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구나 서울에서 문경까지 가는 데 2~3시간이면 충분하고 접근성도 좋지만, 과거의 문경은 심산유곡의 산간지역으로 농업이 빈약하여 낙후된 지역이었다. 옛 묵객들이 문경의 산천을 두고 심향心鄕이라 부른 것은 마음의 고향이라는 뜻 외에도 심향深鄕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1970~1980년대 대한민국이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현재의 문경읍과 가은읍 지역에는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석탄 자원의 가치가 하락하고 도시를 향해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문경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된다.
불정역 테마 펜션열차 입구에는 지붕이 뾰족하고 벽체에 자갈이 촘촘히 박힌, 마치 게임기에 등장할 것 같은 특이한 건축물이 서 있는데, 바로 1955년에 지어진 등록문화재 제326호 문경선 불정역이다.
등록문화재는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는 문화유산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과거 문경지역의 주요 산업이던 광업과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역사驛舍라는 점, 아름다운 문경 지역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품고 있다는 점 때문에 2007년 4월 30일 326번째 국가 등록문화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 열차를 개조하여 펜션으로 꾸미는 사례가 지역별로 점차 늘고 있다. 강원도 정선의 구절리역, 전남 곡성군의 가정역에 이어 오랜 기간의 준비 끝에 2008년 12월 2일 세 번째로 개장한 불정 테마 펜션열차는 과거 놀이방 객차 및 스넥카 등으로 쓰이던 실제 객차를 개조하여 만들었으며, 8개의 4인실과 2개의 단체실로 구성되어 있다.
진남역은 문경선과 가은선의 분기점에서 신호장으로 탄생한 목조 역사로, 문경선 열차가 더는 운행하지 않게 된 지금도 레일바이크의 출발점이 되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간이역이다. 처음부터 여객 업무를 목적으로 한 곳이 아니다 보니 맞이방대합실 규모가 2평 남짓할 정도로 좁게 만들어져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이곳을 더 아담한 간이역으로 만들고 있다.
1956년 영업을 시작한 가은역의 원래 이름은 은성역이었다. 주변에 규모가 크고 역사가 있는 은성광업소가 있었기 때문이며, 1959년에 지명을 따라 가은역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북선 열차를 타고 김천을 지나 상주역까지 이르는 길은 대체로 평평한 평야지대이면서도 구불구불한 곡선 철길이 유난히 많다. 눈을 감고 철길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흐름을 마음으로 읽어보자. S자도 있고, 5자도 있고 3자도 만들어질 것이다.
축제다운 축제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역, 벚꽃과 함께할 수 있는 경화역, 1년에 단 열흘만 벚꽃을 만날 수 있다는 통해역… 꽃 피는 4월, 진해에는 볼 것도 많다.
1년에 한국에서 열리는 축제가 몇 개나 될까? 많이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10개 이상의 축제명을 아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2009년 문화관광부에서 집계한 한국의 축제는 모두 942개라고 하니, 개수로만 보자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축제의 도시다. 인천 자장면축제10월, 대구 폭염축제8월, 광주 김치축제10월, 대전역 0시축제8월, 울산 고래축제5월, 양평 메뚜기축제10월, 안흥 찐빵축제10월 등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는 축제가 많다. 그러나 종류가 많아도 정작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1926년 11월 11일 준공된 진해역은 건축 연도로 따지자면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건축 당시의 일반적인 지방 철도역사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붕에 난 5각형의 창이나 뾰족한 굴뚝 등이 이색적인 모양으로 남아 있어 2005년 등록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되었다. 2002년에 한 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역사로, 역 구내에 벚꽃이 피는 4월에는 역사의 붉은 지붕과 벚꽃이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원래는 경화역에도 진해역과 같은 날 태어난 정말 멋진 모습의 역사가 서 있었는데, 여객 수요 감소와 열차 무정차 통과, 관리 문제 등을 이유로 2000년에 철거되고 말았다.
진해역과 경화역 외에도 진해에는 바다가 보이는 멋진 철길이 있다. 여객열차는 다니지 않고, 화물열차도 거의 운행하지 않는 행암선이라는 철길인데, 진해시내를 가로질러 바다를 따라 한참을 뻗어 있어 주민들의 산책로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
1961년 ‘통제부역’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1986년 지금의 이름인 통해역이 되었다. 2006년까지는 이곳까지 통근열차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진해역이 여객열차의 종점이 됨으로써 여전히 미지의 간이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통해역은 정말 아름답다. 개나리와 벚꽃이 만든 터널 아래로 기차라도 들어올라치면 행선지가 지옥이라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이상적인 간이역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봄뿐만 아니라 단풍이 물든 가을의 통해역도 무척 아름다운데,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에 더더욱 보고 싶은 풍경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접근이 허가되지 않는 곳이지만, 간이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진다면 미지의 통해역에 걸려 있던 빗장도 서서히 풀리지 않을까?
통해역은 정말 아름답다. 개나리와 벚꽃이 만든 터널 아래로 기차라도 들어올라치면 행선지가 지옥이라도 떠나고 싶을 정도로 이상적인 간이역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봄뿐만 아니라 단풍이 물든 가을의 통해역도 무척 아름다운데,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에 더더욱 보고 싶은 풍경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접근이 허가되지 않는 곳이지만, 간이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진다면 미지의 통해역에 걸려 있던 빗장도 서서히 풀리지 않을까?
장항선 새마을호 열차가 광천역에 진입하고 있다. 광천은 제법 큰 마을로, 장항선을 지나는 모든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곳이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기차가 지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기적소리 없는 아침이면 마주하고 노랠 부르네. - 이규석의 ‘기차와 소나무’ 중에서
우리에게 ‘간이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역들 중 기차가 서는 간이역과 그렇지 않은 간이역, 어느 것이 더 많을까? 답은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1899년 이후 철도노선이 전 국토를 가로지르면서 크고 작은 기차역이 생겨났다. 가장 많을 때는 기차가 한 번이라도 서는 간이역만 500개가 넘을 만큼 많았지만, 지금은 200곳 정도의 간이역에만 기차가 선다. 결국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훨씬 많다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우선 없애지 않아도 기차의 통행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또한 얇은 쇠기둥 네 개에 나무벤치와 넝쿨로 이루어진 역사는 역사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단순하다. 거기다가 바로 앞의 마을 주민들이 일하다 쉬어가는 쉼터 역할까지 겸하기 때문에 멈춰 서는 열차가 없더라도 굳이 없애기보다는 남겨두는 것이 나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매력은 이곳의 역명판 디자인이다.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 정체모를 폰트로 쓰인 역명판이 몇 세대 이전 버전임을 느낄 수 있어 근대 철도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귀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원죽역이 통과하는 장항선 신성~청소 구간은 이설 순위상 맨 꼴찌에 해당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 년간 더 볼 수 있는 간이역 풍경이다.
맛있는 김장김치의 비결은 좋은 배추와 소금 그리고 어머니의 손맛이겠지만, 김치맛을 결정짓는 핵심 재료는 젓갈일 것이다. 강경, 속초, 곰소 등 젓갈로 유명한 곳이 많지만 광천은 토굴에서 숙성시킨 새우젓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광천 하면 떠오르는 게 오서산과 김 그리고 새우젓일 만큼 새우젓이 유명한 곳이다.
섭씨 10~15도의 토굴 속에서 숙성시킨 새우젓은 음력 5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오젓, 6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육젓, 가을에 잡은 새우로 담근 추젓 등으로 구분된다. 그 중 살이 통통하게 오른 6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육젓이 품질도 으뜸이고 가격도 비싸다. 시세는 비슷비슷하니 토굴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깊은 맛의 새우젓을 살 수 있다.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인 청소역 임피역과 함께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중 하나이며, 등록문화재 제305호로 지정되었다. 주변 관광지는 없지만 멀리 오서산이 보이는 시원한 풍경과 하얀 벽돌 건물 역사, 굴뚝, 멍멍이와 시골마을 풍경이 어우러져 경관 좋은 문화재로 자리하고 있다. 임피역, 원죽역과 함께 장항선에서 가볼 만한 3대 역사로 손꼽을 수 있다.
원죽역에서 청소역 방향으로 달리는 기차는 김좌진 장군 묘를 지나면서 엄청난 상승경사를 만나게 되는데,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의식하지 않으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밖에서 보는 철길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엄청난 경사로 보이는 곳이다. 잠시 눈을 감고 상승경사를 느껴보자.
"나 다시 돌아갈래!" 아직 방황하고 있거나 돌아가야 할 순수를 찾지 못했다면,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가 있는 삼탄역으로 가보자.
충북선 철도는 해당 지역 주민이 아니라면 일부러 타지 않는 이상 타보기 힘든 한반도의 가로축 철도 노선이다. 1928년 조치원에서 충주 구간이 개통된 후 1958년에는 봉양까지 개통되어 현재의 노선이 만들어졌다. 1980년 10월에는 시멘트 등의 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복선화가 완료되었다.
삼탄유원지 주변은 예로부터 나라의 변란을 피해 숨어들어온 사람들과 화전민들이 땅을 일구던 오지였다. 1958년 이 구간에 충북선 열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여행 목적으로 찾기 시작하면서 물 좋고 경치 좋은 유원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기차와 버스가 하루에 몇 차례 운행을 하고 있으며, 자동차보다는 기차로 접근하는 것이 쉬워 여전히 기차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열차도 하루 6회 삼탄역에 정차하고 있어 충북지역의 대표적인 기차여행지로 손꼽을 만하다.
삼탄은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으로부터 흐르는 광청소여울, 소나무여울, 따개비소여울 등 세 개의 여울三灘이 합쳐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높고 푸른 산과 아름다운 물길에 둘러싸인 유원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중 삼탄역에서 출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등산로는 인등산이며, 인등산 정상해발 666m을 지나 동량역으로 내려가는 산행 코스3~4시간 소요는 기차를 이용해서 왕복 산행이 가능하다.
영화 <박하사탕>의 촬영지 진소천 철교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철교에 서서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하며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다. 외마디 외침과 함께 영화 속의 기차는 세월을 거슬러 순수했던 시절을 향해 2시간 내내 거꾸로 달린다.
<박하사탕> 중 ‘나 다시 돌아갈래!’를 촬영한 진소천 철교 찾아가기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철교는 삼탄역과 공전역의 중간쯤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은 쉽지 않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가 면서 진소천 철교 위에서 보거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면 충주에서 평동리행 버스를 타고 평동리에서 하차 후 10㎞ 정도 걸어가야 하므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자.
특히 영화 <박하사탕>을 인상 깊게 본 사람이나 아직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 순수했던 과거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풍경이다.
그런 점에서 삼탄역과 진소천 철교는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자연의 모습으로 인해 지친 일상을 쉬게 해주는 역할을, 어떤 누군가에게는 영화 <박하사탕>을 통해 순수했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반환점이 되어줄 것이다.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유중교가 1889년고종 26년에 세운 <창주정사創州精舍>가 있던 자리에 유림이 창건한 서당의 이름이다. 또한 의병장 유인석이 팔도의 유림들을 모아 창의倡義의 비밀회의를 하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공전역과 자양영당 일대는 평탄해 보이는 지형이지만 공전역에서 삼탄역으로는 차로 다닐 수 없고 철도로만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지형이 험준하다. 또 그런 만큼 주위 계곡이 아름다워 여름철에는 알 만한 사람들만 오는 경치 좋은 장소로 손꼽힌다. 기차가 무척 자주 다니니 철로로 다니지는 말자.
깊은 산 속에 숨어 있는 상상 속의 간이역, 원박역과 연박역
항상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철도와 간이역도 현실에서는 무척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사라지고 옮겨지고 바뀌고 있다. 삼탄~공전역 일대에도 이런 크고 작은 이설과 사라짐의 역사가 있다. 1958년 충북선 충주~봉양 구간이 개통될 당시에는 산척역과 원박역이라는 역명이 지도상에 존재했었고, 철도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단선 선로가 놓여 있었다.
동량역은 역무원들에 의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역 자체는 전형적인 충북선의 凸자 모양이지만, 역 구내에는 아기자기한 식물들이 역무원분들에 의해 직접 가꿔지기도 하고, 스스로 자라나 철길 주변을 덮고 있어 작은 식물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역사 내부에는 수석이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어 작은 전시관 같다.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으므로 충주시내에서 충주호를 따라 동량면소재지를 찾아오면 된다.
조용한 플랫폼으로 호송병이 타고 있는 8칸짜리 통일호 열차가 들어온다. 나는 내 손으로 어설프게 꿰맨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키만 한 더블백에 앉아 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연산역에는 철도문화체험을 위한 시설 외에도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이 있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가 운행하던 시절 기관차에 물을 대기 위한 시설인데, 연산역 급수탑은 호남선 대전~강경 구간 개통과 거의 동시인 1911년에 건설되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20여 개 철도역 급수탑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기억 속 단편, 강경선 연무대역
1992년 9월 모일, 필자도 6주간의 논산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연무대역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훈련병에서 이등병의 신분으로 ‘업글’되어 자대배치를 받았다. 평생 한 번뿐인 기회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타본 수백 수천 번의 여행 중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가장 무서운 기차여행’이었다.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가 생활했던 군부대 쪽으로 ‘쉬~’도 안 한다고 하지만, 막상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들도 다 추억이 된다. 근처를 지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한 번쯤 훈련장이나 연무대역 쪽을 둘러보며 ‘그랬었지’ 하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연무대역은 2개다. 하나는 번듯한 역사가 아직 남아 있고 여객영업까지 하다가 현재는 화물영업만 하게 된 연무대역과 연무대역사에서 1.5㎞쯤 떨어져 있고 플랫폼에 비 피할 지붕뿐이지만 군 시절 한 번은 기차를 타게 되는 신연무대역이 그것이다. 연무대역이나 신연무대역은 역사 자체에서 매력을 찾기보다는 주로 과거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호남선 개태사역 연산역 북쪽 5㎞ 지점에 있으며,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시절에는 개태사역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개태사가 위치해 있어 간이역과 사찰 구경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좌우 균형을 이루는 지붕이 아담한 간이역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으며,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종류의 꽃이 피는 역 구내가 인상적인 곳이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神劍을 무찌르고 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려 황산을 천호산이라 개칭하고 창건한 절로, 보물 제214호 석불입상과 충남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된 엄청나게 큰 철확철제 솥이 인상적이다.
글을 쓰는 내내 안타까운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더는 기차로 갈 수 없게 된 간이역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구불구불 곡선과 덜컹거리는 레일의 마찰음을 들으며 떠날 수 있는 재래선 철도가 이설, 개량과 함께 자꾸만 줄어든다는 점이다.
지금 남아 있는 간이역들은 하나둘 제 기능을 다하고, 언젠가는 거의 사라지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쯤이면 이 책도 기억 속의 자료집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극히 일부만 문화재나 관광지로 개발되어 달라진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 번이라도 간이역을 찾아 떠난 사람에게는 기억 속에 고이 남아 사라지지 않는 소중한 흔적이 되거나, 블로그 포스트, 사진, 일기가 되어 나만의 ‘여행세포’ 속에 남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업 중인 철도의 폭은 1,435㎜짜리 표준궤가 쓰이고 있지만, 1995년까지는 수인선을 따라 762㎜짜리 협궤열차가 운행됐었다. 우리나라 협궤철도의 역사를 좀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72년에 폐지된 수려선수원~여주 구간 철도가 있고, 1930년대 이전으로 가면 지금의 대구~경주 구간도 협궤였다. 또한 경전선 삼랑진~마산 구간 개설 초기 철도와 현재의 군산, 전라선 일부도 협궤였다. 공통점이라면 더는 우리나라에서 운행 중인 협궤철도는 없다는 것이다.
간이역이 가장 충격적으로 변신한 곳이 중앙선 승문역일 것이다. 사람이 살고 표를 팔던 간이역이 소 풀 먹이는 외양간으로 바뀐 경우는 세계 철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승문역은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경북 영주지방에 잘 남아 있다.
높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 황지역의 배경이 된 곳은 실제 황지태백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중앙선 평은역이다. 이곳이 드라마 속에서 과거의 황지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형적인 간이역 모양의 역사와 실제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을이나 풍경을 방해할 만한 것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삼랑진역 급수탑은 1923년에 설치되어 85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쪽은 돌로 만들어졌고 위쪽은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 앞서 지어진 연산역 급수탑과 1930년대 이후에 지어진 급수탑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