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클라인 철도의 흔적을 찾아서
현재의 영동선 도계~통리 구간 철도가 개통된 것은 1936년이고, 1963년 스위치백 철도의 개통은 철도교통이 대중교통의 중심이던 당시 최고의 기술력이 동원된 일대 사건이었다. 스위치백이 개통되기 전까지 약 3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철길을 연결해주는 또 다른 기술이 존재했는데, 바로 인클라인incline 혹은 강삭철도鋼索鐵道다.
인클라인 철도는 레일 위에 설치된 차량을 밧줄을 통해 견인하여 운행하는 철도를 뜻하는데, 이 구간의 길이는 1,080m, 경사각 15도, 최대 경사율 28.2%에 달하는 엄청난 구간이었다. 모든 승객과 열차를 끌어올리기에는 견인 능력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화물은 심포리역에서 한 량씩 인클라인 선로를 통해 통리역까지 실어 날랐고, 사람은 걸어서 심포리에서 통리재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했다.
청량리를 출발한 열차라면 통리~심포리~흥전~나한정 스위치백 구간을 지나 하고사리역을 지나가게 된다. 기차는 서지 않으므로 이곳에 가려면 도계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마을 주민들의 힘으로 만든 무인 간이역에 커다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뒤로 흐르는 오십천과 석회암 절벽이 너무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차를 타고 38번 국도를 지나던 사람들까지도 발길을 잠시 멈추게 되는 아름다운 간이역이다. 2007년 7월 등록문화재 제336호로 지정되었으며, 얼마 전 리모델링을 통해 30년 전의 색상과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4월 중순이면 역 주변에 벚꽃숲이 생기는데, 그 아래를 지나가는 기차 또한 장관이다.
영동선 안인~정동진 구간의 일출 바람이 심하고 파도가 높은 날에는 철길 위까지 파도가 덮치기도 한다.
삼척~강릉 구간을 하루 4회 왕복하는 관광전용열차 바다열차, 모든 좌석이 동쪽을 향하게 한 바다 감상을 위해 만들어진 열차다.
"지금부터 22시 40분 바다로 가는 열차 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막차인 청량리 발 강릉행 승객 여러분께서는 타는 곳 3번 출구, 3번 출구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기차여행이란 사연을 안고 떠나 이야기를 갖고 돌아오는 ‘남는 장사’라고 한다. 청량리 발 강릉행 막차인 #1641 열차 안에는 신혼여행을 대신하여 1박2일 기차여행을 떠나게 된 예비부부도 있고, 함께 살아온 지 50년 만에 처음으로 둘만의 기차여행을 떠나는 노부부도 있고, 태어나서 바다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꼬마가 아빠엄마에게 쉴 새 없이 바다를 노래하기도 한다.
바다로 가는 마지막 기차
모든 여행길이 즐겁기만한 것은 아니다. 겨우 잠든 새벽기차에서 누군가가 생산해낸 냄새로 인해 잠을 깬다든지, 아이 울음소리에 민감해져 화가 난다든지, 마치 온도조절기가 고장 난 것 같은 후텁지근함에 갑갑함을 느낀다든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간이역, 정동진역
1997년 이전까지 정동진은 영동선에서도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비둘기호 아니면 통일호만 가끔 서는 조그마한 어촌의 간이역이었다. 이용객도 많지 않아 마을 주민 아니면 강릉까지 가는 승차권을 쥐고 있다가 충동적으로 바다를 보기 위해 내린 손님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평균 시청률 40퍼센트를 넘은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주인공 혜린고현정이 사복 경관에서 잡혀가는 인상적인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그 풍경을 직접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점점 늘어 하루 50명 정도만이 찾던 작은 바다마을은 주말이면 1만 명을 넘는 지금의 정동진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동진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역 정문을 나서는 순간 눈앞에 가득 찬 각종 시설 때문에 조금 답답해짐을 느낄 것이다. 이럴 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영인정이다. 정동진역에서 도보 5분, 잘 정비된 산책로와 계단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면 소나무숲 사이로 정동진역 구내와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잠시 답답했던 가슴이 확 트이게 된다. 바닷가에서 보는 일출도 멋있지만, 영인정에서 보는 일출의 모습은 색다른 맛이 있다.
호젓한 백사장과 청록색 바다를 보고 싶다면 정동진으로 떠나보자.
바다가 보이는 철길, 바다열차와 추암역
우리나라에는 특별한 관광열차가 있다. 단순히 승객을 실어 나르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기차가 달리다가 바다를 만나면 속도가 느려지는 열차, 바다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일반열차보다 넓은 좌석이 해 뜨는 동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프로포즈석, 별실 같은 특별한 내부 인테리어를 갖추고 바다가 보이는 구간만 하루 세 번 왕복하는 바다열차가 그 주인공이다.
바다열차는 삼척을 출발하여 애국가 일출의 배경이 된 추암해변에 잠시 정차했다가 동해~망상~옥계~정동진~강릉으로 이어지는 바다 철길만을 골라 다닌다. 추운 바닷가에 서서 일출을 보는 것도 귀찮고, 정동진을 돌아다니는 것도 피곤할 것 같다면 바다열차를 타고 삼척~강릉 구간을 왕복하거나, 추암역에 내려 구경하다가 복편 열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되돌아오는 것도 좋다.
삼척해변역은 삼척해수욕장 인근에 지어진 지 몇 년 되지 않은 나무 역사다. 원래 이름은 지명을 따라 ‘후진역’이었지만, 얼마 전 삼척해변역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삼척해수욕장은 추암에 비해 해안선의 규모도 크고 피서철이면 해수욕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붐빈다. 기억에 남는 여름여행을 위해 바다열차를 타고 삼척해변역까지 가서 피서를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체력이 충분하다면 무박2일 코스를 추천한다. 청량리역에서 22시 40분에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04시 40분 정동진역에 도착, 새벽바다를 보다가 편의점에서 라면 같은 간식을 먹고 일출을 본 후 정동진역 주위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10시 52분 바다열차를 타고 추암역에 내려 약 30분간 추암해변 감상 후 12시 11분 추암역에서 바다열차를 타고 강릉시내로 이동, 경포대와 경포호, 선교장, 오죽헌 등의 관광을 마무리한 뒤 강릉역에서 청량리로 되돌아오는 열차를 이용하거나 강릉 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이용하면 깔끔한 무박2일 여행 끝.
‘춘천 가는 기차’가 변하고 있다. 칙칙폭폭 매연을 내뿜는 디젤기관차가 사라진다. 경춘선의 낭만을 찾아 조금만 서두르기를.
1939년에 개통된 경춘선, ‘춘천 가는 기차’가 크게 변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2010년 중 뿌연 연기 가득 내뿜으며 칙칙폭폭 달리는 낭만적인 기차여행길이 복선전철노선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길이 바뀐다고 추억까지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 달리고 있는 철길과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북한강을 따라 달리는 가평~강촌 구간은 그냥 창밖만 바라보고 있어도 즐거운 구간이다. 하루 코스로 강촌역, 백양리역, 경강역을 둘러보거나, 1박2일 코스로 춘천관광을 겸한다면 알찬 주말여행이 될 것이다. 70년이 넘도록 함께 해온 낭만 기차여행의 기억을 찾아 기차 타고 춘천으로 떠나보자.
경춘선 강촌역은 대성리역, 청평역과 함께 3대 기차여행 MT의 대명사이다. 대중교통이 편리해지고 주변 자전거도로, 강촌리조트 등의 관광자원이 개발되면서 강촌역의 인기는 전보다 더 높아지고 있다.
막상 유명하다고 해서 와봤는데 뭐 하고 놀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촌역의 매력이다. 역 주변에 미리 숙소를 잡고 자전거여행, 구곡폭포 구경하기, MTV 체험, 개울가 물놀이, 야구연습장에서 내기 배팅 한판이나 군것질을 해도 좋다. 바로 다음 역인 김유정역에 내려 김유정문학촌을 둘러보고 강촌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좋겠다. 강촌역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연인, 친구만 있다면 수도권 최고의 기차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섬처럼 홀로 서 있는 ‘외딴’ 간이역, 백양리역
플랫폼 한가운데 역사가 섬 속 외딴 집처럼 서 있는 독특한 구조인 백양리역. 우리나라에도 예전에는 이런 기차역이 많았지만, 안전과 현대화 등의 이유로 이런 구조를 가진 기차역은 이제 몇 군데 남지 않았다. 역무원은 근무하고 있지 않은 무인 간이역이며, 두 평 남짓한 대합실에만 자동으로 불이 꺼지고 켜지는 작은 간이역이다. 하지만 아직 여객열차가 하루 몇 번씩 정차하고 있는 것은 마을 주민들의 교통불편 문제해결과 가끔 이곳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청량리에서 가평역을 지나 철교 건너 북한강을 따라 조금만 달리면 경강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경강역은 예술가나 여행가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곳이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놀거리 많은 강촌이나 남이섬이 있는 가평에 비해 평가절하된 곳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강역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난 것은 영화 <편지>에서 최진실과 박신양이 사랑을 싹 틔우는 배경 장소가 되면서부터다.
영화처럼, 혹은 현실 속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곳에 와서 작은 식물원을 걸으며, 또는 아무도 없는 간이역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면 아무쪼록 경강역에 와서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함 속으로 무사히 도착하기를 소망해보자.
한국철도 최초로 사람의 이름을 딴 기차역으로, 이 지역 문인인 김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 12월 신남역에서 이름을 김유정역으로 바꾸었다. 강촌~남춘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에서 도보로 3분이면 김유정문학촌에 갈 수 있다.
강촌역~구곡폭포 입구까지 대부분이 밥집이고 다양한 음식 종류가 있으므로 먹을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백양리역이나 경강역 주변에는 딱히 먹을 만한 밥집이 없으므로 춘천시내 관광을 겸할 목적이라면 남춘천역에서 택시 기본요금 거리의 오성닭갈비를 추천하고, 김유정역 앞에서는 시골장터막국수를 추천한다.
글을 쓰는 내내 안타까운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더는 기차로 갈 수 없게 된 간이역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구불구불 곡선과 덜컹거리는 레일의 마찰음을 들으며 떠날 수 있는 재래선 철도가 이설, 개량과 함께 자꾸만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떠날 수 있는 간이역이 우리나라 곳곳에 꽤 많다는 점이다. 또한 여전히 철길이 우리에게 주는 낭만은 유효하다는 점이었다.
지나치게 글쓴이의 느낌을 강조하는 것은 간이역의 참의미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에 가능한 현장에서 느낀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했다. 무언가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여행을 기대하고 떠난 간이역 여행자분들께 허무함을 안겨드리지 않도록 ‘마니아다운’ 주제는 부록에 별도로 다루어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지금 남아 있는 간이역들은 하나둘 제 기능을 다하고, 언젠가는 거의 사라지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이 책도 기억 속의 자료집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극히 일부만 문화재나 관광지로 개발되어 달라진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 번이라도 간이역을 찾아 떠난 사람에게는 기억 속에 고이 남아 사라지지 않는 소중한 흔적이 되거나, 블로그 포스트, 사진, 일기가 되어 나만의 ‘여행세포’ 속에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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