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 옐로우》

Hyper Yellow

2025.2.28.(Fri) ─ 2025.4.20.(Sun)




1. 광화에 있는 일민 미술관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2024년 하반기 내내 한《이마 픽스 IMA Picks 2024》전시였다. 백현진을 포함해 김민애 차재민의 작품이 있었다. 12월에 열린 전통산수 전시는 1주일 밖에 안해서 미처 추수를 못했다.



2. 이번에 열린 전시는 임민욱의 전시다. 2024년 여름에 성북구에 있는 BB&M에서 본 적 있다. 잘 모르는 소규모 갤러리도 소중하다. 많이 다녀야 많이 보이고 많이 봐야 많이 활동할 수 있다. 위 아래의 사진은 작년 BB&M 임민욱전시 사진. 밖이 너무 덥기도 하고 작가노트 등이 흥미로워서 2층에서 도록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3. 작년에 봤던 것과 비슷한 의도의 작품이 훨씬 더 확장된 크기로 있었다. 위 아래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관이 있는 멋진 작가다.


아래부터 이제 일민미술관 전시 사진.







위는 헤이즐넛을 뿌린 당고처럼 생겼다. 정확한 캡션은 아래.






작품 회화를 확대해서 보면 대략 이런 느낌의 결이다.




4. 이번 전시에서 더 알게된 작품도 있다. 




5. 흥미로운 것은 3층의 30분 짜리 영상과 2층의 9분짜리 영상이다. 일견 다른 영상 같지만, 일부 겹치는 점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 보인다.


2층 영상은 동해사 East Sea Story, 2024. 3채널 영상이고

3층 영상은 SOS 달려라 신신, 2024, 단채널영상이다.




3층 영상의 제목이 달려라인데, 일부 달리는 프랑스 커플은 있으나, 유람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2층 영상에서 실제 달리는 이미지가 반복된다. 흐르는 물, 달리는 사람, 강가에서 달리는 사람, 물과 불의 가스통 바슐라르적 이미지가 보인다. 3채널 영상의 왼쪽은 영어 자막, 가운데는 한국어 자막, 오른쪽은 일본어 자막이다. 자막도 읽고 영상도 보려면 두 번은 봐야한다. 다행히도 9분짜리라서 2번 볼 수 있다.









1) 3층 영상 중간에 xue 선장의 나레이션이 2층 영상에도 반복된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지진날 때 배 타고 있었다는 것, 친구가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하고 다시는 고향


2) 3층 영상에 방랑자의 법칙 1과 2만 말했는데 2층 영상에 3을 말한다. 1은 같은 여인숙에 2번 묵지 말라는 것, 2는 따뜻한 잠자리는 기대하지 말라는 것.. 3은 뭐였더라 집에 오니까 생각이 안난다. 산과 바다, 경우 뭐였는데 아이고.


3) 3층 영상 뒷부분(SOS)에 노래 부르다가 전자음악으로 전환될 즈음에 나오는 리어카가 2층에 소품으로서 전시되어 있다.


작품이름은 거울 오미코시.







아래는 SOS달려라 신신 컨셉드로잉이다. 2024년작. 




작가의 노트를 읽어보면 '관광객'의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했다.




관광객하면 떠오르는 책은 아즈마 히로시다.

















좋은 책이다. 그전에도 데이터베이스형 소비 등 그의 책은 일부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그가 운영하는 겐론도 찾아보게 된 계기다. 유투브(모두 30분만 무료)에 흥미로운 강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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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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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 위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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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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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plete Unknown

James Mangold, 2024


1. 티모시 샬라메가 밥 딜런 역할을 맡은 뮤지컬 전기 드라마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그가 무려 다섯 해에 걸쳐 밥 딜런의 말투, 노래 스타일, 걸음걸이를 몸에 익힌 끝에 빚어낸 결실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소년 톰 쿠퍼의 애잔한 눈빛 연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 펄먼이 짓던 그 미묘한 표정 연기가 언뜻 언뜻 새어 나온다. 이 모든 것이 티모시 샬라메만의 색채다.


피트 시거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은 문라이즈 킹덤이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보여주던 익숙한 표정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특히 팔자주름이 코마루를 넘을 듯 올라가는 표정은 놀랍다. 마치 표정 변화의 테크니션이라고 할 정도로 얼굴 근육 하나하나를 자유자재로 조율하는 능숙한 배우다. 매니저 앨버트 그로스만 역의 댄 포글러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에서 제이콥 코왈스키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왠지 그 여운이 깊었던 탓인지, 이번 작품에서도 코왈스키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겹쳐 보이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P4FFr88SQ


1964년 밥 딜런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티모시 샬라메가 이 영상의 매 초를 얼마나 잘 살렸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이정도면 밥 딜런 골수팬들의 마음에 조금 들지 않았을까?


2. 악뮤

https://youtu.be/L6bPSUlvm5Y?si=jqd8hN8TlzQTWEy-


악뮤는 예능 프로그램 아는형님에서 교과서 한 페이지를 즉석에서 곡으로 엮어내며 신묘한 창작력을 증명한 바 있다. 애드립으로 작곡한 묵은실 잠자리는 한때 크게 화제가 되었다. 밥 딜런이 실비네집에서 조안과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노래를 할 때와 조안 바에즈네 집에서 밤에 작곡할 때, 이 두 장면에서 악뮤가 겹쳐보였다. 창작의 신은 아무 때나 밥 딜런을 찾아왔을 것이고 그는 그 신에게 응답했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고집하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 세 곡을 관철하고 관중들의 환호를 끌어냈을 때, 조안은 “네가 이겼어.”라고 말했지만, 딜런은 담담하게 “누굴 이겼지?”라고 되묻는다. 조안이 품었을지 모를 질투와 경쟁심은 애초에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오직 자신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는 조안과 중국 식당에서 대화에서 처럼, 안 굶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번역은 a musician who eats라는 대사에서 관계사의 계속적 용법을 잘 의역했다. "먹는 뮤지션"이 아니고, "뮤지션, 먹는"이고 이를 더 반의어로 잘 다듬어서 "뮤지션, 안 굶는"이라고 한 것이다.


연인의 애착과 속박을 바라는 마음이라면, 밥 딜런 같은 남자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찾아와서는 마치 자석처럼 연인을 끌어당겼다가 다시 떠나버리는 자유분방함. 새벽 4시든 그림을 그리고 있든, 집 주소를 몰라 아무 방이나 두드려대기도 하면서 상대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 점. 타인의 감정에 관심없고 자신의 내적 흐름에 충실한 밥 딜런의 성향. 가는 사람 막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알 쿠퍼 같은 경우) 그의 태도. 그래서 실비에게 “가지 마.”라고 읊조릴 때, 밥 딜런이 할 법한 대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강력한 한 마디였다. 포크 음악의 틀을 강요받고, 자기가 원하는 음악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에게는 누군가의 존재가 절실했을 것이다. "stay"는 온전히 기대고 싶은 순간을 대변한 말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의 선택과는 다르다. 밥 딜런은 마음의 의지처로서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두려움을 스스로 삼킨 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관철시켰다.


조안의 질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마도 처음부터 맹아가 있었을 것이다. 데뷔 무대를 처음 들었을 때, 나가려던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따라잡을 수 없는 어떤 천재성을 직감했지만, 일이니까, 업무상 듀엣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상황은 변했다. 데뷔는 자신이 더 빨랐건만, 더 많은 관객이 그의 노래에 열광했고, 정작 자신은 그의 곡을 커버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prolific하다고 할 정도로 풍부한 창작력, 거침없는 작사작곡, 대중의 열광적 환호, 타고난 개인적 매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아마 그녀의 질투는 이 모든 것의 총합이었을 것이다.


3.


https://youtu.be/Zbo7UY8dxh8?si=umwj-rOdaB0dMO2o


밥 딜런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주최 측이 바라는 대로 따라줄 수도 있었다. 원하는대로 해주면 번거로운 일은 없다. 업무상 협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밥 딜런은 그러지 않았다. 왜? 소위 삔또를 상하게 하는 말 때문이다. 누가 포크 음악을 정의하는가? 누가 ‘올바른 방향’을 정하는가? 우리가 알던 그 전통적인 포크 뮤직해달라고, 관중들도 원하잖아. 이런 말들에 저항한 것이다. 


밥 딜런 같은 저항정신의 현현들은 언제나 저항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처음 그는 국가와 정부와 시대에 반기를 들었고, 마찬가지로 국가와 정부와 시대에 저항하던 대중과 함께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도 쿠바 미사일 위기, 핵 군축, 민권 운동같은 시대적 흐름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중반 이후, 그런 시대상은 등장하지 않고 개인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밥 딜런은 새로운 적과 맞선다. 바로 ‘대중’ 그 자체. 자신을 불러대고 무언가를 원하고 자기를 규정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부각된다. 딜런은 자신을 규정하려는 사람들, 포크 음악이 이렇다, 전통이 저렇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포크 음악은 이래야한다라며 당위성의 프레임을 씌우려는 이들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반발했다. 안 따라준 것이다. 업무상 협조를 안해준 것이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최근 국악소녀로 유명세를 얻어왔던 송소희가 국악을 발판 삼아 북유럽 프로듀서와 손을 맞잡고 자신만의 음악을 새롭게 빚어가기 시작했다. 국악중, 국악고를 거쳐 내려오는 전통의 틀 속에서, 선생의 기교를 같은 구간에서 판박이처럼 따라 부르며 좋은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마 추측컨대 폐쇄적인 국악계 내부에서는 송소희를 향한 온갖 수군거림이 있었을 터다. 절대 좋은 말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일탈이라고 했을 것이다. 온갖 회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조금만 참아라. 나중에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 하지만 묻는다. ‘무엇이 국악인가?’ ‘무엇이 포크 음악인가?’


처음에 포크 뮤직을 좋아하던 이들은 환경과 기후와 저항과 히피, 반국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시대가 변하며 이들 또한 과거 어느 세대가 된다. 밥 딜런이 계속 음악을 하는 이상 포크 뮤직을 감상하는 다른 형태의 대중이 또 생긴다. 그가 발굴하고 그가 길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밥 딜런의 저항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세상이다. 과거 그를 지지하던 이들은 또한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국악인가? 국악과 전통을 지켜온 이들의 것인가? 아니면 시대와 함께 숨 쉬며 사람들(民)의 곁에서 노래하는 것이 국악인가? 


피트 시거와 밥 딜런은 우디 거스리의 임종 이후에야 비로소 만났고, 조안 바에즈는 33여개의 앨범을 내며 활동했다. 그냥 각자 자신이 가고자하는 길을 갔고, 각자 자기의 팬층을 구축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포크(대중)와 만나는 포크 음악을 한 것이리라. 누구도 포크를 규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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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 Pei: Life Is Architecture

貝聿銘:人生如建築

29 Jun 2024 - 5 Jan 2025




1. 홍콩은 처음이었다.


홍콩 영화는 많이 봤고, 홍콩 영화 속의 빌딩숲은 눈에 익숙했지만, 스크린 속에서 잘려나간 빌딩숲이 아닌, 눈앞에 꽉 차게 들어서는 그 진경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천루는 하늘을 문지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VO)→N의 구조. 천을 마하는 루. 하늘을(목적어) 문지르는(동사)-  관형수식 - 누각. 영어로는 하늘sky를 scrape긁는다는 뜻이다. 서울의 63빌딩과 시그니엘은 마천루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아무래도 서울의 빌딩들은 서로 간격을 두고 흩어져 있어, 홍콩의 마천루가 만들어내는 그 숨 막히는 밀도를 느끼기는 어렵다. 63빌딩은 과거의 위용을 품은 채 한강을 내려다보며,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노인 같고, 시그니엘은 높이만큼의 존재감은 있지만, 주위가 텅 빈 듯해 홍콩 마천루의 집단이 내뿜는 위압적인 감각이 덜하다.


서울의 하늘이 광활하기 때문일 것이다. 빌딩이 하늘을 점령하려 하기보다는 그 아래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사부랑사부랑 서 있다. 덕분에 어디에서든 시야가 트이고 하늘과 도시가 함께 숨 쉬는 여유가 있다. 홍콩에서 느낄 수 있는 빌딩이 도시를 덮어버리는 듯한 강렬한 인상은 없다.


서울의 야경은 한강을 따라 펼쳐진 불빛으로 부드럽게 흐르지만 홍콩의 야경은 마천루 사이로 번쩍이며 솟구친다. 같은 불빛이라도 도시에 따라 품은 공기의 결이 다르다.


섬이 가라앉지는 않을지, 의심되는 우글바글 거리는 마천루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고, 아래 거리는 네온 빛에 젖어있다. 철근과 유리로 덧칠된 빌딩 아래로 습기 어린 남방의 바람이 스친다.



왜 사람들이 홍콩에 와서 무드럭진 빌딩숲을 보고 동양적이면서도 미래적인, 그 기묘한 사이버펑크적 감성을 만들어냈는지 이제야 실감했다.


스크린으로는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이 거대한 구조물들 사이에 서면 온몸이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목을 한껏 젖혀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빌딩들이 마치 도시에 뿌리내린 방대한 세계수 군락처럼 느껴진다.


아마 언젠가 뉴욕에 가면,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위압적인 감각을 마주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곳의 빌딩들은 또 다른 표정을 짓고 있겠지, 홍콩과는 다른, 묵직하고 단단한 강철의 얼굴로.


뉴욕의 물가와 숙박비를 생각하면 지금과 같이 LCC, 캡슐호텔, 배낭 하나로 다니는 미니멀여행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2. 간 김에 키아프, 프리즈 등에서 봤던 유명화랑도 들러봤다.










센트럴에는 David Zwirner, Pace, White Stone, Tang은 같은 빌딩 5-6,8,10,12층에 위치하고 있다.

그 옆에는 가고시안이 있어서, 5개는 같이 가면 좋다.

오페라 갤러리는 문 닫았다.


침사추이로 넘어가면 홍콩예술관과 Perrotin이 있으니 같이 묶어서 가면 좋다.


3. M+다. 홍콩고궁문화박물관과 함께 서구룡지구에 있다. 







정말 매우 거칠게 분류해보자면

20세기 영국+중국=홍콩

같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옆 마카오는 

포르투갈+중국=마카오인데 

포르투갈+아시아=인도의 고아

도 될 수 있겠다.


대만은 대략

네덜란드+일본+명청+아시아=대만


인도는 대략

19세기 영국+인도=인도

다. 아시아로 더하기에는 인도의 특유의 느낌이 너무 많다.


이런 조합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첫인상 같은 것이 이렇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독일+아시아는 칭다오정도 있는 것 같고 스웨덴(스칸디나비아)+아시아는 없는 것 같다.

그외에 생각나는 것은


프랑스+아시아 = 베트남

소련+아시아=북한, 몽골

러시아+이슬람+페르시아+아시아=중앙아시아

미국+스페인+아시아=필리핀

네덜란드+아시아=인도네시아


정도다. 일본과 한국은 생략.



4. 정해진 조합과 타이밍에 따라 비눗방울이 만들어져 부유하는 몽환적 감각을 주는 설치예술이 있다.





작품만 보면 신기하다! 비눗방울이네! 할 수 있지만


설명을 읽고나면 달리 보인다.


우키요예에서 유래한 "부유의 지경"이라는 예술장르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해서 미적, 시적 및 속세를 초월한 감각(美感,诗意,以及超脱凡尘的感觉)을 주는 장르다.


떠다니는(漂浮的) 무지개 기포가(虹彩气泡) 폭발해서 구름이 된다. (爆裂成云朵)


생명의 짦음을 은유하는 이 거품들, 길상하고 신성한 의미를 지닌 구름들은 아시아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나하나의 실체의 안개고리가 출렁이는 디지털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안개 고리가 스크린 표면에 닿으면 아날로그 공간으로 들어가 실체의 굴레를 벗어나 끝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이렇게 설명을 읽고 나면 작품이 새롭게 보인다.


비눗방울은 짧은 생명의 덧없음을 의미하며, 안개 고리들이 보이지 않는 허공의 디지털 바다를 향해 달려나가다가 스크린 표면에 닿아 아날로그 공간으로 이어져 물질과 허상,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5. 유명 건축가 I.M.Pei의 전시를 하고 있다.




중국어는 : 건축으로서의 인생

영어는 : 인생은 건축이다





이런 폰트와 이런 재질의 신문기사를 보면 자동적으로 1950-1980년대 미국 라디오 방송의 midatlantic 악센트가 떠오른다. 거의 음성 지원이 된다. Paul Harvey, Walter Cronkite, Edward Murrow같은 라디오 방송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로 지원된다.


대충 이런 느낌

https://youtu.be/vEvEmkMNYHY?si=2gFk2avODI4Ju6Mv




굳이 안 해도 되는 겸양표현이 보인다. "나는 건축비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Though myself in no sense an architectural critic.." 요즘 감성은 아니다. 유럽문화를 동경하던 이전 세대에는 많이 보였다. 내가 참조하는 헤게모니의 문화가 다른 곳에 있을 때 자신이 없어서 나오는 류의 겸양 표현이다.



프랑스어의 접속법이다. accepter 동사는 1st pl. 2nd pl.에서만 직설법 현재와 접속법 현재 차이가 드러난다.

그래서 ils acceptent와 pour qu'ils acceptent는 변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음에서는 차익 ㅏ있다.

nous acceptons  vs que nous acceptions

vous acceptez   vs que vous acceptiez


알파벳보다는 한자가 같은 크기에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자막에서 프랑스어, 중국어, 영어 순으로 되어있는데

프랑스어가 물론 조금 더 큰 크기이긴 하지만, 감안하더라도 영어와 중국어를 비교했을 때

같은 길이의 자막에서 영어에 해당하는 부분은 중국어의 뒤의 다섯 글자让我们尝试만이다.



아이엠페이는 루브르로 가장 유명하지 않나 싶다. 그를 한 번쯤 들어봤다는 사람은 대부분 루브르의 유리피라미드로 그를 기억한다.


예술가가 아무리 많은 작품을 만들어도 대표작 1개, 많게는 3개로 기억되면 족하다. 사람들은 10개씩 다 기억해줄 수 없고, 사람 하나에 작품 한두 정도만 연결시킬 뿐이다. 그러한 작품 하나 만들기 위해 인생 전반부의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나는 작품 하나 만들어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






아이엠페이의 커리어는 techinical mastery(기술적 숙련도) and ingenious problem-solving(창의적인 문제해결)으로 marked(특징지어진다)고 써있다.

중국어에서는 훨씬 더 풍부하게 써있다. 

아이엠페이의 직업생애의 성취(职业生涯的成就)는 건축기예(建筑技艺)가 출중고결(高超)하고 문제해결 수완(手腕)이 고명(高明)하다는데 공로를 돌릴 수 있지만(可以归功于)



콘크리트의 물성, 유리의 물성을 이해하고 그 물성과 디자인을 결합했다.




첫 문장에

I.M.Pei regarded form, material, and technique as inseperable라고 쓰여있다.

한국어로 하면 아이엠페이는 형태, 재료, 기법을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중국어로는 조형, 물료, 기술 삼자가 밀접하게 불가분의 관계라고 여겼다.

라고 쓰여있다.

단순한 문장에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고, 단어도 상호치환가능한 것 같은데


form을 형태로도 조형으로도

material을 재료로도 물료로도

techinque을 기술, 혹은 기법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같은 한자고, 의미하는 바는 대략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문화권에서는 이런 패턴을 더 많이 사용하고, 이런 방식의 단어가 굳고,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흘러간다. 단어간의 주파수와 감각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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