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 Prosit! ein Prosit! (건배! 건배!)
Der Gemütlichkeit! (맘껏 즐기자!)

Eins, Zwei, Drei, G’Suffa, Prosit!
(하나, 둘, 셋, 마시자, 건배!)

6개의 맥주 회사는 축제 장소에 대형 천막을 설치하여 비어홀을 운영한다. 천막 수는 매년 9~10개 정도다. 참가 회사의 수가 6곳인데 왜 9~10개일까? 그중 몇 회사가 각각 두 곳의 천막을 설치, 운영하기 때문이다. 천막 하나당 수용 가능 인원은 5,000명 정도로, 총 5만여 명이 동시에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옥토버페스트의 1일 평균 방문객 수가 50만 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6개 맥주 회사가 운영하는 천막 수는 적절해 보인다. 이 축제의 좀 더 구체적인 통계를 살펴보자.

기간: 16~18일
전체 입장객 수: 매년 약 650만 명
맥주 소비량: 매년 550~600만 리터

기야 그는 자신의 주치의 구텐과 함께 슈타른베르크 호수에 빠져 죽는 참담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과 린더호프 성(Schloss Linderhof), 헤렌킴제 성(Schloss Herrenchiemsee)을 건축했다.

원숭이의 술(원숭이가 나무 틈새 같은 곳에 넣어둔 과일이 발효된 것을 우연히 사람이 발견해 먹어 본 뒤 맛이 좋아 계속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

신석기시대에 요리를 담당했던 여성들은 곡물을 발아시켜 소화를 촉진하도록 해서 먹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는 레이 태너힐(Ray Tannahill)이 『음식의 역사(Food in History)』라는 책에서 밝힌 내용이다.

고대의 인류는 단맛이 나는 음식을 한동안 놓아두면 술이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벌꿀이나 과일 등으로 얻은 간접 경험 덕분이었다. 그런 터라 우바이드 공동체 문화를 일군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선주민 역시 보리를 이용해 많은 술을 마셔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수메르인에게는 보리를 이용한 여덟 가지 맥주, 그리고 혼합 곡물을 이용한 세 가지 맥주가 있다.
이는 역사에 남아 있는, 수메르인의 생활상과 관련된 기록이다.

경작지가 염화되는 원인은 뭘까? 관개용수가 뜨거운 햇빛에 빠른 속도로 증발하여 그 안에 함유돼 있던 칼륨, 나트륨, 칼슘염 등이 토양에 쌓이기 때문이다. 관개농업으로 일어나는 경작지 염화는 보리는 물론이고 다른 작물들의 성장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수메르인이 세운 나라가 멸망했다. 기원전 1800년대의 일이다.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북부에 속하는, 유프라테스강 강가에 있는 바빌론을 수도로 하는 바빌로니아가 그 뒤를 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바빌로니아에서 맥주 양조 기술자를 지위가 높은 신관과 동등하게 병역을 면제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① 술집 여주인이 맥주 대금을 곡물 대신 은화로 받거나 질이 떨어지는 맥주를 판매할 경우 ‘익사형’에 처한다.

② 술집 여주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위험한 정치적 목적의 모임을 하는 손님을 관청에 신고하지 않을 경우 ‘사형’에 처한다.

③ 맥주에 정해진 재료 이외의 불순물을 첨가해 판매하는 자는 술통에 집어넣고 익사할 때까지 맥주를 들이붓는 형벌을 내린다.

마두(madhu)는 형용사와 중성 명사 두 가지로 사용된다. 형용사로 쓰일 때는 ‘달다(sweet)’라는 의미를, 중성 명사로 쓰일 때는 ‘벌꿀・밀주’의 의미를 지닌다. 최신판 사전에는 ‘사탕처럼, 달다(sarkara madhu)’라는 용례가 소개된다. 여기에서 ‘사르카라(sarkara)’는 설탕 가루를 의미하는데, 사르카라에서 사카린이 유래했다고 적혀 있다.

고대 로마인은 브리튼에 두 가지 유산을 남겨 주었다.

하나는 ‘도로’이고 다른 하나는 ‘와인’이다.

(게르만족이 즐겨 마시는) 음료 중에 보리・밀 등으로 만든 술이 있다. 이는 와인과 비슷하지만 다소 품위가 떨어지는 액체다. 한데 라인강과 도나우강의 기슭에 사는 이들은 이 음료 외에 이따금 와인을 사서 마시기도 한다.

로마의 뛰어난 도로 문화를 잘 보여 주는 문장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대표적이다. 참고로, 고대 로마 도로의 총길이(간선도로 총길이는 약 8만 5,000킬로미터, 지선도로까지 합하면 총 40만 킬로미터 이상-옮긴이)는 오늘날 미국 고속도로 총길이와 맞먹는다고 한다.

이런 호화로운 저택 회랑에서 사람들은 체스를 특히 즐겼다. ‘체스판(Checkers, 체커즈)’이 오래된 여관의 간판으로 쓰인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으며, 오늘날 영국에서 ‘체커즈’라는 이름의 펍을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나의 맥주잔은 엉터리라네.
내가 만들었다네.
많은 사람이 감쪽같이 속았다네.
나는 물 탄 에일을 사람들에게 속여 팔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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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개정판 조정래의 대하소설들
1. 아리랑 전12권
2. 태백산맥 전10권
3. 한강 전10권

지인과의 저녁약속이 있었다. 난 보통 약속시간이 있으면 늦지 않게 나간다. 그러나, 그날은 늦지는 않았지만 지인께서 먼저 나와 계셨고, 태백산맥을(등단 50주년 개정판) 읽고 계셨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무실 근처 주민분이 벌교여행가서 태백산맥문학관에서 한질 사다 주셨다한다.

어지저지 자연스럽게 책 얘기를 하다. 태백산맥, 한강은 읽었으나 아직 아리랑은 10년도 전에 책만 사놓고 못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그럼 자기가 책을 사서 보내주겠다 하였다. 난 손사레를 치며 아니다, 있는데 뭐하러 사냐, 아니다, 새책으로 읽어보시라, 옥신각신 하다가 알았다, 그럼 감사히 받겠다, 하였다.

그러나, 책은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어느날인가 해외에서 전화가 왔다(이분은 휴가중이셨다. 아들과 단 둘이--엄청 가정적인 분이다.) 그분한테... 택배를 보냈는데 주소를 잘못써서 보내 다른 동에서 며칠째 버로우하고 있다고 택배사에서? 교보?에서 연락이 왔다한다.

그럼,, 이 아이 상황을 자세히 알려달라, 그럼 내가 그동으로 찾으러 가겠다. 다시 전화가 왔다. 취소하고 다시 주문해 주겠다 한다. 아니다, 얘가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만 알려주면 내가 찾아가겠다. 0동 0호 현관문앞에 있습니다. 수고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런 수고는 100번이라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찾아왔다.

등단 50주년 기념 아리랑 세트를 선물받고 나니 태백산맥, 한강 세트도 소장하고 싶어졌다.

인터넷 검색하니 태백산맥 세트는 품절이라...(그땐 품절이었는데 이글을 쓰는 지금은 팔고있다.) 알라딘, 네네 등 전문서점이 아닌 일반서점 한군데 세트 파는데 있더라. 그것도 다른 사이트 보다 일만원 정도 더 저렴한 가격에.. 반신반의 하며 주문, 오늘 왔는데 세트 각데기 상면 양쪽 모서리가 찢어져 있다눙 ㅠㅠㅠㅠ. 그래도 싸게 샀으니.. 테이핑 처리

이제 한강도 구매해야 된다.. 미친걸까?

이놈의 소유욕을 어찌어찌...엊그제 중고책 좀 팔고 책장 정리 하였으나... 요거 놓을데가 없다.
그냥 아리랑 위에 올려 놓는다.
(태백산맥위에 한강은 못 올릴꺼 같다.ㅠ)

올핸 아리랑을 반드시 읽고 말겠다.
우선 구판으로.
손이 가기 쉽게 일단 1권을 리클라이너 옆 협탁에 올려 놓는다.
의지의 표현이다. 맘 이라도.. ㅠㅠ
그리고 50주년 기념판으로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다시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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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20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50주년 기념판 폼 나는데요
이런게 또 소장욕구를 막... ㅎㅎ 저는 태백산맥과 아리랑만 읽었어요. 책은 다 집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이 글 읽으니 막 갖고싶지만 참아야하느니라 백번 외고 있네요 ㅎㅎ

대장정 2025-08-20 20:55   좋아요 0 | URL
그 폼때문에, 그분은 괜찮다는데 또 아리랑을 사주셔가지구 ㅎㅎ, 돈ㅈㄹ을 또 하구 있네요. 한강도 사야구. 토지X반고흐 콜라보가 엄청 땡기구 있어요. 30만원이 넘드라구요 ㅠㅠㅠ

바람돌이 2025-08-20 20:58   좋아요 1 | URL
토지 반고흐 콜라보가 뭔지 찾아 봤다가 눈 감았습니다. 와 너무 멋져요. ㅎㅎ

대장정 2025-08-20 21:30   좋아요 1 | URL
언젠간 사고 말꺼야, 입니다😅😂
 

또 한 명의 역사적인 인물이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히틀러가 대규모 나치스 집회를 연 역사적인 장소로도 유명하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나치스의 시발점이자 기폭제가 된 집회로 역사에 남았다. 이후 히틀러는 뮌헨 폭동을 일으켰다. 묘하게도 이 폭동 사건 역시 또 다른 비어홀 ‘뷔르거브로이켈러(Bürgerbräukeller)’에서 발생했다. 그 시대에 세계사를 바꾸는 정치 집회가 비어홀, 즉 맥줏집에서 주로 개최된 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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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독일의 뮌헨 맥주가 전통적인 강자 북독일 맥주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맥주 순수령’ 덕분이다?

맥주 순수령이 공포되었다. 1516년 4월 23일의 일이다. 순수령은 남부 독일의 맥주 품질을 눈에 띄게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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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꾼 두 번의 대규모 정치 폭동이 모두 비어홀, 즉 맥줏집에서 일어난 셈이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아무튼, 그 과정에 새롭게 세워진 시청사의 지하에 거대한 양조장이 딸린 비어홀・레스토랑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렇게 도시마다 탄생한 초대형 비어홀은 그 지역의 대중 집회 장소로 자주 활용되었다. 그리고 그 비어홀들은 자연스럽게 히틀러와 나치스의 정치 집회 및 폭동의 장소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와인 명산지 뮌헨과 바이에른주는 왜 17세기 이후 갑자기 와인 명산지에서 맥주 명산지로 탈바꿈했을까?’ 그 유명한 30년 전쟁 때문이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정확히 30년간 벌어진 이 대규모 전쟁은 독일 전역을 초토화했는데, 남부의 아름다운 포도밭도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당시 드넓은 포도밭이 대부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그 탓에 이 지역에서는 와인 양조가 불가능해졌다. 남부 독일의 양조 산업이 와인에서 맥주로 바뀌고 세계사의 물줄기마저 돌려놓은 데에는 ‘30년 전쟁’이라는 돌발변수가 있었던 셈이다.

권력은 필연적으로 독선을 낳고 부패와 타락을 불러온다. 단언하건대, 역사를 통틀어 여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도 시대도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대의 독일에서 가톨릭교회가 면벌부를 판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인츠(Mainz)의 대주교가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의 부호 푸거(Fugger) 가문에게 빌린 막대한 금액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아인베크 맥주를 마시고 용기를 내어
보름스 제국회의장으로 나아갔다.
(At the Diet of Worms,
Martin Luther was fortified with Einbeck beer…….)

로마 제국 멸망 이후 유럽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황제 카를 5세, 가톨릭 사제였던 루터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다

"저는 절대로 제 양심을 속이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정연한 논리가 제 잘못을 입증해 내지 못하는 한 말입니다. 제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지금 여기에 서 있습니다. 그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라는 말로 자기 변론을 끝맺었다.

보름스 제국회의에서 마르틴 루터가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보여 준 양심을 저버리지 않은 용기 있는 태도와 흠잡을 데 없는 자기 변론은 전 유럽을 움직였다.

카를 5세는 대화를 통해 복잡한 종교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급기야 카를 5세는 무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그는 반가톨릭 단체인 ‘슈말칼덴 동맹(Schmalkaldischer Bund)’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황제 군은 반가톨릭 연합군을 손쉽게 격파하고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1547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를 5세는 자신이 신뢰하던 측근 작센공 모리츠(Moritz von Sachsen, 재위 1541~1547)의 배신으로 쓰라린 패배를 겪는다. 결국 그는 ‘아우크스부르크 화의(Peace of Augsburg)’에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역사적 선언을 하게 된다.

‘왜 최초로 순수령을 공포할 당시 ‘효모’에 대한 언급이 없었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거의 예외 없이 자연 발효로 술을 제조했고 효모에 대한 지식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도 발효가 된 후 나무통 바닥에 가라앉은 회갈색 점성 물질이 발효를 촉진한다는 지식 정도는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다.

빌헬름 4세의 궁정 전속 양조장은 보리를 제외한 원료, 즉 밀을 사용해 만든 바이첸비어를 거리낌 없이 독점적으로 생산했다.

맥주 양조와 판매를 하는 자가 질 나쁜 맥주를 판매할 경우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구체적인 처벌 내용은 "맥주를 즉시 폐기 처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나눠 주어야 한다. 벌금은 1회 적발 시 5굴덴, 3회 적발된 자는 맥주 양조권을 박탈한다" 등이다.

날마다 최소 6개의 샘플을 관능검사할 것. 검사관은 시음하기 전날 밤 맥주나 와인을 절대로 과음해서는 안 됨. 관능검사 당일에는 미각을 둔하게 할 어떤 음식물도 섭취해서는 안 됨. 소금에 절인 맛을 내는 치즈, 사탕과자 등이 대표적임. 코담배와 씹는담배를 포함한 모든 흡연을 엄격히 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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