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걱정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으며,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 삶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떡갈나무의 삶, 새들의 삶, 바람의 삶……. 그 모두가 나의 삶과 다르지 않다. 그것들의 삶이 지상에서 사라진다면 나의 삶 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전사처럼 살게!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나. 전사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고 말야. 아주 하찮은 행동 하나도 전부 책임을 지지. 그대가 그것을 잘 이해하리라고 믿네.

편견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편견은 실제로 상대방을 상처 입히고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 인디언들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나쁜 편견은 우리를 ‘붉은 피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피부가 붉다는 뜻만이 아니라 더럽고 불결하다는 나쁜 고정관념을 그 안에 담고 있다.

때로는 백인 정부의 교묘한 정책에 의해 병원균이 전파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얼굴 흰 자들과의 일시적인 접촉만으로도 인디언 부족 전체에 물결처럼 죽음의 경련이 퍼져 나갔다. 말하자면 악수에 의한 대량학살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콜럼버스의 악수’라고 부른다.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병원균들에 둘러싸여 살다 보면 그것에 대한 면역력이 생겨난다. 이것은 지극히 간단한 논리이다. 그런데 우리 인디언들은 애초부터 그런 병원균들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면역력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가! 이것이 수수께끼에 대한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이 아닌가.

종족 말살에 대해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어떤 인종이나 자연의 종을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멸종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백인들의 인종 말살 정책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대량 학살 외에도 독한 술, 생물학전, 강제 이주, 투옥 구금, 백인들의 가치관 주입, 원주민 여성의 강제 불임, 아동 납치, 종교의식 금지 등 실로 다양하게 행해졌다.

"당신들 그리스도교인들이여, 무엇 때문에 이 작은 금붙이를 자신의 마음의 평화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가? 황금에 대한 욕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혼란과 비극에 빠뜨릴 생각이라면, 나를 따라오라. 당신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금이 물처럼 흐르는 곳으로 안내할 테니."

1786년, 벤자민 프랭클린은 프랑스 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지금까지 인디언들과 백인들 사이에 일어난 모든 전투는 백인이 인디언에게 가한 부당한 일들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한 개인이 아니라 식민주의의 상징이다. 식민주의는 수십 년 전, 혹은 여러 세대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오래전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생활 경제에서 시장 경제 속으로 몰아넣은 그 일이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존 모호크, 1992년_세네카 족

모두에게 생명을 주신 이는 사람들이 서로를 억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 사회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억압당하는 것을 막고 국가와 종족 사이에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정부 구조를 탄생시켜야만 한다. 평화는 정의롭고 합리적인 판단을 추구하는 사회의 결과물이다. 또한 정의는 사람들이 가장 순수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마음을 나눠 가질 때 실현된다.

우리 수 족에는 여러 지파가 있었으며, 강 서쪽에 사는 지파를 통틀어 라코타 족이라 불렀다. 수 족이란 말은 얼굴 흰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목을 베어 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것은 크게 잘못된 이름이다. 우리는 누구의 목도 함부로 베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얼굴 흰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모든 아이는 한 가정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부족 전체에 공동으로 속해 있었다. 따라서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어느 집으로 들어가든 환영을 받았다. 왜냐하면 부족 전체가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의 천막을 다 돌아다니느라 낮에는 가끔씩밖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인디언의 교육은 교실 안에서의 배움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진정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그런 교육이었다. 아이가 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를 교실에 가둬 두거나 다른 아이들 속에 줄세워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배움의 과정에서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시험으로 한 어린 가슴을 다른 아이들과 경쟁시키는 일을 인디언들은 하지 않았다. 등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이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칼리슬 인디언 학교에 들어가 그곳의 경쟁 체제 아래 놓이기 전까지 나는 자라면서 한 번도 모욕을 당하거나 무시당한 적이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