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 P108
거울때문에 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든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P110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P112
모든 것이 희미하고 아름다웠다 달리는 시간도 열렸다 닫히는 유리창도 무성하게 돋아난 마른 잡초들은 마을과 더불어 있고 시간을 통과해온 얼굴들은 투명하고 나무 아래 별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저마다의 슬픔으로 사물이 빛을 발하고 이별이 드넓어지고 세석에 눈이 내렸다 살아 있으므로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 P114
소중한것들은 언제나 저렇듯 무겁게 내린다고, 어느 날 말할 때가 올 것이다 눈이 떨면서 내릴 것이다. 등불이 눈을 비출 것이다 등불이 사랑을 비출 것이다 내가 울고 있을 것이다 - P116
밤 정지용
눈 머금은 구름 새로 힌달이 흐르고,
처마에 서린 탱자나무가 흐르고,
외로운 촉불이, 물새의 보금자리가 흐르고…
표범 껍질에 호젓하이 쌓이여 나는 이밤, ‘적막한 홍수‘를 누어 건늬다. - P118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P120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P120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P122
기도실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 P124
팬케이크를 반죽해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팬케이크를 반죽해요. 부지런히 저어요. 팬 위에 올리고는한쪽 면을 익혀요. 재빨리 뒤집어요. 할수만있다면! 세상도 뒤집어보고 싶어요.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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