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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물이 마시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코코넛 파는 리어카가 없었다. 인도 여행에서 물은 필수품이라지만 세포 구석구석까지 여행자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은 아무래도 코코넛 열매를따를 수 없다. 열매꼭지를 칼로 툭 쳐내면 그 안에 어떤청량음료보다도 시원한 물이 꽉 차 있다. 값도 싸서 5루피 (150원)밖에 하지않는다. 그래서 나는 인도 여행중에 물보다 코코넛 열매를 즐겨찾았다. - P71

코코넛이 없다면 정신과 물질이 조화를 이룬 도시를 만들 수도 없다고 난 생각했다.
코코넛이 없다면 인도가 아니라고 난 생각했다.
그리고 코코넛이 없다면 인도에선 명상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난 생각했다. - P72

"이상적인 도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 인간 개개인의 가슴속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가슴을 향해 난 길, 그 길밖에는이상적인 도시로 가는 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폰디체리 오프닝 연설문에서 스리 오로빈도가 한 말이다. - P74

시타르는 인도의 대표적인 현악기이며, 라비샹카라고 하면 시타르의 달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도 최고의 음악가다.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라비 샹카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10년 이상 명상 수행을 하는 것보다 라비 샹카의 시타르 연주를 한 시간 듣는 것이 더깊은 명상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까지 말한 적이 있었다. - P76

라비 샹카, 키쇼리 아몬카르, 그리고 피리 연주의 대가 하리 프라사드…………. 이들은 음악으로써 내 젊은 영혼을 지배한 이들이었다.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그들의 음악과 목소리가 채워주었던가. - P77

그날 밤 라비 샹카의 시타르 연주회는 현을 조율하는 데만 무려두 시간이 걸렸다. 청중과 교감이 이루어질 때까지 현을 고르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본 연주가 시작되었다. 본 연주는 악보 없이열 시간이나 계속돼 아침 열시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무려 열두 시간이나 걸린 연주회였다. - P79

나 역시 평범한 음악 생도가 아니라 힌두의 철학자다운 내면을지닌 쑤닐 옆에 앉아 온 존재가 대가의 음악으로 가득 차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참석한 음악회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한밤의 열린음악회였다. - P80

순진한 인도 사람들!
푸른색 버스는 그렇게 북인도의 따사로운 햇살 속을 염소와 닭과 손님들을 가득 싣고 털털거리며 달려갔다. 멀리 보이는 눈 덮인 히말라야, 내 피부에 와 닿는 햇빛, 그리고 버스 지붕 위에 탄동화나라의 사람들, 그것만으로도 나는 부족함 없이 행복했다. - P85

그 무렵 나는 누군가가 필요했었다. 별일 없이 잘 돌아다니고있는 것 같기에 아무도 내 마음의 구석진 다락방을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그 다락방 속에서 나는 무척이나 외롭고 사람이 그리웠었다. 그날 버스 지붕 위에서 만난 인도인들, 그들이 그 그리움을 구석구석 채워주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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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슬픈 일은 야생동물들을 우리에 가둬 게으르게 만드는 일이다. 때로는 동물을 연구한답시고 그렇게 하지만, 인디언들은 자연환경 속에서 그 동물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하며 많은 배움을 얻었다.

나아가 동물들을 향한 인디언들의 접근은 친해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 우정과 혜택을 나누기 위한 것이지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의 생명 가진 것들에 대해 형제와 친척의 감정을 갖고 살아갈 때, 삶은 큰 만족을 얻는다.

여기서 나는 인디언 부족과 백인 부족의 신앙의 큰 차이를 발견한다. 인디언 신앙은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추구했다. 반면에 백인들의 신앙은 환경에 대한 지배를 추구했다. 나눔으로써, 모두를 사랑함으로써 인디언 부족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얻었다. 그러나 백인 부족은 대상을 두려워함으로써 정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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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를 돌자 만년설을 뒤집어 쓴 설산 히말라야가 아이맥스 영화처럼 거대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아래 납작바위엔 긴머리를 늘어뜨린 요기 (요가 수행자) 한 명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눈은 지그시 감겨 있고,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두 손은 허공중에 무드라(깨달음의 형상)를 그리며 정지해있었다. 신비 그 자체였다. - P47

"스승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이 고통의 삶으로부터 저를 구원의 세계로 인도해주십시오. 당신과 같은 완벽한 스승만이할 수 있는 일입니다." - P48

"그렇다면 그대는 내가 받아들일 만큼 완벽한 제자인가? 나는완벽한 제자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한번도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P48

"첫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 P54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 P54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 P54

그 이후 인생의 여러 길을 다니면서, 나는 언제나 싯다 바바의모습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탄 버스를 지켜보던 그 모습그대로 언제나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버스는 점점 멀어지고, 모퉁이를 돌아가고, 다른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멈춰서지만싯다 바바는 늘 그렇게 그만큼의 거리에서 내 여행길을 지켜보고있다. - P55

"오늘은 아무 소득도 없었어요. 하지만 내일은 뭔가 훔칠 수 있을 거예요."
비시누는 언제나 그렇게 희망적이었다. 단 한번도 내 앞에서 절망한 기색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오늘은 어땠지?"하고 내가 물으면 언제나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일은 뭔가 소득이 있을 거예요." - P57

"뭣하러 이런 걸 사왔어? 돈도 없으면서."
그러자 비시누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제가 돈이 어딨겠어요. 저기 크리스털 파는 미국 여자한테서 훔쳤어요. 아무튼 어제 제게 해주신 말씀  명심할게요." - P60

난 아직도 비시누가 내게 선물한 그 크리스털 목걸이를 몇 년째갖고 있다. 그 목걸이를 볼 때마다 비시누가 생각나고, 여름비가생각난다. 그러면 갑자기 웃음이 나고, 희망이 솟는다. - P60

"누구나 길 가는 여행자라고 할 수 있지. 그대도 그렇고, 나도그렇고 말야. 그러나 여행에는 반드시 목적지가 있기 마련이야.
그대는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나?" - P62

그 순간 왜 그토록 안심이 됐는지 모른다. 나는 마치 헤어진 연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가 반가웠다. 하지만 그는 나를 무시한채 말없이 지나갔다. 나는 황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저, 지금 길을 잃었거든요. 아까부터 출구를 찾아 헤맸어요."
그러자 그가 엄숙하게 말했다. - P66

"아까부터 헤매 다닌 게 아냐. 그대는 20년 동안 길을 잃고 헤맸지. 내가 그렇게 불렀는데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언제까지 그렇게 헤매고 다닐 건가?" - P66

"그대에게 중요한 걸 일깨워주기 위해서지. 난 이곳에 오래 있을 수가 없어. 며칠 후면 히말라야의 동굴로 돌아가야만 해. 난 오랫동안 산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도시에선 숨이 막히지. 사람들의거친 파장이 내 몸의 세포를 망가뜨리거든. 아무튼 돌아가기 전에그대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뻐." - P68

"난 이미 그대에게 일깨워주었어. 그대가 못 알아들었을 뿐이지, 다시 한번 날 잘 보게. 내 몸에 무엇이 감겨져 있나? 밧줄이 나를 묶고 있지. 내가 말해줄 건 그것뿐이야. 그리고 이 밧줄은 내스스로 감은 것이야.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 P68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찾는 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난 이 사실을 20년 동안 그대의 귀에 대고 속삭여왔네. 바로 곁에서 말야." - P69

"난 언제나 그대 곁에 있지. 바로 곁에 말야. 우린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대가 언제나 자유로운 정신에 머물기를 바라네. 그것밖에는 다른 해답이 없지. 그대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 때가있거든 언제라도 나를 찾아오게, 히말라야로!"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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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걱정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으며,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 삶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떡갈나무의 삶, 새들의 삶, 바람의 삶……. 그 모두가 나의 삶과 다르지 않다. 그것들의 삶이 지상에서 사라진다면 나의 삶 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전사처럼 살게!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나. 전사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고 말야. 아주 하찮은 행동 하나도 전부 책임을 지지. 그대가 그것을 잘 이해하리라고 믿네.

편견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편견은 실제로 상대방을 상처 입히고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 인디언들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나쁜 편견은 우리를 ‘붉은 피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피부가 붉다는 뜻만이 아니라 더럽고 불결하다는 나쁜 고정관념을 그 안에 담고 있다.

때로는 백인 정부의 교묘한 정책에 의해 병원균이 전파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얼굴 흰 자들과의 일시적인 접촉만으로도 인디언 부족 전체에 물결처럼 죽음의 경련이 퍼져 나갔다. 말하자면 악수에 의한 대량학살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콜럼버스의 악수’라고 부른다.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병원균들에 둘러싸여 살다 보면 그것에 대한 면역력이 생겨난다. 이것은 지극히 간단한 논리이다. 그런데 우리 인디언들은 애초부터 그런 병원균들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면역력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가! 이것이 수수께끼에 대한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이 아닌가.

종족 말살에 대해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어떤 인종이나 자연의 종을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멸종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백인들의 인종 말살 정책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대량 학살 외에도 독한 술, 생물학전, 강제 이주, 투옥 구금, 백인들의 가치관 주입, 원주민 여성의 강제 불임, 아동 납치, 종교의식 금지 등 실로 다양하게 행해졌다.

"당신들 그리스도교인들이여, 무엇 때문에 이 작은 금붙이를 자신의 마음의 평화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가? 황금에 대한 욕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혼란과 비극에 빠뜨릴 생각이라면, 나를 따라오라. 당신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금이 물처럼 흐르는 곳으로 안내할 테니."

1786년, 벤자민 프랭클린은 프랑스 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지금까지 인디언들과 백인들 사이에 일어난 모든 전투는 백인이 인디언에게 가한 부당한 일들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한 개인이 아니라 식민주의의 상징이다. 식민주의는 수십 년 전, 혹은 여러 세대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오래전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생활 경제에서 시장 경제 속으로 몰아넣은 그 일이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존 모호크, 1992년_세네카 족

모두에게 생명을 주신 이는 사람들이 서로를 억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 사회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억압당하는 것을 막고 국가와 종족 사이에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정부 구조를 탄생시켜야만 한다. 평화는 정의롭고 합리적인 판단을 추구하는 사회의 결과물이다. 또한 정의는 사람들이 가장 순수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마음을 나눠 가질 때 실현된다.

우리 수 족에는 여러 지파가 있었으며, 강 서쪽에 사는 지파를 통틀어 라코타 족이라 불렀다. 수 족이란 말은 얼굴 흰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목을 베어 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것은 크게 잘못된 이름이다. 우리는 누구의 목도 함부로 베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얼굴 흰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모든 아이는 한 가정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부족 전체에 공동으로 속해 있었다. 따라서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어느 집으로 들어가든 환영을 받았다. 왜냐하면 부족 전체가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의 천막을 다 돌아다니느라 낮에는 가끔씩밖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인디언의 교육은 교실 안에서의 배움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진정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그런 교육이었다. 아이가 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를 교실에 가둬 두거나 다른 아이들 속에 줄세워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배움의 과정에서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시험으로 한 어린 가슴을 다른 아이들과 경쟁시키는 일을 인디언들은 하지 않았다. 등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이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칼리슬 인디언 학교에 들어가 그곳의 경쟁 체제 아래 놓이기 전까지 나는 자라면서 한 번도 모욕을 당하거나 무시당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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