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눈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감각기관이어서 사람에 따라 똑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바로 그 똑같은 뜨거운 땅이 데이비드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개, 해면동물, 해초들로 반짝거리며 환영의 손짓을 보냈다.
초록빛 생물발광 반딧불이처럼 생물이 화학작용을 통해 스스로 빛을 내는 것. 야광충이 많은 밤 해변에서는 바닷물에 손이나 발을 담그면 야광충들이 발하는 푸른빛을 볼 수 있다.
그때 저 분류학자들이 잡초와 바위와 달팽이를 뚫어지게 관찰하면서 찾고 있었던 것은… 그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 유일자, 근원, 힘, 진리, 보이지 않는 존재… 신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직립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지만, 물고기는 "물속에서 엎드려"있다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졸렬해질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어류와] 그를 구별해주는 도덕적·지적 재능을 활용할 수도 있고 남용할 수도 있다. (…) 인간은 자기가 속한 유형 중 가장 낮은 위치까지 가라앉을 수도 있고, 영적인 높이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는 그날 갑판 위에서 파닥거리던 물고기들의 이름은 단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그에게 물고기들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자, 남은 평생 맞춰야 할 퍼즐로 그를 손짓해 부르는, 반짝이는 비늘로 된 실마리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렇게 썼다. "이종교배한 종들은 무조건 생식능력이 없다고도, 불임성은 창조주가 부여한 특별한 자질이자 창조의 신호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8이라고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어느 날개다랑어의 뱃속에서는 민대구 한 마리가 발견됐고, 이 민대구의 뱃속에서는 무지갯빛 비늘을 지닌 작은 물고기 하나가 발견됐다.
이번에는 마침내 인디애나대학의 종신교수가 되어 블루밍턴으로 간 것이다. 또한 한때는 종신교수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워 보였던 일도 바로 이 무렵에 이뤄냈다. 결혼을 한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 질서를 만드는 것이 신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믿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스페인…에서 온 방랑자"일까? "마법"을 하는 사람? "플라시다 부인Doña Plácida?"
허술한 사고, "진실이 아니란 걸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을 믿으려 하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엄청난 고통"을 초래한다고 그는 썼다. 바꿔 말하면 헛된 희망을 품는 뇌, 그러한 상상의 비약에 취약한 뇌가 악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혀에 닫는 그 달콤한 꿀, 전능함에 대한 환상, 그 사랑스러운 질서의 감각.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이 사상은 정의, 향수, 무한, 사랑, 죄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천상의 에테르적 차원에 머물면서 인간이 발견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숫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파이를 품고 있지 않은 원이 있다면 어디 한번 내게 보여주시오."
당연히 의자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무들도. 나뭇잎들도. 그리고 사랑도!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붙인 불은 숯을 남기고 죽는다. 우리가 지은 성들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사막의 모래만 남긴다. (…)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생명의 과정을 묘사하려면 기운 빠지게 하는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행복은 행하고, 돕고, 일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정복하고, 실제로 실행하고, 스스로 활동하는 데서 온다."12 내 생각에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그가 말하려는 요점 같다. 여정을 즐기고 작은 것들을 음미하라고 말이다.
"당신이 밟고 선 그 땅뙈기가 이 세상에서, 아니 그 어느 세상에서도 당신에게 가장 달콤한 기쁨을 주는 땅이 아니라면 당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불에 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 지진과 화재가 준 교훈이다.
도시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
계몽주의 시대에 볼테르는 낙관주의가 고통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음흉한 해악이라고 비난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에이브러햄 매슬로, 에릭 에릭슨 같은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들은 자기기만을 정신적 결함이자 시각에 생긴 문제여서 치료로 교정해야 한다고 보았다.1 반면 정확한 시각은 "정신의 건강을 보여주는 표지"2라고 여겼다.
리프레이밍 경험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일. 특정 관점에 따른 해석 때문에 괴로운 경우, 치료의 효과나 더 건강한 삶의 태도를 얻을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릿: 포기하고 싶을 때 계속하는 방법》
《그릿: 꾸준히 해내고 번창하고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것에 관한 새로운 과학》
《그릿에서 그레이트로: 끈기, 열정, 결단은 어떻게 평범한 당신을 비범하게 만드나》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가 가져 마땅한 미치광이들이 생겨난다."23 영국의 역사가 로이 포터Roy Porter가 언젠가 쓴 말이다.
그들의 응원용 수술은 축 처져 있다.
그들은 속삭이는 소리로 작게 응원한다.
겸손하게 굴어! 우울해 하라고!
누가 최고야?
넌 아냐!
"공격적인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며, 이에 대한 증거는 민족주의적 제국주의, ‘지배자 민족’ 이데올로기, 귀족들의 결투, 학교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아이들, 길거리 깡패들의 언어 구사 등에서 볼 수 있다."
피델 카스트로는 언젠가 쿠바를 허리케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쿠바 주위로 방어벽을 짓자고 제안했다. 유리 루시코프 전 모스크바 시장은 구름 위에 시멘트 가루를 뿌려서 눈이 내리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가스라이팅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속에 교묘하게 자기 불신의 씨앗을 심어, 피해자가 자신의 기억, 판단, 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으로, 이러한 심리적 조작을 다룬 영화〈가스등Gaslight〉(1944)에서 파생된 용어.
그러다가 430페이지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물고기를 확보하는 방법"이라는 섹션에서, 그는 거기까지 자신을 따라온 대담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비밀을 누설했다. 조수웅덩이 틈새로 쏜살같이 들어가버리는 탓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장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은 뭘까? 바로 독이다. 구체적으로 그가 추천한 종류는? 언젠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쓴 것"이라고 묘사했던 위험하고 강력한 물질, 바로 스트리크닌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외부 형질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 자연은 외양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 자연은 모든 내부 기관과 모든 미세한 체질적 차이에, 생명의 전체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다윈)가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그토록 뚜렷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생학자들은 이런 단순한 상대성의 원칙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유전자 풀에서 "필수 불가결한" 다양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지배자 인종을 구축할 최선의 기회를 망쳐버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했던 판결은 아직도 법전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 캐리 벅 소송의 대법원 판결은 이후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우리가 도달한 가장 높은 발전 단계에서도, 만약 당신이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정부는 당신을 집에서 끌어내 당신의 배를 칼로 긋고 당신의 혈통을 끊어버릴 권리를 지금도 갖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과거와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 골턴의 어리석음, 가난과 고통과 범죄가 혈통의 문제이며 칼로 잘라 사회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이 나라에서 우생학 이데올로기는 결코 죽지 않았다. 우리는 우생학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는 나라다.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사다리는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나는 살면서 내 인생의 많은 좋은 것들을 망쳐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한다.
나는 계속 걸었다. 이 황량하고 외딴 언덕이 우생학적 몰살의 진원이라 생각하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이 나라의 정체성을 정의할 때 우리가 반대하는 것이라 간주하는 그 사고방식, 우리가 초등학생에게 나치, 다른 사람들, 나쁜 놈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치는 바로 그 악행, 그것을 세계 최초로 국가 정책으로 삼은 나라가 바로 우리였다.
아이들이 가기 싫어한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애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엄마의 긴 머리와 멜빵바지를, 추운 밤이면 엄마의 침대 속으로 파고드는 애나를 받아주던 엄마를. 그러나 이웃들의 우려와 부모의 가난, 애나의 낮은 지능검사 점수만으로 이 일곱 살 소녀를 "부적합자"로,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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