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터널을 빠져나가니, 설국 雪國  이었다. 밤의 끝자락은 이미 희뿌연히 밝아 왔다. 신호소에 기차가 멎었다.

맞은편 자리에서 처녀가 일어나 시마무라 島村 앞의 유리창을 열었다. 차가운 냉기가 밀려 들어왔다. 처녀는 창 밖으로 온통 몸을 내밀고 멀리 외치듯이 소리쳤다.

"아직 어린애니까 역장님이 잘 가르쳐 주세요. 부탁드리겠어요." "그래. 일 잘하고 있어. 이제부터 바빠지지. 작년엔 엄청난 눈이었어. 눈사태가 자주 나서 기차도 꼼짝을 못했기 때문에 마을에서도 밥을 지어내느라 혼이 났지."

"역장님은 굉장히 두텁게 입으신 것 같아요.
동생 편지에는 아직 조끼도 입지 않았다고 썼던데……......."

"역장님, 동생을 잘 부탁해요."
슬플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높은 울림이 그대로 밤의 눈 위로 메아리쳐 돌아올 것 같았다.

요코는 창문을 닫고 빨개진 뺨에 두 손을 댔다. 러셀 3)을 세대나 준비하고 눈을 기다리는 국경의 산이었다. 터널의 남북에서전력 電力으로 하는 눈사태 신호선이 통해 있었다. 제설 인부 연5천 명, 소방조 消防組 청년단의 연인원 2천 명의 출동 준비는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처녀의 한 쪽 눈은 오히려 이상할이만큼  아름다웠지만 시마무라는 얼굴을 창으로  가까이 대고 갑자기 밤 풍경을 보고 싶은  듯한 여수 4)旅愁의 표정을 짓고,  손바닥으로 유리를 닦았다.
4) 여수: 여행지에서 느끼는 시름.

시마무라가 요코를 오랫동안 훔쳐 보면서도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던 것은 저녁 풍경의 거울이 갖는 비현실적인 힘에 끌려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역장에게 소리쳐, 다시 뭔가 진지함을 보였을때도 소설적인 흥미가 앞섰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마무라는 추녀 끝의 귀여운 고드름을 바라보면서 여관 지배인과 자동차를 탔다. 하얀 눈빛이 집들의 낮은 지붕을 더욱 낮아보이게 하고 마을은 고요히 가라앉은 듯했다.
"정말 만지는 것마다 차가운 느낌이 다르군."
"작년엔 제일 추울 때가 영하 20 몇 도였습니다."

"이것이 나를 기억해 주었어요?"
"오른쪽이 아냐, 이쪽이야."
하고 여자의 손에서 오른손을 빼내어 고다쓰에 넣고 다시 왼손주먹을 내밀었다. 그녀는 시치미를 떼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여자는 후후 하고 웃으면서 시마무라의 손을 펼쳐 그 위에 얼굴을 갖다 댔다.
"이것이 기억해 주었어요?"

무위도식의 시마무라는 자연과 자신에 대한 진지함을 자칫잃을 것만 같았다. 그것을 되찾기엔 산이 좋다고 판단하여 자주 혼자서 산을 헤매는데, 그 날 밤도 국경의 산들을 헤매다 7일 만에온천장으로 내려와서는 기생을 불러 달라고 했다.

"강요할 수는 절대로 없어요. 모두 기생들의 자유인 걸요. 여관에서도 그와 같은 소개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이건.
당신께서 아무라도 불러서 직접 말해 보는 게 좋을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을 말씀하세요."
"그걸 당신한테 묻는 게 아니오? 처음 온 지방이라 누가 예쁜지몰라요."
"예쁘다 해도......"
"젊은 사람이 좋지. 젊은 쪽이 보다 안전하겠지. 말이 많지 않은여자가 좋아요. 멍청하면서도 때묻지 않은 여자가 얘기가 하고 싶을 때는 당신하고 할 테니까."
"난 이제 안 와요."
"바보 같은 소리."
"어머, 안 와요. 뭣하러 와요?"
"당신과는 깨끗이 사귀고 싶으니까 유혹을 않는다니까."

그러나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이 여자는 기생이 아니다. 그의 육욕은 이 여자에게 그것을 요구할 것도 없이가볍게 처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 청초했다.
첫눈에 그는 그런 여자와 이 여자를 구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걸음 양보하여, 그건 아무튼 기생의 자유겠지만 다만 주인집의 양해 없이 외박하면 기생의 책임으로,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지만 주인집의 양해를 구하면 그건 포주의 책임으로 어디까지나 뒤를 봐주는 그 정도의 차이라고 했다.
"책임이라니, 어떤?"
"임신을 하거나 몸이 나빠지거나 하는 경우죠."

그 삼나무는 바위에 손을 뒤로 짚고 가슴을 벌렁 젖히지 않으면볼 수 없을 만큼 높았고, 게다가 일직선으로 줄기가 늘어서고, 검은 잎이 하늘을 덮고 있었으므로 고요가 찡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팔을 늦추어도 여자는 휘청했다. 여자의 머리가 그의 뺨에 덮힐 만큼 그녀는 그의 목을 싸안고 있었으므로 그의 손은 그녀의 품에 들어가 있었다.

"앗, 실례했습니다."
"아니, 들어오세요. 저쪽 탕으로 들어갈 테니까."
하고 시마무라는 당황하여 말하고 발가벗은 채로 광주리를 안고 옆의 여탕으로 갔다. 여자는 물론 부부간인 척하고 따라왔다.
시마무라는 말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탕으로 뛰어들었다. 마음놓고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물꼭지에 입을 대고 거칠게 입을 헹켰다.

"고마코, 이것 타넘으면 안 되니?"
맑고 슬픔이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메아리가 돌아올 것 같았다.
시마무라가 들은 적이 있는, 밤 차창으로 눈 속의 역장을 불렀던 저 요코의 목소리였다.

괴롭다는 것은 손님에게 깊이 빠져들 것 같은 허전함일까. 또는이러한 때에 가만히 견딜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일까. 여자의 마음은 여기까지 와버린 것일까, 하고 시마무라는 잠시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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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주제의 결핍, 문장부호에 대한 완벽한 무관심, 아주 빈번한 문법의 무지."

어느 유명한 작가가* 주장했듯이 신사가 먼저 사랑을 밝히기 전에 숙녀가 혼자 사랑에 빠지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신사가 숙녀의 꿈을 꾸었다고 알려지기 전에 숙녀가 먼저 신사의 꿈을꾸는 것은 아주 부적절하다.

그래도 "우리가 얻을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지치지 않고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다가 매일 똑같은 내용을 지치지도 않고 갈망해 온 정성이 보답을 받으려는 순간이 왔다.

마지막으로 본 후에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흘렀는지를 떠올리며 바쓰에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면서 옛 친구를 만난 기쁨을 나누며 가족과 여동생과 사촌들의 안부를 끄집어내고 근황을 교환하는데, 두 사람 다 듣기보다는 말하느라 바빠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거의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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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씨가 소개해 준 아주 괜찮은 남자와 춤추다. 많은 대화를 나누다. 엄청난 천재인 듯. 더 만나고 싶은 마음. 아가씨, 바로 이렇게 써 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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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몰란드가 아기일 때 본 적이 있다면 여주인공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집안이나 부모의 됨됨이도 그렇지만, 타고난 인물이나 성향이나 하나같이 여주인공 감이 아니었다.

캐서린을 보기 전에 아들 셋을 낳았다. 캐서린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기는커녕 모두의 예상을 깨고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아이를 여섯이나 더 낳아서 품 안에서 길러 내고 엄청나게 건강하게 살고 있다. 자식이 열이나 되고 다들 팔다리가 멀쩡하면 칭찬 한마디 나올 법하다.

하지만 몰란드 가족은 딱히 그렇지 않았던 게 하나같이 인물이 없었고, 캐서린도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내내 고만고만했다.

성향 한번 유별났다. 지적 능력도 그만큼이나 유별났다. 배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스스로 깨우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배워도 모를 때가 있었는데, 딴 생각을 하기가 부지기수였고 이따금씩 멍청했다.

어느 쪽도 별로였고, 그러니 할 수만 있으면 안 배우려 들었다. 유별나고 엉뚱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열 살의 나이에 이 모든 불량스러운 징후를 다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심성이나 기질이 못된 아이는 아니었다.

열다섯이 되자 외모가 나아졌다. 머리를 꾸며 무도회에 가고 싶어 했다. 피부가 고와졌고, 화사하게 살이 오른 이목구비는 부드러워졌고, 눈에 생기가 돌았고, 몸매도 한결 나아졌다. 흙을 묻혀 가며 놀던 대신 예쁜 것을 찾았고 점점 단정해지고 깔끔해졌다.

이 약점을 당장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묘할 연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일곱이 되도록 감성을 일깨울 참한 청년 한번 못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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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금서가 된 이유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계급문학”
노골적인 성묘사????? ㅎㅎㅎ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 차라리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더 선정적이고 할 의욕이 생긴다고나 할까? ㅋㅋㅋ
그 당시와 지금의 성과 섹스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이 다를수 있고, 번역의 한계.
유산자 계급으로 대변되는 클리퍼드 경, 무산자 계급을 대표하는 광부의 아들이자, 클리퍼드의 사냥터지기 멜러즈....
그런 멜러즈를 사랑하는 클리퍼드의 마누라, 스코틀랜드의 훈작 딸, 중산층 코니
무산자 계급의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계급문학이라서...
유산자 계급은 무산자 계급의 도움없인 자립할 수 존재할 수 없다. 클리퍼드는(자본가, 유산자) 전쟁으로 다리를 못쓰게 된 불구다. 양 다리뿐만 아니라 가운데 다리도 전혀 쓰지 못한다. 엔진이 달리 휠체어를 타야만... 그것도 무산자 계급인 멜러스의 도움없인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성불구자이기까지 하다. 자본주의는 번식할 수 없다.

멜러스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배워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돈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그것이야 말로 산업문명의 문제를 풀 유일한 방도다. 사람들로 하여금 삶다운 삶을 당당하고 멋지게 살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둘이 만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가 되지만...
원작은 둘이 만나지 못하고 멜러스의 편지로 마무리...되지만 잘살았어요가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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