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금서가 된 이유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계급문학”
노골적인 성묘사????? ㅎㅎㅎ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 차라리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더 선정적이고 할 의욕이 생긴다고나 할까? ㅋㅋㅋ
그 당시와 지금의 성과 섹스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이 다를수 있고, 번역의 한계.
유산자 계급으로 대변되는 클리퍼드 경, 무산자 계급을 대표하는 광부의 아들이자, 클리퍼드의 사냥터지기 멜러즈....
그런 멜러즈를 사랑하는 클리퍼드의 마누라, 스코틀랜드의 훈작 딸, 중산층 코니
무산자 계급의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계급문학이라서...
유산자 계급은 무산자 계급의 도움없인 자립할 수 존재할 수 없다. 클리퍼드는(자본가, 유산자) 전쟁으로 다리를 못쓰게 된 불구다. 양 다리뿐만 아니라 가운데 다리도 전혀 쓰지 못한다. 엔진이 달리 휠체어를 타야만... 그것도 무산자 계급인 멜러스의 도움없인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성불구자이기까지 하다. 자본주의는 번식할 수 없다.
멜러스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배워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돈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그것이야 말로 산업문명의 문제를 풀 유일한 방도다. 사람들로 하여금 삶다운 삶을 당당하고 멋지게 살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둘이 만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가 되지만...
원작은 둘이 만나지 못하고 멜러스의 편지로 마무리...되지만 잘살았어요가 될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