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즉흥적인 생각으로 아지무의 요시카와 마사코를 방문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암시를 준 것도 두 사람의 주의를 가능한 한 현재의 츠노시마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애거사의 립스틱에 청산가리를 발라 둔 것은 그 전날인 둘째 날 27일 오후였다. 이미 플라스틱 조각이 출현했지만 그들의 경계심은 그리 높지 않아서 방으로 잠입할기회를 포착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방 상태를 알리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준비를 담당한 책임도 있고 해서 자신이 나쁜 방을 선택했다고 하면 되겠지만, 가능한 한 알리지 않는것이 가장 좋다. 그 때문에 그때는 포의 제안에 반대했던 것이다.
확실히 그는 매우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부주의하고 멍청한 측면도 있다. 그렇게 수상쩍은 지하실로 무작정 뛰어 들어간다는 것은 ‘탐정‘이라는 이름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그는 발이 조금 삐었을 뿐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중지만 자르면 다른 사람도 금방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왼손을 자른다는 것은 우연히도 작년 청옥부 사건의 ‘흉내를 내는 셈이 되기도 한다. 양자의 부합은 한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시마다 기요시가 말했던 ‘세이지의 그림자‘를 섬에 있는 작자들에게 은근히 암시하는 효과이다.
만일 1/6의 확률로 그 컵이 자신에게 돌아올 경우는 그냥 마시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이 카가 ‘제2 피해자가 되어주었다.
겁쟁이 르루가 왜 이런 시간에 혼자서 바위 더미가 있는 곳까지 왔을까. 그러나 천천히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바위에 매어두었던 끈을 발견하고 수상쩍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조사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들켰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단 한 번 목격으로 이 모든 사태를 완벽하게 이해해버렸을 것이다.
‘살인은 이제 지겹다, 사체는 더 이상 싫어!‘ 마음속에서 그런 외침이 들려왔다.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몸의 중심부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정신도 육체도 이미 한계에달했다는 느낌이 왔다.
극도로 긴장된 신경은 선잠도 허락하지 않았다. 온몸이 마비된 듯이 맥이 없고, 가슴도 조금 울렁거렸다. 이윽고 손목시계의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물을 마시러 방을나섰다. 거기서 저 애거사의 사체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날 아침에야 그녀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것이었다.
단 그가 최후에 그 십일각형 컵을 통해 십각관 열한 번째 방의 존재를 추리해낸 분석력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 컵이 하나 존재하는지, 자신도 의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마 그것이 그런 장치와 관련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육지에서 가와미나미와 시마다에게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기묘한 건축적인 장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러리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결론을 이끌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범인은 세 사람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고, 섬의 외부에서 배를 타고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다
나카무라 세이지라고 말하고 싶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세이지가 살아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세이지의 그림자‘가 여기서 결정적으로 자신을 지켜 주리라고는........
그는 결국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에게 협력해주었던 것이다. 그는 명탐정이라는 착각을 즐겼다.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광대였다. 그는 우스꽝스럽게도 묘한 부분에서스스로 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최후에 남은 두 사람이 ‘탐정‘이고 ‘살인범‘이라고.
엘러리는 갑자기 눈을 퍼뜩 떴지만, 그때는 이미 등유를 흠뻑 머금은 침대에 불이 붙은 다음이었다. 불꽃이 혀를 날름거림과 동시에 창문을 닫았다.
잠이 오는군. 아무래도 긴장이 풀어진 것 같아. 밴? 넌 괜찮아? 잠시만 눈을 붙일게.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깨워줘......." 명탐정 최후의 대사였다.
모든 전개는 예상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육지에서의 행동을 증명하는 그림 가운데 불필요한 두 장은 이미 처분해버렸다. 이제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제 아무것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모리스는 생각했다. 모든 복수는 끝났다. 끝난 것이다.......
"부탁 좀 들어줄래?"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노을 진 바다처럼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아이의 손에 그것을 쥐여주었다. "저기 있는 아저씨에게 이것 좀 전해줄래?"
그것은 엷은 녹색의 작은 병이었다. 파도에 밀리며 반쯤 모래에 잠긴 그 병 속에는 몇 번이나 접은 몇 장의 종잇조각이 있었다. ‘아아.......! 그는 그것을 주워들고 방파제에 앉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쪽을 돌아보았다.
"고지로가 범인이 아닐까 하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었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어. 그러다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이들더군. 그 이야기를 오늘 해주고 싶어서 말일세."
이렇게 머리를 숙이면서도 나는 지금, 눈이 날카로운 독자 여러분을 ‘속이기 위한 다음 수를 찾으려고 빈약한 뇌세포에 채찍질을 가한다. 1987년 여름 아야츠지 유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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