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37년 짧은 생을 살다 간 빈센트 반 고흐는 서른 점 이상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중 이 그림은반복되는 발작과 불안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남프랑스 생레미 시절에 그린 것이다. 캔버스에 유채, 54×65센티미터, 1889, 오르세미술관, 파리,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 반 고흐의 대표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으로 꾸며진 전시실을 거니는 사람들.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림이 지금은 팔리지 않아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제 그는 누구나 그 이름을 알 만큼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가 되었다.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반 고흐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34킬로미터 떨어진 오베르쉬르우아즈라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그는 거친 하늘 아래 드넓게 펼쳐진 이곳의 밀밭을 거닐며 <까마귀가 나는 밀밭>, <먹구름이 드리운 밀밭> 등 몇 점의 풍경화를 남겼다. 그가 묻힌 곳도 밀밭의 양지 바른 곳이다.
반 고흐의 생애와 예술 공간 37년에 걸친 반 고흐의 짧은 인생은 크게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에서 보낸 전기와, 프랑스의 파리, 아를, 생레미드프로방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보낸 후기로 나눌 수 있다. 그는 그림 파는 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한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종교인이 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그는 예술을 통한 구도의 길로 눈을 돌렸고, 파리에 입성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파리에서는 인상주의 사조를 접하면서 그의 그림도 밝고 화사한 색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보다 밝은 빛과 따뜻한 색채가 있는 곳에서 예술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다. 아를 시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가 꿈꾼 예술의 유토피아는 폴 고갱과의 갈등 끝에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정신 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은 그는 1890년 7월, 오베르쉬르우아즈의 들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가슴에 총을 쏘았다.
➊ 쥔데르트 네덜란드 반 고흐가 태어난 곳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에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인 쥔데르트에서 개신교 목사인 테오도뤼스 반 고흐와 어머니 아나 코넬리아 카르벤튀스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➋ 런던 영국 구필화랑 런던 지점이 있던 곳 1869년, 구필화랑 덴하흐 지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반 고흐는 스무 살이던 1873년 6월에는 구필화랑 런던 지점으로 발령받아 이듬해 가을까지 몸담았다.
➌ 보리나주 벨기에 탄광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한 곳 그림 파는 일을 그만두고 신학 공부를 하던 반 고흐는 1878년에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 인근에 있는 광산촌 보리나주로 가서 2년 동안 살았다. 그는 지독하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곁에서 스스로 모든 안락을 거부하는 가운데 아픈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➍ 뉘넌 네덜란드 〈감자 먹는 사람들〉의 배경지 에턴, 덴하흐, 드렌터 등을 떠돌며 예술가의 길을 모색하던 반 고흐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뉘넌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버지가 몸담고 있던 교회 목사관 뒤편의 부속 건물을 화실로 쓰다가, 몇 달 뒤 마을의 가톨릭 교회 관리인의 집에 방을 얻어 나왔다. 2년간 뉘넌에서 머무는 동안 고흐는 약 200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중 〈감자 먹는 사람들〉은 초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➎ 파리 프랑스 인상주의 그림들을 접한 곳 1886년, 서른세 살의 반 고흐는 파리에 도착했다. 곧이어 그는 정기적으로 모델을 보고 그릴 수 있는 코르몽의 화실을 드나들었지만, 생각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출입을 그만두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반 고흐는 도시 내외곽 풍경을 계속해서 그렸는데, 당시 핵심 사조인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그의 그림도 어두운 화풍에서 벗어나 밝고 강렬한 색조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➏ 아를 프랑스 예술 공동체를 꿈꾼 곳 1888년, 반 고흐는 밝고 원색적인 빛과 색채를 찾아 남프랑스로 향했다. 그는 아를에서 밀레와 루소 등의 바르비종파 같은 예술 공동체를 실현하고 싶어 했다. 이에 동료 예술가들에게 아를로 오라고 제안했는데, 고갱만이 반 고흐의 초대에 응했다. 그러나 둘 간에는 심각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의 꿈과 열정은 파국을 맞고 말았다.
➐ 생레미드프로방스 프랑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곳 환각에 시달리던 반 고흐는 1889년에 생레미드프로방스에 있는 생폴드모솔요양원에 들어갔다. 그것은 자신의 평화뿐만 아니라 타인의 평화를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그는 반복되는 정신 발작으로 고통을 받다가도 어느 정도 괜찮아지면 다시 붓을 들었다. 그리하여 요양원 정원의 라일락과 붓꽃을 비롯하여 멀리 알피유산맥, 포도밭, 아몬드나무, 밤의 풍경 등 약 150점의 그림을 남겼다.
➑ 오베르쉬르우아즈 프랑스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 1890년 5월, 반 고흐는 파리에서 멀지 않은 오베르쉬르우아즈로 갔다. 그는 드넓은 고원으로 둘러싸인 그곳을 "그림 같은 곳"이라고 했다. 특히 거친 하늘 아래 광대하게 펼쳐진 들판은 그의 내면에 쟁여져 있던 지독한 슬픔과 고독을 소환해 내며 거대한 풍경화를 그리게 했다. 불안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녔고, 결국 1890년 7월 27일에 그는 들판에서 제 가슴에 총을 겨눔으로써 이승의 삶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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