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솔르윗 오픈스트럭쳐>가 열렸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바로 지난 달 8월 초 40도를 웃돌던 기온이 15도 이상 내려가 외출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 오늘 9월 1일부터 시작해 국공립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가 시리즈로 개막한다. 오늘만해도 공박, 호암, 호림, 로팍, 페로탕 등인데 첫 스타트는 아무래도 APMA가 좋을 듯 했다. 어디로든 움직이기 좋은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도 했고.

전시는 담백하고 가벼워, 마치 평양냉면같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맛이냐, 걸레 빤 물 같다 vs 슴슴한 가운데 오묘한 맛이 있다, 라는 평냉의 호불호 구도를 그대로 가져올 것 같다.

즉, 누군가는 전시장이 텅 비어 볼 게 없다, 20분만에 보고 나오겠다라고 볼멘소리를 할 듯하고 누군가는 솔르윗의 논리적이고 미니멀한 아이디어가 웅숭깊고 구조와 반복과 개념미술에 대해 이해하면 진득한 맛이 있다고 할 것이다.

서문에는 ˝관람객에게 아무런 해석도 요구하지 않는다˝
˝작품은 형태 자체보다 그것을 성립시키는 관계와 구조를 생각하게 된다˝ 라고 써있는데 바로 그 덕에 혹은 그 탓에 발생하는 호불호일 것이다.

월드로잉 13점은 도쿄도미술관보다 더 양이 많고, 서울시립 유영국과 조형과 색감은 비슷해보이는데 유영국은 무해하고 예쁜 전시로 사람들의 호평을 받아 대기줄이 연신 길어지고 있다.

또한, 국현미의 서도호전도 같은 방식으로 무해하고 예쁜 파스텔풍이 지배적으로, 솔르윗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어시를 동원해 작업한 (즉 장인정신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인데 티켓은 모두 매진이다

그런데 솔르윗전이 같은 평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유영국은 쨍한 색채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등산의 민족 한국인에게 익숙한 산으로 승부하며, 서도호전은 집과 이동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환기하며 한옥집 같이 구체적인 전통소재를 활용하는데 반해, 솔르윗은 색, 장식을 모두 걷어내 언뜻 미완성으로 보이는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솔르윗의 아이디어를 좋아하려면 수학공식의 간결성을 좋아해야한다. 1+1=2가 주는 레스이즈모어의 신비를 말이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법인데,단순하기에 쉽고 가벼워보이니 무시되기 일쑤다. 그러나 간결해야 확장성이 좋다. 수학공식 하나에 무한대의 예제가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인상주의전이나 큐비즘전처럼 화려한 볼거리를 선호한다면 마음이 곤란하곘다. 디테일한 표현력에서 오는 깊이를 중시하거나 작가의 신체성, 현존성과 유일성이 배제된 대행 미술에 비판적이라면 성의 없거나 밀도가 낮은 예술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아이디어, 규칙, 시스템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전시장과 작품이 공간과 여백으로서 관계를 맺기에 관람이 유의미한 체험이 된다. 그런데 지시문이 예술인가? 라는 질문 외에, 그래서 어쩌라고? 이 작품이 지금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와닿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 수도 있겠다.

예컨대 감정적 울림이나 정치사회적 메시지, 혹은 시각적 경이로움을 기대한 이들에게 솔르윗의 작품은 차가운 지적 유희에 불과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모두 작가의 선구적 아이디어나 좋은 공간배치, 도쿄도현대미술관과의 차이점을 추구하려는 큐레이터의 노력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전시기간이 내년 2월 말까지로 다소 길어서 아마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영상이 충분히 올라오고난 이후에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질 것 같다. 솔르윗보다 더 다양성과 지적밀도가 높은 조선민화, 소장품전도 관객을 충분히 흡수한 후 전시 끝물에는 사람이 적었다.

비어있어 보이는 그 여백에서 전해지는 도가적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더욱 관객이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명상의 시간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인상은 그렇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백자 모티브의 미니멀한 화이트 큐브공간에서, 작품 수가 아주 많지 않고 여백이 넓어, 스윽 둘러보면 20분 만에도 볼 수 있는 담백한 전시다. 선과 격자, 흰색 큐브가 미술관의 미니멀한 인테리어와 녹아들어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솔 르윗이 주장한 ‘눈에 보이는 결과물보다 아이디어와 시스템이 본질‘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이 걷어낸 듯한 담백함이 작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반영한 것이라 본다.

그리고 화려한 시각적 자극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자칫 심심한 무맛이라고, 충분히 느껴질 수 있는 구성이다. 그 마음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한편 솔 르윗의 철학인 개념의 순수성을 최대한 살리자는 입장에서는 건축 공간과 솔 르윗의 기하학적 큐브 구조물과, 그 구조물의 그림자와, 다른 작품들이 맺는 관계망을 감각할 때의 선명한 지적유희와 시각적 쾌감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비유도 가능하겠다. 돈이 많고 스스로 사용권한이 있으면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덜어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반면 정부지원금 등 목적성이 있는 돈을 사용해야하는 주민센터는 글이 빼곡한 설명서와 벽보가 그득하다고.

같은 솔르윗 회고전인데 올해 상반기의 도쿄도현대미술관과 다르게 아모레퍼시픽전에서 더 좋았던 것은 한국어와 영어의 설명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완성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읽는 맛이 늘 좋다.

해석은 관객에게 맡겨져있다고 해도 역설적이지만 결과적으로 작품 해석하는 학예사의 권한이 더 강화된다. 도쿄도현대미술관전의 설명이나 도록을 본 적은 없지만 아모레퍼시픽의 전시설명은 항상 좋았고 특히 한국어와 영어가 각 언어의 특성에 맞춰 자연스럽게 설명하며 전문적이어서 배움이 많이 된다.

또한, 도쿄도보다 월드로잉이 더 많은데 이는 부분적으로 퍼포먼스 예술을 환기해 올해 한국에서 유행하는 트렌드에 잘 싱크로되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학 및 대학원 미술 실기 전공자 23명으로 구성된 APMA MAKERS가 참여했다. 이들은 작가의 지시문을 해석하고 선과 색을 쌓아 올리며 제작 과정을 직접 수행했다˝고 한다.

지시문을 읽고 이에 따라 벽화를 그리는 이들의 작업은 마치 퍼포먼스의 가이드라인과 같다. 페이스나 국현미 과천에서 보았던 이건용의 가이드라인이 가장 대표적이었고 올해 퍼포먼스 예술 관련만 19군데 이상은 보았다.

참고로, 아모레퍼시픽 지하에 벽화를 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예전에 스티븐 해링턴전에도 작가가 직접 내한해서 벽화를 그린 영상을 본 적 있다.

솔르윗의 전시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디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강력하고 선구적이었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 빠르게 보고 전시장을 유유히 떠날 거 같다. 전시 캡션과 서문과 도록을 참조하면서 더 배움을 추구할 이는 누구인가. 그런 이들이 간단한 명제에서 풍부하고 다양한 예시를 추출할 수 있는 기적의 아이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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