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적 리얼리즘을 탁월하게 구현한 『백 년의 고독』으로 변방에 머물러 있던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세계문학의 중심에 우뚝 서게 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콘도의 실제 배경지인 아라카타카 서양 고대 신화 속의 아르카디아, 동양의 무릉도원, 윌리엄 포크너 소설 속의 요크나파토파에비견되는 마콘도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창조한 유토피아로, 그 이름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카리브해 연안의 작은 마을 아라카타카에 있는 농장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백 년의 고독에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친구 하나를 죽이고는 고향을 떠나 하얗고 매끈한 돌이 깔린,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 정착하여 마콘도라는 마을을 세운다. 이때부터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가 장구하게 펼쳐진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학의 원천 카리브해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부모는 생계 때문에 카리브해 주변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으며, 가르시아 마르케스 또한 아라카타카, 바랑키야, 카르타헤나 등 연안 도시에서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보냈다. 그렇게 체화한 카리브인 특유의 낙천성과, 그가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카리브해의 신화와 전설과 미신 등은 그의 문학 세계를 받쳐 주는 원천이 되었다. 그는 카리브 문화가 자신의 인생에서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것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릴 적에는 불안정한 가정 형편 때문에, 커서는 콜롬비아의 정치 상황 때문에 여기저기를 방랑했다. 1975년부터 멕시코시티에정착해서 살기 이전까지 아라카타카, 바랑키야, 카르타헤나, 수크레 등 카리브해의 도시와 제네바, 로마, 파리, 바르셀로나 등 유럽을 부표처럼 떠돌아다닌 그는 여러 ‘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카리브인의 낙천성을 잃지 않았고, 주변에 늘 많은 사람들을 두었으며, 무엇보다도 유머 감각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카리브인이라는 사실을 몸속 깊이 인지하면서도 보편적세계시민으로서 살아가면서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음을 세상에널리 알렸다.
* 그의 본명은 가브리엘 호세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Jose Garcia Marquez다. 부모의 성을따는 에스파냐식작명전통에 따라 아버지의 성‘가르시아와 어머니의 성 마르케스‘를 붙여 ‘가르시아 마르케스‘라고 불러야 한다. 이에 이 책에서도 어른 작가인 그를 가리킬 때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혹은 ‘가보Gabo‘로 부르겠다. 반면 아이인 그를 가리킬 때는 과히라 해안 지방식 애칭인 ‘가비토Gabito‘로 부르겠다. - P11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인간 프로작Prozac이다. 내가그의 책에 중독된 것은 그가 생의 낭만을 잘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펼친 독자는 나와는 다른 이유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일것이다. 유머, 카리브적 낙천성, 낭만주의적 라틴아메리카인, 유럽을 떠돈 망명가이자 세계시민, 진보적인 역사성과 정치성, 매력적인 이야기꾼, 나선형 이야기 구조, 반복과 회귀, 마술적 리얼리즘 등그의 매력은 무한하다. 이처럼 팬이 많은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면할수록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예고하건대 난 그들의 예상과는 다른 길을 알려 줄 예정이다. 왜냐하면 여행기는 사실의 기록인 동시에 현실의 메타텍스트이기 때문이다. - P17
고지대에 있어 19도 안팎의 다소 시원한 날씨를 가진 보고타. 그곳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무질서하고 산만하고 비뚤비뚤했다. 정감 있고, 친절하고, 사람 냄새가 강하게 나고, 힘들게 마련해 간 황열병 카드를 이민국 직원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 직선보다는 곡선이, 곡선보다는 점선이,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어울리는곳. 가보의 소설 속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다. - P19
아버지는 또한 사업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돈 욕심을 부려 여기저기에 약국을 차렸다 망한 뒤 할 일이 없어지자 보물을 찾으러 나가겠다고 대책 없이 떠난 남자였다. 바랑키야에 같이살 때는 밤마다 친구들 집에 어린 가비토를 데리고 놀러 가는 바람에 소년은 몽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한 대책 없이 아버지가 사라지자 가비토는 생활비를 얻기 위해 아버지의 친구들에게 전화를걸어 돈을 빌려야 했다(가보의 공포증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비행기 공포증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때 생긴 전화 공포증이라고 한다). 결정적으로가보가 아버지와 갈등하게 된 것은 평생 글쓰기를 하겠다고 선언한이후였다. - P28
마음고생으로 점철된 삶을 산 그녀는 아흔일곱 살까지 무병장수하면서 자식 열다섯 명을 비롯해 손자, 증손자, 고손자까지 총 182명의 자손들을 두고 2002년에 가보의 자서전 집필 종료와 함께 생을 마쳤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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