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디에나 있다. 나뭇가지 위에도, 작은 개미들의 굴 속에도, 북풍한설에 흩날리는 나뭇잎들 속에도 있다. 돌을 들춰 보면 그곳에서 어떤 것들이 움직인다. 그 삶들이 가만히 내 삶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삶을 언제까지나 사랑해 왔다. 내게 주어진 어떤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님을 믿기 때문이다.
평원에 앉아 하루가 저무는 것을 바라보는 것! 우리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았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그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한 계절에 한 번씩이라도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보다 이 세상에 나무가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시냇물과 강물도 예전처럼 푸르러지고, 들녘과 산에는 키 큰 나무가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나절에 숨을 들이쉬면 내 영혼이 맑아지기를 바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겨울 햇살 속에 묵묵히 서 있는 키 큰 나무들과 머리 위를 지나가는 한 떼의 구름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발에 밟히는 양치류들,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달콤한 대기, 침묵하는 바위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과연 무엇인가!
들쥐는 찌르레기에게 들쥐의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찌르레기는 들쥐에게 찌르레기의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 아메리카 인디언들 역시 누구에게 자신의 믿음을 선전하고 강요하는 것을 금기로 삼고 있다.
동물들은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을 준다. 그것은 나눔의 가르침이다. 동물들은 우리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목숨을 포기한다. 인디언들은 사냥을 나갈 때면 가족을 먹일 수 있도록 동물을 한 마리 보내 달라고 위대한 정령에게 기도를 올리곤 했다. 그래서 동물과 만나면, 그것은 그 동물이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 동물을 죽인 다음에는 심장을 꺼내 사냥꾼들이 한 조각씩 나눠 가진 뒤 감사의 기도와 함께 어머니 대지에 묻어 주었다.
내가 생명의 경이로움에 사로잡힌 것이 바로 그 나무 아래서였다. 그 나무 한 그루 속에 거대한 숲이 들어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 나무 아래 서 있으면서 나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 속에 깃든 무한한 가능성을 실감했다. 그 나무 아래 서서, 나는 각각의 씨앗이 한 그루의 나무로 자랄 수 있으며, 그 나무는 또 하나의 숲이 될 수 있음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 한 그루의 나무로부터 나는 온통 나무들로 뒤덮인 아름다운 세상을 내다볼 수 있었다.
또한 인류의 네 종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대지가 건강하고 치유의 힘을 갖게 되기를. 내 위에 아름다움이 있기를. 내 아래에 아름다움이 있기를. 내 안에 아름다움이 있기를. 내 둘레에 아름다움이 있기를.
세상이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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