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아니 몇 시간 전에 후루카와 씨는 2층 방으로 올라갔죠. 잠시 후에 오이시 씨와 당신도 방으로 돌아가고 저와 모리 교수님은 여기 계속 남아서 체스를 뒀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일찌감치 일어섰겠지만 낮에 벌어진 사건 때문인지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이 쉬이 올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내 여기 이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후루카와 씨가 계단을 내려왔다면 몰랐을 리가 없죠."
"그런......."
마사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못 본 건 아니고요?"
"못 보다니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계단을 내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후루카와 쓰네히토를 부르러 2층으로 갔던 모리와 미타무라 두 사람만은 분명 이상함을 감지했으리라. 홀에서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은 그림 한 점이 사라진데 이어 사람 한 명이 방에 없다는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예. 쥐새끼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 한마디로 이번 소동의 결론이 확고해졌다. 즉.
후루카와 쓰네히토는 이 ‘저택‘ 2층에서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제 방이요?"
마사키가 소스라치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그를 숨겨주었다는 뜻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당신이 아까 홀에 내려온 틈을 타서 그 방으로 도망치지는 않았을까 해서......."
"아,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요."

"여러분이 조사한 시점에서 ‘별관 2층의 창문은 전부 안쪽 걸쇠가 걸려 있었습니다. 창문이 깨져 있지도 않았고요. 계단 아래에서는 모리 교수님과 미타무라 씨가 눈을 빛내고 있었죠. 그런데도 2층 5호실로 돌아갔을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옷장 속, 책상과 침대 밑, 천장 위...... 사람이 숨을만한 곳, 아니 없어진 그림 수색을 겸해서 사람이 숨지 못할 장소까지 꼼꼼히 살폈지만 역시 수상한 점은 없었어요. 이런 사실들로만 판단한다면 그는 ‘별관 2층에서그야말로 증발한 것이로군요."

"하지만 사람이 폐쇄된 공간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현상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믿는 이 세상의 규칙, 물리학적 법칙으로 보자면 말이죠.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저야 이리저리 머리는 굴려봤었죠. 당신 말을 빌려서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지 않고 그 불가해한 상황을 해석하려면 역시 무슨 트릭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그래요, 정론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가능한 트릭이란?"

하지만 이런 불가해한 문제에 직면하면,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상식과 신념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해석하려 드는 법이죠. 그러니까 요는, 여러분 각자가 어떤 해석을 내렸느냐는 겁니다. 일단 후지누마 씨부터."
"저도 마음은 미타무라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앞뒤 상황이 그렇다지만 우리 눈에 띄지 않고 계단을 내려왔다는 건 좀......."

"흔해빠진 비유입니다만, 사물을 해석하는 행위는 직소 퍼즐을 완성하는 것과 닮았어요. 다만 완성된 그림이 없고 퍼즐 조각이 전부 몇 개인지 모른다는 차이가 있죠. 퍼즐 조각이 평면이 아니라 3차원 입체이거나 때로는 4차원 5차원의 성질을 띠기도 하고요. 따라서 완성된 그림......이라기보다 ‘형태‘가 퍼즐을 맞추는 사람에 따라크게 달라지는 일이 많습니다.
제 말은, 작년에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경찰이 완성한 ‘형태‘는 어쩐지 틀린 것 같다, 이겁니다. 어딘지 부자연스러워요."

오후 10시 지나서. 구라모토, ‘북쪽 회랑‘에서 후루카와 목격.
오후 10시반이 되기 전. 후루카와, 2층으로.
오후 10시 반. 오이시, 방으로.
오후 10시 50분. 마사키, 방으로. 모리와 미타무라는 홀에 계속 머무름.
오전 1시 지나서. 구라모토, 수상한 빛을 목격. 유리에, 수상한 소리를 듣고 아래층으로. 뒷문이 열려 있고 그림이 사라짐.
오전 1시 50분. 후루카와, 2층 어디에도 없었음.
오후 10시 반. 오이시, 방으로.
오후 10시 50분. 마사키, 방으로. 모리와 미타무라는 홀에 계속 머무름.
오전 1시 지나서. 구라모토, 수상한 빛을 목격. 유리에, 수상한 소리를 듣고 아래층으로. 뒷문이 열려 있고 그림이 사라짐.
오전 1시 50분. 후루카와, 2층 어디에도 없었음.

"적어도 일곱 가지 버릇은 있다고들 하지요. 주위에서 알아채지 못하고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버릇‘을 가지고 있는 법입니다. 후지누마 씨는."
오후 9시. 후루카와, 그림을 보러 복도로.

"그런데 미타무라 씨는 그 결론을, 그러니까 두 분이 깜빡하고 보지 못했다는 결론을 인정하시나요?"
"인정하고 싶겠습니까."
외과 의사는 입술을 더 썰쭉댔다.
"하지만 뭐, 다른 가능성이 없다면 인정하는 수밖에요. 술도 좀 마신 상태였고 하니까."

마침 그때 창밖에서 번개가 번쩍였다. 하지만 시마다는 아랑곳없이 내 가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후지누마 씨, 뻔뻔한 부탁을 하나 더 하려고 하는데요. 문제의 밤에 고진 씨가 묵은 5호실을 지금 당장 보고 싶습니다."

저는 ‘버릇‘이 나쁘니 어쩌니 왈가왈부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갑자기 늘 하던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오이시 씨가 어느 날부터 콧등을 긁지않는다면? 더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그랬을 때 아마 주변 사람들은 어디가 달라졌는지 확실히는 몰라도 뭔가 이상하다고는 느끼겠죠. 뭔가 이상하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형태가 아닌데 하면서요. 한마디로 석연치 않은 거죠. 바로 그런 느낌이라는 겁니다."

"청옥부, 십각관, 그리고 수차관. 나카무라 세이지가 청옥부 사건으로 죽은 직후에 고진 씨가 휘말려든 사건. 그 무대가 또 세이지가 설계한 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정말이지 오싹했습니다."

"음, 진짜 그렇다면 흥미진진하겠군요. 인간이 증발하는 불가해한 상황까지 등장하는 본격 미스터리풍의 사건, 그런데 그 사건의 진범은 죽은 건축가의 악령이었다,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면 보통은 혀를 차겠지만 저라면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담배는 하루에 딱 한 대만 피우자고 굳게 다짐했거든요. 이건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한 전용 담배 케이스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이 건물, 바깥쪽 벽은 상당히 두껍습니다. 뭔가 있다면 이 벽일 가능성이 큰데."
하지만 벽에서도 수상한 점은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시마다는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우리를 돌아보았다.
"아아, 여러분. 지루하시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조금 더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그 사람은 묘한 인물이었습니다. 뛰어난 건축가였다는 건 확실한데, 뭐랄까, 평범한 집의 설계는 거부했다고 해야 할까. 그때그때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작업에만참여했다고 해요. 게다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에 반드시 장난스러운 비밀 장치를 설치했는데, 그게 도리어 이곳저곳의 호사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죠."
"그래서 이 수차관에도 그런 장치가 있을지 모른다. 이 말이로군요."

"시마다 씨는 이 방 어딘가에 비밀 통로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겁니다."
"비밀 통로요?"
외과 의사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더니 반지를 비틀었다. 마찬가지 반응을 모리와 오이시의 얼굴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표정이 바뀌지 않은 사람은 구라모토뿐이었다.

"지금 번개는 상당히 먼 곳에서 쳤습니다. 건물에 직접 떨어진 게 아니에요. 이 집은 수차로 발전을 하니까......."
"아아, 그랬죠. 그렇다면 번개와는 상관없이 발전기가 고장 난 걸까요?"
"바로 보고 오겠습니다."
구라모토가 말했다.

그럴 듯한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기는 했지만, 요컨대 그는 이 방에 ‘비밀 통로‘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별난 건축가가 설계한 기묘한 저택.
그 저택 안에서 발생한 도저히 불가능한 인간 증발극.

"융단 가장자리가 젖혀져 있어서 그만......."
"어두우니 어쩔 수 없죠."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미타무라가 물었다. 흐트러진 가운 앞섶을 여미며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한 나는, 그때 희미한 촛불에 비친 외과 의사의 얼굴을 보고 문득 불길한 예감으로 가슴이두근거렸다.

"저희 절에 오래된 자가 발전기가 있거든요. 좀 만지작거려본 정도이긴 한데,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앗!"
갑작스레 터져 나온 짤막한 비명과 함께 휠체어가 휘청, 하고 기울었다. 시마다의 발이 뭔가에 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틈도 없이 깨진 균형과 한쪽으로 쏠리는 관성 때문에 내 몸은 바닥으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거실로 돌아와 불을 켰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짐승 같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지?)너무 놀라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이건......)들어와서 오른쪽에 있는 문, 서재로 이어지는 그 문이 열려 있었다. 요 1년 동안 결코 열리지 않았던 암갈색 문.
(......어떻게 된 거지?)2026.07.05 오전 0시 49분63%산봉우리 중 하나는 나를 엄청난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곳에는 아주 불길한 광기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도망치려면 좋든 싫든 또 다른 산봉우리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맙소사)그건 그렇고 도대체 어째서?
나는 암담한 기분으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암흑을 노려보았다.

들어오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곳에 작고 검은 열쇠가 떨어져 있었다. 주워서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것이 거실에서 서재로 통하는 이 문의 열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냉정해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복도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문은 내내 잠가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기회만 있으면 누구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누군가 숨어든 것일까.

손님들에게 편히 쉬라는 인사를 남긴 후 유리에는 ‘탑‘의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 미타무라 노리유키가 던진 시선이 못내 마음에 걸려 견딜 수가 없었다. 유리에의 가녀린 몸에 들러붙은 찐득한 시선.......
오늘 밤 자정 넘어서, 라고 그는 말했다.

"여러분,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경찰에 신고는 하겠지만 길이 복구될 때까지는 기다려야겠죠. 그렇다고 밖으로 무작정 찾아나서는 것도 무모한짓입니다."

"그러니까 댁들이 깜빡하고 못 본 거라니까요."
"우리는 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계단은 바로 저기입니다. 절대로 못 봤을 리가 없어요."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는 거요?"
"그렇다면 오이시 씨."
기이치는 중앙정원과 마주한 유리문을 쳐다보았다.
"저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어서 직접 찾아보겠습니까?"
"그, 그야........"

"예, 쫓아가볼게요. 후지누마 씨, 다른 사람들한테는 알리지 마세요. 괜히 시끄러워지기만 할 테니까."
"하지만 마사키......."
"괜찮습니다."
마사키는 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고 다시 한 번 이쪽을 돌아보더니 굳건한 표정으로 기이치에게 말했다.
"이건 제 속죄입니다. 방으로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유리에 씨도."

"으윽!"
갑자기 뒤에서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구라모토는 무릎을 꿇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뒤통수가 깨질 듯이 아팠다.
"누, 누구......."
혀끝을 깨무는 바람에 피가 배어나왔다. 비릿한 쇳내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목 아래에 충격이 왔다.
구라모토는 정신을 잃고 융단에 얼굴을 풀썩 묻었다.

(진짜 묘한 하루야)그 순간 몹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주인의 명령대로 잠그지 않고 내버려둔 뒷문이.
주인은 마사키에게 맡겨두라고 했다. 그 말에 따르는 것이 구라모토의 일이자 의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사키를 혼자 폭풍우 속에 내버려두다니.......

조심스럽게 발을 끌면서 어둠을 뚫고 그쪽으로 향했다. 그때 구라모토는 문 앞쪽 융단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두운 진홍색 융단에 거무스름한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물이었다.
(발자국이군)바로 알 수 있었다.

그때 기이치가 뒷문은 잠그지 말라고 일렀다. 이유를 묻자 마사키 신고가 후루카와를 쫓아 저택 밖으로 나갔다고 했다.

......끼익.
......끼이익, 끽.......
눈을 뜨고 의식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소리는 금세 사라지고 더는 들리지 않았다.
(꿈이었나)

융단의 얼룩은 거의 같은 간격으로 이어졌고 갈수록 옅어졌다. 역시 비에 젖은 신발 자국인 듯했다. 얼룩을 따라가는데.
(어?)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문 하나가 들어왔다.
바로 앞 왼쪽의 검은 문.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작은 방의 문. 그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본관‘ 식당 앞에 모인 사람들은 문제의 계단실로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집사가 켜두었다는 불은 꺼져 있었고, 분명히 목격했다는 후지누마 잇세이의 ‘분수‘ 역시눈에 띄지 않았다.
폭풍우의 밤은 서서히 새벽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은 잔혹하고 악마적인 마지막 모습을 준비하고 계단 아래 암흑 속에서 사람들을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맞습니다. 진짜로 연기가 납니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지만 굴뚝 꼭대기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똑똑히 보였다. 연기는 바람에 흩어지고 비에 스러지면서도 동트기 직전의 검푸른 하늘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저 광경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지금 지하실 소각로에서 뭔가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유리에의 비명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녀가 이렇게나 크게, 그리고 길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바로 앞에서 나를 보고도 그녀는 여전히 얼이 나간 사람처럼 눈물 맺힌 커다란 눈을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젖은 긴 머리칼이 뺨과 목덜미에 들러붙어 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살짝 벌어졌다가 그대로 멈췄다.

모리 교수가 큰 소리로 물으며 계단으로 향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 우리 사이로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계단을 오르던 모리도 도중에 발을 멈추고 되돌아올 목소리를 기다렸다.
이윽고 계단 위에 시마다의 후리후리한 모습이 나타났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는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타무라 씨가 죽었습니다."

"미타무라 씨가 안 보입니다."
‘......사실입니까?"
"예. 대답이 없어서 방에 들어가 봤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은 안 잠겨 있었고요. 1층 화장실과 욕실도 들여다봤는데, 거기에도 없었어요. 경찰에 신고는 하셨나요?"

미타무라 노리유키의 시신은 ‘탑의 방‘ 한가운데 놓인 그랜드 피아노 앞에 있었다. 짙은 반물색 슬랙스에 캐러멜 빛 긴팔 셔츠를 입은 그는 이쪽을 등지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상반신을 구부려 건반 뚜껑에 얼굴을 묻은 채로. 시마다가 말한 대로 그 몸은 이제 제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물체로 변해 있었다.

시마다의 얼굴에서 눈에 띄게 핏기가 가셨고 목소리도 상당히 떨렸다. ‘탐정‘인 양 행동하기는 했어도 살해 현장의 시체를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인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오이시가 탁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역시 그 정신 나간 땡중이 또 살인을......."
"오이시 씨, 잠깐만요. 좀 진정하세요."
시마다가 냉정하게 주의를 주었다.

"자기 의지?"
시마다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다잉 메시지 같은 거죠."
"다잉 메시지?"
오이시가 짧은 목을 기울였다. 모리의 반응도 같았다. 나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그 자세의 의미를 거듭 생각하면서 중얼거렸다.

"미타무라 씨가 어째서 당신 방에 왔을까요?"
"몰라요."
유리에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매끄러운 볼이 약간 상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이야)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넌 오늘 밤에 그가 찾아오리란 걸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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