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내 세계는 아라카타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지냈고, 그것은 그 전과 완전히 다른현실의 세계였다.
이브 빌런 외, 다큐멘터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중 - P43

아라카타카로 가는 길
가보가 창조한 유토피아의 배경지인 아라카타카로 가는 길은 흔히 유토피아행이 호락호락하지 않듯이 많은 곡절을 겪어야 했다. 온갖 상인들을 잔뜩 태우느라 예정 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출발한 버스는 최대한 많은 정류장에 아무렇게나 섰고, 최대한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길을 달렸으며, 어느 곳에서는 고장이 나서 지체되기도 했다. 게다가 아라카타카는 숨겨진 마을이었기에 정류장조차 찾기 어려웠으니, 유토피아는 아무에게나 열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실감하게 했다. - P48

누군가 거칠게 그린 가보의 옆 얼굴 벽화를 보고 나는 아라카타카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의 장남 노벨문학상 수상‘까지는 아니라도 ‘가보의 마을‘이라든가 ‘마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도의 플래카드나 간판은 있을줄 알았다. 아라카타카로 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유토피아는 아무에게나 문을열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P51

어린 가보가그린 기차 그림
아라카타카에는 가보의 외할아버지가 현역에서 은퇴한 뒤 틀어박혀 작업하던 은세공실이남아 있는데, 이곳은 백 년의 고독』에서 부엔디아가 남자들이 은둔하면서 보낸 방으로 형상화되었다. 어린 가보는 외할아버지가 작은 황금 물고기 위에 고독을 새겨 나갈 때, 그 옆에서벽에다가 이렇듯 귀여운 기차 그림을 그렸다. - P57

나는 몇 년 전 남미를 돌면서 수많은 마콘도들을 보았다. 마콘도는 서점의 이름이자, 식당의 이름이자, 카페나 바의 이름이었다. 심지어 마콘도 교향악단과 록밴드도 있다. 마콘도는 우리가 익명의이름에 ‘홍길동‘이라고 붙이듯이 관용적으로 붙이는 이름이 되었다.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에서 ‘마콘도호텔‘을 찾으려면 아마도 옛날 전화번호부 책을 수십 장을 넘겨야 할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마콘도의 유명세로 보건대, 아라카타카에 ‘마콘도카페‘ 옆에 ‘마콘도서점‘ 옆에 ‘레메디오스식당‘ 하나 정도는 있을 줄알았다. 몇몇 호텔이 마콘도라는 이름을 쓰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한 그런 북적거림은 없었다. 나를 반긴 것은 가보의 얼굴이 그려진그래피티들과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었다. - P62

가보의 외할아버지가 은세공 작업을 하던 책상가보의 외할아버지가 그랬듯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로 이어지는 마콘도의 남자들은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은세공에 집착한다. 그들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광기로 비칠 만큼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마을을 짓누르는 고독과 씨름한다. - P77

또다른 마콘도콜롬비아 북부 볼리비아주에 위치한 몸포스는 ‘아라카타카보다도 더 마콘도스러운 곳‘으로알려져 있다. 유유히 흐르는 몸포스강, 한적한 마을 분위기, 강 주변을 돌아다니며 흙탕물을만드는 이구아나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가옥들, 거의 대부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 망고서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곳이야말로 마콘도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 P80

가끔 창문에 철창살을 끼워 둔 집도 있지만, 대부분은 덧유리창도 없다. 이곳에서 폭삭 망하기 좋은 장사로는 보안시스템 회사와 함께 바로 양말이나 신발 장사일 것이다. 사람들이신발을 잘 안 신고 다닌다. 신발이라야 그냥 슬리퍼 정도인데 그나마도 잘 찾기 힘들다. 당연히 양말 신은 사람도 찾기 어렵다. 몸포스아이들한테 양말은 최악의 크리스마스 선물일 것이다. - P82

망고 서리를 하는 아이들한국의 시골 아이들이 참외나 수박 서리를 하듯이 몸포스의 아이들은 망고 서리를 한다. 아이들은 닌자처럼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많이 해 본 듯 잘 익은 망고들만 골라 바닥에 떨어뜨린 뒤, 앞니로만 망고를 까먹는다. 100년 전 어린 가보 역시 맨발로 다니며 강에서 헤엄치고망고 서리를 하면서 보냈으리라.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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