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문예춘추 5월호에 실린 학예원이 선정한 2026년 기대되는 (일본)전시을 올렸다.

https://blog.aladin.co.kr/797104119/17452728

그 선정단은 대부분 연구부장, 관장인 디렉터급이었는데 단 한 명만이 ‘(도쿄)도내의 어떤 미술관의 학예원을 거쳐 현재는 다수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며 작은 미술관의 학예원이라고 소개해서 눈길을 끌었다. 검색해보니 책 2권이 있어 구해 읽었는데 그중 24년에 출판된 학예원 밖에 모르는(만이 아는)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었다. 22년에 마음산책에서 나온 박물관을 쓰는 직업과 비슷한 현직 종사자의 이야기였다.



큐레이터가 출근해서 회의하고 서류작업하는 하루 일과 p88-93나 전시감상방법도 흥미로웠다. 어디나 회사원의 일과는 비슷하고 전공분야나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동등하게 점심메뉴도 화제가 된다.

작품과 함께 트럭에 흔들려 전국여행(안갸 行脚)p46 학예원은 감정사?(메키키 目利き)p111 글 꼭지의 내용도 재밌었지만 찰나적이라든지.. 여러 단어 구사에서 불교미술전공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어휘선정에 있서 서양쪽은 아닌 것 같다. 배웠다면 툭툭 튀어나오는 서양어휘 설명이나 가타가나 위주의 외래어가 적은 편이다.

나아가 더욱 흥미로웠던 건
모리미술관, 국립신미술관, 도쿄도현대미술관, 요코하마미술관은 자본력이 있어 홍보부서가 따로 설치되어있다는 점이다. 전국을 순회하는 대형기획전은 사무국을 따로 운영한다는 점도 p116

최근 화제가 된 일본의 마우리츠허위스의(난 7년 전 직접 간 적 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전에서 티켓피아의 오류로 인해 항의를 받고 공식 사과문을 낸 후 지금은 티켓을 추첨제로 팔고 있는데 일본현지번호가 있어야해서 응모조차 하지 못했다.

작은 미술관의 학예원
https://note.com/gakugeiin

책 2권 집필
학예사만 알고 있는 술관이 즐거워지는 이야기
学芸員しか知らない 美術館が楽しくなる話
https://amzn.asia/d/0cwZq7hv

바쁜 사람들을 위한 미술관 걷는 방법
忙しい人のための美術館の歩き方
https://amzn.asia/d/0fL2NSL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모레퍼시픽 솔 르윗전과 국립현대미술관 서도호전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는 생각을 했다

솔 르윗과 서도호는 모두 작품 제작에 있어서 어시의 대리 수행을 활용했지만, 작가의 지향점에 따라 작업보조자의 활용도와 그로 인한 예술적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직접 손을 쓰지 않고 어시스턴트를 통해 작품을 제작하는 대리 수행은 관습이 되었지만 타인의 노동을 매개로 작업물을 구현한 솔씨와 서씨의 예술관이 달라 보여 흥미로웠다.

솔 르윗은 지시문을 제공하여, 작업보조자를 실행자로 호명하여 작가의 주체성을 지우고 미술을 공적 영역의 열린 퍼포먼스로 확장시켰다.

이와 반대로 서도호는 어시스턴트의 노동을 사적으로 응축함으로써, 개인의 이주라는 실존적 경험을 물질화했다.

예컨대 솔 르윗전엔 국내 미대생 실행자 13명이 APMA Makers로서 작품에 함께 참여해, 그 결과 자신의 커리어에도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게되었지만 (그리고 그 지시문이나 드로잉은 서도호의 색감이나 매체성에 비해 대단히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서도호전엔 사랑하는 딸아이와 개인서사는 있으나 참여한 어시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는다.

무엇이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고, 지향점과 활용방식이 다른 것 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시스템을 통해 외연을 확장한 솔 르윗의 미니멀한 작품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거대한 달항아리 모티프 지하공간에서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고, 외려 서도호는 시스템 없는 사적 참조를 통해 개인의 감각지형을 고밀도로 수렴해 무언가 꽉 찬 느낌이 든다.

추상이란 거칠게 말하면 뜬구름 잡는다는 뜻 아닌가. 뜬구름은 부유하는 허적이거니와, 개념미술의 추상성이 무한대로 확장하기 전 어떤 빅뱅의 가능성을 내포한 단계다.

비유컨대솔르윗은 a2+b2=c2라는 수학공식, 그 구조 자체를 보여주었다. 기본 공식은 다양한 예제로 활용될 수 있고 그 해석의 융통성은 관객에게 부여되어있다. 그러나 일단 변수에는 아무런 구체적인 네러티브가 없기에 비어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편 서도호는 성북동 한옥과 뉴욕 아파트와 오미 등교길 등 3^2+4^2=5^2라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다.

아이디어는 작품을 만드는 기계이고 어시는 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해석자로 기능하는 솔 르윗의 시스템 속에서, 창안자인 솔 르윗이 남긴 텍스트 기호는 지시문이 되어 어시스턴트라는 타인의 신체를 거쳐 벽화로 시각화된다.

한편 작가의 지시는 명확할지라도, 수행자의 배경적 다양성, 신체 조건, 도구의 특징, 공간 조건 등등에 따라 필연적으로 미세한 어긋남이 발생한다. 고정된 기표가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자크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의 시각적 구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실행자가 작품제작에 참여하긴하되, 작가와 어시스턴트는 철저히 제도적 계약으로 묶인 공적관계로 귀속된다. 이러한 방식은 작품 제작을 일종의 악보처럼 기능하게 하고, 하여 작가 사후에도 지시문만 있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새로운 수행자에 의해 재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다만 그 지시문의 특성상, 혹은 미니멀리즘의 특성상 중간 과정이 복잡하지는 않다.

퍼포먼스의 수행은 리움 티노 세갈전에서 선수, 무용수, 배우, 아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에게 의해 구현된 바 있다. 과정에 풍부하게 육화된 경험이 존재한다. 이 개념미술의 창시자가 시스템으로 무엇을 했는지 톺아보면, 대리수행을 통해 미술의 소유권을 해체하고 창조 작업을 끝없는 과정으로, 열린 퍼포먼스 예술로 승화시켜 개념미술의 외연을 무한히 확장하는걸 추구한 듯하다.

반면 서도호의 작업에는 솔 르윗식의 추상적 시스템이나 언어적 지시문이 부재한다. 그의 작업은 집, 이동, 고향 상실이라는 개인의 디아스포라 서사와사적 관계를 참조한다. 기억을 타인에게 온전히 번역할 수 있을까. 성북동 한옥이나 뉴욕 아파트에서 살았던 기억을 타인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그가 거쳐 온 공간을 다양한 매체로 물질화하는 어시스턴트는, 그런 맥락에서, 작품의 개념적 방향성을 해석하는 주체가 아니다. 솔 르윗의 가이드는 선명하고 간결하였고 해석의 주체성은 실행자에게 있었으나, 서도호의 주체성은 작가 자신에게 남겨져있다. 어시는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완벽한 시각적 재현을 위해 바느질 등등 물리적 공정을 돕는 숙련된 장인이거나 조력자정도에 머문다

다시 말해, 작품의 개념적 해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서도호라는 개인의 사적기억을 물질화하는 물리적 노동에 참여한 이다. 이런 면밀한 통제는 예술의 보편적 외연을 좁히며 서도호는 누구나 재연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대신, 오직 자신이라는 특수하고 유일한 주체의 경험과 내밀한 감각을 오차없이 고정하는 데 집중하며, 압축하고 수렴하고영토를 내부로 응축시킨다.

아까 밥 먹어야해서 급히 마무리한 글의 끝마무리. 밥을 다 먹고 나니 아쉬워서 추가.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뉴욕 솔씨의 개념 미술엔 어시가 숟가락을 얹어 참여할 ‘수‘ 있는 반면, 서작가의 개인 서사에 어시가 참여할 수가 없다. 논리와 형식은 실행자가 함께해 차연을 통해 재생산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에 던져진 단독자의 밀도 높은 퍼스널 네러티브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영화 이야기 같은 것이다. 보는 이는 자신의 체험에 기대 몰입할 수 있지만, 주인공의 경험과 완전히 같지 않다. 어시도 서도호 본인이 아닌 이상 그의 명령에 따라 대리제작할 수 있을 뿐 그가 그 물성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빚어내고자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참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관객도 유학, 워홀 등 엇비슷한 해외체류경험에 빗대어 추체험할 수 있지만 작가의 뇌 속에 존재하는 흙내음새와 새소리, 유년시절 학교친구와 놀았던 구체적 상황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밤중 개미 요정 (10주년 기념 한지 특별 한정판) 신선미 그림책
신선미 글.그림 / 창비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질감이 좋아요 재밌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성 인간 - 그들의 다크 심리를 무력화하는 7가지 심리 전략
리앤 텐 브링크 지음, 김효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는 되지만 교수님 자신이 리스트에서 가장 많은 체크를 받을텐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솔르윗 오픈스트럭쳐>가 열렸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바로 지난 달 8월 초 40도를 웃돌던 기온이 15도 이상 내려가 외출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 오늘 9월 1일부터 시작해 국공립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가 시리즈로 개막한다. 오늘만해도 공박, 호암, 호림, 로팍, 페로탕 등인데 첫 스타트는 아무래도 APMA가 좋을 듯 했다. 어디로든 움직이기 좋은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도 했고.

전시는 담백하고 가벼워, 마치 평양냉면같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맛이냐, 걸레 빤 물 같다 vs 슴슴한 가운데 오묘한 맛이 있다, 라는 평냉의 호불호 구도를 그대로 가져올 것 같다.

즉, 누군가는 전시장이 텅 비어 볼 게 없다, 20분만에 보고 나오겠다라고 볼멘소리를 할 듯하고 누군가는 솔르윗의 논리적이고 미니멀한 아이디어가 웅숭깊고 구조와 반복과 개념미술에 대해 이해하면 진득한 맛이 있다고 할 것이다.

서문에는 ˝관람객에게 아무런 해석도 요구하지 않는다˝
˝작품은 형태 자체보다 그것을 성립시키는 관계와 구조를 생각하게 된다˝ 라고 써있는데 바로 그 덕에 혹은 그 탓에 발생하는 호불호일 것이다.

월드로잉 13점은 도쿄도미술관보다 더 양이 많고, 서울시립 유영국과 조형과 색감은 비슷해보이는데 유영국은 무해하고 예쁜 전시로 사람들의 호평을 받아 대기줄이 연신 길어지고 있다.

또한, 국현미의 서도호전도 같은 방식으로 무해하고 예쁜 파스텔풍이 지배적으로, 솔르윗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어시를 동원해 작업한 (즉 장인정신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인데 티켓은 모두 매진이다

그런데 솔르윗전이 같은 평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유영국은 쨍한 색채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등산의 민족 한국인에게 익숙한 산으로 승부하며, 서도호전은 집과 이동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환기하며 한옥집 같이 구체적인 전통소재를 활용하는데 반해, 솔르윗은 색, 장식을 모두 걷어내 언뜻 미완성으로 보이는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솔르윗의 아이디어를 좋아하려면 수학공식의 간결성을 좋아해야한다. 1+1=2가 주는 레스이즈모어의 신비를 말이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법인데,단순하기에 쉽고 가벼워보이니 무시되기 일쑤다. 그러나 간결해야 확장성이 좋다. 수학공식 하나에 무한대의 예제가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인상주의전이나 큐비즘전처럼 화려한 볼거리를 선호한다면 마음이 곤란하곘다. 디테일한 표현력에서 오는 깊이를 중시하거나 작가의 신체성, 현존성과 유일성이 배제된 대행 미술에 비판적이라면 성의 없거나 밀도가 낮은 예술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아이디어, 규칙, 시스템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전시장과 작품이 공간과 여백으로서 관계를 맺기에 관람이 유의미한 체험이 된다. 그런데 지시문이 예술인가? 라는 질문 외에, 그래서 어쩌라고? 이 작품이 지금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와닿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 수도 있겠다.

예컨대 감정적 울림이나 정치사회적 메시지, 혹은 시각적 경이로움을 기대한 이들에게 솔르윗의 작품은 차가운 지적 유희에 불과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모두 작가의 선구적 아이디어나 좋은 공간배치, 도쿄도현대미술관과의 차이점을 추구하려는 큐레이터의 노력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전시기간이 내년 2월 말까지로 다소 길어서 아마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영상이 충분히 올라오고난 이후에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질 것 같다. 솔르윗보다 더 다양성과 지적밀도가 높은 조선민화, 소장품전도 관객을 충분히 흡수한 후 전시 끝물에는 사람이 적었다.

비어있어 보이는 그 여백에서 전해지는 도가적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더욱 관객이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명상의 시간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인상은 그렇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백자 모티브의 미니멀한 화이트 큐브공간에서, 작품 수가 아주 많지 않고 여백이 넓어, 스윽 둘러보면 20분 만에도 볼 수 있는 담백한 전시다. 선과 격자, 흰색 큐브가 미술관의 미니멀한 인테리어와 녹아들어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솔 르윗이 주장한 ‘눈에 보이는 결과물보다 아이디어와 시스템이 본질‘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이 걷어낸 듯한 담백함이 작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반영한 것이라 본다.

그리고 화려한 시각적 자극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자칫 심심한 무맛이라고, 충분히 느껴질 수 있는 구성이다. 그 마음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한편 솔 르윗의 철학인 개념의 순수성을 최대한 살리자는 입장에서는 건축 공간과 솔 르윗의 기하학적 큐브 구조물과, 그 구조물의 그림자와, 다른 작품들이 맺는 관계망을 감각할 때의 선명한 지적유희와 시각적 쾌감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비유도 가능하겠다. 돈이 많고 스스로 사용권한이 있으면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덜어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반면 정부지원금 등 목적성이 있는 돈을 사용해야하는 주민센터는 글이 빼곡한 설명서와 벽보가 그득하다고.

같은 솔르윗 회고전인데 올해 상반기의 도쿄도현대미술관과 다르게 아모레퍼시픽전에서 더 좋았던 것은 한국어와 영어의 설명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완성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읽는 맛이 늘 좋다.

해석은 관객에게 맡겨져있다고 해도 역설적이지만 결과적으로 작품 해석하는 학예사의 권한이 더 강화된다. 도쿄도현대미술관전의 설명이나 도록을 본 적은 없지만 아모레퍼시픽의 전시설명은 항상 좋았고 특히 한국어와 영어가 각 언어의 특성에 맞춰 자연스럽게 설명하며 전문적이어서 배움이 많이 된다.

또한, 도쿄도보다 월드로잉이 더 많은데 이는 부분적으로 퍼포먼스 예술을 환기해 올해 한국에서 유행하는 트렌드에 잘 싱크로되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학 및 대학원 미술 실기 전공자 23명으로 구성된 APMA MAKERS가 참여했다. 이들은 작가의 지시문을 해석하고 선과 색을 쌓아 올리며 제작 과정을 직접 수행했다˝고 한다.

지시문을 읽고 이에 따라 벽화를 그리는 이들의 작업은 마치 퍼포먼스의 가이드라인과 같다. 페이스나 국현미 과천에서 보았던 이건용의 가이드라인이 가장 대표적이었고 올해 퍼포먼스 예술 관련만 19군데 이상은 보았다.

참고로, 아모레퍼시픽 지하에 벽화를 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예전에 스티븐 해링턴전에도 작가가 직접 내한해서 벽화를 그린 영상을 본 적 있다.

솔르윗의 전시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디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강력하고 선구적이었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 빠르게 보고 전시장을 유유히 떠날 거 같다. 전시 캡션과 서문과 도록을 참조하면서 더 배움을 추구할 이는 누구인가. 그런 이들이 간단한 명제에서 풍부하고 다양한 예시를 추출할 수 있는 기적의 아이들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