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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떠올리면 누군가가 나를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 함께 떠오른다. 신경숙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이, 글들이 나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는 듯도 하고. 그러한 면에서는 신경숙 작가분과 공지영, 노희경이라는 이름이 곧 같았다. 한 번도 마주보지 않았었지만 수 많은 글들로 수 많은 사람들을 다독거려주고, 토닥거려주는 사람들. 그렇기에 이 분들의 책을 집어들 때면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이 책의 바로 전에 나왔던 '엄마를 부탁해'. 읽는 내내 책속의 주인공이 곧 나 같아서 몰려드는 죄책감으로 참 많이 울었었다. 읽은 직후에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볼수 없음 만큼 참 많은 반성을 하게 한 책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때, 어느 덧 나는 또 다시 엄마가 하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엄마의 말에 싫은 표정을 아무렇지 않게 지어보이는 못난 딸이 되었다.
이 책을 보게 된 이유 중에는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버린 나에게 정신 좀 차리자는 반성을 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다. 비록 오랜 시간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전작과는 조금 달랐다. 전작이 원래는 '여자'였던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 번엔 '청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곧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점에선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책 속엔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정윤, 이명서, 윤미루, 단이. 이 네 사람의 이야기이다.
윤과 단이 명서와 미루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함께 있을 때 서로가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은 시간이 흐름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음으로 인해 점차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인해 상처 받게 된다.
이 네 사람이 살아가던 시기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보단 시위를 하는 날이 더 많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다 시체로 발견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였다. 평화롭던 삶을 살아가던 이 네 사람 또한 그 시기에 쫓기게 된다.
이야기는 이 네 사람을 잇는 다리와 같았던 윤교수의 병환으로 시작된다. 팔년만에 걸려온 전화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듯 하여 솔직히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그 당황스러움이 생각보다 오래갔기에 살짝은 의심이 들었고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섣부른 걱정도 했었다. 그렇지만 역시나 '섣부른' 걱정이었다.
이야기는 서서히 진행된다. 마치 본론으로 들어가기전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것 처럼.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이야기는 극으로 치닫는다. 미루의 손 이야기가 그랬고, 단이의 이야기가 그랬다.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상대방이 지쳤음을 알고 잠시 숨을 고르던 차에 상대 선수에게 한 방을 얻어먹고 뻗어버린 링 위의 선수가 된 기분이랄까. 특히 단이의 일이 마음 아팠다. 윤이가 유일한 탈출구였다던 단이. 내심 그 아이가 행복해졌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먹먹한 마음으로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분이 또 한번 가슴을 쿡 찌르는 말을 했다. 90년대 이후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청소년기의 사랑의 열병과 성장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며 뭔가 아쉬움을 느꼈다고..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다고..왜 그 글을 읽는데 죄스러운 생각이 드는 걸까.. 알게 모르게 한국어로 쓰여진 우리 소설을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너무 잔잔하고 식상한건 싫다며 좀 더 자극적인 걸 찾았기 때문이다.
만약 전할 수 있다면 전하고 싶다. 이 책, 우리 네 명의 청춘들이 보여준 이야기는 충분히 아름답고 품격있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가슴이 너무 아팠다. 다음번엔 조금만 덜 가슴 아프고, 아주 많이 행복한 우리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