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어를 처음 접했던 시기,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친구들에게 “사요나라~사요나라”를
연신 외치며 인사로 대신했던 적이 있다. ‘사요나라=안녕’이라고만 적혀 있는 글을 보고

단순히 우리가 만나거나 헤어질 때 하는 ‘안녕’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사요나라’를 입에 올릴 때 반가움 보다는 슬픔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후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였다. 어느 일본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상대방을 향해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슬프게 미소 지으며 ‘사요나라’를 조용히 읊조리던 장면.
그 장면을 보고서야 알았다. 사요나라가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단어임을.

사요나라..사요나라..그 제목에서 이미 슬픔을 한 가득 담은 요시다 슈이치의 책.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처음 접한 책은 기억하기로는 ‘랜드마크’였다. 읽으면서 뭔가
시사하는 바는 있는 듯했지만 재미는 너무 없었다. 단순히 재미없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너무 심심한 책이었다. 오래전에 읽었고, 집중해서 읽지 않았기에 정확한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지금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희미한 기억으론 그랬다. 그래서 그 이후에 요시다 슈이치의 책은 피해 읽었었다. 영화로는 잔잔한 일본 영화가 참 따스한 감이 있어 좋은데, 책으로는 그리 시선이 오래 붙잡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악인’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워낙 평이 좋았고 유명한 책이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예상 외였다. 내 기억속의 요시다 슈이치의 책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강렬했던 책. 그래서 단숨에 읽었고, 읽은 후에도 왠지 모를 두근 거림이 멈추지 않았던 책. 그래서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은 상처를 받았던 사람, 그리고 상처를 주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학생 시절 동료들과 우발적으로 집단 강간을 하게 된 남자와 그로 인해 인상이 망가져버린 여자. 그리고 그들 주변에 살았던 한 존속살해범. 마지막으로 그들 곁을 맴돌며 사냥을 하듯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

 작가는 어느 쪽도 크게 다루지 않고, 어느 쪽에도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냥 보여주듯이 그 당시의 장면을, 그리고 지금의 그들에 대해서 풀어놓는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삶을.
남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사실 ‘사요나라’의 진정한 의미를 처음 알게 된 장면이 떠올라서 그런지 제목을 보고는
가슴 시릴 만큼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를 예상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장애물 앞에서
어찌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혹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울부짖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그런데 시작부터가 살인이라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또한 어딜 봐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애절함 따위는 볼 수 없었다. 대신 어쩜 이럴 수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꼬여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꽉 채워져 있었다.
그 지독한 관계가 절정에 이르러서는 숨이 탁 막히는 듯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에 앞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불행해졌다고. 그러니 이제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그 시작은 누구보다 빛나고 누구보다 행복했을 사람들이. 

 그렇다면 서로의 불행을 위해 함께 하던 사람들이라면?
오로지 상대의 불행을 보기 위해 곁에 머물었던 사람이었다면?
그리하여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가 결국엔 자신이 그의 불행으로 인해 행복해지지 않음을 알고 그 곁을 떠났다면?
마지막에 그 여자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팠다.
또한 그녀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를 알고 있을 남자를 생각하면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바로 앞에 이 책이 사랑이야기 아니었기에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어찌보면 이것이 진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사랑보다 더 지독한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
지독함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지독함에 가슴이 진저리치게 아팠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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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선조실록 -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그 10권, 선조편

선조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적자가 아닌 서손이 왕위를 이은 경우였다. 왕위에 오른 자가 장자가 아닌 경우에는 끊임없이 정통성을 놓고 말들이 참 많았던 시대였다. 그 많은 말들로 인해 때로는 엉뚱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까지 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선조의 경우 정통성 논란은 없었던 듯하다. 아주 없기는 않았겠지만 기록으로 남겨질 만큼은 아니었나보다. 원인은 신하들에게 있었다.

권력이 한 편으로 완전히 쏠려 있어서 훈구와 사림 간에 죽고 죽이는 치열한 싸움이
몇 차례 있고 나서 드디어 사림들이 정치를 휘어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훈구와 사림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던 중에는 똘똘 뭉쳤었던 사림, 그러나 훈구가 물러가자 보란 듯이 동, 서로 나뉘어서 또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떤 논리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당신이 YES 라면 나는 무조건 NO'를 외치는 듯 한 싸움이었다.
나라가 바람 앞에 등불이 된 상황에서조차 상대방의 주장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신의 위기 앞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낮추고, 도망을 치는 사람들.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선조 재위 기간 동안엔 너무나도 유명한 임진왜란이 일어났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이 불탔고(그 중엔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에 대한 원망으로 백성들이 불을 지른 경우도 있었다.), 역대 실록을 포함해서 많은 귀중 사서들을 보관하던 사고도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엄청난 문화재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가난하고, 힘없던 백성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하여 신분제의 변동까지 초래했던,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 왕과 신하들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또 다시 불끈, 화가 치밀었다.
신하들은 파천을 하고자하는 왕을 말리는 한 편, 자신들의 가족들은 바로 피신을 시켰다. 장수들은 적들이 보이자 무기와 모든 식량을 버려두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보고하기로
자신들은 싸우고 싶었으나 모든 병사들이 도망을 갔기에 어쩔 수 없다라고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었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바로 이순신 장군님.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로 더욱더 유명하신 이순신 장군님.
그 분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분을 따르는 많은 장수와 병사들이 있었기에 일본을 무찌를 수 있었다. 애초에 자신들의 수군이 최고라고 여겼던 일본군이 조선의 수군은 생각지도 않고 육군이 일단 진군한 후에 수군이 바닷길을 통해 식량을 공급해주는 계획을 세웠던 것인데, 그 바닷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너무나도 얕봤던 조선의 수군에 의해서.
역사 수업 시간에 듣기로 이순신 장군님의 죽음엔 여전히 의문이 많다고 한다.
과연 그 싸움에 돌아가셨는지도 의문이고, 돌아가셨다면 그 죽음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었냐는 의견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싸움에서 이겨,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 이순신 장군님의 목숨이 어쩌면 신하들에 의해서, 어쩌면 왕에 의해 위험해졌을 수도 있기 때문에.. 

책 속에서도 선조가 어쩌면 이순신 장군님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을 간 왕과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결국엔 적군을 몰아내준 장군. 자신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그 모습, 그리고 장군에게 향하는 백성들의 환호성.
백성위에 군림하는 왕이라지만, 민심이 떠난 후에는 존재 할 수 없었던 것이 또한 왕이었다. 그러니 선조에게 이순신 장군님은 비록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었지만 절대 반가운 사람은 아니었으리라.

 지금까지 읽어오면서 왕과 신하들의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들 때문에 어이가 없었던 적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선조의 경우엔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읽으면서 내내 분노를 했었더랬다. 뭐 이런 사람이 왕을 다 했느냐고. 이렇게 엉망으로 할 거면 왜 어렸을 적에 잠깐의 총명함을 보여 왕위에 올랐느냐고. 할 수만 있다면 손가락 좀 눈 앞에 휙휙 휘두르면서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짜증나고, 또 화가 났던 10권. 다음 권은 좀 편안하려나 하는데...이런..11권은 광해군이다.
임진왜란 때 나약했던 다른 왕자들에 비해서 스스로 군사를 조직해 적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했다고 알고 있는 광해군.
그러나 그 마지막이 좋지 않았던 만큼, 역시나 편안한 독서는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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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 인종.명종실록-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종,명종실록 
만화로 조선왕조실록을 보다 쉽게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그 9권은 조선의 12, 13대 임금이었던 인종과 명종의 순서이다.

먼저, 인종.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고 외롭게 자란 임금. 세자가 되어서도 아비인 중종에겐 복성군이란 장성한 서장자가 있었고 새로 중전이 된 문정왕후 또한 있었기에 늘 입지가 불안 불안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왕비에 책봉 된지 17년 만에 문정왕후가 아들을 낳았다.
야심이가득했던 문정왕후와 그의 외척으로 인해 인종의 주변엔 늘 의문의 사고가 일어났고 그 결정판은 동궁 화제사건이었다. 야사에선 문정왕후 쪽의 소행으로 단정 지은 사건으로 세자도 그리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죽으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을 다급하게 찾는 부왕의 목소리를 듣고 불이 난 궁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짓일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세자 인종은 효심이 깊었던 인물이다. 그 깊은 효심은 임금의 지위에 오른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결국, 그것이 화를 불렀다. 인종 즉위 후에 신하들이 가장 역점을 두었던 일은 ‘임금에게 제대로 된 밥 먹이기’였다고 한다. 부왕이 죽기 전 며칠 밤을 간호하고, 사후엔 유교식 예법에 따라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했다 한다. 그러나 중종 사후에도 두어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미음만 들며 식사를 하지 않았고 결국엔 허약한 몸에 병이 생겼고, 급속히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에 이른다. 향년 31세, 재위 기간은 9개월도 채 못되었다.

 국사 시간엔 세운 업적도 없었고, 재위 기간에 이렇다 할 큰 사건도 없었기에 이름조차 언급이 없었던 왕으로 기억되는 인종. 그렇기 때문에 책으로 만나 본 인종이란 인물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또한 아무리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이 지극했다고는 하지만 책임감이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백성들에게 있어 그 당시의 왕은 지아비요, 하늘과 같았던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니 안타까움이 절로 들었다. 병세가 악화되자 신하들이 건넸던 약들 또한 극구 거부했다고 하니 작가도 언급했다시피 어쩌면 인종 스스로가 삶에 대한 의지나 미련이 별로 없었던 것은 아닐까. 
 기록되어 있기로 인품이 상당히 훌륭하셨던 분이라던데 그러하신 분께서 몸을 좀 더 돌보셔서 나라를 잘 운영하셨다면 바로 다음 임금 대에 불었던 피바람을 잠재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명종.
12대 임금께서 몸 관리를 좀 하셨다면 왕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임금.
그러나 선대 왕의 재위 기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즉위 할 때 명종의 나이는 12세.
친정이 불가능한 나이였다. 하여 저절로 그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는 명종이 20살이 되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재위 기간은 22년, 그러나 그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기간 동안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사림들이 화를 입은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을사사화, 그 출처가 의심스러운 양재역 벽서 사건,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 윤원형과 정난정. 참으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진 시기였다.

여인의 몸으로 조선을 경영했었던 문정왕후.
그러나 그녀에 대한 평판은 혹독하다. 남자들이 주도했던 시기에 여인의 몸으로 최고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권력을 휘두름에 있어 거침이 없었던 것이 화근이 아니었을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지금까지도 어르신들이 기가 센 여자들에게 으레 던지시는
말이다. 하물며 양반네들이 모든 일을 주도해야 했던 시기라면? 게다가 유교가 나라의
근본이었던 시기에 불교를 중흥코자 했던 여인이었다. 그러니 혹독한 평판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인종과 명종.
두 분 모두 너무나도 낯선 임금이었다. 그래서 책을 볼 때 전혀 몰랐던 내용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군다나 만화로. 역시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다음 권에선 선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께를 보니 꽤 무게감이 느껴지던데.. 또 어떤 이야기들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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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2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
조완선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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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의 리턴 매치 - 사라진 고서를 찾아라.
책의 뒤표지에도 나와 있는 문장. 저 문장이 이 책 두 권의  내용을 간단하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외규장각도서의 비밀’은 한국과 프랑스가 벌이는 일종의 외교
전쟁에 관한 내용이다. 더불어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독일도 어둠의 루트를 통해서
개입하고 있고. 또한 이 책은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나온다는 점에서는 추리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건은 프랑스 리슐리외 도서관의 관장인 세자르가 살해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문화와
지성을 중시하는 나라 프랑스에서 지성인의 갑작스런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남긴 의문들로 인해 사건은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질주로 인해 또 다른 죽음이 이어진다.

로렌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학자 정현선은 세자르와 각별한 사이였고, 그의 죽음에 한국의 고서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그녀에 의해 세계 최고(古) 금속 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의 존재가 확인된 상태였고, 한국과 프랑스는 직지의 반환에 관한 협상을 진행 중인 상태였다. 그렇다면 대체 세자르가 발견한, 그리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한국의 고서란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를 다루고 있는 소설책은 많다. 더불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의 한 부분을
소설의 소재로 쓰면서 살인 사건을 곁들어 극의 긴장감과 재미를 더한 책 또한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이렇게 많은 조사를 통해서 쓰여 진 책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물론 작가분들이 글을 쓰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한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분들의 책을 보면서 정말 엄청 고생하셨겠구나, 대단하다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보면서 참 놀랐고, 감탄했다.  

 책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외교와 살인 사건이라는 두 권의 책에 담기엔 참 많은 내용을 다루었다.
그렇지만 그 많은 내용들이 마치 하나의 퍼즐처럼 어긋남이 없이 앞뒤가 착착 들어맞는다.  

그렇기에 책을 보는 내내 뒤의 내용이 궁금했고, 그 결말이 공개되는 부분에서는 절로 무릎을 치게 되었다. 

 두 권의 두꺼운 책을 보고나서 머리 속에 계속해서 잔상으로 남는 부분이 있었다.
클라쎄라는 신부가 자신의 허물이 벗겨지자 변명처럼 했던 말. 

 “당신들은 그 책을 한국의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내 생각은 달라. 원래 문화재란 태어난 곳에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주는 곳에 있어야 하지. 그래야 문화재의 수명도 길어지고 가치도 더욱 빛나지 않겠나. 로렌, 잘 생각해보게. 국가가 관리를 잘못해서 잃어버린 인류의 유산이 얼마나 많나?" 

치졸한 변명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뼈가 있는 그의 말로 인해 잠시 씁쓸함을 느꼈다.
얼마 전 한 사람의 분풀이로 인해 어이없게 불타 없어져야 했던 국보 1호 숭례문.
국보 1호라고는 하지만 평상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숭례문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면서 참담함을 느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았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과연 클라쎄 신부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그 나라의 문화 유산은 그 나라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그 참담함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꼈던 경험이 있으니까.

그로 인해 더욱더 그 소중함을 알고 지켜나가려는 마음가짐이 단단해졌으니까.
아이가 실수로 먹던 사탕을 떨어뜨렸다고 해서 아이에게서 사탕을 아예 뺏어 버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더욱이 그 사탕이 본디 그 아이의 것이었다면 더욱더.
물론 문화재와 사탕 사이의 거리는 측정 불가능이겠지만. 

 책의 소개 글을 보니 이 책이 “교양문화 추리 소설”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과연,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또한 그 새로운 패러다임이 붐을 일으키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작가분이 이런 책을 쓰고자 하신다면 많은 고생을 하시겠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역사와 추리라는 소재를 다루는 소설은 정말 양면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허구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책 속의 내용이 진실이기를 바라거나,
혹은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그 양면 중에 하나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현실은 소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느끼는 씁쓸함이다.  
즐거움과 씁쓸함, 이 둘을 동시에 느껴왔고 느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역사와 추리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다.

조완선이라는 분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이지만 매우 강렬함을 남겨주신 분, 당연히 이 분의 다음 책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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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으스스함이 절로 느껴지는 포스 있는 표지. 
딱 그표지만 보고도 작가의 이름이 생각나는 책. 
다름아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이다. 
작가가 직접 집필을 하던 시기에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친근한 존재였겠지만
우리에겐 그보단 그의 손자인 김전일이 더욱더 친근한 사람. 
손자의 추리력에 불을 붙이는 그의 활약상이 담겨 있는 추리 소설. 
김전일을 안다면, 혹은 그의 할아버지를 안다면, 어찌 그 즐거움을 거부할 수 있을까?

 '밤산책'은  긴다이치 코스케가 활약하는 일곱 번째 책이다. 
얼굴은 어둠에 가린채 붉은 입술은 기분 나쁘도록 웃고 있는 여인. 
그리고 그여인을 휘감고 있는 무서운 뱀의 형상. 
표지에서부터 그 내용의 강렬함과 위험함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삼류 추리 소설가 야시로는 자신의 후견자이자, 동창인 나오키의 부탁으로 그의 집으로 가게 된다. 나오키의 집은 일대에서 유명한 후루가미 일족의 집이었다. 
오래된 역사 속에 음침함이 숨겨져있던 그곳. 발을 들여놓음과 동시에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게 된 야시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가 집을 방문함과 동시에 사건은 시작된다. 
사건의 시작은 후루가미 가의 외동딸 야치로의 약혼자였던 꼽추화가 하치야의 사망이었다. 
단순히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라 목이 없는 채로 발견된 하치야. 더불어 같은 시기 모습을 감춘 야치로의 오빠 모리에. 사건의 기이함과 잔혹함에 놀란 후루가미 일족은 잠시 거처를 옮기지만, 악마의 주문이라도 받은 듯한 범인은 그들을 쫒아와 더욱더 잔인한 모습을 드러낸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들에 의한 투표 결과, 밤산책은 2위를 차지한 책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책의 소개글에도 당당하게 2위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 1위도 아니고 2위임을 이렇게 당당하게 소개글을 실은 걸까하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2위라고해서 절대 우습게 보지 말라고. 

  또한 늘 사건의 초기에 등장해서 마무리까지 화려하게 활동하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모습을 상상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서 그가 보여주는 적은 활동에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추리 소설가 야시로의 시각에서 시작해서 야시로의 시각으로 끝을 맺는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도 한 참 후에야 등장하고 등장해서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날카로운 추리감까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누구보다 뛰어난 추리감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적은 분량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책의 시작에 짧게 언급한 것처럼 책이 나온 시기가 오래 전이다 보니 다소 식상한 소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소재들이 몇 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아도 전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한다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더하는 것이다. 이것이 요코미조 세이시의 책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표지를 보고 누구의 책임을 바로 짐작했고, 그렇기에 망설임없이 읽었던 책이었다. 
한 밤중에 읽기엔 조금 무서운감이 있기 하지만, 역시 추리 소설 부분에선 세월을 역행한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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