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말하는 지팡이를 잡은 사람은 그의 손안에 신성한 말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는 동안은 오직 그 사람만이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에게 진실되고 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기 위해 말하는 지팡이에 독수리 깃털을 매달기도 했다.
그들 사회에서는 ‘버린다’와 ‘잃어버린다’는 단어가 같다. 어떤 것을 마구 버린다면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이 동의어인 세상이 원주민들의 세상이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인간이 인쇄한 종이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 나는 위대한 정령의 책에 더 눈길을 돌린다. 위대한 정령의 책이란 바로 그가 창조한 이 세상이다. 자연을 잘 공부해 보면 그 책의 많은 부분을 읽은 것이 된다. 당신이 갖고 있는 책들을 태양 아래 내다 놓고 눈과 비와 곤충들에게 잠시 동안만 맡겨 둬 보라.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정령은 당신과 나에게 자연계 속의 우주, 숲과 강물, 산,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동물들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늘 제공해 주고 있다.
수천 년이 흘러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변함없이 나이아가라 폭포일 것이다. 그 이마에 드리워진 무지개 화관은 태양이 떠오르고 강물이 흐르는 한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하게 보호하고 보관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예술 작품은 빛이 바래 곧 먼지로 돌아가 버린다.
검은 옷을 입은 당신 프랑스 인이여, 이토록 고생을 무릅쓰고 우리를 찾아와 줘서 고맙다.
알게 해 주세요.
이것이 진정한 것인지.
알게 해 주세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진정한 것인지.
모든 곳에 계시는 위대한 정령이시여,
알게 해 주세요.
이것이 진정한 것인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파우니 족 기도문
얼굴 흰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를 이야기한다. 인디언은 자유와 정의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몰살당한 것이다. 얼굴 흰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와 정의는 바람에 불려 가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어느 다코타 족 인디언
우리는 자연 속 모든 존재들과 조화롭게 살 줄 안다. 자연 속의 존재들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분이다.
흰 구름(마하스카) 라코타 족 추장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왔을 때 당신들은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의 아들마저 죽였다. 못으로 박아 죽였다. 그를 살해한 다음에야 비로소 믿기 시작했으며, 이번에는 그를 믿지 않는다고 우리를 죽이고 있다. 도대체 그런 종류의 인간들을 우리더러 어떻게 신뢰하란 말인가?
‘포로로 붙잡은 얼굴 흰 자들을 고문해선 안 된다. 우리가 자신을 다스릴 줄도 모르는 야생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그런 사람들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들의 땅을 위해 싸우는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니 남자답게 싸우자. 우리를 죽이고 땅을 빼앗으러 오는 이 얼굴 흰 자들을 물리치자. 하지만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포로로 잡힌 사람을 고문하지 말라!’
너의 가슴속에 죽음이 들어올 수 없는 삶을 살라.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논쟁하지 말고, 그들의 시각을 존중하라. 그리고 그들 역시 너의 시각을 존중하게 하라. 너의 삶을 사랑하고, 그 삶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고, 너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라.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인디언들을 원시 상태의 순수함을 지닌 사람들로 묘사하면서, 야만인으로 부르는 편견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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