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iel Kraus의 Angel Down
온점이 없고 쉼표로 이어지며 문단 시작이 and으로 시작하는 이상한 소설이다. 특이한 문체가 주는 리듬이 꾸란의 fa(فَـ)로 시작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fa도 and다.

혹은 그리스어의 kai나 구약의 히브리어 waw같은 (모두 and을 의미한다) 문장이 주는 연쇄적 계시(revelatory chaining)처럼 느껴진다.
사건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리고‘로 이어지는 중에 존재론적으로, 계시의 압력으로 밀려온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모든 문장에서 온점 제거한 이유는 (의미의) 닫힘을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개 점을 찍으며 생각을 종료하고 의미를 봉합하고 감정을 매듭짓는다.

그런데 크라우스는 모든 문장을 쉼표로 이었기에 낭독자는 어디서 끊어 읽고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 불명확하다. 독자는 무엇이 핵심인지 흐려지는데, 구어체와 생각과 서술과 시간과 기억과 현재가 모두 혼합된 상태로 경험하게 된다. 전쟁의 PTSD를전하기 위해 선택된 문체다. 난해하게만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전쟁과 트라우마와 광기의 인지 상태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다.

사건의 연쇄 작용 가운데 인간이 흐름에 휩쓸리는 느낌이 우리나라 문화로 비유하자면 판소리같다. 북의 장단에 이어붙이는 구술문화다. 야전 보고, 전장 증언, 기도문, 의식의 흐름같다(후술)

캡쳐2는 p235는 스포일러다(메롱)

3인칭 객관적 소설이라기보다 POV 1인칭으로 누군가가 살아남기 위해 중얼거리는 기록이 마치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는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감독의 <마리우폴에서의 20일(2023)>, <2000미터 안드리브카 전선(2025)>같고

의식의 흐름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Ulysses)>같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영화화를 목표로 쓰여진 많은 현대소설 <하우스메이드>나

프랑스 기욤 뮈소의 <구해줘 (Sauve-moi, 2005)>,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Seras-tu là?, 2006)>,<파리의 아파트 (Un appartement à Paris, 2017)> 등에서 보이는 빠른 컷 전환의 기법과는 대척점에 있다.

또, 캐릭터의 내면 설명과 심리 분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소설과도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서사적 설명이라기보다는 중언부언 구토에 가깝다. 분절된 논리가 아니라 반복과 접속과 누적에 방점이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크쉬슈토프, 부분적으로 알베르 세라, 오즈 야스지로나 소마이 신지의 롱테이크처럼

장면을 컷하지 않고 문장을 질척질척하게 이어붙인다.

그래서 시체, 진흙, 피, 기억, 환영, 천사의 이미지가 분리되지 않은 몽타주로 혼재되어 있다. 구술된 악몽같다. 포크너나 코맥 매카시로도 비유해볼 수 있겠다.

전쟁 주술, 집단적 애가(哀歌), 패배자의 성서, 타락한 복음서로서 이 이야기가 진흙 냄새와 숨막힘과 쇳소리와 끌려가는 감각의 추체험을 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네메시 옐레시 라슬로 <사울의 아들(2015)>도 생각난다.

아이가 정말 자신의 아들인지 왜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장례를 지내주려고 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우슈비츠를 1인칭 시점으로 추체험하는 영화다.

깔끔하게 신 분할하고 논리적으로 플롯을 분석할 수 있는 소설이라기보다 늪을 걸어가는 육체적 느낌마저 든다.

아마 이 소설을 가장 흥미롭게 읽은 사람은 유발 하라리이리라 생각한다. 그는 한국어로 이 글을 못 읽겠지만.
하라리는 옥스퍼드대 지저스 컬리지에서 2002년에 중세 전쟁사로 박사를 받았고 그 박사논문에 기반한 책은 <르네상스 역사 회고록>으로 번역되어있다.

중세 전쟁 참전 군인과 용병의 회고록이라는 구술문학을 토대로 균일하고 선형적인 달력에 기반한 역사서술이 아니라 자기에게 의미있는 전쟁을 과장하고 필요없는 이야기는 소략해 서술이 점프컷처럼 튄다는 점을 논했다.

군인의 반복 증언과 구전 서사와 히브리 묵시문학이 미국소설의 외피를 입은 특이하고 재밌는 이야기지만 읽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 한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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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갈 최적의 시점은 언제일까

○우에노 4총사

1. 도쿄국박

2. 서양미술관 리투아니아 Čiurlionis チュルリョーニス, 상설전 3.28-6.14

3. 도쿄도미술관 Andrew Wyeth 4.28-7.5

(오르세는 11.1-27.3.28)

4. 우에노의 숲 대고흐전 5.29-8.12

+ 솜포 외젠 부댕 4.11-6.21


5. 도쿄근대 소장품전 5.26-9.13

+황거

+도쿄역 미츠비시 카페의 예술가 인상주의부터 피카소까지 6.13-9.23


○롯본기 3총사

6. 국립신미술관 폴 스미스로 본 피카소 6.10-9.21

7. 모리미술관 론뮤익 4.29-9.23

8. 21x21 수프 3.27-8.9, 가우디 5.16-7.12


○가나가와 폴라미술관 모네와 현대미술 6.17-27.4.7


○교토

교세라 yBa 6.3-9.6

근대 모던도시 3.28-6.21

국박 대가노파 6.8-7.19


○오사카

나카노시마 마우리츠허위스 8.21-9.27

아베노하루카스 발라프리하르츠 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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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큐비즘전 좋았다. 깜짝 놀랐다. 정신을 잃고 보다보니 순식간에 3시간이 지났다

큐비즘이란 무엇인가? 큐비즘은 어떤 것이 있는가? 조형 살롱 질료 안과밖의 경계. 내적 발전은 어떻게 되었으며, 이탈리아 러시아 등 외적 확장과 적용은 어떻게 되었고 한국은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답한다

언제 글 쓰지

상해에도 퐁피두 소장품전을 한다는데

사실 퐁피두 소장작품은 한국에 아홉 점 더 있다
국현미 청주 방혜자전에 22년 사후 24년에 퐁피두 기증작이다
25년 9월 리노베이션을 위한 장기 휴관에 들어갔는데 그전 24-25년 방혜자 회고전 및 개인전을 했다고 도록에 써있다

방혜자 퐁피두 기증작 2024년 노트

지심 1960 유화
부활의 노래 1972 템페라
제목없음 1970 유화 가죽 사포
제목없음 1990 천연안료 파스텔
용신제 1975 유화 템페라 천연안료
제목없음 1987 천연안료
흐르는 빛 1981 유화 파피에콜레 천연안료 톱밥
빛의 기쁨1 2020 천연안료
빛의 탄생 2020 천연안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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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쓸모 - 평범한 대화를 더 근사하게 만드는 어휘의 힘
차민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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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괜찮은 예시가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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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티노세갈 퍼포먼스 모두 다 보았다. 3-6월에 1달씩 돌아가는 로비의 세 점도 다 보았다.


로비

1. 로비에 3명이 외치는 Oh~ This↘ is↘ so↘ 컨.템↑포러리↗의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2004)


B1

● 녹색, 흰색 비즈커튼인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무제(시작)〉(1994)

2-4. 중정에 1달씩 다른 구성으로 돌아가는 퍼포먼스 세 점


5. 안쪽에 로댕조각을 둘러싸고 미술사의 키스 장면을 오마주해 남녀 2명이 복희와 여와처럼 자웅동체로 얽혀 딥키스하는 <키스>(2002)


1층

6. 권오상의 조각 2점이 보고 있는 바닥에서 무기력하게 뒤척이는 1인 퍼포먼스 〈무언가 당신 코 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2000)


● 1층의 여러 조각(솔르윗, 엘름드라그셋, 자코메티, 강서경, 이우환 등)


정원

7. 1명이 즉흥적으로 노래 불러주는 〈이 당신〉(2006)


로비

8. 세 명이 벽 만지고 zz소리 내며 천천히 돌아다니다가 옹기종기 모여 화음 싱크로 맞추는 <무제>(2026)


이렇게 총 퍼포먼스 여덞 구성이다.

특히 로비의 세 점은 한 달씩 돌아가며 해서 나도 세 번 방문했다.


https://www.leeumhoam.org/upload/exhibition/TS-Broschure-KR-v3.pdf



2. 3-4월에 했던 〈이 입장〉(2023)은 무용수, 바이올린 연주자, 축구 선수, 사이클 선수가 각 직업에서 요구하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이 아니라 특이하고 비전형적인 동작을 느리게 수행했다. 누워서 바이올린을 켠다든지 드리블 슛이 아니라 묘기를 한다든지 사이클 반대로 탄다든지.


3. 4-5월의 〈이 환희〉(2020)는 3명이 베토벤 교향곡 제9번(합창)의 4악장 환희의 송가를 돌아다니면서 부르는 것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무용수 이승아는 지난 피에르 위그전 때 에스컬레이터에서 보였던 아티스트라고 이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4. 5-6월의 〈이 당신나나당신〉(2023)는 무용수와 아기와 보호자가 참여한다. 3월에는 팜플렛이 이 이름들이 있지 않았고 이제 풀리스트가 뜬다.


돌 전후의 베이비를 보호자가 데리고 중정에 들어오면 퍼포머 두 명이 아이에게 노래 부르며 교감하는 퍼포먼스다.


지금 하고 있는 <이당신나나당신>이 제일 재밌었다. 예측불가능한 변수가 많아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걸음마를 뗀 베이비도 있고 거의 갓난아기도 있고 아이의 나이와 사정이 저마다 다르다. 베이비가 로비를 어떻게 돌아다니냐에 따라 거의 무한대의 가능성이 발생한다. 관객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다른 전시실에 들어갈 수도 있고 비즈커튼을 잡고 흔들 수도 있다. 티노 세갈의 가이드였겠지만, 안전의 무리가 없는 선에서 아이의 의지에 모든 것을 맡기고 보호자도 아이를 거의 저지하지 않는다. 퍼포머는 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래를 부르거나 비트박스를 하지만 아이는 그에 반응할 수 있고 울음으로 답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교감은 의외로 완전해질 수도 있지만, 교감이 아예 실패할 수도 있는데 이 모든 사건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아기와 보호자 페어의 수가 많은 것은 베이비라는 존재가 장시간 퍼포먼스에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돌 전후의 아이는 갑자기 똥을 싸고 말을 듣지 않고 배고파 울고 맘에 안 들어 운다. 그래서 베이비는 수시로 퇴장하고 재입장한다. 베이비와 보호자가 게임의 몹처럼 계속 리젠되는 느낌이다.


아가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가분수 대갈장군이기에 뇌에 자기 주장은 있는데 몸이 그 의지를 제대로 받들 수 없다. 하지만 베이비는 성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며, 알 수 없는 이유로 무언가에 예측 불가능한 강도로 반응해, 이전 퍼포먼스를 정제된 의례로 느껴지게 할만큼 거칠고 통제되지 않은 자유도를 보인다. 원래도 포유동물은 아가를 보호하고 아가에게 눈길이 가기 마련인데 남의 눈치를 신경쓰지 않는 베이비의 퍼포먼스라니! 티노 세갈 정말 서프라이즈를 마지막에 마련해두고 있었구나


4월까지만 해도 브로슈어에 <이당신나나당신>에 대한 내용이 없어 무언가 했었다.


보호자는 나이가 있기도, 젊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아빠이기도 하다. 퍼포머리스트에 보호자와 아가의 성이 같다면 최온(최산)처럼 양육아빠겠거니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서솔라(서새롬) 이율린(이재인)처럼 엄마이름처럼 느껴질 경우 부부의 성이 같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이런 디테일에 눈길이 간 것은 3회차까지 보고나서 퍼포먼스 아트란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 더 딥하게 생각해보았기 때문이다.


리움전시의 퍼포먼스 작품 중 바뀌는 구성과 바뀌지 않는 구성이 있었다.


키스, 이 당신,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 놔두는.. 같이 4개월간 계속 진행되는 퍼포먼스는 단 한 번도 같은 퍼포머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바뀌는 사람이 아니라 바뀌지 않는 본질적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퍼포머들의 외적 조건의 개인차도 있고 각기 퍼포머의 행위에 대한 숙련도와 이해도가 다르다.


다들 처음에는 이게 뭐야! 부끄러워! 현대 예술 어렵다! 하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정말 진입장벽은 사실 시간이다. 퍼포먼스의 처음과 끝을 다 지켜볼 수 있는 어떤 느린 관찰이 필요하다. 차분히 지켜보야한다. 그래서 다음 일정이 있거나, 빨리 나와 언니!, 야 너 어디야! 하는 전화/카톡에 떠밀려다니는 사람은 이 전시를 충분히 잘 감상할 수가 없다. 설령 일정이 있더라도 일단 30분은 지켜본다는 느긋한 태도여야한다. 빨리 사진 찍고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급한 마음으로는 이 예술이 요구하는 리듬과 템포로 즐길 수가 없다. 무엇을 하는지 천천히 보고 있어야한다. 한국인에게 특별히 어려운 감상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지위고하, 재력과 학력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있는 예술이지만 요구되는 애티튜드는 있다. 사진 촬영하지 마세요! 는 금지이면서 동시에 핸드폰 보지 말고 사람에게 집중하세요! 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이를 부정적 뉘앙스의 통제가 아니라 긍정적 뉘앙스의 참여로 읽어야한다. 관객이 보는 것에서 퍼포먼스의 의미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의 봄이 그들의 함과 함께한다. 나의 봄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비로소 완성시킨다. 그렇게 객체의 행위는 주체의 관음으로서 세상에 의미화되는 것이다.


느리게 퍼포먼스를 관찰하면 이제 망신스러움, 부끄러움, 사회적 눈치같은 것이 흐려지고, 사람의 외모품평을 너머 어떤 본질이 보인다. 그것은 행동, 행위다. 형식과 구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행위는 반복될 때마다 차이가 발생한다. 데리다적으로 말하면 차연이다. 매 번 올때마다 각기 다른 퍼포머들이 같은 행위를 하는데 이 행위 속에서 각기 다른 숙련도, 퍼포먼스 이해도, 감정적 교감정도를 보인다. 그들의 옷, 키, 머리칼, 시간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소매를 활용해 감정을 나타내고, 어떤 이는 시선을 다르게 처리한다. 어떤 이는 저음역이고 어떤 이는 고음역이며 어떤 이는 손을 잘 쓰고 어떤 이는 발을 잘 쓴다. 어떤 이는 장발이거나 숏컷이기에 머리카락 떨어지는 속도가 다르고 이러한 수많은 차이를 통해 같은 행위가 미세하게 다르게 보인다.


그 다름이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나는 것이 5-6월의 마지막 구성 <이당신나나당신>이었다. 자유로운 베이비의 예측불가능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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