고 해태후를 주살할궁리를 하고, 생신잔치에서 태후의 심장에칼을 꽂을 참이었다. 태후를 주살하는 순간황제가 칙지를 내려 태후를 처단했음을 선포하기로 했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마마, 누구라도 황후마마를 혹독히 다루어 효수경중하리라 생각하옵니다. 사가에서도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해하려 했다면 살아날 길이 없사옵니다. 이럴 때 마마께서 두터운 은혜를 보이시면 모두 마마의섭정을 흠숭하게 되옵니다."
"그 요망한 것이 두터운 은혜를 잊고 암계를 부리지 않겠느냐?"
"마마, 머지않아 반드시 요망한 꼬리가잡혀 스스로 자결할 것이옵니다."

내시감은 황제의 근신이지 태후의 근신이 아닌데도 태후는 수시로 해지량을 서궁으로 불러들였다. 마마의 변이 수습되면서태후의 섭정은 더욱 강화되었다. 황제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대이진은 대전에 나가지 않았다. 국사는 모두 권지국사가 된 해태후에게 일임한 채 후궁이나 궁녀들 치마폭에 싸여 세월과 여인을 희롱하였다. 모두들 오태후가 권지국사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던 때를 연상했다.

"남근이 없는 사람만이 엄인이겠느냐.구중궁궐에서 긴긴밤을 홀로 지새며 달빛이 지아비 얼굴인 줄 아는 여인도 분명 엄인이다."
그 한마디에 해지량은 고개를 더 깊숙이숙였다. 해태후는 밤마다 남색을 즐겼다.그녀가 아끼는 남총만도 족히 대여섯 명은되었다. 말로는 외로운 척하지만, 밤 깊도록 환락경에 빠지기 위해 혼몽약을 찾았다.

권세를 빼앗겨 허수아비가 된 황제는 외로움과 분노를 달래기 위해 밤마다 여색에취하고 천하지존으로 군림하는 태후는 권세가 지나쳐 위망을 견디지 못해 남색을 취했다. 세월은 황제 대이진을 더 몽롱하게만들었고, 태후 해수련을 무치하게 만들었다.

"덕산대사가 바쳐 올린 금불상은 바라만봐도 악심이 사라지고 선심이 생기옵니다.당나라 황제는 내부 혼란을 밖으로 돌리기위해 우리를 공격할 궁리를 할 것이옵니다.그러니 금불상을 보내옵소서."
"안대문을 사신으로 삼아라."
해태후는 금불상을 물선으로 내놓았다.당나라와 화친하기 위해 무엇이든 아끼지않고 귀한 물선을 보냈다. 전쟁을 치르려면막대한 인력과 물력을 소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금불상을 가지고 당나라에 갔던 안대문은 환대받지 못한 채 돌아왔다. 깜짝 놀라연유를 묻자 안대문이 대답했다.
"당나라 황제는 도교를 숭상하여 불교와경교, 마니교와 배화교를 싫어한다고 하였사옵니다."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마마, 그런 청을 하는 순간 금불상을 파할지 모르옵니다. 당제에게 변고가 생기지않은 것을 보면 불상은 아직 온전한 듯하옵니다."
송경신은 당나라 궁성에서 금불상을 보관하는 것이 좋다고 우겼다. 한쪽 눈을 뜨고 있는 불상이 당나라 궁성을 지켜보기 때문에 감히 발해를 공략할 궁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송경신은 천문에 해박하고 학문이 깊은 명신이어서 해태후가 중용했다.

내시감 해지량이 궁성으로 아편을 반입한 후 발해 궁성에서는 앵속화를 황상화라고 불렀다. 아편은 당나라에서 구해오는 것도 있었지만 어화원 양지바른 곳에 심은 여춘화의 덜 익은 열매 껍질을 칼로 에어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진으로 직접 만들기도했다. 그래서 여춘화가 피어 있는 곳에는항시 금군이 창검을 들고 지켰다

해태후는 아편을 금하기로 작정하고 과감하게 손을 떼었다. 황제와 둘째아들 대건황이 하루가 멀다 하게 즐기고 해지량까지아편에 취하자 단호하게 마음먹었다. 해태후는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대건황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태후궁 창고를 개조하여 가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이진이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다. 자손도 없었다. 해태후는 혼수상태에 빠진 대이진을 쳐다보고 어금니를 악물고 돌아섰다. 병석에 누운 지 불과닷새 만에 대이진은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정축(857)년 정월 열이틀이었다. 재위 26년 동안 어머니 해태후에게 정사를넘긴 채 혼몽한 상태로 살다가 힘없이 무너졌다.
황태제 대건황이 계위하여 연호를 대정으로 바꾸고 선제 대이진의 시호를 장황제로, 묘호를 장종으로 했다. 26년 동안 섭정하며 천하를 주무른 해태후는 작은아들 버릇을 고치기 위해 태후궁 창고를 개조하여 가두었다.

태후를 질책하고 논힐하며 해씨 일족들의 전횡을 야단치던 황친 중에는 비명횡사하거나 밤사이 자객의 손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황친들은 그것이 태후의 은밀한 징계라는 걸 알았다.

황친들의 사치는 끝이 없었다. 더러는 그들 때문에 관고를 걱정해야했다. 이에 해태후는 황친들을 대거 숙청할 궁리를 했다.
"마마, 황친의 수효를 줄이고, 그들에게나누어준 식읍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사직을 보전하기 어렵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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