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올해도 여기서 살인을 저질렀다. 이런 말씀이십니까?"
"오이시 씨, 아무리 그래도 그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모리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오이시는 초조한 듯이 콧등을 긁으면서 반박했다.

"잘 보세요. 이 오른손은 왼손 반지를 쥐고 있습니다. 어쩐지 반지를 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시마다는 으음, 하고 나지막한 소리를 냈다.
"죽기 직전에 그 ‘버릇‘이 나왔다고 볼 수는 없겠고. 아아, 그러고 보니 작년 사건에서도 시체 손가락에서 반지가 빠져 있었죠."

"후지누마 씨, 잠깐만요."
시마다가 또 나를 불러 세웠다.
"아까부터 뭔가가 보일 것 같단 말입니다. 뭔가 그, 완벽한 ‘형태‘가요."
"진상 확인은 경찰에 맡깁시다. 이제 질렸습니다. 설마, 내가 범인이라고 하지는 않겠죠?"

"오이시 씨의 가설을 들으니 적잖이 마음이 움직이는군요. 어쨌거나 우리에게 당신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의심받아도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에서 냉정할 수 있겠습니까."

벌컥 화를 내며 말해놓고 나는 휠체어를 움직여서 ‘서쪽 회랑‘으로 통하는 문으로 향했다. 유리에가 불안한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밖에서는 여전히 폭풍우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식당에 남은 사람들의 당혹스러운 시선을 등으로 받아내며 회랑으로 나온 나는, 이제 저 바깥의 폭풍우보다도, 이저택 안을 거세게 휩쓸며 우리의 정적을 무너뜨리려는 광기의 바람이 더 증오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하얀 가면에 뚫린 두 눈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눈두덩을 세게 눌렀다.
"......마사키다."
"그럴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몸을 일으키며 미타무라가 대답했다. 그리고 자기 왼손 약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오른손으로 비틀면서 말했다.
"마사키 씨의 그 묘안석 반지 자국이겠죠."
"그렇다면 마사키는 역시 그자 손에......."

저것, 그러니까 가장 깊숙한 쪽 벽에 소각로가 있었다. 그 앞에 선 오이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검은 막대기를 주워들었다. 쇠로 된 불쏘시개였다.
"히익!"

"어떻게 이런 짓을."
그것은 사람의 잘린 머리였다.
새카맣게 불타서 흰 연기가 쉭쉭 올라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몽땅 탔고 눈, 코, 입 전부 문드러져서 형체를 잃었다.
한편 미타무라가 쥔 불쏘시개 끝에도 물체 하나가 마치 꼬치처럼 꽂혀 있었다.
"이건 팔인가."

하지만 죽은 자들은 말이 없었고, 자취를 감춘 남자는 그저 커다란 수수께끼만을 남긴 채 두 번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피로와 혼란 속에서 우리는 오로지 ‘사건‘을 넘겨받아야 할 경찰만을 기다렸다. 그날 9월 29일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한 경찰들은 저택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건에하나같이 눈을 부릅떴다. 쉴 틈도 없이 시작된 참고인 조사와 현장 검증, 부근 수색...... 그리고.
이윽고 그들이 내세운 수사방침이라는 명목 아래 그날 밤의 ‘사건‘은 하나의 ‘해결‘ 속에 묻혔다.
골짜기에 다시 정적이 돌아왔고, 나는 그저 그 정적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먼저 굴러 나온 머리와 마찬가지로 불에 타서 새카맣고 열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비틀린 인간의 팔. 아무래도 왼팔 같았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 손에 손가락 하나가 모자란다는 사실이다. 엄지손가락부터 헤아려 네 번째 손가락이었다. 왼손 약손가락.
소각로 안에서는 인간의 시체 한 구가 불타고 있었다.
머리, 몸통, 양팔, 양다리. 여섯 토막으로 잘린 하나의 몸이.

c. 후루카와는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머물던 2층 방을 빠져나왔다. 아래층 홀에 미타무라 노리유키와 모리 시게히코가 있었으나 교묘하게 눈을 속이고 회랑으로 나가서 그림 한 점을 훔쳤다. 그 후 뒷문을 통해 밖으로 도주하지만 폭풍우 때문에 발이 묶였다.
d. 마사키 신고가 후루카와를 발견하고 그를 쫓아 저택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때 후루카와는 쫓아온 마사키를 살해했다.
e. 후루카와가 마사키의 시체를 해체한 후 소각한 이유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범행 후 증거 인멸. 시체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살인 사실은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후루카와는 시체를 지하실 소각로에서 태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시체를 토막 낸 것은 온전한 상태로는 소각로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소각 현장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후루카와는 시체가 다 탔을 때쯤 지하실로 되돌아가서 재를 수습하여 처분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f. 시체를 절단하는 데 사용한 도구는 저택 주방과 물품보관함에서 조달한 육류용 칼과 손도끼다. 이것들은 시체와 함께 소각로에서 불타고 있었다. 해체 작업은 저택 밖 어딘가에서 했으리라 추정되는데, 비에 씻겼는지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3. 범행 경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볼 때, 사건의 가해자는 전날 저택을 방문한 후루카와 쓰네히토(37세)로 추정된다. 다음은 범행 경과를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것이다.
a. 후루카와 쓰네히토는 가나가와 현 다카마쓰 시 **절에 거주하며 그곳의 부주지다. 그는 저택을 방문한 다른 손님 세 명과 마찬가지로 후지누마 기이치가 소장한 후지누마 잇세이 화백의 작품을 애호했는데, 그 그림들을 살 만큼의 경제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애석하게 여겨왔던 듯하다. 최근에는 가족들 몰래 주식 투자를 하다가 실패해서 금전적으로도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b. 잇세이 화백의 작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후루카와는 저택 회랑에 장식된 그림 한 점을 훔쳤다. 이것은 계획적인 범행이 아니라 다분히 우발적이고 격정적인행동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사건이 일어난 날 밤, 회랑에서 후루카와가 작품에 홀린 듯이 서 있는 것을 사용인 구라모토 쇼지가 목격했는데 이는 그의 심리 상태를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증언이다.

2. 피해자 판정
a. 관계자에게 들은 사건 당시의 상황, 검시 부검 결과, 지하실에서 발견된 물적 증거를 근거로 피해자는 후지누마 기이치의 저택에 머물던 마사키 신고(38세)로판명되었다.
b. 위에 적은 동일성 확인을 위한 물적 증거란 소각로 곁에 떨어져 있던 손가락이다. 이것은 시체의 왼손 결손과 부합하는데, 범인이 시체를 해체한 후 소각할 때실수로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감식 결과, 이 손가락과 마사키 신고의 혈액형이 일치(O형, Rh+)했다.
c. 발견된 약손가락에는 반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사키 신고는 같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한다. 또 그가 머물던 방과 그가 연주한 피아노 건반에서 채취한 지문이 잘린 손가락의 지문과 일치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수차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관한 공식 견해*
당시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신문기사, 잡지기사, 그 밖의 정보를 취합 요약한 시마다 기요시의 노트에서
1. 시체 소견
9월 29일 이른 아침, 후지누마 기이치의 저택 지하실에서 발견된 시체를 검시 부검한 결과 다음 사실이 판명되었다.
a. 시체는 머리 하나, 몸통 하나, 팔 둘(다만 왼손 약손가락에 결손이 있었다), 다리 둘, 모두 여섯 토막으로 해체되어 지하실 소각로에서 태워졌다.
b. 시체의 손상이 심해서 인상착의나 개인적 특징은 알 수 없었으나 성별은 남자, 나이는 35~45세, 체격은 신장 165센티미터 전후의 중키 그리고 마른 체형으로추정된다. 고열 때문에 단백질이 변성되어 혈액형은 검출할 수 없었다.
c. 사인은 질식사. 교살 혹은 액살로 추정된다. 소각해서 탄화가 상당히 진행된 탓에 사망추정시각은 좁힐 수 없었다.

4. 보충
그 후의 조사로 다음 사실이 밝혀졌다.
a. 피해자 마사키 신고는 같은 해 2월에 도쿄 도 네리마 구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미수 사건의 주요 용의자였다. 마사키는 몇 해 전부터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폭력단이 운영하는 사채에 손을 댄 모양으로, 돈 갚을 길이 막막하여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겠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국은 반년 전에 자취를 감춘 마사키의 행방을 쫓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지명 수배를 내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b.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루카와는 전국에 지명 수배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g. 토막 시체를 지하실로 옮길 때 마주친 사용인 구라모토를 때려서 기절시킨 후, 묶어서 식당에 방치했다.
h. 시체의 손가락을 절단한 것은 그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묘안석 반지를 빼기 위해서다. 손가락에 꽉 맞아서 빠지지 않던 반지라고 한다. 시체를 해체할 때 후루카와는 도랑치고 가재 잡는 식으로 고가의 반지를 챙긴 것이다.
i. 소각 현장이 발각된 사실을 안 후루카와는 시체 인멸을 포기하고 훔친 그림을 가지고 도주했다. 도주 경로는 불분명하지만 도로 통행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산속으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슴속에 번지는 다양한 감정, 곤혹, 불안, 초조, 분노......를 억누르면서 나는 되도록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던졌다.
"일단 그 남자 말인데, 미타무라는 왜 네 방에 있었을까? 넌 그가 방에 찾아올 줄 몰랐니?"
유리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몰랐다는 말이구나."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어요. 제가 여기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고요. 그래서......."
(그래서......)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나를 협박했다는 거야?)

"어째서 이런 걸 썼지?"
그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협박장을 ‘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유리에였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때, 그러니까 어제 저택을 찾은 손님 세 명을 마중하러 ‘서쪽 회랑‘을 통해 현관으로 향했을 때, 아니면 다시 되돌아왔을 때 거실 문 아래에 이미이 편지지가 끼워져 있었다는 사실도.

이를테면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내게 말해봤자 들어줄 리 없다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 혼자서 나가겠다는데 내가 허락을 하겠는가. 그래서.
(그래서 ‘협박자‘의 탈을 쓰고 내게 겁을 줘서 이곳을 뜨게 할 셈이었나. 그때는 자기도 같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아아...... 그런)잠긴 서재 문 너머에서?
이윽고 소리는 멎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모든 신경은 검은 빛을 띤 마호가니 문에 집중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일까.
신경이 곤두섰고 무시무시한 어떤 예감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덜컥 하고 소리가 났다.
아까처럼 귀에 선 금속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무언가 의지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있다)그렇게 직감한 나는 몸을 더욱 긴장시켰다.
덜컥. 소리가 또 났다. 이어서 부스럭부스럭, 옷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다음에는.

내가 간절히 바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려온 ‘정적. 사람이 언젠가 죽는 것처럼 정적도 깨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나는 이런 파멸을 아주 오래전부터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그녀는, 그리고 나는, 이 수차관은 어떻게 될까.

"대강 상상하던 대로였어요. 이야, 정말이지 이런 터무니없는 범죄도 다 있더군요."
"뭐가 어떻다는 거요?"
"진상을 알아냈다, 이 말입니다, 오이시 씨."

"돌아가! 제발 돌아가줘."
침실에서 유리에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도 문 너머에서 난 소리를 들었나 보았다.
찰카닥찰카닥. 저 안쪽에서 누군가 문손잡이를 계속 돌렸다. 바깥에 자물쇠가 걸려 있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만둬!"

돌아가던 문손잡이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나이트 스탠드만 켜져 있는 어둑한 침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는........
"이야, 간신히 나왔네."
마르고 거무스름한 얼굴에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띤 그 남자, 시마다 기요시였다.
"영락없이 되돌아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유리에 씨가 문을 열어줘서 다행이에요."

"그뿐만이 아니죠. 작년 사건도 전부 다 당신 짓입니다."
시마다는 멈추지 않았다.
"네기시 후미에 씨를 ‘탑‘ 발코니에서 떨어뜨린 사람도 당신입니다. 그림을 훔친 이도, 그리고 물론 지하 소각로에서 토막 시체를 불태운 이도."

"이제 단념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후지누마 씨."
"이만큼 오싹한 범죄를 계획해 실행한 분 아닙니까. 그에 걸맞게 막도 깔끔하게 내립시다."
"당신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내가 범인이라는 거요?"
"아닌가요?"
"적당히 합시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전부 다요."
시마다는 망설임이 없었다.

"후지누마 씨는 그런 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네기시 후미에 추락사건 때 후지누마 씨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소각로의 시체는 어떨까요. 다리가 불편해서 혼자 힘으로는 지하실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겠죠. 오늘 밤 미타무라 씨가 살해당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상태라 ‘탑‘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맞습니다. 확실히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아니,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겠군요. 제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도 머지않아 당신은 파멸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니까요."
"운명?"
"그래요.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이 저택, 거기 사는 자의 운명이죠."

시마다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퍼뜩 놀라 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는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을 애처롭게 바라보듯이 내 눈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제 손으로 꼭 그 가면을 벗겨야만 하겠습니까, 마사키 신고 씨."

"미타무라 씨를 살해한 건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범행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다가 당신을 목격한 도모코 씨도 죽였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역시 그랬군요. ‘나가. 이 집에서 나가‘ 이 집에는 당신, 아니 그녀 자신까지 포함한 당신들의 범죄를 알아차린 누군가가 있다, 유리에 씨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서당신을 겁주려고 한 겁니다. 그러면 당신이 자신을 데리고 이곳을 떠날 줄로 알았겠죠."

‘본관‘에 깔린 칙칙한 진홍색 융단도, ‘별관‘에 깔린 융단과 커튼의 이끼색도 내게는 전부 ‘잿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저택을 둘러싼 녹색 산들도, 중앙정원에심긴 나무들도 빛이 바랜 ‘음울한 잿빛‘일 뿐이다. 어제 오전에 시마다가 찾아왔을 때에도 나는 녹색 잎이 무성한 나무들 때문에 언덕 아래 임도에 멈춘 빨간색 차를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 약손가락만이 진짜 마사키 신고의 일부였습니다. 그 손가락은 범인으로 지목된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마사키 신고의 반지를 빼기 위해 절단한 게 아니라, 소각로안의 시체를 마사키 신고로 위장하기 위해서 마사키 자신이 제 손으로 잘라서 남겨둔 것이었죠."

미타무라 씨는 알고 있었죠.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아주 드문 사례이기는 하나, 사고 당시 머리를 세게 부딪쳐서 당신은 정상적인 색각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아주 심각한 후천적인 색각이상, 그것도 적록색맹과 비슷하다고요. 마사키 씨, 틀린가요?"

왼손 손가락을 쥔 모습을 보고 오이시 씨는 반지를 빼려고 한 게 아닐까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반지가 아니라 반지를 낀 손가락을 가리켰던 겁니다. 왼손 약손가락을 말이죠. 그걸로 범인의 정체를 알리려고 했던 겁니다."

그때 내 왼손을 잡았던 미타무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어쩌면 내 왼손 약손가락이 없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녀의 진부한 줄다리기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저기, 저...... 샤워를" 하고 유리에는 부끄러운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 그래요."
미타무라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공주님."

"전기가 나갔을 때 제 부주의로 마사키 씨가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었잖아요. 그때였을 겁니다. 그때 옆에서 부축하다가 미타무라 씨는 마사키 씨의 왼손을 붙잡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테고요. 어떻습니까, 마사키 씨."

울컥해서 머리로 피가 몰렸다. 당초 계획은 미타무라가 ‘탑의 방‘에서 나와 ‘별관‘으로 되돌아갈 때 덮치는 것이었지만, 급격하게 부풀어 오른 살의는 실행을 미룰 시간을 단 1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당연하다.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 제 발로 힘차게 복도로 뛰쳐나왔으니까.
불쌍할 정도로 당황한 그녀는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뒤에서 달려들어 양손으로 목을 졸랐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그녀는 차갑게 식었다.

"뒷문 자물쇠를 끌러둔 건 범행을 외부 소행으로, 구체적으로는 작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위해서였겠죠? 어쩌면 머지않아 진상을 알게 될지도 모를 우리 모두를 몰살하고 모든 죄를 고진 씨한테 뒤집어씌우려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깜빡하고 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의혹과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범인이라는 선입관이 이 명쾌한 답을 흐려놓았습니다. 물론 그 후에 마사키 씨 자신과 유리에 씨가
‘목격‘한 고진 씨의 ‘살아 있는 모습‘ 또한 이 답을 가리는 절묘한 장막이었고요.

그날 밤, 마사키 씨는 5호실로 돌아간 후루카와 씨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벗기고 욕실로 옮겨서 미리 준비해둔 식칼과 손도끼로 시체를 여섯 토막으로 해체했죠. 토막들은 아마도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에 나눠 싸서 창밖으로 내던졌을 겁니다. 옷과 날붙이도 마찬가지 방법을 써서 밖으로 옮겼겠죠. 방에다 향을 피운 건 피냄새를 지우기 위해서였고요. 이렇게 후루카와 씨를 ‘탈출‘시킨 후, 라이터나 손전등으로 ‘탑의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범자에게 일을 끝냈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공범자?"
모리가 삐딱한 안경을 바로잡으면서 말했다.
"설마 유리에 씨......."

후루카와 쓰네히토는 ‘별관 2층에서 자취를 감춘 시점에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것도 토막 난 시체로 그 창문을 통해 밖으로 옮겨졌다. 이 기괴한 결론을 바탕으로 작년 일을 되짚어보면 사건의 실체가 명확하고 아주 깔끔한 ‘형태‘로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죠. 유리에 씨 말고 다른 공범자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신호가 바로 구라모토 씨가 자기 방 창문에서 우연히 목격한 그 수상한 빛이었습니다."

자, 곰곰이 따져봅시다. 그 창문으로 사람이 통과하기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사람‘이란?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 하나가 살아 있는 상태로 거길 빠져나가기는절대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죽어서 토막이 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공간에서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사라진 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그는 토막 난 시체라야 했다, 이겁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당신은 이미 인생에서 낙오한 데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에까지 손을 댄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 세상에서 말살하고 아름다운 유리에씨와 이 집, 이 집의 재산, 이 집에 소장된 후지누마 잇세이의 그림, 그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 바탕에는 당신의 인생을 파멸로 내몬 장본인, 후지누마 기이치에 대한 복수심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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