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3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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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 특별기고]

우에노공원에서 만난 百濟人(백제인) 王仁(왕인)
― 왕인박사비에 새겨진 기록을 따라


1.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백제의 이름

우에노공원을 걷다가 뜻밖의 이름을 만났다.

왕인(王仁).

도쿄 한복판, 우에노온시공원(上野恩賜公園) 안에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학자로 전해지는 왕인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단순한 작은 표석 하나가 아니었다.

지붕 모양의 갓돌을 얹은 커다란 비석,
그 옆의 또 다른 석비,
왕인의 모습을 새긴 청동 부조,
그리고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된 설명판까지 갖춰져 있었다.

일본을 여행하며 우리 역사와 연결되는 흔적을 만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특히 왕인은
고대 백제와 일본 사이의 문화교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2. 현지 안내판에 적힌 왕인박사

안내판의 제목은

博士王仁碑
박사 왕인비.

일본어 설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古事記」などによると、王仁博士は古墳時代前半に百済国から渡来し、
「論語」・「千字文」を伝えた学者であり、後に帰化したとされる。
また、その子孫は文筆をもって朝廷に仕えたといわれる。

この「博士王仁碑」二基は、王仁博士顕彰会により、
昭和十五(一九四〇)年及び昭和十六(一九四一)年に建立された。

平成二十五年三月
台東区教育委員会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고사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왕인박사는 고분시대 전반에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며,
뒤에 일본에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의 후손들은 문필을 통해
일본 조정에 봉사했다고 한다.

이 두 기의 왕인박사비는
왕인박사현창회에 의해
1940년과 1941년에 각각 건립되었다.

2013년 3월
다이토구 교육위원회

실제로 현지 설명판도 왕인을
백제에서 건너온 학자로 명확하게 소개하고 있다.


3. 안내판에 적힌 한글

더 반가웠던 것은
안내판 아래쪽에 한국어 설명이 별도로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왕인박사비

『고사기』 등 사서에 의하면 왕인박사는 백제에서 건너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해 한자문화 정착에 기여한 왕인박사를 기리기 위해 왕인박사현창회가 1940년과 1941년에 건립하였다.

도쿄 우에노공원 한복판에서
한글로 적힌 ‘백제’와 ‘왕인박사’라는 글자를 읽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4. 왕인은 언제 일본으로 건너갔는가

왕인의 일본 도래 시기는 일본의 고대 사서에서는 오진천황(応神天皇) 때로 전한다.

한국에서는 통상 백제 아신왕(阿莘王, 재위 392~405) 무렵의 인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백제에서 학자가 건너왔다는 전승이 실려 있고,
그 인물로 왕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왕인이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오랫동안 널리 알려져 왔다.

다만 여기에는 주의할 점이 있다.

특히 『천자문』은 일반적으로 6세기 중국 양나라에서 성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왕인이 4~5세기 무렵 일본에 건너갔다는 전승과는 연대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왕인이 실제로 『천자문』을 전했다는 부분은
오늘날 그대로 확정된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

왕인이라는 인물에 관한 기록 자체도
후대에 편찬된 일본 고대 사서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에
그의 생애 전체를 오늘날의 전기처럼 정확하게 복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의 고대 기록에서
백제에서 건너온 학자가 일본 왕실에 학문을 전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왕인은 바로 그 고대 한일 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5. ‘博士王仁碑’

가장 눈에 띄는 비석에는

博士王仁碑

라고 새겨져 있다.

그대로 풀이하면

‘박사 왕인비’.

왕인을 학문을 전한 학자로 기리는 비석이다.

비석 본문에는 한문으로 긴 글이 새겨져 있다.

왕인의 백제 출신과 일본 도래, 학문 전래,
후대에 남긴 문화적 공적을 기리는 내용이 중심이다.

다만 오랜 세월이 지나 글자의 마모가 있고,
햇빛과 그림자가 겹친 부분도 있어
모든 글자를 정확하게 판독하기 어렵다.

확인하지 못한 글자를 억지로 추정해 옮기기보다는
읽을 수 있는 것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맞겠다.


6. ‘流芳萬古’

옆의 또 다른 큰 비석 상단에는

流芳萬古

라는 네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유방만고’.

직역하면

‘향기로운 이름이 만고에 흐른다.’

조금 자연스럽게 풀면

‘그 아름다운 이름과 공덕이 영원히 후세에 전해진다.’

라는 뜻이다.

중국 고전에서 이어져 온 표현으로, 훌륭한 사람의 명성과 업적이 오래도록 후세에 남는다는 의미다.

왕인을 기리는 비석의 제목으로 상당히 어울리는 글귀였다.


7. 1940년과 1941년에 세워진 두 비석

현지 안내판에는 왕인박사비 두 기가 각각

1940년, 1941년

왕인박사현창회에 의해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오늘 우리가 우에노공원에서 보고 있는 왕인박사비는 고대에 세워진 유적은 아니다.

20세기 일본에서 왕인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현창비다.

이 점도 분명하게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비석 자체의 연대와 비석이 기리는 왕인의 시대는
약 1,500년 이상 떨어져 있다.

하지만 20세기 일본 사람들이
백제 출신 학자인 왕인을 따로 기념하고
도쿄 한복판에 이런 비석을 세웠다는 사실 역시
또 하나의 역사다.


8. 청동 부조로 다시 만난 왕인

두 석비 옆에는
왕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새긴 청동 부조도 있었다.

도포를 입고 관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 왕인이
두 손을 모으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실제 왕인의 얼굴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역사적 초상이라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상상하고 형상화한 왕인의 모습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문자로만 읽던 이름이
사람의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니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9. 일본에서 만난 백제

이번 여행의 전날에는 에도성을 걸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일본 근세사를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오늘,
우에노공원에서는 시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백제와 일본의 교류를 생각하게 되었다.

왕인에 관한 기록 가운데에는
후대의 전승이 섞여 있고
역사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전승을 사실처럼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일본 고대 사서에 백제에서 건너온 학자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고,
도쿄 한복판에 그를 기리는 비석 두 기와 안내판이 서 있다는 사실까지 가볍게 볼 이유도 없다.

고대 일본 문화의 형성과정에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과 기술,
문자와 학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큰 흐름 속에서
왕인의 이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10. ‘流芳萬古’

왕인박사비를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네 글자를 바라보았다.

流芳萬古.

아름다운 이름이 만고에 흐른다.

왕인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승 가운데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는 여전히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약 1,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백제 사람 왕인의 이름이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 한복판에 남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름을 내가 직접 찾아와
비석 앞에서 읽고 있었다.

‘流芳萬古’.

그 네 글자가 이날따라 조금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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