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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의 역사 ㅣ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3월
평점 :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쥐구멍을 찾는 심정으로 말하자면,
내가 태어난 시기는 1980년대 중반,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운행되는 아주 한적하고 조그마한 시골이었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나라가 어찌 돌아가는가에 대한 것보다 올 한 해 혹은 어느 한가지의 작물 농사에 더욱더 관심을 갖곤 했었다.(순전히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조금 정치란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갈 즈음에 갖게 된 기억 하나, 그것은 선거 포스터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노태우씨가 나왔던 선거같다. 커다란 벽에 여러 장의 사진이 크게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해보여 포스터들을 쭈욱 보고 있었다. 그때 어떤 어른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포스터를 건드리면 큰일이 나니 곁에서 떨어지라는 것이었다. 포스터를 훼손할 경우 감옥에도 갈 수 있다하여 몹시 놀라며 도망갔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내가 정치라는 것과 처음 마주선 기억이었다.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라..다칠수도 있느니라..
그러나 이후에 정치라는 것에 대해서 혹은 정치라는 것으로 인해 어떤 위협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내가 성장할 즈음엔 이미 민주주의라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것은 비밀, 보통, 직접, 평등의 4원칙이 지켜지는 것이며, 광주 사태 또한 처음부터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배웠다. 때문에 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주어지게 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당연히 주어진 걸로만 알았던 민주주의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이뤄낸것으로 내가 그저 당연하게만 여겨선 안되는 것이었다.
역사를 교과목으로 공부 할 때는 뭐가 그리 복잡하고, 뭐가 그리 나오는 인물들이 많으냐며 투덜대기 일쑤였다. 그 앞 뒤의 관계를 파악하고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저 사건이 일어난 연도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기 급급했던 시절. 역사라는 것은 그렇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시험기간 직전에만 열심히 외워되던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역사 관련 책들을 읽어가면서, 특히나 현대사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진짜 못난 행동을 하고, 못난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귀찮고, 복잡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하면서..
한홍구씨의 현대사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읽기 전에는 빽빽한 글씨들이 가득하여 쉽지 않은 독서가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참...재미를 떠나서 손에서 책을 쉽사리 놓을 수 없음을 느꼈다.
순간 순간 분노하고, 그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죄스러웠다.
내가 이런 것을..
이렇게 힘들게 주어진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도 모자라 귀찮아 했구나..
책은 강의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라 그런지 마치 강의하듯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더욱 내용에 집중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기회가 된다면 한홍구씨의 강의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 이분이 쓰신 다른 현대사관련 책들 또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