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퍼스트맨 영화음악 다시 찾아 듣는다. 특히 비가 올 때 듣기에 더 좋다.

해를 등지고 자율적으로 어둠을 향하는 이의 용기를 생각해보라. 진공과 냉각과 고독과 침묵으로 치환되는 밤. 시각기관이 기능하지 못해 정보가 삼분지 이는 증발하고 암흑은 곧 혼돈과 불안의 영토가 된다.

우주라는 흑암은 빛의 부재이나 소리의 부재는 아니기에 혼돈과 불안에서 악의 세력이 승기를 잡지 않게끔 하기 위해 그 미지의 공간을 청각 정보로 채운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으로,

광막한 공간을 채운다. 소리는 어둠에 맞서 세워진 최초의 성벽이도다. 리듬은 공포를 길들이기 위해 발명된 보이지 않는 횃불일지니. 미지의 공간을 청각으로 봉합하자. 우주를 향해 진군해나가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지만 광명이 삭제되고 빛과 온기로 소생하는 하루가 결여된 세계를 상상해 본다. 일출을 기계적으로 제거한 우주에는 새벽의 유예도, 아침의 사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시계의 숫자가 아니라 냉각의 속도로 측정되고. 맹인의 봄와 육안의 봄이 비로소 평등해진다. 눈 뜨고 보는 완전한 어둠을 응시할 때 밤은 하루의 일부를 넘어 영원성의 표준이된다.

시각의 진공인 칠흑보다 더 위험한 신호를 주는 것은 의미의 진공일지도 모르겠다. 존재의 이유, 생존의 이유, 내일의 이유, 시간의 이유가 없으면 사람은 진보를 멈추고 두려워 제자리 머물다 천천히 죽어간다. 이름 없는 빈 자리를 찾아 밤하늘에 별자리를 그림으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공허에 기호를 박아 넣는다. 노래를 부르고 신화를 만들고.

우주탐사는 광명의 피난민이 끝없이 팽창하는 어둠의 제국과 체결하는 문화적 휴전협정. 공간의 정복이 아니다. 또한, 심연의 정적, 무중력의 허적을 달래기 위해 음악과 이야기라는 소형 태양을 개개인의 마음에 품고 나아간다. 빛을 찾아 우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빛이 없는 곳에서도 스스로 빛의 문법을 발명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우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우주라는 모두의 마음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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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71 - 승패를 가른다! 승부(勝負) ㅣ 손오공의 한자 대탐험 마법천자문 71
알에스미디어 지음, 정수영 그림, 강용철 감수 / 아울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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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의 연극 그리고 시리즈

연극 그리고
1. 연극 그리고 섹슈얼리티
2. 연극 그리고 동물들
3. 연극 그리고 장애
4. 연극 그리고 역사
5. 연극 그리고 제국
6. 연극 그리고 폭력
7. 연극 그리고 소셜미디어

5권이 제일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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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부터 읽는 공부법 - 토익 만점, 도쿄대·사법고시 합격 모든 시험을 단 한 번에 합격한 ‘시험의 신’이 알려주는
고시미즈 하루카 지음, 김재현 옮김 / 빅피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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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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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영화 디스클로져 데이에 대한 비판 기사

고오급 어휘를 사용해 칭찬하는 것 같으면서 아주 곱상하게 돌려까고 있다

예를 들어 유년시절 너무 많이 사용하고 과거 회고적이다 파벨만스보다 이번 작품이 더 그렇다고 하는 지적이 있다.

나아가 특히 이런 주장이 인상적이다. 요지를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스필버그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데 그 비전은 민주주의라기보다 모두가 한 목소리만 내는 전체주의같다. 스필버그는 선한 사람이긴한데 그가 꿈꾸고 지향하는 모두가 같은 진실을 믿는 세계는 생각보다 무섭다.

그러니까 일견 감동적인 휴머니즘 영화처럼 보이지만, 조금 삐딱하게 보면 전 세계가 같은 화면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은 감독의 욕망처럼도 보인다는 비판이다

저작권 문제상 유료구독 기사를 다 번역할 수는 없는데 일부 인상깊은 부분만 번역하면 이렇다 나는 여기가 눈에 밟혔고 긴 기사에서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1.
스필버그에게 지구상의 외계 생명체가 마침내 공개된다는 오랫동안 미뤄져 온 사건은 또 하나의 개인적 이상, 곧 그 자신만의 영화적 유토피아를 뜻한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순간에 같은 것을 바라보는 세계 말이다.

〈디스클로져데이〉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영화 속 영상, 즉 사실상 외계인을 다룬 가짜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는 시선을 장악하는 힘, 다시 말해 전 세계의 눈길을 지배하는 권력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With the footage-within-a-film at the end of “Disclosure Day,” essentially a faux documentary of aliens, he dramatizes the world-commanding control of eyeballs.

이 작품에서 대중매체가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흔히 찬양받는 능력은 자애로운 형태의 폭정처럼 보인다. 진실의 전달자가 전적인 관심과 전적인 수용, 그리고 전적인 감사까지 얻는
만장일치의 합의 체제인 것이다.
The vaunted ability of mass media to unify the globe here comes off as a benevolent form of tyranny, of a consensual unanimity in which the bearer of truth gains total attention, total acceptance, and total gratitude.

여기서 감독이 쓰고 있는 선의의 가면은, 그것이 아무리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그 어느 때보다 얇고 투명하게 느껴진다.
Here, the director’s mask of benevolence, however sincere, feels thinner and more transparent than ever.

영화는 권력 의지(will to power)에 대한 거칠고도 경이로운 환상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영화의 마지막 단어는 부모가 아이를 타이르거나 꾸짖을 때
사용하는 말인 ˝듣거라(Listen)˝다.

2. (전략) 어린 시절에 대한 감상주의가 어떻게 사용되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도 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적 실천이 지닌 위험성을 자각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그러한 드라마의 중심에는 반드시 덕 있는 가치 체계가 자리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마거릿은 사실상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겪은 희생자이다. 비록 그 상처는 표면적으로는 인류 전체의 계획된 이익을 위해, 도덕적 명분 아래 가해진 것이지만 말이다.

스필버그의 민주주의적 비전 속에서 인류 전체의 행복은 그 첫 번째 희생자(victim zero)의 구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발상은 거대한 선례를 떠올리게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마르가레테(Margaret)의 우주적 구원 말이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지만, 동시에 작품의 과도하게 야심찬 착상들을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다소 인위적으로 꾸며진 장면들도 적지 않다

https://www.newyorker.com/culture/the-front-row/in-disclosure-day-steven-spielberg-steps-out-from-behind-the-cur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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