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전서(弘齋全書),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홍재전서 제10권 서인(序引) 3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무오년

萬川明月主人翁自序 戊午
萬川明月主人翁曰。有太極而後有陰陽。故羲繇以陰陽而明理。有陰陽而後有五行。故禹範以五行而㫼治。觀乎水與月之象。而悟契於太極陰陽五行之理焉。月一也。水之類萬也。以水而受月。前川月也。後川亦月也。月之數與川同。川之有萬。月亦如之。若其在天之月。則固一而已矣。夫天地之道。貞觀也。日月之道。貞明也。萬物相見。南方之卦也。南面而聽。嚮明而治。予因以有得於馭世之長策。革車變爲冠裳。城府洞如庭衢。而右賢而左戚。遠宦官宮妾。而近賢士大夫。世所稱士大夫者。雖未必人人皆賢。其與便嬖僕御之伍。幻黧晳而倒南北者。不可以比而同之。予之所閱人者多矣。朝而入。暮而出。羣羣逐逐。若去若來。形與色異。目與心殊。通者塞者。強者柔者。癡者愚者。狹者淺者。勇者怯者。明者黠者。狂者狷者。方者圓者。疏以達者。𥳑以重者。訒於言者。巧於給者。峭而亢者。遠而外者。好名者。務實者。區分類別。千百其種。始予推之以吾心。信之以吾意。指顧於風雲之際。陶鎔於爐韛之中。倡以起之。振以作之。規以正之。矯以錯之。匡之直之。有若盟主珪璋以會諸侯。而疲於應酬登降之節者。且二十有餘年耳。近幸悟契於太極陰陽五行之理。而又有貫穿於人。其人之術。莛楹備於用。鳧鶴遂其生。物各付物。物來順應。而於是乎棄其短而取其長。揚其善而庇其惡。宅其臧而殿其否。進其大而容其小。尙其志而後其藝。執其兩端而用其中焉。天開九閽。廓如豁如。使人人者。皆有以仰首而快覩。然後洪放密察以待通者。優游寬假以待塞者。柔以待強者。強以待柔者。明亮以待癡者。辯博以待愚者。虛曠以待狹者。深沉以待淺者。干戚之舞以待勇者。戈甲之容以待怯者。沕沕以待明者。侃侃以待黠者。醉之以酒。所以待狂者也。飮之以醇。所以待狷者也。車輪所以待乎方者也。圭角所以待乎圓者也。疏以達者。示我堂奧。𥳑以重者。奏我和鑾。訒於言者。戒以敏行。巧於給者。籲以退藏。峭而亢者。包之以山藪。遠而外者。奠之以袵帷。好名者。勸以務實。務實者。勸以達識。如仲尼之徒三千。而扣之則響。春工之化羣生。而著之則成。以至聞言見行。則大舜之沛然若決江河也。予懷明德。則文王之照臨于西土也。寸長不讓於人。萬善都歸於我。物物太極。罔咈其性。性性存存。皆爲我有。自太極而推往。則分而爲萬物。自萬物而究來。則還復爲一理。太極者。象數未形。而其理已具之稱。形器已具。而其理无眹之目。太極生兩儀。則太極固太極也。兩儀生四象。則兩儀爲太極。四象生八卦。則四象爲太極。四象之上。各生一畫。至于五畫。畫而有奇偶。累至二十有四。則爲一千六百七十有七萬餘畫。一皆本之於三十六分六十四乘。而可以當吾蒼生之數矣。不以界限。不以遐邇。攬而歸之於雅量己分之內。而建其有極。會極歸極。王道是遵。是彝是訓。用敷錫厥庶民。而肅乂哲謀之應。五福備具。而康而色。予則受之。豈不誠淵乎遠哉。夫子著易繫。首揭太極。以詔來人。又作春秋。而遂明大一統之義。九州萬國。統於一王。千流百派。歸於一海。千紫萬紅。合於一太極。地處天中而有限。天包地外而無窮。飛者之於空也。潛者之於川也。蠢動之自蠕也。草木之無知也。亦各榮悴。不相凌奪。語其大則天下莫能載。語其小則天下莫能破。是蓋參贊位育之功。爲聖人之能事也。予所願者。學聖人也。譬諸在水之月。月固天然而明也。及夫赫然而臨下。得之水而放之光也。龍門之水洪而駛。鴈宕之水淸而漪。濂溪之水紺而碧。武夷之水汩而㶁。揚子之水寒。湯泉之水溫。河淡海鹹。涇以渭濁。而月之來照。各隨其形。水之流者。月與之流。水之渟者。月與之渟。水之溯者。月與之溯。水之洄者。月與之洄。摠其水之大本。則月之精也。吾知其水者。世之人也。照而著之者。人之象也。月者太極也。太極者吾也。是豈非昔人所以喩之以萬川之明月。而寓之以太極之神用者耶。以其容光之必照。而儻有窺測乎。太極之圈者。吾又知其徒勞而無益。不以異於水中之撈月也。遂書諸燕居之所曰萬川明月主人翁以自號。時戊午十有二月之哉生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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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전서 제10권 / 서인(序引) 3
(출처: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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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무오년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태극(太極)이 있고 나서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복희씨(伏羲氏)는 음양을 점괘로 풀이하여 이치를 밝혔고, 음양이 있고 나서 오행(五行)이 있으므로 우(禹)는 오행을 기준으로 하여 세상 다스리는 이치를 밝혀 놓았으니,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에 대해 그 이치를 깨우친 바 있었던 것이다. 즉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뒤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인 것이다.
하늘과 땅이 오직 올바른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해와 달이 오직 밝음을 보여 주며, 모든 물건들이 서로 보는 것은 남방의 괘(卦)이다. 밝은 남쪽을 향하고 앉아 정사를 들었을 때 세상을 이끌어 갈 가장 좋은 방법을 나는 터득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무(武)를 숭상하던 분위기를 문화적인 것으로 바꾸고 관부(官府)를 뜰이나 거리처럼 환하게 하였으며, 현자(賢者)는 높이고 척신(戚臣)은 낮추며,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은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를 가까이하고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대부라는 이들이 반드시 다 어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금세 검었다 금세 희었다 하면서 남인지 북인지 모르는 편폐(便嬖)ㆍ복어(僕御)와는 비교가 안 될 것 아닌가.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 같은 자,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은 자, 얕은 자, 용감한 자, 겁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 보고, 혹은 흥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기를 마치 맹주(盟主)가 규장(珪璋)으로 제후(諸侯)들을 통솔하듯이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이용만 하는 것이다. 다만 그중에서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며,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 주고,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단(兩端)을 잡고 거기에서 중(中)을 택했다. 그리하여 마치 하늘에 구천(九天)의 문이 열리듯 앞이 탁 트이고 훤하여 누구라도 머리만 들면 시원스레 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순주(醇酒)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 주고,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 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 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중니(仲尼)의 제자가 3천 명이었지만 각자의 물음에 따라 대답을 달리했고, 봄이 만물을 화생(化生)하여 제각기 모양을 이루게 하듯이, 좋은 말 한마디와 착한 행실 한 가지를 보고 들으면 터진 강하(江河)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대순(大舜)을 생각하고, 현명한 덕이 있으면 서토(西土)를 굽어 보살피던 문왕(文王)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한 치의 선이라도 남이 아니라 내가 하고 이 세상 모든 선이 다 나의 것이 되도록 한다. 물건마다 다 가지고 있는 태극의 성품을 거스르지 말고 그 모든 존재들이 다 나의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
태극으로부터 미루어 가 보면 그것이 각기 나뉘어 만물(萬物)이 되지만, 그 만물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찾아보면 도로 일리(一理)로 귀결되고 만다. 따라서 태극이란 상수(象數)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상수의 이치가 갖추어져 있음을 이름이며, 동시에 형기(形器)가 이미 나타나 있는 상태에서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이치를 말하기도 한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았으나 태극 그 자체는 그대로 태극이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으면 양의가 태극이 되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으면 사상이 태극이 된다. 사상 위에 각각 획(畫)이 하나씩 생겨 다섯 획까지 이르게 되고, 그 획에는 기우(奇偶)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24로 제곱하고 또 제곱하면 획의 수가 1677만여 개에 달하는데, 그것은 또 모두 36분(分) 64승(乘)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그 수는 우리 백성 수만큼이나 많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한계를 지을 것도, 멀고 가까울 것도 없이 그 모두를 자기의 아량과 자기의 본분 내에 거두어들이고, 거기에다 일정한 표준을 세워 그 표준을 기준으로 왕도(王道)를 행하며, 그것을 정당한 길 또는 정당한 교훈으로 삼아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적용하면 여러 방면의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되고 오복(五福)이 고루 갖추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 온화한 빛을 내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깊이 있고 원대한 제도이겠는가.
공 부자가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을 쓰면서 맨 첫머리에 태극을 내세워 후인들을 가르치고, 또 《춘추(春秋)》를 지어 대일통(大一統)의 뜻을 밝혀 놓았다. 구주(九州) 만국(萬國)이 한 왕(王)의 통솔하에 있고, 천 갈래 만 갈래 물길이 한 바다로 흐르듯이 천자만홍(千紫萬紅)이 하나의 태극으로 합치되는 것이다. 땅은 하늘 가운데 있어 한계가 있으나, 하늘은 땅 거죽을 싸고 있으면서 한도 끝도 없다. 공중에 나는 놈, 물속에서 노는 놈, 굼틀거리는 벌레, 아무 지각없는 초목들 그 모두가 제각기 영췌(榮悴)를 거듭하면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큰 쪽을 말하면 천하 어디에도 둘 곳이 없고, 그 작은 쪽을 말하면 두 쪽으로 깰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이것이 바로 참찬위육(參贊位育)의 일인 동시에 성인이 하는 일인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다. 그 달이 아래로 비치면서 물 위에 그 빛을 발산할 때 용문(龍門)의 물은 넓고도 빠르고, 안탕(雁宕)의 물은 맑고 여울지며, 염계(濂溪)의 물은 검푸르고, 무이(武夷)의 물은 소리 내어 흐르고, 양자강의 물은 차갑고, 탕천(湯泉)의 물은 따뜻하고, 강물은 담담하고 바닷물은 짜고, 경수(涇水)는 흐리고 위수(渭水)는 맑지만,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 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그 물의 원뿌리는 달의 정기(精氣)이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그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나는, 저 달이 틈만 있으면 반드시 비춰 준다고 해서 그것으로 태극의 테두리를 어림잡아 보려고 하는 자가 혹시 있다면, 그는 물속에 들어가서 달을 잡아 보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아무 소용없는 짓임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의 연거(燕居)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자호(自號)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년(1798, 정조22) 12월 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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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川明月 主人翁 自序 p.298~303

나는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우친바 있다.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숫자는 1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되므로 시냇물이 1만 개면 달 역시 1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달은 물론 하나뿐이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다른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같이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자, 용감한 자, 겁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가슴에 찔리는 바가 있었다. 윗사람에게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었던가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모두를 끌어안는 너그러움을 말한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보고, 혹은 홍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이어서 정조는 신하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 말했다.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방법이고, 희석하지 않은 순주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주고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보여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조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 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뜻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가 머무는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이라고 써서 나의호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년(1798) 12월 3일이다.

과연 통치자로서 정조의 철학이 밝게 드러나는 천하의 명문이다. 정조는 이처럼 만 가지를 생각하고 만 가지 고민을 하면서 지냈다. 그것이나라를 통치하는 분의 마음이고 자세였다. 글을 읽다보면 인간의 심성을그처럼 섬세하게 읽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무섭다.
정조는 실제로 ‘천명월주인옹‘이라는 호를 도장에 새겨 여러 작품에 찍었다. 또 수십 명의 신하들에게 이 글을 써오게 하여 자신의 방에붙여놓고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신들이 점을 찍고 획을 그은 것을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와 기상을 상상할 수 있어 그 또한 만천명월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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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명월(萬川明月) 주인옹은 말한다 - P291

후원의 산길과 돌계단길
연경당을 두루 돌아본 다음 다시 장락문 앞마당에 서면 동쪽은 애련정 쪽으로 훤하게 열려 있고 서쪽은 산자락으로 둘러져 있다. 이 산자락뒤편으로는 옥류천 가는 산길이 있고 앞쪽으로는 규장각 가는 돌계단이가지런히 나 있다. 우리는 무심코 다음 행선지를 향해 걷지만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창덕궁의 길들이 가장 인상적이라고들 한다. 특히 늦가을낙엽으로 덮일 때면 거의 환상적이라고 감탄한다. - P291

희대의 명문, 만천명월주인옹 자서
이처럼 아름답고 당당하고 기품있는 정자이기 때문에 인조 때 세워진이래로 숙종, 영조, 정조, 순종까지 많은 임금이 존덕정에 와서 시와 문장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정조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 자서(萬川明月主人自序)」라는 장문의 글이 잔글씨로 새겨져 있어 이 정자의 역사적 주인공이 되었다.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 이라는 뜻이고, 정조 자신이  직접 썼다는 의미에서 자서라고 한 것이다.
- P298

재위 22년(1798)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47세때 쓴 이 글은 제목만 보면 군주의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위상을 강조한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글 내용을 보면 자신이 만천명의 주인인 근거와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피력해 놓았다. - P299

이 글은 대문장가이기도 했던 정조의 글 중에서도 명문으로 꼽힌다. 얼마나 잘 썼기에 명문이라는 이름을  얻었는지, 또 정조가 통치 철학을세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해서라도 한번 읽어볼 만하다. 엄청난장문이고 고전의 인용이 많아 주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글인지라 많은 것을 생략하고 정조가 말하고자 한 내용의 요체만 압축해 옮겨본다. 그래도 긴 글이니 긴장하고  끝까지  읽어주기 바란다.
- P299

2004년 11월, 어느 날 노무현 대통령이 창덕궁을 찾아와 나와 함께 규장각을 둘러보고 존덕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 노 대통령은 규장각을 둘러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정조가 규장각을 세운 뜻을 알겠네요. 요즘 내가 위원회를 많이 만든다고 언론에서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비꼬는데, 정조는 죽을 때까지 통치하니까 규장각을 세웠지만 나는 5년 임기인데 위원회도 안 만들면 어디서 혁신적인 방책을 내놓겠습니까? 혁신에 대해 청장님은 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여정부의 모토는 혁신이었다. 개혁도 아니고 혁신이었다. 혁신도시도 그런 기조에서 만든 이름이었고, 인사과도 혁신인사과라고 바꿔 불렀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P304

"혁신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개혁을 하면 손해 보는 집단이생겨서 금방 반발에 부딪칩니다. 무를 갖고 동치미 담그는 것이 아니라깍두기를 씻어서 동치미를 담그는 것과 비슷합니다. 잘못하다가는 동치미도 안 되고 깍두기만 버리는 일이 생길까 그게 좀 염려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혁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수동적인 관리에 능동적인 큐레이터십을 더하는 문화재 행정을 정책 방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혁신이죠. 문화재청장은 그런 식으로 문화재를 적극 활용하면서 관리하면 되겠습니다. 다만 정무위원의 한사람으로서 참여정부 국정 철학의 기조에 대해서도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 P304

"저는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만들기를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기 동안 해낼 네 가지 과제를 세웠습니다. 첫째는 정경유착 근절입니다. 난 재벌들에게 돈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지방분권입니다.
지방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셋째는 영호남 갈등 해소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야당에 뭐든 양보할 생각입니다. 여기까지는 내 의지대로 하면 되는데 넷째가 어렵습니다. 권력기관 힘을 빼는 겁니다. 이게 잘 안됩니다." - P306

이때 나는 평소 남들과 대화할 때처럼 의문스러운 부분을 즉시 물었다.
"어디까지가 권력기관입니까?"
윗분이 말씀하시는데 말을 끊는 것은 예가 아니었지만 노 대통령은나를 불경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체 없이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그리고 언론기관입니다. 쉽게 말해서전화 와서 받았는데 기분 나쁘면 다 권력기관입니다." - P306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감성적이고 솔직 담백한 분이셨다. 그뒤로도 ‘언론개혁은 언론이 각을 세우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힘들고, 따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 특별 수사처)를 만들려고 하면 검찰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은 깍두기를 씻어 동치미를 담그는 도중 임기가 끝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세상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는 생각이든다. 
정조가 그러했듯이. - P306

육당 최남선이 『심춘순례』에서 선암사 강선루에 올라 정자에 걸린 다섯 편의 시를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고는 두 번 읽고 싶은 시는 없다고한 대목에 주눅이 들었다. 나는 ‘소리 내서 읽을 수 있는 시가 하나도 없구나‘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런 한이 있어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한문 강독 모임 세 곳에 참석하며 공부하고 있지만 마냥 어려운 것이한문이다. 관람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P311

5대 궁궐의 조망처
서양미술사에서 풍경화라는 장르가 생긴 것은 17세기 들어서의 일이었음에 반해, 동양미술사에서 산수화는 5세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해10세기에 이르면 가장 핵심적인 장르로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된다. 산수화에서 화가의 시각은 고원, 심원(深遠), 평원(平遠)의 삼원법을  기본으로 하는데 고원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것, 심원은 깊숙이 내려다보는 것, 평원은 멀리 내다보는 것을 말한다. - P325

또 부감법(法)이라는 것이 있다. 부감법은 새가 날아가면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각 구성법으로 풍광을 일목요연하게 장악한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대표적인 예인데 당시엔 헬리콥터도 없었건만 어떻게 일만이천봉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이 그릴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 P325

‘고궁 공원‘이라는 콘셉트로 이 넓은 공간에 새로 공원을 짓는다 쳐도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공원을 설계할 건축가가 어디 있겠으며, 있다 한들 이처럼 품위 있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창경궁을 어느 궁궐 못지않게 사랑하고 즐겨 찾는다. 봄꽃이 만발한 창경궁, 낙엽이 지는 창경궁, 비오는 여름날의 창경궁을 홀로 거닐며 나만의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서울에 사는 가장 큰 행복의 하나다. - P331

불행히도 철종 8년21857) 10월, 순조 비 순원왕후의 빈전도감(殯殿都監)에서 일어난 화재로 주자소 창고에  있던 정유자(丁酉字), 한구자(韓構字), 정리자(整理字)와 인쇄 도구, 책판 등이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한구자, 정리자를 다시 주조하여 교서관에 따로 보관해두었던 임진자(壬辰)와 함께 왕조 반까지 인쇄에 사용했다. 이 활자들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6년에 ‘활자의 나라,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이 열린 바 있다. 주자소는 우리나라가 인쇄·활자 문화의왕국이었음을 증언하는 위대한 유적이다. - P344

경찰은 문정전에 불을 지른 채종기라는 노인을 체포해 문화재 방화범으로 검찰에 넘겨 재판에 회부했다. 노인은 정부의 재개발 보상금에 불만을 품고 방화한 것이라고 했다. 법원은 나이가 많고, ‘피해가 경미하다‘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채종기가 또 2008년 2월 11일에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그가 바로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이다. - P349

‘효손‘ 은도장과 「유세손서」 나무, 그리고 영조의 글을 보고 있자면가슴이 절로 뭉클해진다.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아비의 한과, 눈을감는 순간까지도 나라의 종통을 지켜야 한다는 늙은 왕의 간절한 소망이 절절히 다가온다. 결국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유지를 받들어 세종대왕 다음가는 계몽군주, 문화군주가 되었다. - P357

春水滿四澤 
봄물은 네 연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峯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를 많이도 만든다
秋月揚明輝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떨치고
冬領秀孤松
겨울 고갯마루엔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나구나 - P364

드라마적인 요소가 이렇게 넘치고도 넘친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끝나지 않는다. 죽은지 250여 년 뒤에 숙종, 인현왕후, 장희빈이 서오릉에 다시 모인 것이다.
숙종은 인현왕후와 함께 서오릉의 명릉(明陵)에  묻혔고, 장희빈의 묘는 원래 경기도 구리시 부근에 있었다가 숙종 45년(1719) 경기도 광주시진해촌(眞海村, 지금의 오포읍 문형리)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9년 이곳을통과하는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장희빈 묘소가 서오릉 경내 한쪽 구석에있는 대빈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결국 숙종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장희빈의 그 끈질긴 사랑의 집념은 귀신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인가. - P380

조선시대 궁내에 기거하는 여인들 중 품계를 받은 후궁, 궁녀들을 ‘내명부(內命婦)‘라고 한다. 왕비, 세자빈,  왕대비(왕의 어머니), 대왕대비(왕의할머니)는 무품으로 품계를 초월하지만 내명부의 여인들은 품계를 받았고, 내관과 궁관으로 나뉘었다.
- P381

내관은 왕과 세자의 후궁으로, 정1품부터 종5품까지였다. 서열은 빈(嬪, 정1품), 귀인(貴人, 종1품), 소의(昭儀, 정2품), 숙의(淑儀, 종2품), 소용(昭容, 정3품),  숙용(淑容, 종3품), 소원(昭, 정4품), 숙원(淑媛, 종4품) 등이다. 정1품빈에 봉해지면 이름 앞 한 자씩 좋은 단어를 얹어주는데 희빈, 숙빈, 수빈 등이 그것이다. - P381

정5품 상궁(尙宮)은 총책임자로 제조상궁(提調尙宮)이 그중 가장 높다. 정7품 전빈(典賓)은 손님 접대를 맡고, 정8품 전약(典藥)은 처방에 따라 약을 달이고, 종9품  주치(奏치)는 음악에 관한 일을 맡는 식으로 직급이 아주 세세히 나뉘어 있었다. 즉 장희빈은 궁관에서 내관으로 승진한 뒤 종4품 숙원에서 정1품 빈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던 것이다.
이 밖에 궁관이 되기 위해 어릴 때 궁으로 들어와 일을 배우는 나인(內人)이 있고, 궁관들의 허드렛일을 하는  무수리와 비자가 있다. 무수리는 상궁의 처소에 소속된  하녀로 통근을 하는 데 비해, 비자는 상근하는 하녀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이었다. - P382

최고의 궁중문학 작품 『한중록』을 저술한 위대한 여인이었다. 남편이 뒤주에 갇혀 죽은 뒤에도 혜경궁 홍씨가 생명을 부지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겨우 열한 살 된 아들에게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잃는아픔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아들이 왕위에 올라 아버지의한을 풀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 P391

앙부일구 읽는 법
풍기대 옆에는 세종 때 만든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
晷, 보물 제845호의 복제품)가 있다. 해설사들은 여기서 관람객들에게 해시계 보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앙부일구의 앙부는 ‘솥을 뒤집어 위로 보게 했다‘는 뜻이고 일구는 ‘해 그림자‘라는 뜻이다. - P397

1909년 11월 1일 아침 10시, 개원식이 열렸다. 순종은 연미복 차림에모닝코트(morning coat)를 걸치고 회색 중절모를 쓴 개화된 예복을 입고 참석했고, 문무백관과 외국 사신을 비롯하여 무려 1천 명에 달하는축하객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정작 개원을 총괄한 이토 히로부미는 이자리에 없었다. 닷새 전인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 P412

그래서인지 창경궁에 오면 나도 모르게 어릴 적 기억이 자꾸 되살아난다. 그 점에서 창경원을 경험했던 구세대와 그렇지 않은 신세대는 창경궁 답사에 임하는 출발점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창경궁 답사의마지막을 창경원 이야기로 마무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신세대들이 구세대의 이런 독백을 과연 이해해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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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서연을 베풀던 성정각
창덕궁 동궁은 이렇게 딱한 운명이었지만 그나마 왕세자의 독서와 서연이 이루어진 성정각이 남아 있어 동궁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동궁과 관련된 건물에는 어질 현(賢) 자가 많이 쓰였다. 
어진 이를 기다리는대현문(待賢), 
어진 이를 인도하는 인현문(引賢門), 
어진 이와 친하게지내는 친현문(門) 등이 그것이다. 
성정각으로 들어가는 작은 곁문에는 영현문(迎賢門)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어진 이를 맞이하는 문이라는 뜻인데, 서연에 참석하는 학자들이 이곳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 P177

왕세자의 서연은 임금의 경연과 같은 것이다. 『경국대전』에서는 서연을 ‘신하들이 세자를 모시고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고 도의를 올바르게계도하는 일‘로 규정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내내 변동 없이 계승되었다. - P177

농사가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생업을 즐겁게 여길 것이니 그 기쁨이 크다. 옛사람 (소동파)이 희우로 정자의 이름을 지은 것도 반갑게 내리는 비의 기쁨을 새겨두려고 한 것이다. 마음으로 반갑게 내린 비를기뻐하면 그만일 터인데 어찌하여 정자의 이름까지 그것으로 지었단말인가? - P179

이 전각은 예로부터 세자의 집이라
집 안에 훌륭한 작품들이 새롭구나
계속하여 밝게 빛나니 어진 이를 높이 받들어
날로 더욱 친하게 되도다 - P181

효명세자는 관물헌에서 내다보는 전망을 좋아하여 관물헌 사영시(四을詠詩)로 봄꽃(春花), 여름날(夏日),  가을 달(秋月), 겨울 눈(冬雪)을 읊기도 했다. - P182

요절한 문예군주, 헌종
이제 우리의 창덕궁 답사는 내전의 동쪽 마지막 공간인 낙선재로 향한다. 낙선재의 주인공은 헌종이다. 헌종을 생각하면 나는 애처로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일어난다. 조선의 역대 임금들은 모두 고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혹은 치세로 혹은 전란으로 심지어는 무능으로, 임금 자신과 당대의 상을 그릴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조선의 24대 왕 헌좋은 존재 자체가 희미하다. 재위 기간이 15년이나 되고 수렴청정 기간외에 직접 정무를 본 것이 9년이나 되어도 헌종 대는 세도정치 시대라고불릴 뿐 역사에서 헌종을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종에게 헌종나름의 인생과 치세가 있었다. - P189

낙선재 권역
  헌종은 문인 학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들의 삶을 동경하여 1847년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문인들의 사랑채를 본뜬 낙선재를 지었다. - P191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留盡之巧以還造化 / 留盡之祿以還朝廷 /
留盡之財以還百姓 / 溜盡之福以還子孫 - P201

1926년 순종황제가 죽고 남겨진 세 남매는 해방 후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모두 버림받는 신세가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이들을 껄끄럽게 생각해 입국을 허가하지않았다. 이들이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가정권을 잡은 1962년 이후의 일이며, 의친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선재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 P207

자연을 경영하는 한국의 정원
창덕궁이 아름다운 궁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후원 덕분이다.창덕궁 후원은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그대로 정원으로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나아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수 없는 한국 정원의 미학이다. - P215

한국의 전통 건축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이고 풍경이다.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그냥 얹혀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전통 건축은 미학적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 P218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에서 아뢰기를 삼청동  북창(北倉)근처에 호환이 있다고 하여 포수를 풀어서  잡아내게 했습니다. 오늘 유시(酉時, 오후 5~7시경)에  인왕산 밑에서 작은 얼룩무늬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바칩니다. 호랑이를 잡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상을 주고 계속 사냥하도록 하겠습니다. - P220

빙그레 난간에 기대어 작은 연못 굽어보며
조용한 정원에 일 없으니 맑은 빛 구경한다
한 쌍의 오리는 섬뜰 위에서 뒤뚱거리고
고기 새끼가 뽐내며 우쭐거리는 것이 희망에 차 있구나

嘆倚畫欄臨小塘
閑庭無事玩澄光
玉砌緩行雙彩鴨
漁兒自得意洋洋 - P231

앞서 말했듯 중층 누각의 경우 아래층을 각(閣), 위층을 루(樓)라 하기에 규장각 주합루라고 한다. 규장각의 규奎)는 28수 별자리 중 문운을 관장하는 별이고, 장(章)은 문장 또는 밝다는 뜻이 있으며, ‘규장‘ 이라는 말은  임금의 글을 지칭한다. 따라서 규장각은 임금의 어제, 어필등을 보관하는 서고를 말한다. - P239

정조의 규장각 건립
규장각 주합루는 그 건물도 건물이고, 또 거기서 내려다보는 부용정의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것은정조대왕이 규장각을 세우고 학자들에게 학문과 경세를 연구케 하고 그것을 국정에 반영하여 정치 개혁과 문화 창달을 이뤘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 500년 종사에서 세종대왕의 집현전과 정조대왕의 규장각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큰 자랑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크나큰 교훈을 준다. - P244

이때 정조는 규장각에 제학(提學), 대교(敎) 등의  직제를 마련하고 황경원, 홍국영, 유언호 등 명신들을  임명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정조는 규장각 관원들을 후원으로 불러 잔치를 베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왕세손 시절부터 어진 신하를 내 편으로 하고 척신(戚臣, 임금과성이 다르나 일가인 신하)을 멀리해야  한다는 뜻을 깊이 알고 있다. 그래서 즉위년 초에 맨  먼저 내각(內閣, 규장각)을 세웠던 것이니 이는 문치(文治)를 내세운다고 장식하려는 뜻이 아니라 대체로 아침저녁으로 가까이 있게 함으로써 나를 계발하고 좋은 말을 듣게 되는 유익함이 있게끔하려는 뜻에서였을 따름이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부록 정조대왕 행장) - P245

그럴듯한 형식으로 장식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하와 하나 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정조는 재위 3년(1779) 3월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직을 설치하고 특명으로 서얼 출신의 뛰어난 학자인 박제가 이덕무·유득공·서이수 등을 등용했다. 이들이 유명한 규장각 사검서다. - P245

見來客不起
손님이 온 것을 보아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라

非先生勿入
전임자가 아니면 들어오지 마라 - P246

정조는 너무 기뻐서 이 책의 장점을 새로 잘 고치고 홍재(弘齋)·만기지가(萬機之暇)·극(極)·조선국(朝鮮國) 등  자신의 장서인을 찍어 개유와에 보관하도록 했다. 본래 규장각의 부설기관인 장서각에서는조선 책은 서고(西庫)에, 중국 책은 열고관(觀)에 보관했는데 중국책이 늘어나면서 새로 증축한 서고가 개유와였다. 개유와란 ‘모든 게 다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알 만하다. - P249

김홍도는 그림에 공교로운 자로서 그 이름을 안 지 오래다. 30년 전에 초상화를 그렸는데 이때부터 무릇 궁중의 회사(事)를 김홍도로하여금 주관하게 했다. - P252

정조시대의 문예 창달은 이런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조 사후 규장각은 그대로 존속했지만 예전 같은 기능은 하지 못하고 그저 왕실 도서관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그것을 제대로 운영할 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 P253

서향각 書香閣
  규장각 서편에 동향한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 큰 건물로, 규장각의 부속 건물이다. 규장각에 봉안된어진, 임금의 글과 글씨 등을 보관하고, 이따금 서적을 널어 말리던 곳이다. ‘책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이다. - P255

정조는 진실로 인간적인 계몽군주였다. 그래서 규장각에 오면 건물이보여주는 아름다움과 함께 정조의 위업을 기리게 된다. - P260

창덕궁 후원 관람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창덕궁 후원 같은 정원이 있다는 것은 서울 사람의 복 중에서도 홍복이다. 그러나 창덕궁 후원을 다녀온 분은 그리 많지 않다. 창덕궁 후원이 일반인에게 처음 개방된 때가 2004년 5월 1일로, 불과 10여 년밖에 안 된다. 실제로 작년(2016), 재작년 창덕궁 관람 인원은 연간 내국인 약 160만 명, 외국인 약 40만 명이었으나 별도의 입장료(현재 5천 원)를 더 받는 후원 입장객은 많아야 하루 1,400명 수준이다.
후원 관람은 인원을 하루 최대 14회(30분 간격), 1회 100명으로 제한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봄가을을 제외하고는 100명이다차지않으니 1년에 3만 명 정도다. 그러니까 후원 개방 후 현재까지 후원 관람객은30만 명밖에 안 된다. 그중 30퍼센트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 P261

그동안 내가 맞이한 외국인 내방객들의 감상과 반응을 보자면, 그들은 자연히 자기 나라의 정원과 비교하여 말하는데, 일본인은 교토의 사찰 정원에 비해 규모가 크면서도 종합적인 것에 감동하고, 거대한 스케일에 익숙한 중국인은 자연스러운 멋에 놀란다. 중국인은 경복궁에서는자금성을 떠올리며 자기네 문화의 아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창덕궁 후원에 이르러서는 한국 문화 자체로 본다. - P262

서양인은 한결같이 인간적 체취를 말한다. 가는 곳마다 지금도 사람이 살면서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을 경험하고 온 분들은한국의 미학이 따로 있음을 창덕궁 후원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다며 이곳 하나를 본 것만으로도 이번 방문에 만족한다고 한다. 이런 창덕궁 후원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은 진정 서울 사람의 복이자 큰 자산이다. - P262

불로문
 불로문은 넓적한 화강석 통판을 과감하게 디귿 자로 오려 세운 문이다. 모서리를 가볍게 궁굴린 것 외에는 손길이 더 가지 않았다. 돌문 머리에 새겨넣은 ‘불로문(不老門) 세 글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전서체다. - P263

의두합과 기오헌은 뜻이 일맥상통한다. 도연명의 유명한 「귀거래사」에는 ‘남쪽 창에 기대어 호방함을 부려보니, 작은 집이지만 편안함을 알겠노라(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의두합과 기오헌이라는 이름을 따온 것이다. 다만 이 건물은 북향이기 때문에 남창(南窓)이 아니라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두(斗) 자를 썼다. 이 집을 혹 이안재(易安齋)라고 하는 것도 이 구절에서 비롯한  것이다. - P270

이참에 궁궐 건축에서 건물 이름 끝에 붙는 명칭을 살펴보면, 건물의 형태, 성격, 지위에 따라 대략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홍순민 교수는 이를 간략히 정리해 ‘전(殿)·당(堂)·각(閣)·합(閤)·재(齋)·헌(軒)·루(樓)·정(亭)‘으로 요약했다. - P270

전(殿)은 선정전, 대조전처럼 왕과 왕비의 건물에만 사용되었고, 당(堂)은 희정당, 영화당 등 왕이 정무를 보는 집과 왕세자의 정전인 중희당 같은 건물에 쓰였다. 각(閣)은 신하들이 드나드는 공간으로, 왕세자가 서연을 여는 성정각, 내각의 학사들이 근무하는 규장각이 그 예다.
그보다 중요도가 약간 낮으면 합(閣)이라 했다. (홍 교수는 합이 각보다 오히려 높다고 보았다.) - P270

재(齋)는 낙선재처럼 서재내지 사랑채의 성격을 지닌 집이고, 헌(軒)은 마루가 넓은 건물에 붙였으며, 루(樓)는 주합루처럼 이층 건물이라는뜻이다. 정(亭)은 정자인데, 사다리나 계단으로 오르는 구조이면 평원처럼 루(樓)라고 불렀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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