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신이 감히 아뢰겠사옵니다. 당나라는 중화사관과 춘추필법으로 남의 나라역사를 왜곡하는 못된 습성이 있사옵니다.고구려후손이 세운 발해를 말갈인이 세웠다 기록하고, 당나라와 발해가 주고받은 물선도 받은 것은 조공이고 준 것은 물선이라고우기옵니다. 또한 발해에 보내는 국서에는 ‘황제께 올립니다‘라고 쓰지만, 당나라국서고에 보관하는 문서에는 ‘발해왕에게보내노라’라고 기록하옵니다."

"신이 돌아간 뒤 당나라 사관들은, 밀아고가 입조하여 조공을 받쳤다고 기록할 것이며 발해의 왕 숭린을 책봉했다고 쓸 것이옵니다.
사신 은지첨의 팔뚝에 묵형이 내리고 천자를 논힐한 것은 일언반구도 기록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더구나 폐하의 근신고장무를속죄사신으로 보낸 것을 책봉사라고 기록할 테니 어찌 간계라 하지 않겠사옵니까?"

황제 대숭린은 당제 이괄의 진사를 받아들이고 고장무에게 영원장군을 제수했다.그리고 진사품으로 보낸 한족 미녀 30명중 유난히눈에 띄는 세 명을 궁중에 두고, 나머지는 근신들에게 하사했다.

초여름부터 하루이틀거리로 내리던 비는 한여름이 되자 대엿새씩 그치지 않더니, 급기야 밤낮없이 내렸다. 비는 상경, 동경, 중경,
동모산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재민들은 관가로 몰려들어 먹고 입을것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도성을 수비하는금군들이 창검을 들고 백성들을 쫓으려 했지만,
차라리 죽이라고 악을 썼다. 젖은 봇짐을 인 노파, 등짐 진 초췌한 늙은이, 빈지게를 달랑 걸멘 장정,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핏기 없는어미의 치맛자락을 잡고 비바람 속에서 떨고 있는 모습은 전장보다 나을게 없었다.

북두칠성 북쪽에 있는 별인 자미는 황제의운명을 관장했다. 자미를 객성이나 요성이침범하면 황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가 있거나역적의 무리가 준동한다 했다.

"폐하, 어리석은 백성들의 원망은 물길과 같아서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끝내 넘쳐둑을 무너뜨리옵니다."최벽의 말에 대숭린은고개를 끄덕였다."어찌 물꼬를 터주어야 하는고?" "중정대에서 백관을 감찰하면, 관고를열어 백성을 구휼할 때 사욕을 채운 자,
공정하지 않은 자, 눈속임한 자가 드러날 것이옵니다. 폐하를 속인 기군망상일 뿐 아니라 국기를 흔든 것이요, 백성을 수탈한죄인이옵니다. 이런 간신들을 징치한 뒤에 관고를 열어 성덕을 베푸시면 백성들이 흠복하옵니다."

그럭저럭 해를 넘기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복은 쌍으로 아니 오고, 화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난 여름에는 물이넘쳐곤궁했고 이젠 봄 가뭄이 들어 차라리지난 장맛비가 그리운 형편이었다. 남쪽의신라에서도 기근이 들고 역질이 퍼져 민심이흉흉하다고 했다.

지난해 홍수에 가뭄까지 겹치니 굶주린백성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세세년년 마를일 없이 넘쳐 흐르던 궁성 밖 용천도 급격히 줄었다.
도성 안팎의 크고 작은 우물이모두 말라 너나없이 용천을 기웃거린 탓이었다. 모두가 그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데야 아무리하늘이 낸 용천이라고 한들버틸재간이 없었다.황궁에도 맛좋은 우물이 여러 개 있었지만, 황제의 수라상에 오르거나 황제가음용하는 물은 언제나 용천수였다. 용천을 발견한 이래 그 샘을 지극정성으로 아꼈다.상경을 용천부라 부른 것도 맑은 샘물이하염없이 솟아올라 마르지 않아 이름 지은 것이다.

좌윤 신대방은 고개를 저었으나, 좌상 장두각을 찾아가 전후사정을 늘어놓았다. 장두각은 고심 끝에 남대문 밖 용천 주변에군사를풀어 백성들의 접근을 막았다

목마른 백성들의 분노는 하루가 다르게커졌다. 처음에는 물동이를 들고 떼 지어소리지르다가 차츰 지게 작대기나 몽둥이를 들더니,
끝내는 낫, 삽, 쇠스랑을 들고무리지어 덤볐다.많은 백성들이 잡혀가고 매질을 당했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점점 수효가•불어났다. 백성들의 분노가 치솟을 무렵 아우성치는 무리와 군사들이 뒤엉켜 큰 싸움판이 벌어졌다.

삽시에 벌어진 참변이어서 미처 막을 길이 없었다. 황급히 금군과 시위 군사들이달려들어 분노한 백성들을 마구 베고 찔러겨우사태를 수습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황궁까지 포위한 무리의 주모자는 놀랍게도 지난해 죄 없이 효수당한 오감조의 동생오낙조였다. 조정공론이 분분한 것은 농구를 든 백성들에게 도성이 뚫리고 황궁까지 포위당했기 때문이었다.

"기우하고 기도했는데도 하늘이 감응치않고 귀신이 대답하지 않은 것은 폐하께서무죄한 자를 참하였거나, 억울한 자의 통곡이하늘에 닿았거나 군자를 멀리하고 소인을 가까이 했거나, 신하의 직언을 멀리했거나, 폐하께서 하늘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하늘은 스스로 재변을 일으키지 않사옵니다."
대청윤은 황제의 심기를 아랑곳하지 않고입을 열었다. "폐하, 용천을 철벽으로 수비하는 군사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에게 물을 나누어•주옵소서. 물과 햇빛과 바람은 천지조화로 이루어졌기에 하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폐하께서 진실로 백성들의 괴로움을 알고 하늘의 뜻을 좇는다면 천지의 기운이 화평해져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오곡이 풍성해질것이옵니다. 백성들의 살림이 넉넉해져 안정되면 널리 교화가 행해져 풍속이 후해지고, 옥에는 죄인이 없고 도둑이 사라지며, 간신과•역신이 발 디딜 곳 없어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옵니다."대숭린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어탁을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감히짐을 능멸하다니 용서할 수 없도다. 역심을 품었으니 치죄하겠다."

민심은 점점 더 흉흉해졌다. 배고픈 백성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도적이 되거나 강도질을 했다. 관가에 불을 지르고 관리들의집을습격하는 일도 생겼다. 기찰을 강화하고 도성 안팎의 경계를 엄중히 했지만, 한번 흐트러진 민심을 되돌릴 묘안이 없었다.할 수 없이야간에 통행을 금지하는 인정을앞당겼다. 도성 밖에서는 무장하고 떼 지어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비적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황제의 눈 밖에 난 대청윤이 당분간 천문령에 들어가 근신하겠다는 상소를 아무의심 없이 윤허했는데, 어느 틈에 막힐부의군사를장악하여 충역을 뛰어넘었다는 보고였다. 대숭린은 반역의 싹을 진작 자르지못한 것이 한스러웠지만, 군사를 동원하기도 쉽지않은 정황이었다.

속말수가 마르지 않았고 거란과 말갈이 대청윤에게 복속했으며 막힐부도독 고천경을 따르는 무리가 제법 많았다. 뜬소문에는부여부도독 장국등과 장령부도독 양만신도 역심을 품었다 했다.

무자 백난별은 소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튼 채 고승명을 맞았다. 여든아홉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흰 머리칼과 흰 수염만아니라면 늙은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눈빛과 살결이 촉촉이 빛났다.

"입을 열면 귀한 집 자손이 목숨을 잃나니......."차마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투였다."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그렇기는 하오만 귀한 집 자손에 남매여야 하고, 인물과 자색이며 학문과 무술이남에게 뒤지면 안 되니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동남동녀도 기껍게 몸을 바쳐야 하지만, 부모 역시 흔쾌히 자식을 내놓지 않고 슬퍼하면 용신이 제물을 거부하오."백난별이힐책하는 투로 말하자, 이내 고승명은 한숨을 길게 토했다. 백만금을 준다고 한들 어느 누가 기꺼이 자식을 내놓으며, 극락왕생한다한들 어느 누가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는가.

지난해 장마도 용신의소행이고 금년 가뭄도 용신의 소행이 분명하니 어찌 두렵지 않으리오. 몇 번이나 황상께 주품해달라 해도 조정중신들이 믿지않았소이다. 그 죄를 어찌 받으려고

그로부터 닷새 만에 고승명을 찾아온 것은 놀랍게도 신사문이었다. 신사문 뒤에는가히 선남선녀라 할 수 있는 남매가 고운모습으로서 있었다. 고승명은 대숭린이 등극하고 신씨 일가를 매몰차게 내쫓았기 때문에 그가 애지중지하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오자 무척놀랐다.고승명은 자리에 엎드려 예를 갖추었다.황제의 스승이었던 태사 신사랑의 아우요,한때 의부경으로 문무백관의 존경을받던인물이었다. 고승명도 신사문에게 사사 받아 학문을 키웠기에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잃으면 낳을 수 있지만, 만백성을 잃으면 나라가 무슨 소용이겠소. 백 년만의 대가뭄에 온 백성이 굶주림과 역병으로신음하거늘 어찌 내 자식만 귀하다 하리오. 또한 부모가 자식을 바치고 호의호식하면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고승명은 급히 황제에게 고하고, 신사문의 아들 신달진과 딸 신달지를 데리고 홀한해로 달려갔다. 제단을 마련하는 동안 두아이는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 기도를 했다

백난별이 곁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두렵지 않은가?" 신달진이 곱게 웃었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생각하기로는 남보다먼저 죽는 것 같지만, 세상에는 배내옷도 못 입어보고 죽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래 살아 뜻을 거스르고도를 얻지 못하는 것보다•보람되게 저를바칠 수 있으면 천복이 아니겠습니까." 백난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매의 손을 맞잡았다.

"나라에서 동남동녀를 구한다는 방을 본아버님께서 아무 말씀하지 않으신 채 저희들에게 방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길로 어머니와함께 절에 들어가 무명스님의 설법을 듣고 바로 참선에 들었습니다. 어젯밤깨달은 게 있어 저희 남매가 먼저 부모님과스님께 몸을바치기로 맹약했습니다.

소복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달싹하지 않았다. 신사문의 자녀들이 먼저쓰러져 그늘로 실려갔고, 끝내 신사문과 백난별도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쓰러진 사람들은 모두 온몸이 불덩어리 같았다. 입을벌려 물을 먹이고 몸에 끼얹어도 보았지만여전히혼수상태였다.

그날 밤, 휘영청 둥근달이 창공에 높이걸렸다. 정성껏 제사를 드렸건만 하늘은 요지부동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홀연 비를머금은 매지구름이 남쪽으로부터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람결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매지구름은 강한 바람을 타고밝은 달을 가렸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금세 굵어졌다.

황제 대숭린은 급히 대신 양광태를 보내 신사문을 개국공에 봉하고 식읍 3백호를내리며 그의 형 신사랑을 다시 태사로 명했다.
그러나 신씨 일가는 벼슬과 식읍을거절한 채 종적을 감추었다.

대청윤에게도 대업의 꿈이 있다는 걸 진작 눈치채지 못한게 한이었다."짐이 군사를 거느리고 친정하여 역적대청윤을 사로잡겠다.
그리하여 발해 강역에서 천추만세토록 모반의 씨를 말리겠노라."

"토평한 뒤에 쌓인 원한을 어찌 하려는고?" "지금은 속전속결해야 하옵니다. 전쟁이길어지면 양초와 군비를 조달하기 벅차옵니다. 말갈 군사가 초전에 무자비하게 도륙하면 반란군이 분열하고 군사들이 도망치게 되옵니다.!"

"개마성과 골태몽을 장수로 삼으면 역신들을 놀라게 할 것이옵니다."대숭린은 대장군 장객명에게 부월을 주어 군사를 거느리게하고, 말갈 출신 개마성과 골태몽을 장수로 삼아 토벌군을 편제했다. 이때 중신 감청학이 진언하고 나섰다.

그들은 따로 정진대를 운용하여 정면공격과 측후방공격을 감행했고, 적을 혼란케 한 뒤 사납게 도륙하여 겁에 질리게했다. 정진대를이끄는 장수 수율림은 본디 말갈 수령이었는데 적진에 뛰어들면, 항복한자뿐만 아니라 어린애부터 늙은이까지 닥치는 대로 죽이는장수였다.

상경 일대에는 대청윤을 따르는 자들이의외로 많았다. 대숭린과 함께 상경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인심을 닦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문은 정이요, 무는 동이어서 나라가 바르게 서 있으려면 문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나는 발해 주변에 저 너른 당나라땅과 북방의 땅과 신라가 있는 한 무관으로서 칼을 버릴 수 없습니다."

네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천기를 받들 것이다."대도진경은 아버지 뜻을 끝내 거부했다.진노한 대도무인은 그 길로 몸져누웠다.
군사들이 대도무인의 거처를 급습한 것은 이튿날 새벽이었다. 끌려가 모진 국문을 당했으나 대도무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대청윤이 이끄는 반란군은 기세를 올리지 못하고 연신 패퇴하여 부여부를버리고 막힐부로 도주했다. 가뭄이 용천부와 현덕부,
용원부 북쪽과 솔빈부, 동평부,철리부까지 번져 민심이 흉흉할 때는 기세좋게 승전고를 울렸으나, 가뭄이 해소되자민심이 점차 등을돌렸기 때문이다. 게다가개마성과 골태몽이 거느린 말갈 군사들이무자비하게 공격하자 더욱 기가 꺾였다.

"천심이 이렇게 변덕스러울 줄 몰랐소이다. 더구나 효왕이 저리도 무능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효왕 대청윤을 부추겨 반란을일으켰던막힐부도독 고천경이 넋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포위당한 아밀지는 저항하지 않았다. 싸우면 몰살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밀지는재빨리 대청윤의 목을 베어 고천경에게 바쳤다.
간교한 아밀지가 대청윤의 입을 막기위해 먼저 참살해 버린 것이다. 고천경은그 자리에서 아밀지의 목을 쳤다.

장객명은 고천경과 장국등을포박하여 도성으로 압송하고, 대청윤의 수급을 거두어 염장했다. 반역자의 말로를 보여주기 위해 수급을수습하여 소금에 절이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성으로 압송된 고천경과 장국등은 황제를 알현조차 하지 못하고 형장의이슬로 사라졌다.

이태 동안 홍수와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한 것을 틈타 반역을 꾀했던 대청윤과 그일당은 참살당했고 반역의 깃대는 무참하게 꺾였다. 이듬해 을유(805)년 정월 열사흘에 이괄이 붕어했다. 며칠 뒤 정월 스무엿새, 중풍으로 거동조차 못하는 이송이 등극했다. 말도제대로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사람도못 알아볼 때가 많은 이송이 태극전에서 즉위식을 치렀다.

병술(806)년 윤 6월에는 산동반도 맹주이사고가 14년 동안 통치하던 제나라를 남기고 붕어했다. 아버지 이납과 할아버지 이정기와같은 병력이었다. 이사고에게는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대권은 이복동생 이사도에게 넘어갔다.

사신을 발해로 보내 당나라를 대적하는 군사동맹을 청했다. 발해의 조정공론이 분분했지만 대숭린은 결전을 각오하는 이사도와군사동맹을맺기로 했다. 그리고는 고화용과 고다불을연달아 일본에 보내 해본동맹을 요구했다

발해 황제 대숭린이 대사를 앞두고 급환으로 세상을 뜨니 기축(809)년 초여름이었다. 이에 대숭린의 장자 대원유가 황위를잇고선제의 시호를 강황제로, 묘호를 목종으로 하니 제위 기간은 15년이었다. 대원유는 연호를 영덕으로 선포하고 계위했다.

원유는 즉위할 때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단 위에 오를 만큼 비대했다. 게걸스런 식탐으로 몸무게가 무려 2백 근이나되었다.
일설에는 그의 생모 황태후 오귀담이 궁중 의관에게 처방을 잘못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대원유의 식탐은 끝이 없었다. 태자시절식탐을 저지하기 위해 황명으로 음식을 줄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엄한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어머니의 편애에 매달려식탐에 빠지거나 궁녀들 치마 벗기는 일에이골이 났다.

대원유 등극하자마자 정사를 멀리한채 오태후의 섭정을 좇았다. 대원유의 아우대언의와 대명충도 대원유 못지않은 식탐으로 150근이 넘게 비대했다. 황제 대원유는 칙서를 내려 오태후의 섭정을 선포하고오태후의 오라버니 오작분을 만인지상인대내상에 명하고손아래 오라비 오작근에게 백관을 감찰하는 대중정을 제수했다. 또다른 오라비 오작촌은 군권을 장악하는 지부경으로 봉했다.
오태후의 심복들을 대신과 근신으로 삼으니 사직은 대씨로 이어졌으나 조정 대소사는 오씨의 수중에 들었다.

그녀 앞에 꿇어 엎드리기 싫어 사직상소를 낸 신하들 가운데 귀양 가지 않은 자가없었고, 섭정의 부당함을 상소한 사족들은모두참살당했다. 도성은 기찰이 삼엄하고인정이 당겨졌으며, 도성을 지키는 금군과황궁을 지키는 시위는 두 배로 늘어났다.사라졌던 10호연좌제도 되살아났으며 문황제 이래로 대우받던 문관보다 무관이 득세하게 되었다.

미사천은 오태후의 속셈을 꿰뚫어보는 심복이었다. 설사 그렇더라도 어찌 통천하겠느냐?"조정을 한손에 틀어쥐고 있지만 하늘과내통하지 않고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황위였다."마마, 태양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오륜이옵니다.""오륜이라.......""고씨도한없이 높다하여 하늘을 뜻하고, 대씨도 한없이 크다 하여 하늘을 뜻하옵니다. 오씨도 곧 하늘을 뜻하옵니다."오태후는 준수한용모와 반듯한 몸매의 미사천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서궁을 버리고 동궁으로 옮긴 것만 가지고도 공론이 분분한데,
천심은 남자에게만 내리는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본디 세상의 주인은 여인이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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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 영화 「미국의 목가」: 무너진 가정과 깨져버린 미국의 꿈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 (제목/원제) 「미국의 목가」 / 「American Pastoral」
ㅇ (감독/주연) 이완 맥그리거 / 이완 맥그리거, 제니퍼 코널리, 다코타 패닝
ㅇ (제작국가/개봉연도) 미국 / 2016년
ㅇ (원작) 필립 로스의 1997년 소설 『American Pastoral』을 바탕으로 한 영화임.

나. 작품의 기본 성격
ㅇ (시대적 배경)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며,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사회 혼란이 한 가정 안으로 들어오는 흐름을 다룸.
ㅇ (공간적 배경) 뉴저지의 중산층 가정, 장갑공장, 마을 우체국, 메리가 숨어 지내는 낡은 공간들이 서로 대비됨.
ㅇ (작품의 성격) 겉으로는 성공한 남자의 가족 비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식 성공과 평온한 가정이라는 믿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다룬 영화임.
ㅇ (핵심 문제의식) 좋은 집안, 성실한 아버지, 아름다운 아내, 번듯한 사업이 있어도 자식의 극단적 선택과 시대의 혼란 앞에서는 한 가정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 줌.

2. 줄거리 및 서사 구조

가. 기본 줄거리
ㅇ (사건의 시작) 시모어 레보브, 일명 ‘스위드’는 학창 시절부터 주목받던 운동선수였고, 이후 장갑공장을 운영하며 안정된 가정을 이룸.
ㅇ (가정의 모습) 그는 미인대회 출신 아내 던과 딸 메리와 함께 미국식 성공의 모범처럼 보이는 삶을 살아감.
ㅇ (갈등의 시작) 그러나 딸 메리는 말더듬과 불안, 부모와의 거리감,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 속에서 점점 급진적인 방향으로 기울어 감.
ㅇ (파국의 사건) 메리는 베트남전 반대와 정치적 분노 속에서 마을 우체국 폭파 사건에 연루되고, 이 사건으로 사람이 죽으면서 가족의 삶은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감.
ㅇ (아버지의 추적) 스위드는 딸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찾아다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믿었던 가정과 미국식 안정이 이미 무너졌음을 마주함.
ㅇ (결말의 의미) 스위드는 딸을 끝내 되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장례식에 나타난 메리의 모습은 이 비극이 끝까지 풀리지 않았음을 보여 줌.

나. 서사 전개의 특징
ㅇ (목가의 역설) 제목은 ‘목가’이지만, 영화 속 삶은 평온한 전원시가 아니라 가정 파탄과 시대적 혼란으로 채워짐.
ㅇ (개인의 비극과 시대의 충돌) 영화는 한 가족의 문제를 넘어,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분열이 개인의 삶 안으로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보여 줌.
ㅇ (아버지 중심의 서사) 영화는 대부분 스위드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며, 딸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혼란과 절망을 중심에 둠.

3. 주요 인물 분석

가. 시모어 레보브, 스위드
ㅇ (성공한 미국인) 스위드는 운동, 결혼, 사업, 가정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미국 중산층 남성처럼 살아온 인물임.
ㅇ (선량한 아버지) 그는 딸을 사랑하고 가정을 지키려 하지만, 딸의 내면과 시대의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ㅇ (무너진 믿음) 스위드는 성실하게 살면 가정도 사회도 유지될 것이라 믿지만, 메리의 폭력적 선택 앞에서 그 믿음을 잃게 됨.
ㅇ (인물의 의미) 그는 악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왜 무너졌는지 끝내 알지 못한 채 함께 무너져 버린 비극적인 인물이다.

나. 던
ㅇ (아내와 어머니) 던은 겉으로는 아름답고 안정된 가정의 중심에 서 있지만, 딸의 사건 이후 심하게 무너짐.
ㅇ (상실의 방식) 남편이 딸을 계속 붙잡으려 할 때, 던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 새 삶을 만들려는 쪽으로 움직임.
ㅇ (현실적 선택) 던의 태도는 차갑게 보일 수 있지만, 끝없이 무너지는 삶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기도 함.
ㅇ (인물의 의미) 던은 가족의 비극을 한 사람의 신념이나 사랑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다. 메리
ㅇ (문제의 딸) 메리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만, 그 사랑 안에서 안정되기보다 점점 더 불안하고 날카롭게 변해 감.
ㅇ (시대의 아이) 베트남전과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는 메리 안에서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짐.
ㅇ (가정 파괴의 사건) 메리가 연루된 마을 우체국 폭파 사건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한 가정과 한 남자의 삶을 회복하기 어렵게 무너뜨린 사건임.
ㅇ (인물의 의미) 메리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시대의 분노와 개인의 불안이 위험하게 뒤섞인 인물이다.

라. 리타
ㅇ (불온한 연결자) 리타는 사라진 메리와 스위드 사이에 끼어들며, 스위드의 불안과 죄책감을 건드림.
ㅇ (혼란의 상징) 그녀는 메리의 행방을 알려줄 듯하면서도 스위드를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음.
ㅇ (인물의 의미) 리타는 스위드가 믿어온 질서 바깥의 세계, 곧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급진적이고 불안한 시대의 얼굴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4. 핵심 주제 및 메시지

가. 미국식 성공의 붕괴
ㅇ (완벽한 외피) 스위드는 좋은 집안, 아름다운 아내, 성공한 사업, 사랑하는 딸을 가진 인물임.
ㅇ (깨진 환상)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은 딸의 선택과 시대적 폭력 앞에서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함.
ㅇ (제목의 반어) ‘목가’라는 말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삶을 떠올리게 하지만, 영화는 그 평온함이 사실 얼마나 얇은 껍질이었는지를 보여 줌.

나. 부모와 자식의 단절
ㅇ (사랑과 이해의 차이) 스위드는 딸을 사랑하지만, 딸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는 끝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ㅇ (부모의 한계) 부모가 아무리 애써도 자식의 생각과 선택을 모두 붙잡을 수는 없음.
ㅇ (가장 큰 비극) 이 영화의 고통은 자식이 잘못했다는 사실보다, 부모가 그 잘못을 막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평생 끌려간다는 데 있음.

다. 시대가 가정에 남긴 상처
ㅇ (사회 혼란의 침투) 베트남전, 반전운동, 급진주의, 폭력의 분위기는 거리와 정치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한 가정의 식탁까지 들어옴.
ㅇ (가정의 붕괴) 스위드의 집은 개인적 불행 때문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균열 속에서 함께 무너짐.
ㅇ (남겨진 질문) 영화는 한 개인이 시대의 혼란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묻게 함.

5. 인상 깊은 장면과 기억에 남는 요소

가. 평온한 가정의 초반부
ㅇ (겉보기의 안정) 영화 초반 스위드의 가정은 미국식 성공의 완성처럼 보임.
ㅇ (불안의 씨앗) 그러나 메리의 말더듬과 불안한 표정, 부모와의 어긋남은 이미 그 평온함 안에 균열이 있음을 보여 줌.

나. 우체국 폭파 사건 이후
ㅇ (한순간의 붕괴) 우체국 폭파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스위드 가족의 삶을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는 사건임.
ㅇ (아버지의 집착) 스위드는 딸을 찾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그 집착은 사랑이면서 동시에 자기 삶을 계속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함.

다. 메리를 다시 만나는 장면
ㅇ (돌아오지 않는 딸) 스위드가 다시 만난 메리는 더 이상 그가 기억하던 딸이 아님.
ㅇ (구원의 실패) 아버지는 딸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하지만, 딸은 이미 가정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음.
ㅇ (가장 아픈 대목) 이 장면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의 삶을 대신 돌려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줌.

6. 인상 깊은 부분과 생각

가. 제목이 주는 씁쓸함
ㅇ (목가의 의미) ‘Pastoral’은 전원의 한가롭고 목가적인 삶을 떠올리게 하는 말임.
ㅇ (영화 속 반전) 그러나 영화 속 미국의 목가는 평온한 전원이 아니라, 겉만 번듯하고 속은 무너져 가는 미국 중산층의 풍경임.
ㅇ (감상의 핵심) 그래서 이 제목은 아름다운 삶의 노래가 아니라, 이미 깨져버린 삶에 붙은 씁쓸한 이름처럼 다가옴.

나. 자녀의 일탈과 부모의 무력함
ㅇ (부모의 한계) 스위드는 딸을 사랑하지만, 딸의 분노와 선택을 끝내 통제하지 못함.
ㅇ (폐가망신의 비극) 한 사람의 극단적 선택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부모와 가족 전체를 무너뜨림.
ㅇ (인물의 비극성) 스위드가 악한 아버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몰락은 더 큰 씁쓸함을 남김.

다. 영화의 아쉬움
ㅇ (원작의 무게) 필립 로스 원작은 인물의 내면과 시대적 맥락이 두터운 작품이지만, 영화는 그 무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함.
ㅇ (전개의 압축) 가족의 붕괴와 시대의 혼란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일부 장면은 설명을 충분히 쌓지 못함.
ㅇ (그래도 남는 점) 그럼에도 영화는 스위드라는 인물이 겪는 상실과 무력감을 분명하게 남김.

7. 종합 평가 및 결론

가. 종합 평가
ㅇ (작품의 성격) 「미국의 목가」는 완벽해 보였던 한 남자의 삶이 딸의 선택과 시대의 혼란 속에서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임.
ㅇ (작품의 강점) 영화는 미국식 성공의 겉모습과 그 안쪽의 균열을 한 가족의 비극으로 보여 줌.
ㅇ (작품의 한계) 다만 영화는 원작의 깊이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전개도 다소 압축적으로 진행함.

나. 결론, 소회
ㅇ (핵심 인상) 이 영화는 겉으로는 자식을 잘못 둔 아버지의 비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사랑과 중산층의 안정, 미국의 꿈이 모두 흔들리는 이야기임.
ㅇ (남겨진 생각) 성실하게 살고,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사랑해도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영화는 꽤 씁쓸함을 남김.
ㅇ (제목의 의미) ‘미국의 목가’라는 제목은 평온한 삶의 노래가 아니라, 평온하다고 믿었던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드러내는 반어적 제목임.
ㅇ (한줄 정리) 「미국의 목가」는 좋은 아버지의 성실한 삶도 자식의 극단적 선택과 시대의 혼란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씁쓸한 가족 비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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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송옥은 오수지에게 제니를 받아 치마속에 감추었다가 생즙을 내어 몰래 대화여에게 먹였다. 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나대화의 광증이 나을 기미가 없는데다 내란으로 궁성 안팎이 어지러워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이용했다. 대화여의 사수증세는 많이나아지고 있었다.

"전하, 사직이 흔들렸으나 도처에서 충신들이 들고 일어나 천지가 호응하고 있사옵니다. 머지않아 전하께서 사직을 바로잡고 천하를다스릴 것이옵니다. 지금 고통을견디지 못하면 만백성은 통곡하옵니다."나송옥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애원했다.

대화여는 배고픈 아이가 어미 품을 더듬듯 나송옥의 저고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몽실한 젖가슴을 쥐고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나송옥은 고름을 풀어 대화여의 입에젖꼭지를 물려주었다. 대화여는 허기 들린어린애처럼 허겁지겁 빨았다. 그때 밖에서인기척이들렸다. 나송옥은 재빠르게 저고리를 여몄다.

그러나 무명선사와 신사랑이 반대했다."중경 백성도 우리 백성이요, 도성 백성도 우리 백성이옵니다. 싸워 이기려면 백성을 죽여야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면 백성을 아낄 수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첩을내려 대상의를 설득하옵소서."

"전하, 예부터 진정한 승자는 화적위우라 하여, 적을 감동시켜 동무로 만든다고했사옵니다. 대상의도 천심이 변하는걸 알것이옵니다."

7월초나흘, 대숭린의 군사가 동경성 백리 지경까지 육박하여 행영을 세우고 군진을 펼쳤다. 상경성을 지키던 고기경도 동경성북쪽에 진을 치고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원한에 쌓인 장수들과 유배지에서 필사의 탈출을 한 신하들은, 도성을 공격하여역적대원의를 주살하고 사직을 되찾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장군은 들으시오. 우리가 한을 품고공격하면, 도성에 있는 10만 백성이 크게다칩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서 현책을 찾는게 좋겠소.
그러나 북방의 흑수군이 우리지경을 범했으니 백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정벌하는 것이 무릇 장수의 도리가 아니겠소."대숭린은분분한 의견을 다스리고 상경용천부도독 고기경에게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병하라 명했다.

선덕조는 이내 뜻을 알아듣고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의붓아비를 살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지만, 의붓아비가 깨어나서 죄없는 백성들을 죽일 게 뻔하면 어찌 살리겠나이까. 차라리 죄 없는 자식을 살리겠습니다."난석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손에 천하의운명이 걸렸다. 때가 되면 너도 목숨을 바쳐 대륜을 지킨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소리는 바람이 들어도 아니 된다. 알겠느냐?"
"하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소첩도 반신반의했사옵니다. 그런데 좌우를 둘러보니 사태가 심상찮음을 알았사옵니다. 황궁과 조정을 살펴보면 모두 고잉의심복들이 둘러싸고 있사옵니다. 시위든금군이든 칼을 쥔 장수들은 거개가 고씨들이옵니다. 내시감 장국선이 병들어 눕고 고잉의일가 고맹극이 폐하를 보필하는 것도유심히 살펴보시옵소서."

그러나 고잉을 잡으러 갔던 대수간은 머리 없는 귀신이 되어, 고잉이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성을 탈출했다는 급보와 함께돌아왔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대원의는 충격에 휩싸였다.그때 황궁을 포위한 반란군의 함성이 밤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무수한횃불이 타올라 대낮처럼 밝아졌다. 시위장수 대한무가피를 흘리며 침궁 앞에 쓰러졌다. 대원의는칼을 뽑아 들고 뒷문으로 도망쳤다.
그러나기다렸다는 듯 앞쪽에서 일시에 횃불이 올랐다. 불빛 속에서 여태껏 미친 줄 알았던대화여가 장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큼나섰다. 그는 어느새 색깔 고운 용포를 입고있었다.

대원의는 두 눈이 금세 충혈되어 좌우를훑어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혼자였다.대원의를 하늘처럼 섬기던 신하들은 모두도망가고달랑 혼자서 칼을 치켜들고 있었다. 활을 든 군사들이 그를 에워쌌고, 창검을 든 군사들도 겹겹이 대열을 지어 대원의를 노려보았다.
"역적 대원의는 칼을 내려놓고 꿇어 엎드려라!"

대사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대원의가 그 경황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는 하늘의 자손이니 오직 하늘에게만 무릎을꿇어야 하옵니다."대원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천손은 함부로 승하할 수 없사옵니다.더구나 역도들 손에 용체를 손상해서는 아니되옵니다. 첩에게 천명을 맡기소서. 폐하께서는 거룩하고 당당히 극락에 오르셔야 하옵니다."대원의가 칼을 내렸다. 근엄한 지존의낯빛이 아니었다. 겁에 질린 얼굴도 아니었다.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너에게 짐의 천명을 맡기노라."대사루가대원의 앞에 절을 올렸다."후생에서는 천추만세까지 섬기겠사옵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

대사루는 칼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허공을 갈랐다. 황제 대원의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대사루는 온몸에 튀긴 피를 바라보더니 보검을던지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제가슴을깊게 찔렀다.

대화여는 세 황자 대숭린, 대청윤, 대성진이 옹립하여 용상에 올랐다. 때는 계유(793) 년 칠월 열사흘이었다. 연호를 중흥으로 하니이는 선제 광성문황제 때 연호인대흥을 이어받겠다는 뜻이었다.

"폐하, 역적 대원의가 사직을 흔들고 정사를 망쳐 조정의 체통이 무너졌사옵니다.반복무상한 흑수가 지경을 범해 외환을 수습하지못했사옵니다. 조정의 체통을 바로잡고 국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상벌이분명해야 하옵니다. 그래야만 충신은 번성하고 역신은준동하지 못하옵니다. 삼족을멸하여 후세에 규범을 삼으시옵소서."공신 박사성이 국기를 바로잡기 위해 대원의에게 충성했던역신들을 모두 징치하자고 주품했다.

"자고로 해불양수라 하여, 바다는 물을 뿌리치지 않는다 했사옵니다. 간난신고를 겪으셨으나 천위에 오르셨으니 바다처럼 모두 끌어안으셔야 하옵니다. 지금은 우리 지경을 범한 흑수를 정벌하는게 급하고 죄 지은 자를 널리 사면하여 폐하의 어짊이 천하를 적셔야 하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신사랑은 박사성의 의견과는 달리 널리 해량할 것을 간했다.

"폐하, 감히 아뢰옵니다. 대원의 같은 역적이 준동한 것은 대흥지치를 이루셨던 선제께옵서 말년에 이르러 정사를 그르치고,충신을 멀리하고 간신을 중용했으며, 황음무치하여 천심을 거슬렸던 후과였사옵니다. 역적과 간신에게만 죄를 묻는다면 과연 하늘의 견책이라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께서는 하늘처럼 높은 용좌에 계시어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 감히 바른 말을 아뢰기 어렵사옵니다. 대신으로부터 초야의 백성에게까지 구언하옵소서."
신사랑은 갓 제위에 오른 황제 대화여에게 겸손하게 구언을 청하라고 직간했다

"그러나 대원의를 따랐던 심복과 간신들은 부화방탕했사오니 백성의 고혈을 착취한 죄까지 사해주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온당치 않게 챙긴 재물을 적몰하여 관고를 채우시옵소서."
"경이 짐의 마음을 편안케 하도다. 선제들께서 신씨 가문을 스승으로 모신 까닭을비로소 알았도다."

"자고로 둔천배정이라 하여 자연의 도리를 벗어날 수 없으며 사람으로 태어나면 천명을 따라야 하옵니다.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것은 마침 태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고, 필연으로 세상을 뜨는 것은 하직할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옵니다. 때를 조용히 받아들여 차례를 따르는 것은 군자의 도리이옵니다. 성불하신 석가모니도 열반에 드시지않았사옵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정녕 아니었다.병이 깊어 결코 오래 살 수 없음을 알려주니 어찌 침통하지 않겠는가. 하늘이 내린생사의 끄나풀에 매달리지 말라는 충언이었다.

정사가 밝아진 탓인지, 상경용천부도독고기경과 대장군 사마달, 진태평이 거느린군사들이 연합하여 회원부를 회복하고 흑수를 토평했다는 기쁜 소식이 도성으로 날아들었다. 대원의에게 굴종했던 회원부, 동평부, 철리부의 도독을 비롯한 장졸들이 새황제에게 충성을 맹약하고, 죄를 면하기 위해 용감하게 흑수 말갈을 공격한 덕이었다.
흑수 토벌군은 흑수 대수령 낙진몽의 동생 낙개몽과 수령 골타를 포함하여 포로 천명을 도성으로 압송하는 전과를 올렸다. 올가와 낙개몽은 매년 조공을 바치고, 아들을질자로 보내기로 맹약했다.

흔들리는 수레에 누워 먼 길을 이동하는것은 간난신고였다. 황제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 태사 신사랑과 태의 난숙공의 지극정성이 아니었으면, 어가행렬은 벌써 여러 번 멈추었을 것이다. 대소신료와 황실은먼저 상경에 입궁하여 황제를 기다렸기에시위하는 장졸들과 내시, 궁녀, 근신들만어가를 따랐다.

모질고도 질긴 장마가 걷히고 따가운 햇살이 산하를 휘감아 언제 그랬냐 싶게 무덥던 날, 황제 대화여는 숨을 거두었다. 갑술(794)년 7월 초여드레 새벽녘이니 재위 일년도 채우지 못했다. 대화여는 만조백관이 간곡히 간언하고 진신소를 올려 태자 책봉을 간했지만 끝내 책봉하지 않더니, 몸소닦아 쓴 신한 한 통을 남기고 붕어했다. 유조이자 계위를 선포한 신한에서 대화여는뜻밖에 후사를 숙부이자 선제 대흠무의 작은아들 대숭린에게 맡겼다.

발해 제6대 황제로 등극한 대숭린은, 연호를 정력으로 하고 선제 대화여의 시호를성황제로, 묘호를 인종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한번 모질게 흔들린 사직은 쉽게 안돈되지 못했다. 당연히 황위를 물려받을 줄 알았던 대화여의 장자 대선해는 칭병한 채 즉위식에도 나오지 않았다.

이 깊지 않았으면 장자에게 계위했겠지만, 등극 초기를 빼곤 줄곧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바람에 대숭린이 섭정을 했다.
황제 대숭린은 나라의 중추인 대내상 고건을 파직하여 태위를 제수하고, 선제가 스승으로 섬겼던 태사 신사랑이 황제 앞에서거침없이 논힐한다 하여 직을 파했다. 국사무명선사는 지나치게 정사에 개입한다 하여 아예 국사의 관작을 없앴다. 무명선사를비롯한 신사랑 형제와 난씨 일가, 고원을비롯한 옛 고구려 왕족들이 아예 도성을 떠나자 민심은 또 한번 출렁거렸다.

황제의 칙지가 지엄해서 관작을 내리면감히 거역할 자가 없으리라 여겼으나, 강직한 선비들은 관작을 지푸라기처럼 여기고사직상소를 올린 뒤 하나둘 도성을 빠져나갔다.

"폐하, 신이 듣건대 산장호수의 노들섬에 천하 현승 운문선사가 있어 신통력이 대단하다 하옵니다. 이번 사냥에는 뱃놀이를겸하여 노들섬으로 행차하옵소서."

운문선사는 대숭린이 반역괴수로낙인 찍혀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끝내 천하를 다스릴 거라고 귀띔했다. 그때만 해도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손자인 대화여를 태자로 책봉했을 뿐만 아니라 한왕 대원의가섭정하다시피 할 때였다.

대숭린이 국사였던 무명을 배척한 것은그가 육통했기 때문이었다. 육통이란, 상대의 속마음을 한눈에 읽어내는 타심통, 사람의 전생을 알고 현생을 맞추는 숙명통, 앉은 자리에서 9만리 밖을 훤히 볼 수 있는천안통, 천계 소리를 알아듣는 천이통, 천리 길을 한나절이면 걸어간다는 축지술인신족통, 사람의 몸 밖으로 무엇이든 새어나가지 않는 경지를 이루어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는 누진통을 말했다.

대숭린이 대선해에게 황위를 빼앗기지않으려고 섭정을 하며 천심이 모아지기를기다릴 때, 무명은 모질게 그를 꾸짖었다.황위에 오른 것이 겉으로는 순리였으나 속으로는 순리가 아니라는 걸 지금은 세상이다 알고 있었다. 자손이 있는 대화여가 숙부에게 황위를 물려준 것 때문에 아직도 민심이 흉흉했다.

운문선사는 대숭린이 반역괴수로낙인 찍혀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끝내 천하를 다스릴 거라고 귀띔했다. 그때만 해도믿기지 않는얘기였다. 손자인 대화여를 태자로 책봉했을 뿐만 아니라 한왕 대원의가섭정하다시피 할 때였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노승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황제 앞에 합장했다. "폐하께서 어찌 이리 누추한곳을 찾으셨나이까?" "태평성대를 이룰 현책을 구하고자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소."고승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은 발해 황실의법도였다.

"늘 이렇게 드시오?"대숭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좁쌀 한 알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늘과땅과 구름의 수고가 있어야 하며,
농부가봄부터 가을까지 모질게 고생해야 하나이다. 그런 수고를 생각하고 삼키면 천하를삼키는 것이니, 어찌 배가 부르지않겠나이까? 먹고 입고 자는 것으로 존귀한 척하는 사람은 결코 군자가 아니고 지존은 더더욱 아니옵니다."

"황자들께서 갇혀 산 세월이 오래되어식탐이 생겨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찌고 몸이 무거우니 무예를 게을리 하고 책을 멀리하나이다.
장차 황위를 이어야 할 황사로손색이 많나이다. 군왕이 주지육림에 빠지면 스스로 천명을 어긴 것이고, 백성은 유리걸식하는 고통을겪게 되나이다."황제와 자손들까지 싸잡아 나무라는 운문의 눈초리는 의외로 따뜻했다.

"신사랑 같은 스승을 내쫓았으니 누가황자들을 매섭게 가르쳐 지존을 만들겠나이까? 무명선사 같은 스승을 버린 폐하께서는 어찌 저너른 천하를 살피겠나이까? 고건과 고원 같은 인재를 내친 조정에서 감히 바른 말로 논힐할 대소신료가 있겠나이까? 난숙공이나 난강같은 인물을 버렸으니 병든 백성은 누가 살리고 천지를 두드릴 양마를 어찌 기를 수 있겠나이까? "대숭린은 가시가 하나씩 몸에박히는 것같았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없었다. 운문에게 꼭 얻어가야 할 현책이있었다.

"훌륭한 황제가 용상에 있으면 백성들은황제가 있는 것만 아나이다. 그보다 못한황제면 백성들은 친근하게 여기고 따르나이다.
그보다 못한 황제면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그보다 더 못한 황제면 백성들이 업신여기나이다. 백성들이 폐하를 어찌생각하겠나이까?"

이정기와 이납이 죽었지만, 제나라의 3대 왕 이사고는 여전히 치청을 지배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제나라는 당나라의턱 밑에서 당나라의 목을 죄고 있었다.제왕 이사고를 도와 당조와 맞겨루게해야 하나이다. 제나라가 강성해지는 것만큼 발해는안전하나이다. 산동 땅은 당나라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침공할 때 군사를 집결시켜 비사성과 평양성을 공격한요충지였나이다. 선조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양마와 병장기와 곡식을 주고 체주 합타성에서 나는 소금과 철,금, 은, 비단을받아오면 되옵니다."

환궁한 대숭린은 조서를 내려 운문의 뜻을 좇아 각종 제도를 고치고 농경과 수렵장려하며 군적을 정비하고 둔전과 군사 초모를재결했다. 여병을 널리 초모하고 폐황대원의를 주살하려 했던 장효채를 여군 장수로 임명했다.

그러나 대숭린은 끝내 무명, 신사랑 형제, 난씨 일가, 고씨 일가는 중용하지 않았다.세상에 두려울 게 없지만 내심 황제에게할 말을거침없이 간하는 자들이 두려웠다.하늘은 입이 없어 두렵지 않았으나, 그들은당장에 목청을 높이고 글을 닦으니 그 소리는 천둥 같고우레 같았다.

은지첨의 왼쪽 팔뚝에새겨진 글자는 이러했다.짐이 천추만세를 다하면 당제 이괄을 함께 순장하겠으니 몸을 정결히 하고기다려라. 그리고는 뱃심 좋은 밀아고를 책문사신으로 삼아 은지첨을 앞세워 당나라로 보냈다.사신 밀아고는 부러 바다를 건너등주를경유하여 제왕 이사고를 알현하고 당나라가 보낸 국서 사본을 전했다. 전후사정을들은 이사고는 발해가 당나라를공격하면 기꺼이 해제동맹을 맺겠다고 약조했다.

발해 황제는 밀아고를 책문사신 겸 책봉사로 삼아 당나라 황제 이괄에게 아속을 내려 중원왕으로 봉했다. 천하 지존이요, 하늘의자손이라 하여 천자로 불리는 이괄을한낱 중원왕으로 책봉했으니 어찌 놀라지않았겠는가."기필코 요절을 내리라!"이괄의 분노는대전을 뒤흔들었다.

"폐하, 수나라와 당나라가 백만 대군을 일으켰지만, 고구려에 패해 수나라는 망했고, 당 태종은 그 후과로 천수를누리지못했사옵니다. 발해는 고구려보다 강역이네 배나 넓고 정예한 군사들도 두 배나 되옵니다. 무황제 때 많지 않은 군사로산동반도를 삼키고 장성 지경까지 정복한 것을벌써 잊으셨사옵니까? 더구나 지금은 산동반도의 맹주와 발해가 동맹을 맺었사옵니다.
신을 죽이고 당나라 사직이 무너지는걸 보시겠사옵니까?"

이괄은 서둘러 각 번진에 선유사를 보내잘못을 시인하고, 모든 번진들을 훈구로서대하고 작위를 복작시킬 테니 지난날을 잊어달라는조서를 공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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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7 - 동경천도와 역모 김홍신의 대발해 7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7권, 동경천도와 역모 – 총기가 흐려진 문왕, 외척이된 대원의의 역모, 그리고 황실 혼란의 심화

1. 대발해 7권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핵심 요약) 대발해 7권에서 56년에 걸친 대흠무(문왕) 치세 말기에 나타난 판단력 저하와 후궁·외척 정치의 확대, 대원의 세력의 전횡, 충신들의 축출과 암살, 황실 계승 질서의 혼란, 그리고 대흠무 승하 직후 벌어지는 대원의의 찬탈 시도와 이에 맞선 반격의 시작을 종합적으로 검토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 배경) 대체로 755년 안녹산의 난 이후부터 793년(계유년) 대흠무 붕어 직전까지의 시기로, 문왕 대흠무의 말년에 이르러 발해는 외형상 강성함을 유지하나 내부적으로는 후궁·외척 정치가 확대되고 황실 권위와 인사 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국면임.
ㅇ (공간적 배경) 상경용천부와 홀한해, 흑수 지경과 오장성, 산동의 평로치청 세력권, 일본과의 외교 공간, 동경 천도 논의가 벌어지는 발해 조정, 그리고 반격의 거점이 되는 서경압록부 등 제국 강역 전반이 주요 무대로 제시됨.

다. 핵심 요지
ㅇ (군주의 노쇠와 정치 혼란) 7권은 문왕 대흠무가 더 이상 치세 초반의 통치 감각을 유지하지 못하고, 후궁과 외척의 말에 흔들리며 충언을 배척하는 과정이 조정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줌.
ㅇ (외척 정치의 확대) 대술묘와 대원의 세력은 혼맥, 인사, 군사, 국문 조작을 바탕으로 황실과 조정을 잠식하며 사실상 정국 운영의 중심으로 떠오름.
ㅇ (충신의 연쇄적 퇴장) 양소화, 고흔정, 신석정, 무명선사, 주공신, 이태극 등 발해를 떠받치던 인물들이 차례로 제거되거나 밀려나면서 나라의 중심축이 하나씩 흔들림.
ㅇ (질서 동요의 가속화) 겉으로는 발해가 여전히 강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황실과 조정의 권력 질서가 깊이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이후 더 큰 내분으로 이어질 조짐을 드러냄.

2. 주요 내용 전개

가. 주공신의 재등장과 주소연 입궁
ㅇ (독수리의 상징) 대흠무의 독수리가 주공신의 딸 주소연이 기른 잿빛 독수리에게 패하는 장면은, 황제의 기세와 감각이 이미 예전 같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냄.
ㅇ (주공신 복권) 대흠무는 이 일을 계기로 주공신을 다시 가까이 두고, 국부 고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소연을 후궁으로 맞아들임.
ㅇ (정략 혼인의 반복) 이는 노쇠한 군주가 정치를 바로 세우기보다 혼인을 통해 세력 균형을 잡으려는 선택으로 보이며, 이후 반복되는 후궁 정치의 출발점이 됨.

나. 안녹산 세력의 종말과 대당 질서 변화
ㅇ (반란의 격화) 안녹산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당 제국을 크게 뒤흔들고, 장안까지 위협하며 천하 질서를 혼란에 빠뜨림.
ㅇ (반란 세력의 분열과 최후) 그러나 반란 세력 내부의 권력 다툼이 이어지면서 안녹산은 끝내 피살되고, 안경서와 사사명으로 이어지는 혼란도 계속되며 당의 내전은 쉽게 수습되지 못함.
ㅇ (이합비의 최후) 안녹산 곁에 있던 이합비도 이 과정에서 함께 죽음을 맞으며, 발해가 당 내부를 흔들기 위해 심어 놓았던 공작 서사 역시 비극으로 마감됨.
ㅇ (외교 환경의 변화) 이로써 발해는 당의 약화를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되지만, 동시에 더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국제 환경과 마주하게 됨.

다. 상경 천도 이후 대굉임의 순람과 오장성 사건
ㅇ (황태자의 순람) 상경 천도 후 장자 대굉임은 태백산과 흑수 지경을 순람하며 변방 백성들의 삶과 국경의 실상을 직접 보게 됨.
ㅇ (오장성의 부패) 이 과정에서 흑수지경의 오장성 성주 설기와 아들 설개가 흑수와 내통하고 사익을 챙기며 변방을 농단하고 있음이 드러남.
ㅇ (난청의 죽음) 설개는 대굉임 일행을 돈 많은 나그네로 알고 습격하고, 그 와중에 난청이 죽고 설개도 목숨을 잃음.
ㅇ (통치 균열의 징후) 이 사건은 넓어진 강역의 말단에서 이미 중앙의 통치력이 흐트러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임.

라. 대술묘와 대원의 세력의 부상
ㅇ (새 외척의 등장) 대흠무는 새 후궁 대술묘를 들이고, 그의 아버지 대견강과 아들 대원의를 가까이 두며 높은 벼슬과 권한을 부여함.
ㅇ (신석정의 경고) 태사 신석정은 대원의를 역상이라 하며 강하게 반대하지만, 대흠무는 오히려 스스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고 믿으며 충언을 물리침.
ㅇ (양소화의 제거) 대술묘 입궁과 외척 확대에 반대한 양소화는 대원의의 암계로 홀한해에서 익사체로 발견되고, 이는 충신 제거가 제도 밖 암살의 방식으로 넘어갔음을 뜻함.

마. 황후 고흔정 독살과 검시 거부
ㅇ (황후의 죽음) 대굉임의 어머니이자 황후인 고흔정이 독살되면서 황실 내부의 암투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듦.
ㅇ (진실 규명의 봉쇄) 신석정은 배후를 밝히려면 검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나, 대흠무는 황후의 몸에 칼을 댈 수 없다며 분노하고 오히려 신석정을 내침.
ㅇ (국문 조작) 대중정 고잉 등이 약과 고문으로 거짓 진술을 받아내며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고, 진실보다 황제의 감정과 간신의 이익이 국문을 좌우하게 됨.
ㅇ (군주 판단력의 상실) 이 장면은 문왕이 더 이상 사실 판단과 공적 절차보다 체면과 측근의 말에 흔들리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줌.

바. 신석정·무명선사의 유배와 암살
ㅇ (충신의 추방) 신석정과 무명선사는 진실 규명과 간신 제거를 주장하다 각각 태백산과 안국사로 귀양을 가게 됨.
ㅇ (침묵 강요의 질서) 충언이 곧 불경과 반역으로 몰리고, 간신이 충성을 내세워 군주를 둘러싸는 구조가 완성됨.
ㅇ (암살의 실행) 이후 대원의는 태사 신석정을 호환을 위장하여 제거하고, 발해 조정은 충신을 견제 장치로 삼던 질서를 사실상 잃어버리게 됨.

사. 이정기와의 연계와 외형적 강성
ㅇ (평로치청과의 교분) 대원의는 산동의 이희옥, 곧 이정기와 깊은 교분을 쌓고, 대흠무는 이를 외교적 성과로 받아들여 더욱 밀착함.
ㅇ (마의술과 군사력 지원) 발해는 난청을 산동에 보내 마의술을 전수하게 하고, 병장기와 말까지 지원하여 평로치청의 군사적 기반을 강화함.
ㅇ (강성의 양면성) 겉으로 보면 이는 발해 국력의 확장이지만, 실제로는 대원의가 외부 군사 세력과 연계하여 자신의 정치적 기반까지 넓혀 가는 과정이기도 함.

아. 일본 외교의 오만과 국서 파동
ㅇ (상국 의식의 표출) 대흠무는 강대해진 국세를 믿고 일본 위에 상국으로 군림하려는 태도를 드러내며, 외교 문서 또한 상대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흐름.
ㅇ (일만복의 수습) 사신 일만복은 일본 천황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국서를 고쳐 다시 올리는 등 현장에서 황제의 과도한 자만을 수습하느라 애를 먹음.
ㅇ (외교 감각의 약화) 이는 군주의 자의식이 커질수록 실무 외교가 얼마나 어려워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나, 이 또한 대흠무의 힘을 약화시키키 위한 대원의의 암계임.

자. 황후 책봉 경쟁과 황실의 혼란
ㅇ (대술묘와 대귀령의 경쟁) 황후 고흔정 사후, 대원의는 누이 대술묘와 딸 대귀령을 모두 황실 권력의 중심축으로 세우려 하며 황후 자리를 둘러싼 경쟁을 부추김.
ㅇ (도덕 질서의 무너짐) 부녀가 한 황제를 둘러싸고 권력을 다투는 기형적 상황은 황실이 공적 질서의 상징이 아니라 사적 욕망의 공간으로 전락했음을 드러냄.
ㅇ (대귀령의 도주) 대귀령은 황후 책봉을 앞두고도 금군 장수 양신장과 사랑을 택해 도주하고, 이는 황실이 이미 조롱거리가 될 만큼 권위를 잃었음을 보여줌.

차. 대굉임 계열의 몰락과 대원의의 전횡
ㅇ (정통 계승자의 약화) 대원의는 대굉임에게 약을 써 병약하게 만들고 끝내 일찍 죽게 하며, 황태자 계열의 기반을 무너뜨림.
ㅇ (황자들의 좌절) 대숭린, 대청윤, 대정한 등은 황제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황도로 향하지만, 대원의는 이를 모반으로 황제에게 거짓상소를 올려 대흠무는 오히려 대원의를 믿고 그에게 토벌을 맡김.
ㅇ (실기의 반복) 충신들이 대원의를 제거하자고 거듭 간하나, 대화여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함.

카. 동경 천도 강행과 반대파 축출
ㅇ (장수 집착의 정치화) 대원의는 동경으로 옮기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술사들의 말을 내세워 대흠무의 불안을 자극하고, 군주는 국가 대사보다 자신의 수명에 더 마음을 빼앗김.
ㅇ (중신들의 항거) 이태극, 주공신, 박차암, 최준무, 조휘붕 등 핵심 중신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천도를 반대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양 처리됨.
ㅇ (정치 공작으로서의 천도) 동경 천도는 단순한 수도 이전이 아니라, 반대 세력을 조정 밖으로 몰아내고 대원의 중심의 권력 질서를 굳히는 정치 행위로 기능함.

타. 대흠무 승하와 대원의의 찬탈
ㅇ (56년 치세의 종말) 793년, 밖으로 당과 맞설 수 있는 대국을 세우고 안으로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제3대 황제 대흠무가 오랜 치세를 마감함.
ㅇ (손자 책봉과 실기) 대흠무는 손자 대화여를 태자로 세우지만, 정작 대원의를 제거하라는 가장 핵심적 조치는 끝내 내리지 못함.
ㅇ (황제 사후의 반란) 대흠무 승하 직후, 대원의는 곧바로 옥새와 황위를 장악하려 들고 대화여에게 미치는 약을 먹여 실성하게 만듦.
ㅇ (명분 없는 찬탈의 한계) 그러나 이러한 찬탈은 정통성이 약했고, 오히려 반격의 명분을 반대 세력에게 제공하게 됨.

파. 반격의 시작과 내전 국면의 형성
ㅇ (토벌의 기치) 대숭린, 대청윤, 무명선사 등은 서경압록부를 중심으로 대원의 토벌의 기치를 들고 일어섬.
ㅇ (전국적 저항의 확산) 서경압록부를 기점으로 황족과 귀양 가 있던 충신, 각지의 군사와 의병이 차례로 합류하며 반대 세력이 빠르게 커짐.
ㅇ (변방 질서의 동요) 내부 혼란을 틈타 북흑수와 남흑수의 움직임까지 거칠어지며, 문왕이 다져 놓았던 변방 질서도 크게 흔들리기 시작함.
ㅇ (국가 질서의 동요) 이는 이미 조정이 하나의 중심으로 나라를 묶지 못하고, 각 지역과 세력이 자기 명분 아래 움직이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줌.

3. 인물 및 통치 평가

가. 대흠무의 군주상 변화
ㅇ (초기 문왕과 말년 문왕의 단절) 7권의 대흠무는 6권에서 보였던 체제 정비형 군주의 모습과 달리, 노쇠와 불안, 욕망 속에서 후궁과 외척의 말에 흔들리는 인물로 변해 감.
ㅇ (노욕의 정치적 결과) 성격 변화가 아니라 판단력 자체가 흐려져 충신과 간신을 분별하지 못하고, 공적 절차보다 체면과 총애를 앞세우는 모습이 반복됨.
ㅇ (권력의 말년 위험) 군주의 말년이 국가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대흠무는 7권에서 발해 내부 혼란을 키우는 직접적 원인으로 형상화됨.

나. 대원의의 성격과 역할
ㅇ (간신의 전형) 대원의는 후궁 세력, 외교 관계, 군사 기반, 국문 조작을 모두 활용해 권력을 장악하는 전형적인 간신으로 그려짐.
ㅇ (외척 정치의 화신) 그는 단순히 사악한 개인이 아니라, 군주가 충언을 버리고 총애와 사사로운 정에 기대기 시작할 때 어떤 인물이 나라를 잠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존재임.
ㅇ (찬탈 지향의 권신) 대원의는 황실 혼맥과 관료 인맥, 외부 군사 세력과의 연계를 이용하여 결국 황위까지 넘보는 단계에 이름.

다. 대굉임과 대화여의 한계
ㅇ (무력한 정통 계승자) 대굉임은 민생을 살피고 진실을 보려는 의지는 있으나 결단과 숙청의 시기를 놓치며 권력 투쟁에서는 무력한 모습을 보임.
ㅇ (결단 부재의 대가) 대화여 역시 간신 제거를 요구하는 충언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황위를 지킬 최소한의 장치조차 확보하지 못함.

라. 충신 세력의 역사적 의미
ㅇ (충신의 연쇄적 퇴장) 양소화, 신석정, 무명선사, 주공신, 이태극 등은 끝까지 나라를 위해 간언하지만, 귀양·축출·암살을 겪으며 문왕 말기의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함.
ㅇ (국운의 지표) 충신이 밀려나고 간신이 살아남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국가 혼란의 가장 분명한 징후로 제시됨.

4. 거시적 고찰 및 역사적 함의

가. 강성 국가의 외형과 내부 균열
ㅇ (외형과 내면의 괴리) 7권의 발해는 평로치청과 연계하고 일본과 외교를 벌이며 겉으로는 강국의 위상을 보이나, 내부적으로는 황실 질서와 인사 체계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음.
ㅇ (강성의 취약성) 이는 군사력과 외교력만으로 국가의 지속이 보장되지 않으며, 내부 통치 윤리와 계승 질서가 흔들리면 강국도 큰 혼란을 겪을 수 있음을 보여줌.

나. 군주의 노쇠와 체제 동요
ㅇ (초심 상실의 대가) 56년이라는 기나긴 치세 동안 부국강병을 이룬 군주라 하더라도, 노년의 총명 상실과 권력 관리 실패가 한순간에 제국의 질서를 크게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임.
ㅇ (말년 권력의 위험) 오래 집권한 군주가 불안과 장수 욕망에 사로잡히면, 간신이 그 틈을 파고들어 조정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점이 7권 전체를 관통함.

다. 황실의 사유화와 외척 정치
ㅇ (왕실의 사적 공간화) 후궁과 외척, 혈연과 총애가 공적 질서보다 앞서기 시작하면서 황실은 더 이상 나라의 중심이 아니라 욕망과 음모의 공간으로 변질됨.
ㅇ (혼란의 심화) 외척 정치가 중심이 되고 충신 숙청이 시작되면서, 군주 자신도 그 구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드러남.
ㅇ (사유화된 국정 운영) 대원의라는 권신 한 사람에게 인사, 군사, 정보가 크게 집중되면서, 발해가 자랑하던 관제와 법도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국정 운영이 외척 세력에 크게 좌우되는 모습이 나타남.

라. 문왕 말기 혼란의 역사적 의미
ㅇ (혼란의 심화) 7권은 발해가 여전히 강한 외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문왕 말기에 황실과 조정의 혼란이 깊어지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권이라 할 수 있음.
ㅇ (내분의 예고) 문왕 승하와 대원의의 찬탈 시도는 이후 발해 정치가 보다 거센 권력 투쟁과 정통성 경쟁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예고함.
ㅇ (왕조의 딜레마) 밖으로는 강대한 국세를 유지하던 제국이, 결국 황궁 내부의 암투와 군주의 노욕, 외척의 전횡이라는 가장 오래된 왕조의 약점 때문에 크게 흔들릴 수 있음을 드러냄.

마. 늙은 군주의 노욕이 부른 권력의 혼란
ㅇ (노욕의 비극) 대발해 7권은 늙은 군주가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젊음과 아름다움, 장수와 권력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할 때 나라가 얼마나 크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줌. 대흠무는 후궁과 외척을 가까이하며 사사로운 욕망을 정치 판단 위에 놓았고, 그 결과 충신의 간언은 밀려나고 간신의 아첨만 조정을 채우게 됨.
ㅇ (사적 욕망의 정치화) 본래 황제의 욕망은 개인의 문제에 그쳐야 하나, 문왕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황후 책봉, 외척 중용, 천도 논의, 태자 문제까지 모두 흔드는 국정의 문제로 번짐. 특히 대술묘와 대귀령, 대원의 세력이 황실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것은 군주의 노욕이 단순한 추문이 아니라 국가 운영 자체를 어지럽히는 화근이 되었음을 보여줌.
ㅇ (성군의 몰락) 더 뼈아픈 점은 대흠무가 본래 무능한 군주가 아니었다는 사실임. 나라를 정비하고 상경 천도를 이루며 강성한 발해의 기틀을 닦았던 군주가, 말년에 이르러 총기가 흐려지고 욕망에 끌려 충신과 간신을 분간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쌓은 질서를 허무는 모습은 더 큰 비극으로 다가옴.
ㅇ (권력의 교훈) 결국 7권은 늙은 군주의 노욕이 한 사람의 추한 말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황실의 질서를 흐리고 충신을 죽음으로 몰며 간신에게 나라를 맡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줌.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문왕 말기를 통해, 권력이 오래갈수록 절제와 자기 억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서사라 할 수 있음.

5. 종합 결론

가. 문왕 말기의 본질
ㅇ (국정 혼란) 대발해 7권은 문왕 대흠무가 노쇠로 총기가 흐려지고, 충신보다 후궁과 외척을 가까이하며 국정을 그르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됨.

나. 대원의 정치의 확대
ㅇ (외척 전횡의 심화) 대원의는 외척과 권신의 전형으로서 황실 내부를 잠식하고 충신을 제거하며, 마침내 군주의 죽음 뒤 황위까지 넘보는 수준에 이름.

다. 문왕 말기 혼란의 심화
ㅇ (권력 질서의 동요) 겉으로는 강대해 보이던 발해가 내부적으로는 황실과 조정의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7권은 문왕 말기 정치 혼란이 깊어지는 과정을 그린 권으로 볼 수 있음.
ㅇ (전체 서사의 의미) 결국 7권은 한때 성군으로 보였던 문왕조차 말년에는 간신을 막지 못하고, 그 결과 황실과 조정의 혼란을 키우게 되는 비극적 정치 서사라 할 수 있음.

존명(尊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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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녹산으로부터 시작된 당나라 내란은장장 9년을 끌다가 계묘(763)년 3월에 막을내렸다. 아버지를 죽이고 네 번째로 연나라황제가 되었던 사조의가 평주의 석성현의산속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연전연패에 배반하거나 항복하는 신하들 때문에도망갈 데도 없었다.

하북이 평정되자 당 조정은 논공행상을행했다. 사촌아우 이회옥 덕분에 평로절도사가 되어 출세가도를 달렸던 후희일은, 평로치청절도사에 검교공부상서를 제수받고식읍을 받았다. 그리고 개국공신 24명의초상화가 걸린 능연각에 초상화가 걸리는영광을 누렸다. 사조의가 자살하기 직전에전세를 역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항복한 사조의의 신하들도 과분하리만큼 사급을 받았다.

"후희일이 발해와 밀통한단 말인고?"
황제 이예가 크게 놀라며 물었다.
"후희일의 충정은 처음부터 변치 아니했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발해와 밀통하는고?"
"후희일의 심복 이회옥이 발해와 내통하고 교역을 주선한다고 들었사옵니다."

한편, 산동 지역의 통치자로 군림한 후희일은 군심과 민심이 이회옥에게 쏠리는 것에 신경이 곤두섰다. 전전긍긍하던 참에 대령군왕 복고회은으로부터 한 장의 밀서가날아들었다. 발해와 밀통하고 있는 이회옥의 죄명을 찾아 참살하라는 내용이었다.
후희일은 때를 기다리며 이회옥의 거동을 면밀히 탐문하였다. 이회옥이 발해 사람들이 교역하는 걸 도와주며 그들과 교분을쌓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정에서걱정할 정도인 줄은 몰랐다. 군사들에게 신망이 큰 이회옥을 참하기 위해서는 납득될만한 죄목을 찾아야 했다.

그럴 즈음 당나라는 또다시 내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민족인 복고회은이 당나라가 고수해 온 이이제이의 덫을 실감하고 끝내 반기를 들었다. 복고회은은 안사의 난을종결시킨 일등공신이었음에도 번족이라는이유로 냉대받자 반기를 들었다. 이에 서방의 강자 토번(티베트)이 10만 대군을 휘몰아 당나라 도읍지인 장안을 함락했다.

이때 이회옥은 반란을 일으킨 복고회은을 도와 평로치청의 군사를 일으키자고 후희일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복고회은의 거병은 명분이 있습니다.당나라는 운명을 다했습니다. 형님이 거병하면 천하가 준동합니다. 하북의 이회선,설숭, 전승사, 이보신도 따를 것입니다."
이회옥은 진지하게 당조를 멸하자고했다.

을사(765)년 5월, 후희일은 이회옥을 병마사직에서 해임하고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복고회은을 도와 거병을 도모했다 하여반역죄로 다스리기로 했다.
그러나 하늘은 이회옥의 손을 잡아주었다. 후희일이 무자(무당)를 데리고 성 밖나들이를 간 사이에 평소 이회옥을 따르던군사들이 옥을 부수고 이희옥을 구출하여절도사로 떠받들었다.

황제 이예는 고심 끝에 명백하게 반심을품은 줄을 알면서도 이회옥에게 평로치청의 절도유후 자리를 주었다. 그의 반심을무마하기 위해서였다. 이회옥은 평로치청의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고, 당제 이예로부터 이정기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나는 고구려 후손이오. 당나라 조정에서는 언젠가 나를 버릴 것이오. 내 평생 소원은 고구려를 복국하는 것이오. 대부도 알겠지만 나라를 일으키는 것은 민심과 군심도 얻어야 하고, 용맹한 군사와 좋은 군마와 병장기가 필요하오. 황상께 간곡히 주품해 주시오."

대원의의 보고를 받은 대흠무는 크게 기뻐하여 대원의에게 문산관인 자수대부와무산관이자 정2품인 보국대장군을 제수했다. 아주 각별한 배려였다. 문관에게는문산관을 내리고, 무관에게는 무산관을 내리는 게 관작의 정령임에도, 황제는 각별히대원의에게 문무관작을 겸직케 했다. 그만큼 총애한다는 뜻이고 공적을 인정했다.

해가 바뀌어 병오(766)년 봄이 되자 발해교역선은 박작구와 비사성 일대에서 바다건너 등주로 향했다. 통한의 땅 등주는 수나라 때부터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던 전진기지였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 고구려의 후손 이정기가 등주를 포함한 산동 일대를 치세하고 있으니 얼마나 장쾌한 일인가.

나는 그저 강대한 군사력만 있으면 나라를 창업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소이다. 허나 대부를 보면서 군사력은 나라를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야알았소."
산동의 맹주인 이정기가 거리낌 없이 속내를 내보였다. 스스로 내공을 다지며 천하를 경략할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영걸이 틀림없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며,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호걸만이 보일 수 있는 자세였다.난욱도 머리를 조아려 예를 표했다.

"발해가 강성해진 것은, 법령이 엄하되공평하고, 조세가 균등하며,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따뜻하게 대하며, 군신 간에 바른말을 하고, 천하에 도가 통하니 누구나 몸과 마음이 가볍기 때문입니다."

명은 하늘에 맡기고 채찍을 들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시면 천하를 얻을 테니수명이 길고 짧음에 연연해하지 마십시오.오직 일념으로 당나라 땅을 차지하고,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정성으로 치세하십시오."
이정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는 나의 스승이오."
두 사람은 밤 이슥토록 술잔을 기울이며세상사를 논하고 앞날을 예견하며 담소를나누었다.

일본 천황 백벽도 그 본디 뜻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전과 다르게 발해 황제가문투를 바꾸어 하국 다루듯 한데다 천손 운운하며 장인과 사위 관계를 맺자 하니 홧김에 따져본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주고받는 국서는각기 귀히 여겨 국서고에 보존하는 법이거늘, 불손하고 예법이 어긋난 발해의 국서를 받을 수 없도다. 이에 국서와 발해 황제가 보낸 방물을 사신과 함께 돌려보내겠노라. 유사에게 명하여 빈례를 모두 중지하라."

"신이 되돌아가 국서를 다시 받아가지고와도 여러 달이 걸리옵니다. 국서는 결코신하가 고칠 수 없사옵니다. 그럼에도 신은감히 아뢰겠사옵니다. 원컨대 국서를 예법에 맞추어 고쳐 올리겠사옵니다. 훗날 황상께옵서 신의 죄를 물을 것이나, 두 나라의화애로움과 번영을 도모했다는 공을 남기고 기꺼이 죽기를 청하겠사옵니다. 윤허하여 주옵소서."
두 나라의 번영을 위하여 목숨을 던지겠다는 발해 사신의 충절에 백벽은 탄복했다.
"내 어찌 그대와 같은 충신의 청을 기꺼이 받지 않겠는가. 허나 나중에 오는 사신들은 예법을 어기지 않게 하라."
"폐하, 황공하옵니다."

대흠무는 황후의 신체가 한낱 짐승처럼취급되는 게 못마땅했다. 신석정은 황제를설득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황제에게 황후 몸에 칼을 대는 건 불경이라고진언한 자가 있는 듯했다.
"간악한 무리를 치죄하시겠나이까?"
"짐이 몸소 국문하겠소."
"황후마마를 시해해서 득볼 자가 누구겠나이까?"
"물러가시오!"

국사의 행차에는 법도가 있어삼엄한 수행이 따르게 마련인데, 무명은 제자 일운만 앞세우고 황궁으로 들어섰다. 
한 식경 만에 무명선사도 쫓겨나듯 궁궐을 나섰다. 불심 두터운 대흠무는 진신사리를 구해온 날부터 무명을 만날 때마다 삼배를 올려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무명의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국사와 태사가 시해범을 잡기 위해 검시할 것을 주청하고 이진무, 두필효, 임향기가 모진 심문에도 굴하지 않자, 문무백관이이심전심으로 상소문을 닦았다.
이틀째 되는 날에 여러 신하가 연명으로올리는 진신소가 편전으로 올라갔다. 물론뭇 신하가 모두 연명하지는 않았다. 끝까지검시를 반대하는 국구 고원과 그의 제자들,근신 대원의와 그의 측근들, 대중정 고잉 역시 연명하지 않았다.

매질을 하거나 불 달군 인두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형구들이 널려있는데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바늘과 송곳, 거칠게 켠 대나무와 끓인 물에약을 타서 마시게 했다. 때가 되면 맛깔스런 음식과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쌀밥을 먹였고, 더러는 몸 고생을 달래라면서 술도몇 잔씩 마시게 했다.
닷새째부터는 국문당하는 자들의 가솔들을 데려다 곁에 앉혀놓고 꼭 같은 방법으로 심문했다.

드디어 엄청난 죄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죄명을 밝힌 것은 사선시의 모시간,은기종, 여물총이었다. 그들이 밝힌 시해의주모자는 국구 고원, 황자 대굉임의 비인고은공의 아버지 고극사, 대내상 고건의 아들이자 상경용천부의 수장인 경사 고군, 중경현덕부도독 고학성과 동경용원부도독왕사감이었다.

"전하, 모두 거짓이옵니다. 황후께서 신하의 상에 있는 음식을 드실 수도 없거니와설사 드셨더라도 마마께서만 절명하실 수없사옵니다. 이는 처음부터 마마를 시해하고 죄를 덮어씌우려는 음모이옵니다. 전하,저 간특한 고잉에게 속지 마옵소서!"
이진무가 목청을 세워 대굉임에게 간했지만, 고잉은 반박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대중정 고잉은 들으라! 하늘이 두렵지않느냐? 어찌 황후를 시중했던 후궁들은심문하지 않고, 죄 없는 신하들만 심문하여죄상을 꾸며내느냐. 닷새 동안 거짓 죄상을만든 너의 간특한 재주를 하늘이 모르겠느냐?"
이진무는 고잉을 꾸짖으며 그 경황에도황자 대굉임의 일그러진 표정을 살폈다.

"전하! 신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옵니다. 삼족이 멸화를 당하는데 어찌 거짓으로 살기를 바라겠사옵니까. 저들처럼 국구와 고씨 일가의 역모였다고 말하면 화를 면할 수있음을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그럼에도 감히 진언하고 죽기를 청하옵니다. 지금이라도 태사께서 황후의 옥체를 검시하시면 음모를 밝힐 수 있사옵니다. 전하, 현자 고극사는 추앙받는 선비로, 오직 후학을 가르칠뿐 세상에 이름을 내밀지 않았사옵니다. 이는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는 걸 막으려는역신들의 음모이니 신들이 죽은 뒤라도 기필코 밝히옵소서."
임향기의 낭랑한 목소리는 죽음을 눈앞에 둔 여인 같지 않게 당당했다.

제에게 황후의 시신을 검시하여 원흉을 밝히자고 주청할 생각이었다.
 
대흠무는 국문을 주관하는 황자의 간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흠무는 반대하는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칙지를 내렸다.
"역신 이진무, 두필효, 임향기는 효수하여 그 죄상이 효경처럼 간악했음을 알리거라. 고원은 멀리 동평부, 고극사는 철리부, 고군은 삭탈하여 막힐부로 유배하라.도독 고학성과 왕사감은 군졸로 강등하여도부수를 삼거라. 또한 왕비 고은공을 폐하여 사가로 보내고, 고원의 아들 고용을 삭탈하여 아비를 따라가 시중들게 하라. 짐의명을 거역한 자는 역신으로 문죄하겠도다."

그때 태사 신석정이 앞으로 썩 나섰다. 편전 대령한 진신들이 일순 숨을 멈추었다.
"폐하, 술맛이 좋고, 되가 정확하며, 친절한 술집인데도 술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술집의 개가 사납기 때문이라고 했나이다.어진 선비와 충직한 신하들이 폐하께 진언하려 해도 사나운 개가 폐하 곁에서 선비와신하를 물어뜯으면 폐하의 총명이 흐려지고, 어진 선비와 충직한 신하는 떠나게되나이다. 이는 곧 민심을 잃는 것이며, 어두운 밤길을 비추던 등불이 꺼진 것과 같사옵니다."

대흠무가 신석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짐을 보필하는 진신 중에 개가 있소?"
목소리에 퍼런 날이 섰다.
"언젠가는 주인을 물어뜯나이다."
신석정은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태사에게 면책과 불촉권을 주었소. 언제고 바른말로 간하라는 뜻이지, 역신을 두둔하고 감히 황후를 능멸하라는 게 아니었소. 조용히 퇴궐하면 문죄하지 않겠소.물러가시오!"
벽력 같은 호통이었다. 신석정은 무릎을꿇었다.
"예부터 폐하가 어질면 신하는 곧은 말을 할 수 있다고 했나이다. 또한 충신은 바른말을 다하고 죽음을 피하지 않는다고 했나이다. 황후마마의 억울함을 풀어 드리는게 신하된 도리이옵니다."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진언이었다.
"경은 죽음이 두렵지 않소?"
편전을 우렁우렁 울리는 노기 찬 소리였다.

"신의 나이 예순일곱이나이다. 죽음은두렵지 않사오나 혹세무민한 세상이 되고,간신이 득세하여 천기가 흐려지는 게 두렵사옵니다."

그때 불쑥무명선사가 정적을 깨뜨렸다.
"폐하!"
무명의 목소리는 더없이 묵직했다.
"윗사람의 도리를 잃고 아랫사람을 죽이는 것을 패라 하고, 죄 없는 사람을 애써 죽이는 것은 적이며, 충언하는 신하를 문죄하는 어리석음은 폭이고, 옳지 않는 판단으로흐린 명령을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을 멸이라 하나이다."

욱은 스승이나 마찬가지인신석정을 주살했다는 대원의를 받아들일수 없었다. 시일이 흐른 뒤에야 난욱은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신석정을 귀양 보낸 것은 황제인데, 야심 많은 대원의가 황제의 뜻을 좇아 신석정을 주살했다는 것은터무니없는 무근지설이라고 결론내렸다.신석정의 처참한 말로를 순전히 황제 탓으로 돌린 난욱은 그때부터 황제를 향한 충심에 등을 돌렸다. 대원의가 끝까지 난욱을호의로 대한 것도 마음을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정기의 급서는 번진 연합의 패퇴를 의미했고, 당나라에게는 승기를 잡는 기회가되었다. 당제 이괄은 전열을 가다듬어 양승의를 공격하여 패퇴시키고, 곧장 전열을 공격하여 화공전술로 대승을 거두었다.
때맞추어 이정기의 심복이자 친척인 덕주자사 이사진과 체주자사 이장경이 당나라에 항복했다. 더 놀라운 것은 요충지인서주자사 이유의 항복이었다. 이정기의 사촌아우이자, 가장 신임했던 심복까지도 배신의 칼날을 뽑아들었다. 
고구려의 후손들이 고구려의 혼을 살리기 위해 웅혼한 기개로 당나라와 맞설 때,또 다른 고구려 후손들은 배반의 깃발을 들고 고구려의 피를 더럽히고 있었으니, 패왕의 길은 험하고도 험했다.

그러나 이납은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넘기고 임술(782)년에 번진 세력과 다시 연합하여 제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대기국 왕 주도, 조나라 왕 왕무준, 위나라 왕 전열과 함께 반당 대열을 공고히했다.
산동반도에 고구려 후손이 왕국을 세운것은 천하를 놀라게 했다

"사람은 속여도 하늘은 속일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대술묘도 똑같이 목청을 높여 대원의의말을 맞받았다. 대술묘의 눈빛이 대원의의눈을 뚫을 듯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황후를 시해한 자가 누구이며, 그 독물이 무엇인지 밝혀지면, 경의 목숨이 백 개인들 어찌 존망지추의 위급이 아니겠습니까? 경의 운명이 내 손 안에 있으니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시오."
"……."
대원의는 갑자기 머릿속이 어지러워 혀끝만 달싹거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음은 마지막 남은혈육의 정이오. 현비가 책봉되는 순간 경의목숨은 내 것이오. 함부로 나서지 마시오."
대원의의 등줄기로 얼음덩이가 타고 내려오는 듯했다. 
"귀비마마, 신은 가문도 지켜야 하고, 사직도 보위해야 할 막중한 천명을 받고 있사옵니다."
"경은 참으로 어리석소. 내 손으로 총경채, 달기종, 목판술을 문초하란 말이오?"
설마 했는데, 대술묘가 사건의 전말을 세세히 아는 것 같았다. 대원의는 대술묘에게더 말을 붙일 수도, 그렇다고 애원할 수도없어 그냥 시름없이 돌아섰다.
대원의는 궁궐을 나서며 모든 게 한꺼번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천도를 반대하는 신하들도 상소와 주달하기에 바빴다. 선조성의 좌상 이태극은 좌평장사 주공신, 시중 박차암과 함께 편전으로 나아가 천도의 부당함을 고했다.
"폐하의 성덕이 흐려지자 간사한 무리들이 천도를 주청하고 있사옵니다. 가뭄으로백성들이 굶주리는데 천도하는 건 민심을저버리는 일이옵니다. 재정을 염출하고 부역을 징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민심을저버린 죄는 사하기 어렵사옵니다. 지금 당나라는 군웅이 할거하고 병란이 일어 존망의 위기에 처했사옵니다. 반드시 천도해야한다면 서진하여 서경을 도읍으로 삼아 당나라를 경계하는 게 순리이옵니다. 통촉하옵소서."

대흠무는 흰 수염이 잘 어울리는 주공신에게 물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우상 대원의가폐하의 용안을 흐리게 하고 있사옵니다. 대원의는 동경 일대에 심복과 따르는 자들을심어 터를 잡게 했으며, 많은 양마와 양곡을 비축해 두었사옵니다. 이는 곧 역심을일으켰을 때 방비할 수 없는 형상이옵니다.지금 당나라가 어지러운 이유는 개원의 치를 이룬 당 현종이 말년에 환관 고력사와이림보, 양국충 같은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총명을 잃은 후유증 때문이옵니다."

황후마마를 시해한 배후를 밝히시면 반드시 대원의와 그 심복들의 죄상이 드러나옵니다."
선조성 시중 박차암도 죽음을 각오한 듯간했다.

황자 대숭린과 대정한이 이런 정황을 예견하고 천도하기 전 대흠무에게 주청했었다.
"물이 끓어 넘치는 걸 멈추려면 불을 끄는 게 상책이옵니다. 지금 군국대사가 모두대원의의 수중에 들었사옵니다. 더구나 천도할 동경 일대에는 대원의의 식읍이 3천호나 되며, 인근의 군사들은 대원의가 초모한 군사들이옵니다. 백성들은 귀비궁이 화마를 입은 일도 대원의의 계략이라 믿고 있사옵니다. 사직을 보전하고 국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대원의를 범관으로 삼고, 그의심복들을 정죄하옵소서."

역정이 묻어나는 소리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명예지하여 사해가 두려워하고, 만백성이 추앙하던 황제였다. 그러나세월은 속일 수 없다고 했던가. 권세를 너무 오래 누리면 총명이 흐려지는 게 세상이치인가. 대흠무는 근신 중에 근신이요,아부의 달인인 대원의에게 정사를 맡기고후궁들의 치마폭을 헤어나지 못했다.

대원의는 누이 대술묘뿐 아니라 딸 대귀령까지 대흠무에게 바쳤다. 어디 그뿐인가. 늙은 황제가 어떤 여인을 좋아하는지를 살펴 수시로 미인을 바쳤다. 황제가 대귀령을총애하는 줄 뻔히 알면서, 더 젊고 더 예쁜여인들을 골라 바치는 대원의의 간교함을,대흠무는 오로지 충성으로 알았다.

"예부터 총애하는 신하에게 권세가 모아지면 반드시 화근이라 했사옵니다. 지금 대원의는 무소불위 막강지권을 가지고 폐하를 참칭하며, 천하를 농락하고 있사옵니다.이는 고구려 말년의 연개소문에 비할 게 아니옵니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시해하고보장왕을 내세워 대막리지가 되었사옵니다. 당 태종의 백만 대군을 무너뜨린 용맹과 기개는 높이 살지언정, 어찌 주군을시해한 죄를 덮을 수 있겠사옵니까? 무릇제왕은 백성과 나라를 위해 재앙이 될 만한것은 모두 참초제근해야 하옵니다. 잡초를없애려면 어찌 그 뿌리를 뽑지 않을 수 있사옵니까? 대원의를 물리치옵소서."
대청윤도 곡진하게 간했다. 태자 대굉임이 죽었는데도 아직 태자를 책봉하지 않았으니, 만약 대흠무가 급서하면 대원의의 막강한 권세를 무엇으로 누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조회를 폐하다시피한 대흠무는 정사를대원의에게 맡긴 채 대전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대내상 고중걸은 명색만 만인지상이었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정사는 대원의의 심복인 우상 고잉이 주무르고 있었다. 황위를 이어받아야 할 황자 세 명은상경에 머물고, 귀비 소생인 대성진만 궁성에 머물고 있으니, 변고가 생기면 모든 권세가 대원의 수중에 들 것을 모르는 사람이없었다.

여인은 금군장수였던 장각수의 딸장효채였다. 장각수는 황후 시해 사건에 연루되어 효수당한 장수였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자살했다고 들은 대원의는 딸자식이 살아 있는 게 믿기지 않았다.
대원의는 장각수 일가족의 자살을 보고했던 장수 미경금을 잡아들였다. 미경금은모든 걸 각오한 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장각수의 자식들이 하나같이 창검을 잘쓰기에 집을 포위하고 기다렸습니다. 아무기척이 없어 급습했더니 모두 자결했는데,열두 살짜리 계집아이만 칼을 잡은 채 제목을 찌르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저는 계집애를 차마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담을 넘겨 도망가게 했습니다. 어찌 충신의 자식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겠습니까?"
심복처럼 아꼈던 미경금은 눈을 똑바로뜬 채 대꾸했다.
"충신의 자식이라 했느냐?"
"그렇습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진실을 감출 수 없습니다."
미경금은 더 입을 열어 말할 수 없었다.대원의의 칼날이 바람을 가르며 미금경의목을 쳤다.

"폐하, 백 번을 죽어도 죄를 씻지 못하니신의 삼족을 멸하시어 만분의 일이라도 죄를 씻게 하옵소서."
대흠무는 무릎을 꿇고 엎드린 대원의를쳐다보지도 않은 채 언성을 높였다.
"대원의의 왕호를 폐하고 범관으로 삼으라."

환궁한 대흠무는 며칠 만에 병석에 눕고말았다. 정사를 폐하여 대전에 나가지 않을뿐더러 신하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수라상도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 들끓는 심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버럭버럭 소리 지르거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을 마구휘둘러 내시와 궁녀들을 놀라게 했다.
그럴 만도 했으리라. 천하의 주인이요,하늘의 자손이며 만백성을 거느린 황제의여인이 황후 책봉을 앞두고 젊은 장수와 도망쳤으니, 그 수치와 수모를 어찌 견딜 수있으랴.

대귀령이 양신장과 도망치는 순간 대원의는 모든 권세를 잃었다. 황후와 태자가책봉되는 순간 민심은 그쪽으로 쏠릴 것이다. 앞날이 훤히 보이는데 가만히 있으면무슨 변고를 당할지 모른다. 심복도 무수히많지만 정적 또한 무수했다.
"묘책이 없겠느냐?"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무슨 참화를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황후 시해 사건부터 대귀령의 반심에 이르기까지 짊어져야할 죄상이 너무 많았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대원의가 막강지권을 누릴 때는 숨길 수 있을지언정 권좌에서 멀어지는 순간 없는 죄마저 덤터기 쓸수 있는 게 세상인심이었다.

이때 토적군 장수로 전장에 나갔던 박사성이 편전에 꿇어 엎드리며 간했다.
"감히 아뢰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광왕전하를 비롯한 세 황자가 역모를 꾸민 것은 사리에 맞지 않사옵니다. 2만 군사를 일으켜 황성을 침공했다지만 실제로 5천 군사뿐이었고 전투 대형을 갖추지 않았으니애초 공격 의도가 없었사옵니다. 항복한 군사들은 폐하의 칙서를 받들고 입궐하는 군사들이었기에 모두 기뻐했다 하옵니다. 더구나 광왕전하는 생모인 숙비마마가 황후에 오르는 걸 크게 기뻐하여, 여러 가지 물선을 마련했다 하옵니다. 간신들이 폐하의칙서를 위조하여 사직을 어지럽혔으니 좌우를 살피시옵소서."
대흠무의 얼굴이 금새 변했다.
"사실이더냐?"
"항복했거나 사로잡힌 군사들을 모두 방면했사옵니다. 그들을 문초하면 진위를 밝힐 수 있사옵니다. 역신들이 도성을 공격하면서 어찌 무방비로 행군했겠사옵니까?"
"반적들이 공성무기와 화차, 검거까지거느리지 않았더냐?"
"그 또한 칙서를 받든 것이옵니다."
"짐은 칙서를 내리지 않았노라."
"폐하, 간사한 무리들이 칙서를 위조했으니 폐하를 참칭한 죄를 엄히 다스려 국기를 바로잡고 간신들을 물리치옵소서."
"누가 간신인고?"
"대원의의 암계가 어찌 두렵지 않겠사옵니까?"

대흠무의 노성에 시위가 달려들어 박사성을 포박했다.
이로부터 상소를 올려 덕비와 숙비의 폐비를 부당하다고 주청하거나, 세 황자의 역모에 얽힌 진위를 밝혀 달라는 신하들은 삭탈되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꿈에서 대숭린과 대청윤이 내 손을 잡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살아 있으니꿈에 나타났으리라."
대흠무는 세월이 흐르며 황자들의 반란이 조작되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품었다.
"폐하, 적손이 총명호학하고 담대하여능히 보필할 것이옵니다."
"그렇구나."

대흠무는 드디어 임신(792)년 정월에 손자 대화여를 태자로 책봉했다. 책봉식을 마친 대화여는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태자궁으로 입궁하고 대사면을 단행했다.
대사령 소식에 대원의는 크게 놀랐다. 정적들이 모두 풀려났기에 가슴이 섬뜩했다.심지어 대원의를 주살하려 했던 장각수의딸 장효채와 귀양 갔던 박사성도 사면되었다. 반적으로 낙인찍힌 대숭린과 대청윤의 가솔도 사면되어 도성으로 돌아왔다. 시퍼런 칼날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위기를 느낀 대원의는 몸을 숙이고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해 5월, 제나라 왕 이납은 불과 서른네살로 아버지 이정기와 같은 악성종양으로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에 둘째아들 이사고가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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