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싶은 그대에게 - 이대흠 시인의 ‘직유’로 시 쓰기 특강 지식벽돌
이대흠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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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교육에 대해 재밌게 읽은 책 3권


가독성 좋고 빨리 읽히고 시사성 있고 표현도 흥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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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가 1862년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2달 반 동안  여행하고 자기가 편집장으로 있는 월간지 브레미야에 게재한 짧은 여행에세이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노트" 읽었다. 숏츠 같이 짧은 단편이다.


영어 번역본은 세련된 에세이인데 러시아어는 말 추임새를 그대로 활용해 말 더듬는 구어체 느낌도 다 표현되어 있어 유투브 강연이나 만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왜 우리는 유럽을 이렇게까지 사랑하고 그럼에도 끝내 유럽이 되지 못하는건가?


19세기의 유럽을 정치사회적으로 분석할 점도 많지만, 그런 어려운 이슈보다 오히려 여행자가 한 곳에 정착해서 모든 것을 볼 수 없는 휘발성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주 여행해야 한 곳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확실한가? 그리고 다 적어낼 수 있을까? 또한 한 사람의 사회문화적 위치와 감정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대상을 서술할 수 있을까?


그저 도스토예프스키가 150년 전에 쓴 이 에세이을 통해 절절히 느낀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여행의 진실은 대상이 아니라 관찰자의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여행기는 있는 그대로의 묘사가 아니라 관찰된 시각, 관찰자가 위치한 공간에서, 관찰자의 심리상태에 따라 관찰자가 지각한 것을 정박시키는 것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여행기는 매 년 재발명, 재각성되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반복해서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너무 많이 움직였고 너무 빨리 봤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상 자체가 신뢰할 수 없다고 쓴다. 그렇게 주절대던 그는 여행의 의미를 기록의 사실성이 아니라 자기 노출로 바꾼다. 여행유투버의 철학적 효시라고 할 만하다.


틀릴 것을 알면서도 쓴다. 이미 틀릴 수밖에 없는 조건을 공개한다. 유럽을 본 것이 아니라, 몸 상태와 자기 기분과 궃은 날씨와 문화적 자존심과 국적에서 비롯된 불편한 감정이 섞여 오해했다고 자신의 상태를 폭로한다. 흥미롭다. 베를린을 싫어한 이유는 간 질환과 피로 때문이었다. 드레스덴 여성을 혐오한 이유는 자신의 황달 증세 때문이었다. 쾰른 대성당을 얕잡아본 건 다리 통행세에 긁힌 러시아적 자존심이 연유다. 진보된 기술로 건설된 근대적 다리에서 패배한 제국의 부끄러움과 기술 문명 앞에서의 굴욕, 러시아의 지연된 근대화에 대한 아쉬움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권(특히 프랑스)를 비판하는 대목은 되려 열등감의 표출 같고 숭배하는 대목은 자기혐오의 세련되었으나 숨겨진 형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15년 전에 만난 벨린스키와 차아다예프를 언급하면서 러시아적인 분노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



도시 풍광과 정경 묘사보다 1인칭 관찰자로서 자신의 상태(간질환, 혀의 색, 피로감,기분)와 의식의 흐름이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여행기가 아니라 컨디션 로그라고 해야할 듯하다. 주관적인 윤리에 의해 쓰여진 관찰자적 생리, 정념의 표출이라고 표현해야할 성 싶다. 


그런 의미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한 유럽은 장소가 아니라 러시아의 거울상이다. 유럽을 보러 갔지만 결국 러시아만 보았다. 한국인도 인천공항으로 숱하게 외국으로 나가지만 한국만 보고 오는 것처럼 말이다.  외국에 나가 거울만 보다온다. 거울 앞에서 치장하고, 스마트폰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디지털 거울에 물어본다. 내가 이쁜 거 맞냐고.


아울러 그가 런던에서 세인트폴 대성당을 안 보았다고 하는 말은 수사로 끝날 말은 아니다. 사실 500야드 밖에서 본 듯하기도하고, 라고 중얼대며 말을 이어나갔을 때는 육안으로 봤다는 사실관계보다는 보고 싶지만 보지 않았다, 생트뻬쪠르부르그성당과 Saint Paul을 공유하지만 비교되어서 안 봤다, 라는 말일 것이다.


이런 서술은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명론의 개략이나 오에 겐자부로의 체험형 에세이와도 비슷한 문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나는 어쩔 수 없이 때때로 거짓을 말하게 된다"라고 말할 때는 부주의한 관찰자, 불성실한 기록자라고 체념하거나 겸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여행자는 보아도 본 것이 아니고 본 것은 왜곡되며 그 왜곡을 자각하는 순간조차 또 왜곡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드러낸다.


신체 상태가 심리로, 감각적 병리가 일반 감정화되는 서술의 방식이 흥미롭다. 예컨대 베를린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그는 신맛의 느낌(sour impression, кислое) 즉 속 쓰려서 위장이 안좋은 기분나쁜 기분을 주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유를 attack of liver로 번역된 страдающий печенью(간을 앓고 있는)로 끌고 간다.


즉 그의 미적 판단은 장기 상태의 부산물이었다. 이런 자신의 감각과 연관된 병리상태는 желтый, усталый, изломанный(황달, 피로, 부서진듯한, yellow, tired, and exhausted)로 이어지며 신맛-간질환-황달-피로-부서지고 기능을 잃은 육체로까지 연결된다.

영어는 다음 링크에

https://almabooks.com/wp-content/uploads/2021/11/Winter-Notes-Extract.pdf

러시아어는 다음 링크에 있다

https://ilibrary.ru/text/66/p.1/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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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믈렛 (런치박스 리커버) 문학동네 시인선 203
임유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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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베를린 장벽철거, 91년 소련붕괴 후 냉전구도가 사라지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진영이 승리하고 본격적으로 세계화가 되었다. 적이 없어졌기에 92년에는 여행자유화가 되어 이전에는 반공교육받고 외교관, 상사맨, 독일광부간호사, 아랍 건설노동자만 갈 수 있었던 외국을 자유롭게 다니기 시작했다.


세계를 다니게 된 한국인은 우리가 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하는 자각이 들게 되는데 이와 더불어 수능일변도의 입시구조에 지친 부모들이 자식을 외국에서 교육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극히 소수의 지식인과 부자만 할 수 있던 일을 중산층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루트는 두 가지다.


민사고 졸업 후 하버드에 진학한 박원희처럼 국내 특목고 졸업 후, 코리아헤럴드 사장 홍정욱처럼 현지 명문고 졸업 후 하버드 진학. 전자는 2002년, 후자는 80년대 후반으로 시기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들이 쓴 유학경험 에세이가 낙양의 지가를 올리며 조기유학붐이 불기 시작한다. 모두가 명문고, 아이비리그를 간 것은 아니고 각자 재정과 상황에 맞추어 영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 다른 영미권 국가를 선택하기도 하고, 개혁개방에 따른 호재를 노리고 사업을 한 부모를 따라 중국유학을 가기도 했다. 미국에 먼저 이민 간 친척집에 홈스테이를 하게 된 경우도 있다.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단기어학연수 등도 유행했다. 면모는 가지각색이나 7막 7장, 공부9단 오기10단 같은 책이 조기유학, 즉 해외출국을 하나의 입시트렌드로 만든 랜드마크임은 분명하다. 인천공항의 크기를 초기세팅했다.

 

그런데 이런 인력공급과 수요의 관점에서 이들은 졸업 후 어떻게 되었을까? 현지취업일까 귀국일까.


중요한건 2000년 즈음 빌 클린턴 재직시절(93-01)에는 미국에 돈이 많아 장학금이 빵빵해서 혜택을 보았다. 2008년 모기지사태 후 예전 같지 않아졌다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또, 2017년 이민정책으로 인한 추첨식 비자문제로 좋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돌아 온 경우까지 생겼다. 20년 코로나에 최근 이슈까지 더해 미국이 예전같지는 않다, 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이 말은 결코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불행하다거나, 돌아 온 사람이 승자라는 이분법적 판단이 아니다. 인생은 저마다 궤적이 있고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는 개인의 몫이며 복과 시련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모양새를 달리할 뿐이다. 외국에서 인종차별이 있다면 국내에선 갑질과 진상이 있을 수 있고, 외국에서 여유가 있다면 국내에서 편리함이 있을 수 있는 법이다.


2000년에는 인터넷도 없고 제대로 영어를 배울 기회가 적었는데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유학생이 잠깐 귀국해서 과외를 해도 폭발적인 수요가 있었고 전업강사로 등극해 토플 토익 강좌를 열어 대박이 나기도 했다. 자격증 습득을 위한 중간적, 도구적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즉 생물학이나 철학의 내용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 아님에도) 인력공급은 적고 수요가 확실했다. 영어가, 유학생 신분이 돈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트렌드는 지속되지만 이는 특목고, 국제고, 유학원 등을 포함해 하나의 업계가 형성되어 시스템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공급이 수요를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박람회 광고마케팅 등으로 수요를 진작시켜주면서 만들어진다. 입학성공담, 취업성공담을 통해 나가서 성공한 소수의 선배의 간증을 노출한다. 실패자의 이야기는 묵살된다. 이런 조치는 대증요법이다. 증상만 완화하는 것에 가깝다. 이미 업계내부에선 유학수요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입시는 의대가 확실히 쥐고 있다. 1등급 일부가 명문대를 가는 구조 속에 매년 나머지 80%를 구원해야하는 필요성은 있다. 기형적 입시구조 속에서 나도 실패하지 않았어, 우리 애는 유학갔어, 라는 말이 나와야하기 때문에 돈있는 이들이 유학을 대안카드로 만지작거리는 것은 맞다. 대학은 외국에서 나오더라도 청소년 때까지는 가족하고 있어야한다는 문화 속에, 그리고 기러기 아빠로 고생한 중년남성의 아우성 속에 특목고 국제고가 우후죽순 생겨 조기유학 수요를 국내에서 잡았다.


한편, 수출위주구조 속에서 대기업 해외지사, 국제기구 등에서 일하는 전문직 자녀들은 국제학교 보조금이 있어서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자라 자연스레 영미권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그냥 학교 카운슬러를 통해 진학하지 따로 업체에 견적요청하지 않고 영어가 자연스럽게 되므로 절차적 문제 없이 그냥 지원한다. 에세이나 한 번 읽어달라는 정도 뿐. 유학원 입장에서 정말 영어를 잘하고 좋은 학교를 갈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고, 어느정도 영어를 하고 외국경험이 아주 많지 않은 사람들이 수요다.


이제 저출산, 인터넷, Mooc, AI학습, 학력보다는 창업이라는 트렌드, 대학필요 없다는 머스크의 발언 등으로 조기유학 기세가 많이 꺾였다. 처음에 말했던 박원희 홍정욱을 꿈꾸며 자란 키즈들이 유학갔던 시절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앞으로 아예 없어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18세 자녀와 40대 부모라는 고객에서 저변을 넓혀 평생교육으로 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뭐 이 이야기는


차치해두자. 조기유학을 가게 된 한국의 분위기와 구조만 대충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정말 중요하건 조기유학생의 쓸모다. 현지에서는 아시아인TO, 한국담당TO, 혹은 전공기술활용 등 여러 요인이 있다. 돌아와서는 외국어 사용 해외업무에서 리에종 즉, 연락책 그리고 해외학벌이라는 얼굴마담 즉 간판으로서 역할이 있겠다. 정말 외국에서만 있는 어떤 기술이나 허들이 높은 자격증(박사PhD, 변호사 bar exam 등)을 습득하고 돌아 온 경우 정보 격차 및 한미 경제력 차이로 인해 오랫동안 쓸모를 입증할 수 있었지만 이제 예전과는 달리 쇄신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왜냐? 한국도 더이상 못 사는 중진국이 아니라 원천기술을 가지게 되었으며 미국도 마냥 잘 살 던 나라가 아니게 되었는데다, 인터넷 정보통신으로 인한 지식정보 신속한 교류, 그리고 이젠 AI로 인한 지능혁신까지 더불어 화이트칼라 직종에 여러 충격파가 몰아쳤기 때문이다. 조기유학을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라는 질문만 중요했던 시기가 끝났다. 공급이 적고 수요가 많았던 시기의 질문이다. 일단 제품을 만들면 팔리던 산업화 시절의 생각이다. 라면이 없어서 못 먹지 라면만 만들면 날개 돋친듯 팔렸다. 이젠 다품종 소량생산에 연예인광고, 유투브숏츠꽁트까지 만들어야 팔린다. 불닭볶음면은 맛 보다는 바이럴이 큰 역할을 해서 매출을 올리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쉽다. 이제 조기유학해서 돌아 온, 혹은 현지에 있는 내가 어떻게 PR을 해야할까? 퍼스널 브랜딩을 어떻게 해야할까? 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과거의 졸업증으로 가만히 있어도 모두가 대접해주는 시대가 아니다. 팔리는 나를 스스로 만들어야한다.


이때 생각해보면 좋은 것은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관계다. 위치에너지는 학벌, 운동에너지는 노력이라 생각해보자.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미국대학에 입학해 어렵게 공부해 졸업해 화려한 학벌을 취득했다. 이 자체로 끝이 아니다. 롤러코스터가 올라갔다가 급강하하며 속도를 내듯, 위치 에너지는 낙차가 있어야 그 위력을 비로소 발휘한다. 스위스의 기차처럼 천천히 산을 올라가서 높은 고도에서 평지처럼 운행한다면 여기가 해발고도 몇 m인지 알 수 없다. 높은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그 위치 에너지가 실감된다.


한국에서 조기유학 학벌이 먹혔던 시절엔 이런 잘 사는 패권국의 명문대 학벌이 덜 사는 한국으로 내려오며 위치에너지의 차이가 활용되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대학에서 배운 기술과 지식은 우리나라에 없기에 희소가치가 있었다. 교육열 높은 사회에서 서울대보다 높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대접받았다. 이제 아예 쓸모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차이가 크지 않은 비슷한 위치의 등가교환이다. 우리가 외국에 알려주어야하는 것도 생겼고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럼 영어를 한국어로 일방향으로 영독해하는게 아니라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벡터 방향만 바꾸면 된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외국인에게 한국문화, 기본생활를 가르치는 것이다.


비로소 발휘한다. 스위스의 기차처럼 천천히 산을 올라가서 높은 고도에서 평지처럼 운행한다면 여기가 해발고도 몇 m인지 알 수 없다. 높은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그 위치 에너지가 실감된다.


한국에서 조기유학 학벌이 먹혔던 시절엔 이런 잘 사는 패권국의 명문대 학벌이 덜 사는 한국으로 내려오며 위치에너지의 차이가 활용되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대학에서 배운 기술과 지식은 우리나라에 없기에 희소가치가 있었다. 교육열 높은 사회에서 서울대보다 높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대접받았다. 이제 아예 쓸모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차이가 크지 않은 비슷한 위치의 등가교환이다. 우리가 외국에 알려주어야하는 것도 생겼고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럼 영어를 한국어로 일방향으로 영독해하는게 아니라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벡터 방향만 바꾸면 된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외국인에게 한국문화, 기본생활를 가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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